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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삶의 예배자
민수기 28:1~7
when?
이번 달 「생명의 삶」에 아인슈타인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이 이웃에게 저녁 식사를 초대받았는데, 그 이웃에게 중학생 된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녀가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무얼 하시는 분이세요?” 머리가 하얗게 쉰 노 과학자는 “나는 물리학을 공부한단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소녀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물리를 공부하세요? 나는 작년에 끝냈는데…”
소녀와 노 과학자가 같은 물리라는 단어를 언급했다고 해서 이것이 같은 것이겠습니까? 적어고 깊이의 차원에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하늘정원의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싶다」 이재기/ 「생명의 삶」 2017년 7월호, p85에서 재인용
우리가 똑같은 예수님을 믿고, 똑같은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어쩌면 각각 다른 신앙의 의미들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에게 이 한 시간 반의 예배는 세상에서의 그 어떤 시간들보다 가장 귀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분에게 이 예배 시간은 세상에서의 다른 시간들과 별 차이 없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이왕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 이왕이면 가장 귀하고 갚진 시간들로 채워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민수기 28장과 29장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절기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민수기 28장과 29장에는 총 여덟 개의 제사와 절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절기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들입니다.
자, 제사와 절기들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를 매일 하나님께 제물로 들려야만 했습니다. 하루를 크게 밤과 낮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불에 태워 하나님께 화제로 드리고, 저녁에도 어린 양 한 마리를 불에 태워 하나님께 화제로 드려야만 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제물을 드릴 때, 곡식을 빻은 것에 기름을 섞어서 소제로 함께 드려야 했고, 포도주나 독주를 제물에 부어 전제로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 제사는 아침과 저녁에 매일 드려진다고 해서 상번제라고 불렀습니다.
하루가 밤과 낮으로 나뉘듯이, 일주일도 크게 안식일과 평일로 나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 외에도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소제와 전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달 중 초하루에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또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지난 한 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드려야만 했습니다.
자, 지금까지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시간단위로 드리는 제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일 년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야 합니다. 상반기가 시작하는 첫 달, 1월은 히브리 달력으로는 아빕월입니다.
우리 모두 민수기 28장 16절부터 18절을 찾아서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또 그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여기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달 14일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던 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던 사람이나 동물들 중에 모든 첫 것을 죽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양의 피를 사면 문지방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기념해서 유월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유월이라는 말은 ‘죽음이 넘어갔다(pass over)’는 뜻입니다. 유월절 다음 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무교절을 지킵니다. 무교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왜 빵에 누룩을 넣지 않았을까요? 누룩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또 황급히 애굽을 빠져나와야 했기 때문에 미처 빵을 부풀릴 시간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자, 첫째 달 15일부터 일주일 간 지키는 무교절에는 어떤 재물을 드려야 합니까?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하나님께 화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에 더해 소제를 더하고,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 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드려야 했습니다. 무교절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회로 모이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일 년 중 상반기 마지막 절기는 칠칠절입니다. 우리 한 음성으로 28장 26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칠칠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는 보리추수가 막 끝나고, 밀 추수가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먹을 것이 넉넉했던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처음 수확한 밀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지금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칠칠절은 다른 말로 맥추절이라고 부릅니다.
또 칠칠절이라는 말은 유월절 다음 날로부터 7주를 세어서 49일이 되는 날 다음 날, 그러니까 50일째 되던 날에 지키던 절기입니다.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주를 세었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 하고, 그 다음날인 50일째 되는 날 절기를 지켰기 때문에, 한자로 ‘열흘 순(旬)’자를 써서 오순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칠칠절에는 처음 익은 곡식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또 속제를 드리고,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 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드려야 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 칠칠절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16장 11~12절은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계십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네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노비와 레위인, 객과 고아와 과부는 모두 누군가가 돌보아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고 이 사람들을 돌보아 주라.” 여러분이 지금보다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고 여러분보다 못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어려웠을 때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염치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먹을 것이 풍성했던 추수의 때에, 과거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고, 그들과 기쁨을 함께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 일 년 중 상반기는 지나갔고 이제 하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다함께 민수기 29장 1절을 읽겠습니다.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자, 일곱째 달 초하루는 일 년 중 상반기를 보내고 하반기를 맞이하는 첫째 날입니다. 왜 하나님은 하반기 첫째 날에 나팔을 불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은 7월 1일을 한 해를 여는 신년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1월 1일이 신년이지만, 유대인들은 종교력으로 7월 1일을 신년(新年)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년이 시작되었으니 크게 나팔을 불어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라는 겁니다. 또 나팔을 불어 지난 한 해 동안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크게 화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월 1일에 나팔을 분다고 해서 나팔절이라고 부릅니다. 이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만 했습니다. 또 소제를 드리고,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 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드려야 했습니다.
