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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거듭나다
1980.10.19. 정인세 원장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 부족한 인생들이 다시 아버님 앞에 나아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자 모였사오니 이 시간에 은혜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저희들 심히 부족한 것이 많은 인생들입니다. 아버님 거룩한 빛으로 비춰주셔서 합당하지 않은 것은 다 없이 해 주시고 이 시간 아버님의 거룩하신 빛 가운데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지내는 시간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들 마음 마음을 성령님이 감동하시고 모든 순서를 성령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형제자매들도 어떤 곳에 어떤 형편에 있던지 돌보아 주시고 예수님을 기억하고 성령님을 의지해서 같은 시간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 온 이 땅위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마다 아버님의 힘이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많은 은총이 있어서 이 민족 가운데서도 진정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고 대단이 어려운 가운데 있는 이 땅위에 하늘나라 영원한 평화의 씨가 심어질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특별히 불행한 가운데 있는 이들을 주님께서는 항상 불쌍히 여기시는 줄 믿습니다. 은혜 내려 주시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님께서 끝까지 계셔서 도와주시기를 바라옵고 예수님의 이름 의지해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성경말씀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절서 21절까지 있는 말씀 읽겠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들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밤 예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 하였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시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하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듣고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날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 하였다. 정말 잘 들어두시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습니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입니다. 새로 나야 된다고 내가 말했다. 해서 놀라지 마시오. 바람은 불고 싶은 방향으로 불어댑니다. 당신은 그 소리를 듣지만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지 않습니까?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누구나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니고데모는 또 다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대답 하셨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릅니까? 정말 잘 들어두시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이 세상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할 때에 어떻게 믿겠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이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습니다. 구리 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합니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그를 믿은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 하시려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단 받지 않을 것이며 믿지 않는 사람은 벌써 죄인으로 판단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인으로 판단 받았다는 것은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의 행실이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연 누구나 악을 일삼는 자는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갑니다. 그러면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21절까지 있는 말씀 읽었습니다. 읽은 말씀 가운데 정말 잘 들어 두시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오늘 같이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기 지금 니고데모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한분이 계셨는데 그는 속으로 예수님을 대단히 존경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지도자요. 바리사이파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르기는 했지만 아마 사람의 눈을 피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보면 선생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우리가 알고 있다. 이렇게 고백을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무엇을 보고 그렇게 알았는가 하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그 기적들을 보고 그리고 아마 아 이분은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 이렇게 깨닫게 되고 존경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 위에 말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해방 절에 예루살렘에 머무시는 동안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다.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다. 이런 말씀이 2장 23절에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 말이 있는데 아마 니고데모도 그중에 한사람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24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그들을 신임하시지 않았다. 어째 그럴까? 예수님은 사람들을 믿게 하실 목적으로 오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그랬는데 그들을 예수님은 신임하시지 않았다. 그랬어요. 그분은 모든 사람을 너무 잘 알고 계셨고 누구에 대해서나 사람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실상 예수께서는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시는 분이셨다. 너무나 사람의 마음속을 예수님은 밝히 깊이 꿰뚫어보고 계셨기 때문에 저들이 지금 나를 따라오고 믿는다고 하고 이적을 보고 놀라고 하지만 실제로 마음속으로는 하나도 믿지 않고 있다. 하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신용하시지 않았다. 그렇게 여기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건 오늘 현대 교인들 또 우리들의 마음을 더듬어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기독교인은 많지만 또 이적을 보고 놀라기도 할 테지요? 그렇지만 참으로 예수님에게 믿음직스러운 신자들은 참으로 드물거든요. 그러니까 이 니고데모도 그런 정도의 신자였지요.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다음 이야기 보면 전혀 예수님의 말씀 뜻을 못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바리새교인이라고 그러면 학자이고 또 훌륭한 사람인데 또 유식한 사람인데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통 못 알아 듣는 이야기가 여기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니고데모의 말을 듣고 네가 나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도 알고 가만히 보니까 꽤 믿는 것 같은데 그러나 정말 잘 들어 두시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새로 난다는 그전 성경에는 거듭난다고 그랬지요. 또 중생이라 이거는 아주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거듭난다. 중생해야 한다. 그 문제를 꺼내셨어요. 이건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훌륭하고 참 귀여운 사랑스러운 사람인데 근본문제가 하나있다. 이 사람이 거듭나지를 못했다. 거듭나야 이 사람이 구원을 얻을 텐데 그래서 예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그 지극하신 마음으로 지금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거듭나는 데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래서 이 화제를 꺼내신 건 분명합니다.
