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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 Austin이 섹스폰으로 연주하는 <오 대니 보이>
* 나나 무스쿠리가 부르는 <오 대니 보이>
용음회 회원 여러분들에게!
이제 이 시리즈도 그럭저럭 그 마지막 회에 이르렀습니다.그동안 열심히 읽어주시고 들어주신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오늘 마지막으로 올리는 얘기는 <아 목동아-대니 보이>에 관한 내용입니다.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아일랜드 노래지만 안타깝게도 작곡가가 알려져있지 않다고 합니다.단지 그 노래를 채집한 지역은 아일랜드 섬 맨 북쪽 끝의 런던데리라고 알려져 있어 오늘 그곳을 찾아가 봅니다.
이제 시리즈가 끝나 잠시 숨을 고르고 애초에 약속했던 <오페라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만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한 오페라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꾸려가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네요.아무튼 만만치않은 테마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여기 <cafe daum>에서 연재하지 않은 이전 17편에 대한 소개를 하오니 흥미있으시면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단 음악은 죽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사이트는 http://home.freechal.com/yongsan20 왼쪽 용음회를 눌러주삼
1.음악의 아버지 바흐
2.음악의 어머니 헨델
3.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4.인류의 경이 모차르트
5.위대한 악성(1) 베토벤
6. " " (2) "
7.가곡의 왕 슈베르트
8.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9.유복했던 생애 멘델스존
10.가장 독일적이었던... 브람스
11.항가리 음악의 대부 리스트
12.낭만주의 음악의 거봉 슈만
13.또 한사람의 낭만주의 음악의 거봉 바그너
14.이탈리아 오페라의 대부 로시니
15. " " 지존 베르디
16.세계 오페라 3대 거장 베르디,바그너,푸치니
17.핀란드 음악의 아버지 시벨리우스
[오 대니 보이의 고장, 런던 데리]
* 북아일랜드 지도(E라고 쓰인 곳에 런던데리가 보입니다)
북아일랜드 제1의 도시 벨파스트에서 제2의 도시 런던데리까지는 기차로 2시간 20분이 걸린다.비행기에서 내려 런던데리로 바로 가려면 공항에서 5km쯤 떨어진 안트림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는 편이 빠르다.
아일랜드란 말은 본시 ‘녹색의 땅’이란 뜻이다.과연 아름답게 산야는 녹색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땅덩이 전체가 국립공원 같다.아일랜드에는 40종류의 녹색이 있다던가.아일랜드의 별명이 에메랄드 도(島)인 것도 이 선록(鮮綠)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민요 <아 목동아>(대니 보이)는 바로 이 초록(草綠)의 음악회라 할 수 있다.이 노래에서는 초록의 물이 뚝뚝 떨어진다.
런던데리 역에 내린다.역이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외곽에 있다.북아일랜드뿐 아니라 아일랜드 공화국 쪽을 여행해 봐도 도시마다 기차역은 도심 바깥이었다.이것은 아일랜드의 어두운 역사를 말해준다.대영제국의 식민 정책은 식민지안의 도시 간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이런 궁한 짓을 했던 것이다.
* 북아일랜드 풍광
런던데리 역은 시가지를 끼고 흐르는 포일 강 기슭이다.이 강을 크레이가본 교(橋)로 건넌다.길이가 366m나 되는 이 다리는 상하 2층으로 되어 아래층은 자동차 전용이다.다리 위에서 보면 강 건너로 성(聖) 콜럼바 교회의 뾰족한 첨탑이 도시를 압박한다.이 교회가 런던데리의 랜드마크다.
7개의 성문이 있는 성벽 안에 구시가지가 있다.1614년에 만들어졌다는 성벽은 한 바퀴 길이가 약 2km 된다.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서는 시가지 너머로 포일 강과 그 유역의 녹지가 조망된다.
