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야 / 박명숙
자녀 양육에 자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 키우기가 쉽다고 말할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좋은 부모가 되려고 준비를 잘했다 해도, 살다 보면 생각도 못 해 본 힘든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다. 연습이 있다면 훨씬 쉬울 텐데 처음 가 보는 길이어서 서툴고 실수투성인 게 인생이다. 한 번 걸어가는 건 부모나 자식이 같은 처지인 셈이다. 첫 경험이니까 갈등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 서로 상처를 덜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요즈음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준다. 문제 행동을 보이면 전문가 상담도 받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방송에서 ‘금쪽같은 내 새끼’란 프로그램이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내게도 도움이 돼서 주마다 챙겨 보며 배우고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에서는 그런 혜택을 받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도 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가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2남 2녀를 남겨두고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세월을 술로만 보내서 어머니 속을 빠글빠글 썩였다고 들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불안했다. 아버지는 가정을 나 몰라라 했다. 남의 집 잡일 해 주고, 겨우 먹고 사는 어려운 살림에 그의 어머니 가슴은 숯덩이보다 더 검었을 거다. 자식들과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을 새도 없이 일하러 다녔다. 돈을 벌어 와, 입히고 재우고 자식들 안 굶기는 게 부모가 하는 일 전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편에서는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자녀 알기를 소홀했던 것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리라고 그땐 몰랐을 것이다.
그는 늘 외로웠다. 위로받고 싶은 날이 많았다. 애정이 담긴 말 한마디조차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에서 자랐다. 식구들은 각자 안고 있는 문제가 크다고 여겨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후천적인 환경이 안 좋아도 내면에 있는 긍정의 힘으로 이겨 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에게는 그럴 기운조차 없었나 보다. 부모에게 반항하는 게 무기였다.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보상받고 싶어 문제 행동으로 부모의 관심을 끌었다. 자신을 지키려고 더 강하게 표출하며 방어했다.
반항이 심해지자 어머니가 독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놈아, 누굴 닮아 이렇게 속을 썩이냐? 차라리 나가 버려라. 안 보면 살 것 같다.” 사랑받고 싶었던 어머니에게조차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기타가 유일한 친구가 돼 줬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잠깐 꾸며 서울로 갔다. 사랑과 관심의 결핍이 음악에 더 빠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인생에서 좋았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 요리를 배워 조리사로 일하며 산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고 잘 지내는 것 같아 기뻤다.
3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칙칙한 방 한 칸이 전부다. 그 공간만큼 희망도 좁혀져 있다. 하루 견디며 사는 것이 그에게는 고된 일로 보인다. 술병이 방바닥에 널려 있다. 치료받고 새롭게 살아보자고, 애걸복걸해도 소용이 없다. 가족이 찾아가도 마음의 문을 단단히 잠그고 열어 주지 않는다. 지금도 안 늦었으니 다시 시작해 보자고 건네준 기타도 만질 힘이 없는지 쳐다도 안 본다. 건강 챙기라며 반찬을 갖다줘도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비틀거리면서도 술을 사러 나간다.
속절없이 그가 떠났다. 가는 길을 지켜준 사람도 없이 그는 홀로 갔다. 차디찬 방바닥에 고꾸라져 숨이 멎기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마지막 순간에 남은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그를 보내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내 시선이 머문다. 결핍돼 보이고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가 잘 부탁한다고 보낸 것 같아서. 자신처럼 보내지 말라고.
친구가 부디 천국에서 행복하길 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음 아픈 일이네요. 다음 생에서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봅니다.
고맙습니다.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내 시선이 머문다."
신이 큰 복을 내릴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따듯하신 명숙쌤의 맘결이 느껴집니다.
그 친구분을 향한 위로의 맘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