이 거듭 난다. 새사람이 된다. 중생한다 하는 건 온 세상 사람도 지금 새 사람 새사람 새마을 새나라 떠들고 있는 문제 아닙니까? 또 기독교인 이라면 누구든지 이 중생을 체험하지 않으면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거듭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하늘나라 못 들어간다 하는 건 너나없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로 거듭난 사람은 참으로 귀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거듭난 사람은 아주 참 쓸고 찾아봐도 만나기가 대단히 어렵지 않습니까? 그럼 이 문제가 오늘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봄직한 문제이다. 그 말씀이지요.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는 또 예수님이 우리에게 지금 대화를 하시는 것으로 이렇게 우리는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못 본다고 예수님이 말씀을 끊어서 말씀하시니까 니고데모는 그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잘 못 알아들었어요. 새로 난다는 것을 예수님은 영적 의미로 말씀하고 계신데 니고데모는 어디까지 던지 육적으로 그 뜻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가 오늘 들을 적에는 니고데모쯤 되면 바리새교인이요, 학자가 그런 말씀 하나 못 알아들었을까? 오늘은 주일학교 아이들이라도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걸 깊은 것은 몰라도 대강은 알 텐데 니고데모 같은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을 텐데 아마 그러실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 조금 여기를 생각해 봅시다. 니고데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육체 고기 덩어리가 다시 난다는 것으로 들었거든요. 아 이렇게 커다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날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런 훌륭한 양반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했을까? 이런 유치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큰 사람이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여쭈어 보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정말 잘 들어라. 잘 들어두시오. 내가 지금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새로 나야 한다는 그 말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 이렇게 설명을 더 했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새사람이 되라고 그거는 어떻게 생각 하시오? 지금 니고데모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입니다. 이렇게 이제 설명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는 이, 우리 사람 이 육적인간은 모태에서 나올 적에 육으로 난 것이야. 그건 어디까지 육의 인간으로서 살다가 육의 인간으로서 마치는 흙에서 났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존재인데 네가 생각하는 사람은 그걸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아. 그러나 또 한 사람이 있어. 그건 우리 속에 있는 영적 사람이야. 참 사람은 우리 속에 있는 영적 영의 사람인데 그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을 이렇게 갈라놓고 그걸 지금 깨닫도록 설명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육에서 나온 사람은 육적 사람이고 영에서 나온 사람이 영적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말하는 새로 나야 한다는 것은 영적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뜻 이지요. 새로 나야 한다고 내가 말 했다. 해서 놀라지 마시오. 그러면서 그 새로 나는 과정을 설명 하세요. 무엇을 새로 난다고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새로 낳는 것인지 그걸 설명하고 계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방향으로 불어댑니다. 당신은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눈에 보이지 않거든요. 그렇지요? 그러나 바람 부는 소리는 누구든지 들을 수 있지요? 물론 바람 부는 결과 나뭇가지가 흔들린다든지 내 살을 와서 하는 그건 알지만 바람 자체는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거든요. 그렇지 않으냐? 이제 그 바람을 비유를 들어서 알아듣게 설명을 하시는 거예요. 성령께서 성령에게서 나는 사람도 이와 같다. 성령으로 새로 난 사람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 그러나 결과는 있다. 그 말 이지요.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 뚜렷하게 결과는 있어. 큰 바람이 불면 나무도 부러지고 집도 무너지듯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큰 변화가 일어나,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을 해도 니고데모는 그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어째요? 그 정도 말씀하면 여기 앉아있는 우리들은 다 이해 하는 것 같습니까? 제가 이둔한 입술로 말하지 않아도 아시는 분은 참 미안한 일이지요. 그러나 역시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역시 또 이중에도 그 무슨 뜻인가?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는 것이 많이 있거든요. 니고데모는 아직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것을 보면 니고데모가 미련하고 둔한 것 같지만요. 사실은 정직한 사람이에요. 요새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못 알아들으면서도 아는 척하지요. 여기 지금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는 분이 실례지만 몇이나 되려는지? 몇이나? 그런데 다 나는 척 하지요? 또 거듭난다는 말씀도 아마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솔직한 사람이라 솔직하게 심정을 무슨 나이니 체면이니 자기는 뭐 그렇게 선생이니 그런 걸 떠난 사람이야. 이게 참 태도가 좋아요. 대단히 겸손한 사람 같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또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너는 유명한 예루살렘의 지도자인데 이런 일을 통 모른다는 말이냐? 정말 잘 들어두시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의 눈으로 여기 우리라는 것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과 그 예수를 따르는 믿는 사람들을 통 털어서 하신 말씀이겠고 또 너희라는 것은 누구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전체로 하신 말씀 이지요.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이 세상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늘 일을 말할 때 어떻게 믿겠습니까? 여기 지금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온 것은 안다고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건 하늘나라 소식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을 통 몰라. 하늘에서 내려온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다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거듭나는 일에 대해만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거기 이렇게 요약하는 말씀을 했지요.