7월 1일이 신년으로서 중요한 날이라면, 7월 10일 대 속죄일로 중요한 날입니다. 우리 한 음성으로 민수기 29장 7절을 읽겠습니다.
“일곱째 달 열흘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방금 전에 읽은 말씀에 보면, 7월 10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회로 모여라. 둘째,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라. 셋째,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아마 성회로 모이라는 말씀과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절기 때마다 듣던 말씀이니까 아마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라”는 명령을 일반적으로 “금식과 고행을 행하라”는 말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7월 10일 대속죄일은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을 드리는 날입니다. 이 날 드리는 제물은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입니다. 또 소제를 드리고, 속죄 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드렸습니다.
마지막 절기는 장막절입니다. 우리 다함께 민수기 29장 12절을 찾아서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이레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7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장막절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이나 초막을 지어 놓고, 일주일 동안 그 안에 먹고 자며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셨는지를 비좁고 초라한 장막, 초막 안에 거하면 몸소 경험하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막절을 다른 말로 초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요즘 우리 자녀들이 너무나 먹을 것이 풍부하고 모든 것이 편리한 세상에서 살다보니까 옛 어르신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불편하게 지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데도 그것이 감사한 줄을 모릅니다. 저도 이번에 일주일에 3일씩 금식을 해보니까 모든 음식이 얼마나 귀하고 맛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스마트폰하고 컴퓨터를 다 끊고 한 일주일씩 해병대 병영체험을 보내던지, 아니면 도망 나올 수도 없는 깊은 산 속 기도원 마당에다가 텐트를 쳐 놓고 한 주간을 지내보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하자고 하면 아마 죽겠다고 난리를 치겠지만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주일간 장막절을 지킬 때는 마침 가을 추수가 시작되는 기간이었습니다. 상반기에 지켰던 맥추절에는 주로 보리나 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식으로 먹는 농산물을 추수했습니다만, 하반기에 지키는 장막절 가을추수 기간에는 포도와 올리브와 같은 과일을 주로 수확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래서 수확한 농산물을 창고에 저장한다고 해서 장막절을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장막절 때에는 다른 절기와 달리 엄청난 양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수송아지 70마리, 숫양 14마리,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숫양 98마리를 소제와 전제와 함께 드렸고, 속죄 제물로 매일 숫염소 한 마리씩을 드렸습니다.
what?
자, 길고 약간은 지루한 것 같은 이스라엘의 제사와 절기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은 여러분이 삶의 예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하나님을 예배하고 끝내는 삶이 아니라,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침과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일주일에 마지막 날인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한 달의 첫 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 년 중 첫째 달 열넷째 날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시고, 그 다음날로부터 일주일의 무교절 기간 동안, 하나님은 우리가 누룩 없는 딱딱한 빵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칠칠절, 처음 익은 보리와 쌀을 수확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새해가 시작되는 7월 1일에 나팔을 불며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시고, 7월 10일 대 속죄일에는 금식하며, 고행하며, 나의 죄를 가지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7월 15일부터 일주일간, 비좁고 초라한 장막 안에 머물면서도 지난 광야 40년간을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온통 예배밖에 없습니다.
성경 속의 많은 위인들 가운데 아마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부러움을 사는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아마도 에녹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65세를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 에녹! 얼마나 부럽습니까? 그런데 이런 에녹의 삶은 단 한 줄로 정리됩니다. 창세기 5장 24절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얼마나 에녹을 사랑하셨으면 죽음을 보지 않고 그를 하늘로 데려가셨을까요? 이런 분이 한 분 더 계시죠? 엘리야입니다. 병거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 엘리야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자, 이런 에녹이 한 일이 무엇인가요? 과연 에녹에 365년이나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을까요? 성경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에녹이 365년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 무엇을 했다더라.”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이룬 업적이 없어요. 그냥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기록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어떠어떠한 봉사를 했고, 교회를 위해 어떠어떠한 업적을 남겼느냐에 따라 평가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업적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 동행을 했느냐의 여부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에녹이 365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순종의 예배를 드렸겠어요?
