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사도행전 28장 7-10절『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퓌레토이스)과 이질(뒤센테리오)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퓌레토이스는 불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 40절에서『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뒤센테리오는 뒤세(부정)와 엔테리오(창자)의 합성어이지만, 이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질은 대장에서 발병하는 급성 전염병으로서 설사와 복통을 수반한다.
오늘날 이런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지 않고 이렇게 치유한다고 하면, 아마도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 9절『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바울은 병 고치는 은사를 통해서, 병자에게 안수를 하고 낫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
인간에게는 면역력이라는 병에 견디는 힘이 있는데, 이게 약화되면 병이 발생하게 된다. 치료와 치유의 차이에서 치료는 병의 원인을 밝혀 처방해서 신속히 낫게 하는 것이지만, 치유는 근본적으로 면역력을 향상시켜, 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대부분 오늘날 사람들은 치유보다 치료를 더 많이 선택하게 된다.
당시에는 병원이나, 약이 부족한 상태에서 민간요법이 성행했을 것이다. 바울이 안수를 하게 되면, 그의 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그 능력으로 순식간에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손을 빌려서 치유하는 것인데, 가끔 이런 능력을 가진 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택은 환자의 몫이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을 통해서 그 섬에서 많은 사람들을 낫게 하신 것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이 뱀에 물려도 죽지 않고 아무런 일이 없는듯 보이자, 사람들이 이제는 바울을 신으로 추앙했다. 이 일로 인해 바울은 그곳 원주민의 우두머리인 보블리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마침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울은 그에게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 섬의 병자들이 바울에게 와서 고침을 받았다. 그 답례로 바울 일행은 그곳 사람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항해에 필요한 물품까지도 넉넉하게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 항해를 시작할 때 바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죄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항해를 마칠 때쯤 바울은 배에 함께 탔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에게까지 가장 고결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사도행전 28장 11-15절『석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디오스쿠로이)라”디오스쿠로이는 쥬피터의 아들들이라는 의미의 우상을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당시에 우상숭배가 다양하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배에 이런 우상의 모양을 한 것은 아마도 바다의 두려움에서 이 우상이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 속에는 종교심이 있지만,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바울이 그 섬에서 석달을 지내고 로마로 가게 되는데, 석달 기간을 지내는 겨울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기록했다. 그런데, 바울이 오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이 마중 나온 것이다. 그 일이 바울을 감동시키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을 감사드린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으며,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짐을 알 수 있게 된다.
로마를 향한 항해를 처음 시작할 때 바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죄수에 불과했지만, 항해를 마칠 때 바울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것은 바울이 고귀한 신분이나 지위에 속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바울의 신앙의 모습 때문이었다.
누가는 바울이 경비병 한사람만 딸린 채 영외의 가택에 연금되는 관대한 조치를 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관례로 보면 바울은 먼저 황제근위대의 대장에게 인계되었을 것이고, 근위대장은 죄수인 바울을 황제의 시위대 감옥인 프레토리움에 감금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바울을 다른 죄수들과 분리하여 프레토리움 밖에 있는 일반 가옥에 따로 있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군인에 의해 따로 감시받으면서 군영 밖에 있는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은 매우 관대한 처우였다. 바울이 이렇게 선처를 받은 이유는 아마도 총독 베스도의 호의적인 조서와 더불어 바울을 호송한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에 대해 경험한 대로 작성한 보고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러한 생활이었을 지라도 죄수의 신분으로서의 생활은 매우 제한적이고 힘든 일이었다. 바울은 군영주위에서 일정한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또한 죄수와 간수를 언제나 하나로 묶어 두도록 규정된 로마법을 고려해 볼 때, 늘 간수의 통제 하에 모든 활동에 제한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 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지도자급 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하나의 통합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보며, 따라서 바울이 초청한 이들은 개별적 공동체들의 장로, 지도자, 회당장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마카비 시대부터였고, 폼페이가 유대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후 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오기도 했기 때문에 로마에는 제법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바울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기의 숙소에 초청한 것은, 그가 죄수의 신분으로서 활동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고, 그들을 초청한 목적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을 변호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둘째는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