모세가 그때 애급에서 나올 적에 그 뱀에게 많은 사람들이 물려죽으니까 구리 뱀을 들었지요? 누구든지 그 구리 뱀만 쳐다보는 사람은 그때 뱀에게 물렸어도 살았거든요. 그와 같이 오늘 전 인류가 죄악이라는 뱀에 물려서 전부 죽게 생겼는데 여기 구리 뱀은 예수님을 상징한 것 아닙니까? 십자가에서 매달리신 그 예수님만 쳐다보고 믿으면 누구든지 그 죄의 속에서 풀려서 살아난다. 하는 그것이 모세가 뱀을 든 이유이지요. 그것을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이에요. 누구든지 그걸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듭난다는 말끝에 이런 말을 하셨을까?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다. 이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 온 세계에 가장 많이 읽혀지고 또 설명되는 이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믿지 않는 것이 죄다. 그 말이지요.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는데 그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그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심판을 받는다. 망한다. 그걸 말씀하고 여기 보면 그랬지요?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단 받지 않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그것으로 벌써 죄인으로 판단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것이 죄에요. 죄인으로 판단 받았다는 것은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의 행실이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두운 것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모두 사람들이 죄를 짓고 그럼 양심이 어두워지고 영혼의 눈이 어두워지지요. 그럼 어두운 것을 더 좋아하지요. 두더쥐는 땅속으로만 다니고 박쥐는 밤에만 날아다니듯이 도둑놈은 밤을 좋아하지요. 빛을 싫어한다. 그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왜 하셨어?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암만 하늘나라 이 말을 해도 알아듣겠느냐? 이 말이야. 못 알아들을 것 아니냐? 그 말이야. 영혼의 귀도 먹어버리고 영혼의 눈도 멀어버리고 통 세상 캄캄한데서 사는 사람에게는 그런 빛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그런 이야기해도 못 알아들을 것이다. 그 뜻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이 이야기를 우리가 생각하는 가운데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못 본다. 그 이야기 말이지요. 그 니고데모는 육적 사람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낳는다는 것도 육신이 사람 모태에서 나오는 그것만을 생각했고 예수님은 영적으로 새로 나신다는 것 영적 중생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 그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시니까 서로 영 말하는 차원이 달라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이 안통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사람들이야 중생의 참 뜻은 몰라도 대개는 알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이렇게 거듭거듭 말씀하시면서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나온 것은 영입니다. 이렇게 말했지요? 성령께서 나온 사람도 누구나 이와 같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변화를 일으키는 거와 같이 그럽니다. 육에서 난 사람이 성신을 받아서 변화를 일으켜가지고 영적 사람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하셨어요. 성령의 역사는 육적인간은 모릅니다. 암만 들어도 모르고 또 보이지도 않고 성령의 역사는 육적 인간은 모릅니다. 니고데모는 훌륭한 사람이었겠지만 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에요. 그 원인은 어째서 이렇게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느냐? 성신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거야. 오늘 우리도 저도 이렇게 말은 하지만 성신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뜻을 밝힐 수가 없고 여기 여러분이 지금 다 듣고 앉아있지만 이 시간에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못 알아듣고 결국은 깨닫지 못하고 그냥 헤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 문제는 지금 성령이 함께 하시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니고데모는 자꾸 자기 의심을 풀려고 그랬는데 그 성령님의 역사를 빌리지 않고 자기 지식 인간의 지식으로만 그 문제를 풀려고 하려고 애를 썼어요. 오늘 많은 참 그 학자들이 특별히 기독교계의 학자들이 이론으로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파헤치려고 노력을 하지만 많은 실패와 헛수고를 하는 것과 같이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이렇게 말씀하시다가 가만히 보니까 니고데모가 다 깨닫고 물러나는 것 같지 않아요. 어느 정도 이야기 하시다가 이야기가 화제가 다른 데로 돌아가는 것 같은걸 느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시간에 우리가 그 중생이라는 문제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기독교는 거듭나는 이치를 모르고는 새 사람이 된다. 거듭난다. 라는 그 이치를 모르고는 믿을 수 없는 종교 아닙니까? 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참 신자가 아니지요? 세례를 받고 심지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그래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참 신자가 아니지요. 어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러지만 예를 들면 그렇다. 그 말입니다. 또 오늘 700만 명이 예배당에 나와 앉아 찬송을 열심히 부르고 말씀을 듣고 그러지만 거듭난다는 그 사실이 없으면 전부 헛일 아닙니까? 모든 교회의 법을 잘 지키고 의식을 지키고 또 그런다 하더라도 익숙해도 만일 그 인간성이 새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를 못 본다.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 그 말씀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자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옛사람이라고 그랬지요. 믿기 전사람 참 산 믿음으로 들어가기 전 사람을 옛사람이라고 그랬지요. 또 그 옛사람을 세상을 따르는 사람 구습에 젖은 사람 그렇게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옛사람을 사도바울은 이제 우리가 바울서신을 통해서 몇 군데 찾아보면서 이야기 합시다. 