* 런던 데리 시가지
인구 약 10만의 런던데리는 아일랜드 섬의 최북단이다.아일랜드 공화국과의 경계에서 가깝다.원래는 지명이 데리였다.데리는 겔리어로 오크나무 숲이란 뜻이다.17세기 초 영국의 아일랜드 정복이 완성되어 많은 런던 상인들이 건너와 거류지를 형성하면서 런던데리로 이름이 고쳐졌다.지방 토박이들은 지금도 그냥 데리라고 부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런던데리라면 1688년 대포위전을 잊을 수 없다.런던데리를 포위한 카톨릭 군(아일랜드계)에 대항해 성 안에 갇힌 프로테스탄트 군(영국계)은 항복 직전에 있다가 영국 본토에서 윌리엄 3세가 이끄는 원군이 배로 포일 강을 거슬러 올라와 상륙함으로써 성은 해방이 되었다.
런던데리에 있어서의 종교 전쟁의 클라이맥스였다.프로테스탄트의 아성인 성 콜럼바 교회에는 그 해방 때 요란하게 울리던 종들이 아직 종탑에 매달려 있다.성 내에 있는 이 교회에 대해 성 밖에는 카톨릭계의 성 유진 성당이 대치하여 신구교 싸움의 실상을 알려준다.
* 1972.1.30 피의 일요일 사건 현장(멀리 이를 나타내주는 벽화가 보인다)
사건 내용은 아래 댓글에서 간단하게 설명
이 먼 대서양의 섬 끝 런던데리를 찾아온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노래 <아 목동아>의 원산지가 이 곳이기 때문이다.<아 목동아>는 곡 자체만으로는 <런던데리 에어>(Londonderry Air)라 부른다.가사가 붙었을 때 곡명이 <대니 보이>(Danny Boy)요,우리말 번역이 <아 목동아>다.<런던데리 에어>란 이름은 이 노래의 곡조가 런던데리에서 나온 것이란 뜻이다.
사실 <런던데리 에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중의 하나로 흔히 손꼽힌다.19세기 영국 음악을 부흥시킨 작곡가 휴버트 패리 경(卿)도 이 멜로디를 두고 “가장 완벽한 곡조”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이 곡의 악보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55년 조지 패트리란 사람이 더블린에서 펴낸 <아일랜드 고가집(古歌集)> 제1권을 통해서이다.이 곡은 아무 제목도 없이 ‘제인 로스 양 채집’이라는 설명만 붙어 있었다.
이 고요(古謠)는 물론 작곡자가 불명이다.일설에는 원작자가 대영(對英) 저항의 아일랜드의 영웅 휴 오닐을 따라다니던 하프 주자(奏者) 로리 오케이헌이라는 말도 있고,또 다른 눈먼 하프 주자 데니스 오헴프시라는 말도 있으나 모두 근거는 없다.처음에는 가사가 있었을는지는 모르나 제인 로스 양이 채집했을 때는 멜로디 뿐이었다.
* 런던데리 인근의 풍광
<아일랜드 고가집>에 실릴 때는 피아노 포르테의 곡으로 편곡되어 있었다.그래서 <런던데리 에어>로만 전해져 왔다.이 멜로디가 하도 고와 뒤에 여러 사람이 가사를 붙였다.그 중의 하나가 <대니 보이>다.<대니 보이>는 시인 F.E.웨덜리가 1913년에 쓴 시(詩)다.<대니 보이>의 가사가 나오자 이 노래는 전 세계에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런던데리 에어>는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어둡게 그림자 지어져 마디마디에 비애가 절절한 곡이다.아일랜드 민요에 공통된 노스탤지어가 회한처럼 서려 있기도 하다.<대니 보이>의 가사는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어머니의 이야기다.현제명(玄濟明)이 번역한 우리말 가사는 ‘아 목동들의 피리 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로 시작된다.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후의 가사는 원어(原語)의 대의(大意)가 ‘사랑하는 아들아,네가 갈 때가 왔다.나는 기다리겠다.목장에 여름이 오거든 돌아오려무나.아니면 산골짜기에 눈이 덮이거든 돌아오려무나.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는 너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 런던데리 성곽
<대니 보이>란 말은 우리말 가사에 목동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대니’는 ‘다니엘’이란 이름의 애칭이다.이 다니엘 소년의 모델이 누구인지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어떤 주장은 더블린의 도서관원이던 제임스 피츠패트릭의 아들이라고도 한다.그 다니엘 소년은 젊어서 죽었다.