“아이고, 일주일에 한 번 주일오전예배에, 거기다가 우리교회는 주일 저녁예배까지 드리는데,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도 이렇게 힘든 데 어떻게 365일도 아니고, 365년 동안 예배를 드리나?” 아마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에녹이 한 일은 무슨, 무슨 업적을 남긴 것이 아니라, 자기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날마다 순종하며, 매일 매일의 삶을 예배자로서 살아간 것입니다. 하나님과 행복한 동행을 했던 에녹이기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죽음을 보지 않게 하시고 하늘로 데려가신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읽고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시고, 일주일에 하루를 주일로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시고, 한 달의 첫 날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예배하고, 광야생활을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예배하고, 봄과 가을에 추수할 때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축복에 감사하며 예배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저는 여러분들이 예배 가운데 영으로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모든 제사와 절기에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그 양이 절기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제물이 없는 제사, 제물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절기는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제사와 절기 때마다 제물을 요구하시는지 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 히브리서 9장 22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계십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는 죄를 정결케 합니다. 왜냐하면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피를 흘려가며 죽어갑니다. 결국 이 사람은 너무나 많은 양의 피를 흘려서 죽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피를 생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지었던 우리들은 그 죄에 대한 대가로 피, 즉 생명을 내놓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으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죄를 속하기 위해 나 대신 황소와 염소의 피가 뿌려집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또는 일 년에 한 번씩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를 속하기 위해 짐승의 피를 대신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짐승의 피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좀 더 강력하고 영원한 죄 사함의 효력이 있는 피를 사모하게 만듭니다. 마침내 지금으로부터 이천년 전,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라고 두 번씩이나 증언하였습니다.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를 베풉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계십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민수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그 수많은 제사제도와 절기들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죄로부터 정결함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러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24시간 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번 주간 제가 썼던 영성일기 한 편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부족한 저의 삶이 드러나기에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여러분에게 저의 영성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
금식 2주차 이틀째를 지내고 있습니다. 새벽예배 후 교회에서 지내다가 전도대원들과 학교 앞 전도를 하러나왔습니다.
오전에 유기성 목사님의 책 「예수와 하나가 되라」 를 읽었습니다. 우리가 24시간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돈 있고 힘이 생길 때 누구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마련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전도를 위해 짐을 나르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우리 건물 2층에 공사하러오신 인부께서 차를 지금 뺄 거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친절하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상대방의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회개기도가 나왔습니다.
무의식중에 불친절한 저의 혈기가 너무나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금식하며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 애쓰다 보니 하나님께서 나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24시간 깨어서 주님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작은 실수를 통해 깨닫게 하셨습니다. 정말 작은 일에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뜻에 순종하고 싶습니다. 주님,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what’s then?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 살아갈 때 어떤 축복이 주어집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민 28:8).”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민 28:13)”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을 드리되(민 28:24).”
이러한 구절들은 거의 모든 제사 때마다 등장합니다. 우리가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찬송과 기도를 하나님은 향기롭게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삶의 예배를 통해 우리의 무너진 삶의 질서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사역을 통해 혼돈 속의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첫째 날 천지창조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창 1:3)”
하나님을 빛을 창조하신 후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드리는 어린 양 두 마리 중, 아침에 한 마리, 저녁에 한 마리를 화제로 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에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에는 숫양 두 마리를 드리게 하심으로 나머지 6일과는 구별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마다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도록 규정하신 것은 이러한 날들이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과 거룩하심에 동참하기 위한 날들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해를 상반기와 하반기로 구분하시고, 상반기에는 유월절과 무교절, 칠칠절을, 하반기에는 나팔절과 대 속죄일과 장막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매일, 한 주간, 한 달, 상반기, 하반기, 정해진 절기들을 지켜나갈 때 우리의 삶의 패턴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낙타가 쓰러지는 것은 깃털 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일하다가 지친 상태에서는 마지막 깃털같이 가벼운 짐 하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비록 깃털같이 가벼운 짐이지만 지금까지 참고 견뎌온 무게보다 수천 배 더 무거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예수와 하나가 되라」 유기성, 규장, p42).”
그런 의미에서 안식은 축복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은 단지 십계명 중의 네 번째 계명을 지킨다는 문자적 의미를 뛰어 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진 삶의 질서들을 회복시키시고 오히려 더 큰 은혜와 능력 속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매일의 삶 속에서, 매 순간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민수기 서(書)에서 가르치고 있는 다양한 제사들과 절기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 모든 제사와 절기의 중심에는 우리의 대속제물이 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동행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무너진 삶의 질서를 회복하게 됩니다. 이 귀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