사도바울께서는 그 옛사람을 청산한다. 정욕에 속아서, 성경을 보십시다. 에베소 4장 20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진정으로, 진정으로 그의 가르침을 듣고 배웠다면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의 가르침을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이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옛 생활이라는 건 대체 무엇입니까? 옛 생활을 청산하고 그 아래 설명이 바로 나와요. 정욕에 속아서 썩어져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아주 구체적으로 분명히 이렇게, 옛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 그 옛사람 정욕에서 썩어져서 죄만 짓는 그 인간성 속아서 정욕에 속아서 썩어져가는 낡은 인간성 정과 욕 인정에 이리저리 거미줄 얽히듯 얽혀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 인간성 그냥 욕심에 빠져서 욕심으로 욕심으로만 사는 그 망할 인간성 거기 그것은 마귀의 쇠사슬이거든요. 악마는 정과 욕으로 인간을 전적으로 암흑세계로 흑암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악마가 아닙니까? 거기 속는다. 그 말이에요. 그래 속아서라고 그랬어. 무엇이 썩어진다는 거야. 물론 육신도 썩어지지요. 그냥 화류계로 돌아다니다가 매독으로 썩어져가는 사람도 있지 없습니까? 모두 그렇게 썩어지지만 물론 그것도 있지만 제일 영혼이 썩어진다. 그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육이 썩어지는 것은 얼른 발견할 수 있지만 영혼이 썩어지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실은 성신받기 전에는 그 영안이 보이지도 않는 거지요. 요새 썩었다는 말 많이 하지요? 정치도 썩었다. 교육도 썩었다. 그러지만 그것도 좋은 말이야. 그러나 영혼이 썩은 것을 밝히 볼 수 있는가? 만일에 참으로 영혼의 썩는 걸 볼 수 있고 그 썩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이세상은 아마 못 살 거예요. 사실은 정욕에 속아서 썩어져가는 낡은 인간상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이랬어요. 이것도 거듭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 아니에요. 사도바울이 여기는 이렇게 가르쳤어, 마음이 새롭게 되어 생각이 새롭게 되어 그럼 이것은 또 무엇일까? 대체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새롭게 되어 새롭게 되어 그러면 밤낮 옷이나 갈아입고 몸둥어리나 닦고 집이나 새로 짓지, 새롭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새것, 새것 해봤자 갑갑한 노릇 아닙니까? 그럼 이제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새 생각이 무엇입니까? 새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구체적으로 지적이 되어야지요.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제 거기 나오거든요. 참 어려운 문제가 나와요 24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라고 그랬어요.
아 이것 또 말하기는 쉬워도 알아듣기는 어려운 문제 아니요? 하나님의 형상이 보여야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사람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것이 새사람이다. 아 그럼 요새 새마을운동 새 운동 하는데 사람을 결국은 하나님으로 만들자는 그렇게 돼야 정말 새 운동이지, 그런데 여기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사람은 또 무엇이냐? 거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새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사도바울은 아주 선명하게 파헤쳐놓고 있어요. 올바르고 그럼 또 올바른 것이 무엇이냐? 공동번역에는 올바르다고 했지만 그전 개역성경에는 전부 믿음이라고 그렇게 나와 있어요. 믿는 사람 그럼 또 믿는 것이 무엇이냐? 자꾸 이렇게 나오지요? 그래 이건 어디까지 그걸 밝혀주고 우리 마음이 개운하게 납득시켜 주는 건 성신이야. 성신받기 전에는 암만 성경을 파고 들어가고 파고 들어가고 끝없이 파고들어가고 철학은 되려는지 몰라도 신앙은 못되는 거야. 믿어지지는 않아. 그럼 또 여기 올바르고 진리의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랬는데 거룩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 아니요? 거룩을 모르는 사람에게 암만 거룩을 이야기한들 말 할 수도 없지만 알아듣지도 못할 것 아닙니까?
그럼 거룩은 세상에 붙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이라 그랬지요? 하나님을 닮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그 하나님을 닮는 것이 아까와 똑같은 말이 되지 않소? 거룩한 진리라고 진리도 제 멋대로 거든. 저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철학이 진리라고 그래요. 그 사람들은 아주 뭐 자기들이 진리를 파악한 사람이라고 이 공산주의만이 20세기에서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진리라고 그들은 진리라는 말 안하는 줄 아시오? 떡 장사는 떡 장사하는 진리가 있고 막걸리 먹는 사람은 막걸리만 먹는 진리가 있다고 진리라는 말도 실제로 무엇이 진리라는 말로하면 어려워진다니까요. 제가 이렇게 어려운 문제만 자꾸 내놓고 말려는 것 아니에요. 그 아래 조금 설명을 하려다가 말았는데 조금 한마디만 보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그러므로 거짓말 우선 하지 말라 그랬어. 쉽게 풀었어. 거룩하게 살고 올바른 사람 진리대로 사는 사람은 먼저 거짓말부터 하지 말라고 그럼 다 걸리지요? 다 걸려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 하십시오. 그럼 그 외에 많은 설명을 했어.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에베소서에서 한군데 찾아보니까 옛사람을 청산하고 정욕에 속아서 썩어져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아 이런 말이 자꾸 나오지 않습니까?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하고 이렇게 바울사도는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은 기독교 진리요, 기독교 교훈에 중심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걸 모른다면 그건 참 가짜 신자이지, 기독교인이라고 도저히 못해요. 어째요? 그런데 이것이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 이론입니다. 저도 지금 이론을 하고 있고 여러분도 이론을 듣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문제가 되려면 체험이 되어야해요. 체험, 새사람으로 갈아입는 체험, 옛사람을 청산하는 체험, 그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려고 하는 그 싸움과 거기서 얻어지는 생생한 체험, 그것이 필요한 거야. 그러지 않으면 이걸 잘 기억합시다.
