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분모 / 박명숙
교회에서 말레이시아 단기 선교 갈 사람을 모집했다. 평소에 한번쯤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있던 터라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신청했다. 사연이 있어서 다른 교회로 다니는 남편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은근히 내비치기에 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같이 떠났다. 일행은 모두 열한 명이다. 그이와 함께 가는 선교 여행은 처음이다. 남편은 달력을 보며 날짜를 셀 만큼 기대가 부풀었다. 이때를 손꼽아 기다려온 것처럼 좋아했다. 행여 못 가는 일이 생길까봐 거슬리는 행동은 안 하려고 노력하며 내 말에 순순히 잘 따랐다.
오지의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로 주로 가다 보니 차로 선교지를 옮겨 다니는 시간이 꽤 길었다. 새로운 곳으로 가는 데 세 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 지루하지 않게 차에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다가 이성에 관심이 있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느닷없이 묻는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 결혼하셨어요? 궁금해요. 듣고 싶어요.”라고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남의 연애사가 궁금한 호기심 많은 소녀들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우리 부부는 뜬금없는 질문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만 짓는다. “왜요? 자기가 말해봐요. 어린 딸들이 궁금하다잖아요.” 어느새, 30년이 지난 까마득한 옛일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운지 그이는 내게 말하란 눈짓을 보내며 웃고만 있다. 다른 건 잘 나서면서, 뻥치기도 잘하면서.
“김양, 사무실에 있는 언니가 교회 다니는가?”
“네, 예배당에 꽃꽂이도 해놓는다고 하던대요? ”
“그래? 그 언니 좀 소개시켜 줄란가?”
심부름 간 김양은 시간이 늦어 거기서 바로 퇴근한다고 사무실로 전화한다.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며 남자 직원이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관심 있는 것 같다고 귀띔해 준다. 집에 가려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온다. 어두워지는 시간이어서인지 그의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보인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이어도 눈매가 착하게 생겼다. 나쁘지 않은 인상이다. 긴장되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 법무사 사무실에서 왔습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듣고 처음 뵙겠습니다. 혹시 저녁 식사 같이할 시간 있나요?“
그 뒤로 남자는 퇴근만 하면 광양에서 순천까지 숨가쁘게 달려 왔다.
이렇게 만난 우리.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몸에 열이 많고 적고, 성격이 급하고 느긋하고, 꼼꼼하고 덤벙대고, 먹는 속도가 빠르고 느리고, 걷기 좋아하고 싫어하고, 공감 잘하고 못하고, 계산에 밝고 어둡고 등등. 이런 우리가 결혼해 서로 모나고 각진 데가 닳도록 부딪히며 살아온 아픈 세월. 자꾸 밀어내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부분이 있었다. 그이가 결혼 조건 1순위로 생각한 건 ‘신앙관’이 같아야 한다는 거다. 나도 자취방 옆 교회에 다니며 기도했었다. 신앙이 같은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그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참믿음이면 다 해결된다는 걸. 미워하고 못되게 굴어도 헤어지지 못 할 것이라는 믿음. 공통분모가 고난을 견디는 힘을 보탠다는 걸.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이 둥글둥글 부드러워졌다. 숨이 곧 넘어갈 듯 재촉하더니 차분히 기다릴 줄도 안다. 무쇠 같더니 눈물이 많아졌다. 아무리 분수가 변해가도 분모가 맞춰 가니까 결국 믿음이 이겨낸 거다.
”너무 달라, 맨날 싸우면서도 같이 사는 건 왜 그래?
”성경에 있으니까“라고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남편이 대답한다. 너무 쉬운 진리인데 그런 걸 물어보냐는 반응이다.
”자기야, 우리가 다 달라도 선교하려는 마음은 같은 것 같네. 공통분모가 하나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야. 그치?“
돌고 돌아 선교 여행에 함께하는 게 꿈만 같아 어떻게 만났냐고 물었을 때 감격해서 웃고만 있었을까? 우리가 만난 건 이때를 위하는 것이었을까? 여기까지 오게 하려고 하나님이 다듬어 온 중간 과정이었을까? 시작과 끝이 공통분모인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