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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던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극도로 세련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건축이 절충된 예이기도 하다. 처음 지어진 건축물이자 가장 전망 좋은 요새인 알 카사바,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인 나사리 궁전,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의 헤네랄리페, 스페인 르네상스 시기의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산타 마리아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다. 아치와 기둥, 돔, 각종 수로와 수변, 담담한 벽의 대비 등을 볼 수 있다. 1238년에 그라나다의 술탄 유세프 1세가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화려한 궁궐로 변모시켰다. 사실, 알함브라 궁전이 화려하게 장식된 시기는 그라나다를 비롯한 이슬람 왕국들의 황혼기였다. 레콩키스타로 인해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어진 것. 이교도 상징이 빼곡한 공간이었음에도, 스페인 국왕이나 왕족들, 귀족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대부분을 그냥 둔 채로 그대로 궁궐로 썼다. 성당에 딸린 수도원이 지어졌고, 궁궐의 일부도 기독교식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훼손되고 마는데 계속적인 개수공사도 있었지만, 이곳도 이베리아 반도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말미인 1812년에 프랑스의 세바스티앵에 의해서 탑들이 철거되어 피해를 입고, 1821년에는 지진피해까지 입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전에는 스페인 왕실에서 잊고 찾지 않아 퇴락하고, 지역 총독마저 헤네랄리페에서 거주하면서 궁전은 완전히 방치되었다. 게다가 집시들이 무단거주를 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인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에 의해 1829년 알함브라의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가 집필되어 출판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1828년부터 호세 콘트레라스에 의해 보수가 시작되었다. 1830년에 페르난도 7세의 기부로 지속적으로 보수공사를 할 수 있었으며, 1847년 호세가 사망했으나 그 아들이 물려받아 계속 보수하였다. 1870년에는 국보로 지정하였고 이후 1984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기대거나 만지는 것도 내부에서 엄격하게 금지할 정도로 훼손에 민감하다. 바코드가 찍힌 입장표를 지니고 다녀야 구역 별로 이동이 가능하니 나가기 전까지 소중히 지참할 것. 기둥과 건물 사이에 쇠파이프로 지탱해놓고 있다. 지금은 세월의 풍파로 색이 바랬으나 원래대로 복원하면 알록달록 색이 입혀져서 아름다울 거라고.
이슬람풍 기둥이 세워진 곳에서 세르피코가 오래전 이교도가 살던 성을 차지하여 그 건물을 그대로 썼다는 말을 하는데 가츠가 이 기둥들을 닥치는 대로 베며 둘이 신나게 싸웠다... 그런데, 가츠와 세르피코가 싸우던 이 곳 모티브는 알함브라 궁전이 아니라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라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 이슬람 모스크였는데 레콩키스타로 정복된 뒤 성당으로 개조된 곳이다. 당시에는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그라나다여서 이슬람 문화 스타일로 궁전이 지어져있었다 여기는 왕비랑 공주가 생활했다고 함! 아랍식 문 꽃보다 할배에서 신구가 노래부르다 쫒겨간 장소 말을 하면 울린다 나무를 끼어서 건축하고 또 올리고 쌓고 |
첫댓글 참 아름다운 곳
다시 보고싶은
알함브라 궁전
스페인여행의 절정이라 할만큼....
정말 감탄을 연발했던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최현진 인솔자님은 입장티켓
을 못구해서 밖에서 기다리시 고~ㅠㅠ
산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찍은
마을 (시가지)들이 잘 그려진 드라마 같은 미술작품 입니다
네바다 산맥에 위치한 그라나다는 닥터 지바고의 촬영지
집시들이 동굴속에 살고있다
성악가 키메라가 사는곳인데 남편은 무기상을 한단다
티켓을 4개월간 구했어요
현지가 넘 복잡할정도로 여행객이 많네요
반장님의 너무 상세하고 자세한 설명, 그리고
지나치기 쉬운 순간의 모습들을 훌륭하게
멋진 촬영솜씨로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