겸손한 태도로 저나 700만 기독교인이 다 한번 생각할 문제야. 한국 기독교가 또 여기 앉아 있는 우리가 또 제가 여러분이나 만일 이 중생을 체험하지 못하면 기독교는 허수아비라니까요. 그리고 여기 있는 예배당은 전부 죽정이가 되요. 성당이고 구교고 신교고 간에 그 안에 거듭난 신자들이 없다면 그까짓 건물은 쓸데없는 건물이에요. 그렇지 않소? 이러니까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문제라는 것은 기독교 진리는 무엇이든지 그렇지요? 한마디 한마디가 다 절대로 우리 생명을 좌우하는 문제이지만 우리 신앙생활을 좌우하는 문제가 이 중생문제 아닙니까? 그럼 아까 그 펴놓은 에베소서 그 아래로 조금 내려가 보십시다. 에베소 5장을 다 봤으면 좋겠는데 그 아래 6절 이하를 조금 내려가서 보십시다. 아마 8절만 봐도, 8절만 봅시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이것이 옛사람입니다. 그럼 어두움에 살았는지 지금 이 광주 시가지에 나가서 너희들은 어두움 속에 있다 그러면 아 이 대낮에 어두움이라고 그러네. 그렇게나 알지 이해가 되겠소?
이건 또 거듭난 사람의 입장에서 성신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적에 아 내가 과거에 어두움 속에서 살았구나. 또 모든 사람들이 지금 흑암 속에서 부닥치고 싸우고 미워하고 그러고 사는구나. 그렇게 보이는 거지요. 어두움 속에서 있으니까 싸우고 미워하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서로 전에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세계를 대조하고 있어요. 어두움의 세계, 옛사람, 거듭나기 전 세계, 거듭난 후의 세계 이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믿고 믿는 사람은 빛 가운데 살아야 믿는 사람이지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 이것이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야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항상 그 마음과 행실이 착하고 착해. 그리고 선의 열매를 맺어 그 하는 일이 모두가 착한 일만 해. 착한 일만 해. 그리고 의롭고, 의롭고 또 거짓이 없고 진실해 참되고 의롭고 착하고 그것이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꾸 우리가 무엇이 거듭난 사람인가 어떤 것이 새사람인가 하는 것이 조금씩 설명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또 한군데 보십시다. 빌립보서로 가서 보십시다. 거기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3장 3절 근처에서부터. 여러분은 뭐 성경을 많이 보시는 분은 참 새삼스러운 이야기지요. 그러나 돌아가셔서 아까 그 중간만 읽은 에베소서 4장 5장이나 빌립보서 3장 이하나 그런 걸 우리가 정독할 필요가 있어요. 거기는 이런 말씀이 있지요. 거기는 한마디만 봐요. 영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데 형식적이 아니고 영적으로 육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고기 덩어리는 잠깐 잊어버리고 내 속에 있는 영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노출 되었을 적에 하나님의 영과 내 영이 서로 이렇게 교리작용을 할 적에 그것이 예배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영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리스도 예수만을 자랑하고 이거 만이라는 말은 그 뜻이에요. 예수를 자랑하고 나를 자랑하거나 돈을 자랑하거나 자식자랑 하거나 인물을 자랑하거나 그러지 않고 살림살이 자랑하거나 그러지 않고 예수를 자랑해. 예수만을 자랑해. 예수를 자랑하며 인간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는 이야말로 이것이 참 새사람입니다.
인간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아 돈도 의지하지 않고 자식도 의지하지 않고 집도 누구도 사람도 피조물 하나님 외에 피조물은 그 무엇도 마음에 의지하지 않아. 여기 참 큰 비애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이 지구덩어리위에 그놈의 석유를 의지하다가 이렇게 골탕들을 먹지 않소? 저 부터도 석유 없으면 답답할 겁니다만 어찌하든지 모두가 이 인간적인 것 그리고 또 사람이 물론 사람이 있어야 정치도 되고 교육도 되지요? 선생 없이 어떻게 학교가 유지될 거예요? 그러나 사람을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적인 것을 의지해. 그런데 사람들이라는 건 그런 줄 알아요. 믿을 수 없다. 참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럼 인제 자식한테 골탕을 먹은 사람은 자식도 못 믿을 거다. 골탕을 담뿍 먹어보면 그러지요. 이제 자기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다가 남편한테 배반을 당하면 아이구 남편도 못 믿을 거구나. 이렇게 썩은 기둥을 붙들고 있다가 기둥이 쓰러지면 아이구 그놈의 것 못 믿을 것을 내가 의지했구나. 이러 듯이 자꾸 실패를 거듭하는데 얼마나 해야 하나? 죽도록 거듭해야 돼.