<대니 보이>외에 <런던데리 에어>의 곡에 붙여져 지금도 일부에서 불려지고 있는 가사로는 <테리 계곡에서>라는 것이 있다.런던데리의 골짜기를 떠나 멀리 바다를 건너간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 아일랜드 풍광
<대니 보이>는 실상 본고장에서 듣기 어렵고 다만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망향가(望鄕歌)삼아 지금도 열심히 부르고 있다.
런던데리에서부터 포일 강은 대서양으로 빠지면서 40km의 기다란 입만(入灣)을 이룬다.그래서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의 중요한 항구이기도 하다.런던데리의 부두는 1846년 아일랜드를 휩쓴 대기근(大饑饉) 이후 신대륙을 향해 이민의 배를 매일처럼 띄우던 곳이다.이 부두를 떠난 배들이 <대니 보이>의 노래를 함께 실어 갔던 곳이다.
런던데리를 중심으로 한 아일랜드의 북서 지방은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자연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런던데리를 벗어나면 동북쪽으로는 포일 간의 입만(入灣)과 그 한쪽 끝에 유럽에서 가장 좋은 해수욕장의 하나인 길이 12km의 마질리건 비치,동쪽으로는 로우벨리 공원이라는 로우 천(川)가의 유원지,남으로는 숲과 계곡의 스페린 산지(山地),서쪽과 북쪽은 명승(名勝)의 도네고 지방 등등,데리 계곡이라 불리는 이 일대의 경치가 <대니 보이>의 멜로디를 낳은 것이다.
런던데리에서 젖소와 양떼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완만한 구릉 사잇길을 동쪽으로 25km 가면 리마바디에 이른다.리마바디는 월요일마다 17세기 때부터의 시장이 서는 인구 만명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이 마을의 중심 거리인 메인 스트리트 51번지,자그만 2층 집 벽에 하늘색 원형의 기념판이 걸려 있다.이 집이 <런던 데리 에어>의 채집자 제인 로스(1810-1879)가 살다가 죽은 곳이다.
제인 로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아일랜드 민요를 수집했고,자신이 피아노를 잘 쳤다.여동생 테오도시아 로스가 도와 주어 두 자매는 각기 노래 수첩을 항상 들고 다녔다.목사이자 시인이던 남동생 캐논 로스가 도네고 지방에 낚시질을 다니며 주운 곡들을 많이 갖다 주었다.
* 런던데리를 가로지르는 포일강
1851년 어느 날 제인 로스가 메인 스트리트의 집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한 집시 바이올린 주자(奏者)가 평소 못듣던 곡을 연주하며 지나갔다.우수를 띤 음악이었다.그 자리에서 채보(採譜)를 했다.이것이 <런던데리 에어>다.이 곡이 <아일랜드 고가집>을 편찬한 페트리 박사에게 보내졌다.로스는 그 이후에도 여러 곡의 민요를 그에게 전해 주었다.
제인 로스의 집 앞을 지나가던 바이올린 주자의 이름은 제임스 매커리로 전해진다.메인 스트리트 거리에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없고 제인 로스는 리마바디의 교회 묘지에 묻혔지만 <아 목동아>는 지금 우리나라의 학교 교실에서도 들린다.한 시골 여인의 소박한 정성이 거리의 음악을 세계적인 명가(名歌)로 확성(擴聲)시켰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심산(深山)의 초록처럼 자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오 대니 보이> 가사
첫댓글 대니보이 아일랜드 신토불이 노랜데 실종신고되고 미국이민자가 흥얼흥얼,,, ㅇ참으로 아이러니함다. 푸르름이 만들어내는
대니보이... 청아한 목소리로 열창하는 불라디고의 노래 모습이 영영 잊혀지지안을껌니다. 사람의 조직중 제일 늦게 늙는부분이 목소리임다. 좋은 목소리 타고낫으니 마니 부르소...
피의 일요일 사건(Bloody Sunday)...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72년 1월 30일
영국정부군이 카톨릭계 런던데리 주민들을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14명의 사망,13명
의 중상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말합니다.우리나라의 5.18사건과 유사하다고 흔히 비
유됩니다.런던데리는 그런 비극의 현장으로도 세계인들에게 알려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