무덤으로 들어가는 날까지 마지막까지 뭐 세상 것 붙들려고 그러는 것이 인간이야. 이것이 가장 큰 비애에요.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 절대로 의지하지 말아야할 것을 자꾸 의지하고 붙들고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죽는 날 가서야 그래서 아마 솔로몬 왕도 무던히 그걸 느꼈던 모양이지요? 이것저것 부귀도 누려보고 영화도 누려보고 처첩도 누려보고 별것 다해보고 지냈지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 전도서 2장에 한절에 다섯 번 말하지 않았소? 헛되다는 말을 그렇게 느껴진 거야. 이제 그걸 느껴져야 하나님께로 들 돌아가는 모양인데 진작 깨달으면 좋을 건데 젊어서 헛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좋지요?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인간은 마지막 시간까지 무엇을 붙들고 헤갈들을 해. 그게 그러니까 저도 인제 그 축에 들지만 늙은이들 믿음 없이 사는 것 같이 불쌍한 건 없습니다.
젊은것은 몰라서 아직도 세상 욕심 꽉 차서 그렇다고 이제 세상 붙들 거 없다는 걸 다 깨달았을 나이인데 아 그런데 늦도록 그래도 세상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같이 가련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소? 그러다가 그냥 세상 붙들고 죽으면 지옥가지 별수 있소? 그것같이 불쌍한 건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는 그런 것이 참 그 할례를 받은 사람이다. 신자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골로새서 3장으로 가봅시다. 거기는 더 아주 대단히 차원 높은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여기를 조금 읽고 우리가 다음 설명을 해야 이해가 되어서 그럽니다. 거기는 아주 또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 했지요. 띄어가서 어디쯤, 9절 근처에서부터 보지요. 9절 그리고 거짓말로, 거짓말로 서로 속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이거 참 문제에요. 저도 오늘 아침에 이 문제를 생각을 하고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내 속에 옛 찌꺼기가 많이 발견이 됩니다. 어때요? 여러분들 속에는 옛것이 없습니까?
청산이라는 것은 뭐예요? 지금 여기 예배당 마루바닥에 종이나 빗자루를 가지고 깨끗하게 쓸어버릴 것 아니에요? 그렇게 여러분 속에서 그 옛 생활 그 욕심이나 부리고 모두 정욕에 끌려살던 그것은 소지해 버리고 깨끗하게 씻어버리고 그 말이에요. 낡은 인간성은 소지해 버리고 그 말이지요?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여기는 벗어버리라고 그랬어. 오늘 산에서 오다보니까 구렁이가 옷을 벗어버리고 어디로 갔습디다. 월동하러 땅속으로 벌써 들어간 모양인지 구렁이가 허물을 벗듯이 그 죄만 짓고 살던 옛 생활을 훌렁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나와야겠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은 지금 니고데모에게 그걸 요구하고 계신데 아 니고데모가 이걸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 나옵니까? 어떻게 합니까? 자꾸 다른 소리만 하고 있지 않소?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지금 골로새서 3장을 펴놓고 있어요.
여러분들 성경 갖은 분들은 같이 보면 더 실감이 깊어지는데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과거사로 했어요. 이미 된 것으로 했어요. 그럼 골로새 교인들은 모두 그런가? 전부 사도바울은 그랬지, 사도바울은 다메섹 성문 밖에서 한번 성령의 역사를 받은 뒤고 체험을 받은 뒤로 아주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았습니까? 그래가지고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우리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구렁이가 허물을 벗듯이 그 추악하고 보기 싫은 것 모두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심 부리고 그저 이렇게 저렇게 살던 그 구렁이 허물 같은 옛 인간은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새 인간은 어떤 것이라고 그랬어요? 10절에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인제 한번 새사람이 되기 시작을 하면 날마다 새로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하늘 백성으로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 하늘나라 지식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나 이런 것은 다 세상 지식이에요. 그런 것 말고 참된 지식 영적 지식 성령이 알려주시는 그 지식 그 참된 지식을 갖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고린도전서 2장 많이 읽어보시면 좋아요. 인제 그런 말씀을 쭉 하면서 12절로 뛰어가 봅시다. 골로새 3장 12절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성도들이라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이라고 이제 그러니 새사람들을 놓고 달래시는 말씀이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새사람들은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과 친절한 마음과 새사람들은 이렇다고 새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동정심이 있어. 그리고 서로들 친절해. 그리고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한다.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해.
왜? 서로 도와주고 서로 도와주고 헐뜯고 해치지 않고 서로 도와줘 피차에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주고 그 무슨 싸움이 나겠어요? 한사람이 백퍼센트 악하다고 합시다. 그래도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 피해주면 되는 것 아니요?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완성하여 하나로 묶어줍니다. 이것은 내 친구에게뿐 아니라 내 가족 믿지 않는 내 가족에게 대해서나 심지어 공산주의자에 대해서 까지 라도 우리 신자는 적용해야 해. 이 빛을 비춰야 하는 거야.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이렇게 거듭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 구습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그것이 첫째 조건이에요. 둘째로는 새사람 새 마음 새것을 갈아입고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러니까 자연, 생활이 그 육적생활이 아니고 성령을 기해서 사는 사람으로 변해지는 거지요. 생활이 지금까지 옛사람은 육을 의지해서 살았지만 새사람은 성령을 의지해서 산다. 요약해서 말하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단계 우리 이야기 합시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제를 그러지 않고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어떻게 하던지 그냥 그 뚫고 나가야하지 않습니까? 이 관문을 중생이라고 하는 관문 이것을 어찌하던지 바울사도 말대로 아주 죽음을 가지고 이걸 통과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경로를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했어요.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이 눈으로는 못 보나 그 결과는 확실하다. 그런데 그 변화하는 게 보이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그 변화하는 걸 성령님은 육안으로는 안보입니다. 우리 육적 눈으로는 성령님을 못 봅니다. 그러나 그 성령님의 역사는 놀랍고 확실하지요.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가지고 인류의 역사가 확 변해지지 않았습니까? 큰 죽음을 앞에 놓고 있던 인류가 그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생명의 세계로 역사는 변해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성령을 통해서 거듭난 사람들은 인생관이 변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말하자면 의식주까지 모든 취미까지 습관까지 다 달라져야 해요.
여기서부터 우리 잘 들읍시다. 이제 실제문제이니까 그러면 모두 달라진다. 그랬지요? 어떻게 달라져요? 아까 그 골로새서나 빌립보서 에베소서에도 조금 이렇게 비췄지만 인제 우리 실제문제로 돌아옵니다. 어떻게 달라지나? 거짓이 진실로 변해지지요? 그렇지요? 성신받기 전에는 거짓말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전부가 거짓이야. 그런데 성신 받고 나면 거짓말이 내게서 자꾸 멀어지고 거짓말을 하면 부끄러워지고 또 거짓행동 옷 입는 것 모두 전부가 거짓이 자꾸 미워지기까지 되어야해. 모두 저부터 거기가지 못 들어갔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중생 많은 역사가 못 일어납니다. 그래 그 거짓 껍데기가 벗겨지고 진실해져야 하고 또 이 중생이라는 과정을 통하려면 반드시 그 교만의 인간성 교만의 탑이 뿌리 채 무너져야 하는데 자기가 교만한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거든요.
어떤 사람이건 제가 누구 흉보는 것 아니에요. 대부분이 이렇게 교만한 것 고쳐야 한다. 교만하다. 그러면 나도 교만합니까? 그러고 물어보는 사람 있는데 그 사람 교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교만한줄 모르는 게 교만이지 뭐, 그렇지 않소? 그런데 이게 제일 무서운 교만 병을 마귀 병 이라고 그럽니다. 마귀는 교만의 상징이니까, 그러니까 모두 자기는 옳은 줄 알고 자기 집안 식구나 다른 사람은 못 믿는 줄 알아. 지금 자기도 못 믿고 있는데 그게 큰 교만이지 뭐요? 모두 자식만 나쁘고 자기는 착한 줄 알고 동네 사람은 죄 악하고 자기는 선한 줄 알고 그런 교만이 어디가 있소? 맨 자식 걱정만 하지 자기는 지금 지옥 대문간에 서있으면서 그거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 이 교만이 무너져 겸손해져야 해요. 이제 겸손해지면 자꾸 자기가 보여 지고 교만할 때는 자기가 안 보여 져요. 겸손해야 자기가 보여 집니다. 낮아져야 자기가 보여 져요.
그래 자기 잘못이 자꾸 보이고 자기 거짓 자기부족 모두 자기 죄가 자꾸 보여 지니까 다른 사람의 허물을 비판할 틈이 없지요. 사실을 알고 보면 그래서 이 교만이 겸손으로 변하고 그리고 오늘 이 우리 삼천리강토를 비롯해서 삼팔선을 중심으로 큰 대결을 하고 있는 것이 뭐에요? 증오 아니요? 증오, 서로 미워해. 증오, 미워하는 것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지금 여기 이렇게 백여 명이 모여서 단체생활을 하고 있는데 만일 이 안에 서로 미워한다는 게 있으면 다른 데가 지옥이 아니에요. 여기가 지옥이에요. 어떤 사람들 속 모르는 사람들 여기를 보고 와서 여기가 낙원이라고 참 여기가 살기 좋다. 그럽니다.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 사람 영혼이 소경이 돼서 못 봐서 하는 소리야.
또 어떻게 보면 성자고 성인 이니까 우리들의 그 악한 것을 못 봤지 여러분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우리들 마음에 이유는 어찌되었던지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지옥이야. 그런데 그것은 아직도 우리가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에요. 이게 변해야 한다니까요. 무엇으로? 사랑으로, 사랑으로 변해서 아무리 저 사람이 미운짓거리를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고 별짓거리를 다해도 그것이 불쌍하게 보여져야해요. 불쌍하게 사랑으로 보여져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 나쁜 짓 한다고 정죄를 하면 아직도 중생하고는 체험을 못한 사람이야. 그렇지 않소? 생각을 해보시오. 거듭난 사람이 몰라서 그렇지 않으면 만일 여러분이 지금 눈이 밝은 사람이 하나있어. 눈이 어두운 사람이 하나있다고 그럽시다.
그럼 눈이 어두운 사람이 돌맹이에 걸려 넘어지면 에이 저 못난 것이 돌맹이에 걸려 넘어진다고 그러겠소? 그래요? 아이구 지금 거기 돌맹이 있다고 넘어진다고 그러며 붙들어 줄 거 아니요? 그렇지 않소? 보이지를 않아서 영혼이 어두워서 싸우고 뭐 그렇게 치고받고 미워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걸 흉만 보고 있을 수가 있소? 슬픈 일이지.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사랑이 없기 때문에 모두 이렇게 되는 거지. 이건 지금 여기 이야기만이 아니에요. 우리 한국 기독교 전체가 큰 사랑의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어두워지는 거지요. 만일 삼팔 이남에 있는 기독교가 사랑의 빛을 환하게 지금 삼팔선에다가 무엇들 놓고 서로 비추고 스피카를 놓고 이북에다가 찬송을 부르고 그러는데 사랑의 노래가 여기서 영혼의 노래가 들려나가면 이북도 녹아지는 거야.
우리 그거 믿어야 해요. 믿어야 해요. 예수님이 그걸 성취시키신 역사니까 우리가 그걸 믿어야 한다니까요. 삼팔 이남에 기독교인들이 사랑의 화신이 되지 않고는 다른 정치적인 것이나 외교적인 것 뭐 유엔을 통한 이런 것 이런 것 가지고는 근본적인 것은 해결이 안 돼. 해결이 안 돼. 그래서 이것이 사랑으로 변해야지요. 또 적게는 우리 개인 개인이 다 혈기가 있지요. 우리가 지금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혈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저도 지금 그걸 의식해요. 저도지금 생각을 해봐도 내 말하고 있는 목소리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혈기를 의식할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이 자리에서 이 말씀을 하면 훨씬 여러분의 영혼에게 가야금을 울리는 소리와 같이 아주 참 아름답게 곱게 들릴 겁니다. 그러나 제 목소리에는 혈기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반발감만 일으킬지도 몰라. 듣기 싫은 마음을 주는지 그건 몰라. 이 혈기라는 것은 인간을 굉장히 괴롭히고 내 영혼을 손상 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간 죽는 날까지 잘 안 빠지는 것이 혈기입니다. 이것이 온유로 변해져야지요.
진정한 의미에서 온유 이렇게, 이렇게 조목을 들면 참 많지 않습니까? 난폭이라든지 혈기가 온유로 되고 탐욕 욕심덩어리 탐욕이 무사무욕으로 변해야 하고 분쟁은 화목으로 변할 것이고 허영과 낭비는 절제로 변할 것이고 조급하고 경솔한 것은 인내와 신중으로 변할 것이고 이렇게 말이 많고 시끄러운 것은 과묵과 침묵으로 변할 것이고 불신앙은 신앙으로 변할 것이고 남을 비평하고 판단하고 악평하던 사람은 이해와 관용으로 그걸 바꾸고 이렇게 변화되는 거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이런 걸 설명해. 모든 걸 그리고 지독하게 인색한 사람들은 누구를 주기를 좋아할 것이고, 그렇지요? 또 요새같이 무자비, 무자비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이 자비스럽게 될 것이고 변해질것 아닙니까? 이런 것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지요. 밤낮 받으려고 하던 사람이 주기를 좋아할 것이고 모든 것이 변할 것 아닙니까? 그게 중생을 체험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바람을 부는 거와 같이 그런 역사가 일어난다고 우리들 마음 가운데서 그런 역사가 일어나 그러면 바람이 불면 결과가 나타나듯이 그 결과가 나타나 그걸 갈라디아서에는 가르쳤지요. 여기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성령께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육체적인 욕정을 채우려고 하시지 마십시오. 육체적인 욕망은 성령을 거슬리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슬립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과 영이라고 처음에 그랬는데 이 육과 영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벗어져, 육이 원하는 것은 영이 안 좋아하고 영이 원하는 것은 육이 못하게 하고 그 로마서에 7장에도 사도바울이 고백했지요? 그래서 18절입니다. 5장,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육정이 빚어내는 것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더러운 것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우는 것 시기하는 것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것 그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 이것이 전부 육에서 나오는 거라고 그거 옛 사람이지요. 그걸 옛사람이라고 그래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한바 있지만 지금 또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그래 예수님이 그런 거야. 이런 일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늘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자는 결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 똑같은 말씀 아닙니까? 그러면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22절 이하에 보면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과 기쁨 평화와 인내 친절과 자선 진실과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못 막는 거야. 성령님이 역사 하시는 거야.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인제 어떻게 변하느냐? 육체와 욕을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죽어야 한다. 죽여 어찌하던지 이걸 죽여야 해. 자꾸 가슴을 치고 통회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들 하는 것도 좋고 금식도 하고 어떻게 하던지 이걸 죽여야 해. 죽이는데 성령님이 협력하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약해서 결심을 해도 또 죄를 짓고 결심을 해도 또 죄를 짓고 그러나 성령에게 구하라. 그러면 성령님이 무한한 탄식으로 너희들의 그 약한 것을 도와주신다고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