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음악가 바하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이 글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영적 생활'(Patrick Kavanaugh저 차동재 역, 생명의 말씀사)pp.27-40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요한 세바스챤은 1685년 독일의 아이제나하에서 태어났다. 바하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는 형의 악보를 몰래 훔쳐다가 늦은 밤까지 자지 않고 달빛에 그 악보를 베꼈다는 유명한 이야기로 알 수 있다.
엄청난 숫자와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쓴 바하이지만 그의 생전에는 경우 작품 원본 10개만이 출판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 작곡가로서의 그의 탁월함이 진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베토벤은 주장하기를, '그의 이름이 바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바하라는 이름의 뜻은 '시내'라는 뜻임) '바다'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무한하고 고갈되지 않는, 풍부한 조합과 조화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바하는 매우 사교적이며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용주나 무능한 연주자에게는 매우 완고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20세 때에 그는 한 동료를 '암염소 바순 연주자'라고 부르며 비웃은 일이 있었다. 그 일로 인해 큰 싸움이 벌어졌으나 동료들의 만류로 진정되기도 했지만 게으른 연주자들에 대한 그의 냉정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바하는 주로 교회 음악가로 일하면서 독일에서 전 생애를 보냈다. 그 곳은 바하 이전 2세기 동안, 개인적이며 성경을 기초로 하는 살아 있는 기독교를 강력하게 주장한 마틴 루터의 유산을 잘 받아들인 곳이었다. 루터 자신이 음악가였는데, 그는 음악이 복음 바로 다음 가는 것이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바하는 그 개혁자의 가장 위대한 음악적 제자가 되었다.
바하는 루터의 확신들을 널리 퍼뜨렸다. 그는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영혼의 소생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작곡을 착수할 때 그의 원고 공란에 'J. J.'(Jesu Juva, 예수님 도와주소서), 또는 'I. N. J.'(In Nomine Jesu, 예수 이름으로)라고 표시하곤 하였다. 악보 끝에 그는 대개 'S. D. 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이라고 썼다. 바하에게 이런 종교적 문구들은 진부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헌신에 대한 신실한 표현이었다.
이런 바하의 음악관에 대해 한 전기 작가는 '그의 삶의 감정적 초점은 의심할 여지없이 종교 안에 있었으며, 음악을 통한 예배 안에 있었다'라고 정리하였다.
바하는 자신의 영적 견해에 따라 교회 음악과 세속 음악 사이에 실제적 차이를 두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작은 오르간교본(Little Organ Book)이라는 그의 '세속적' 작품의 서두에, 그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될 목적으로 쓰여진 이 곡을 인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써넣었던 것이다. 그가 작곡한 많은 다른 작품들처럼, 그의 작은 건반악기교본(Little Clavier Book)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바하는 생생한 묘사의 명수였다. 그는 음악에 붙이고자 한 가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하여 많은 음악적 고안들을 이용하였다. 그의 훌륭한 작품 'B단조 미사곡'(Mass in B Minor)에 나타난 음악적 묘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극적인 순간을 바로 앞에 두고 목소리와 악기 소리는 저음부로 내려가 작은 소리를 내다가 마지막 낮은 음으로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곧바로 이어서 부활 부분에서는 찬란한 영광의 활화산이 폭발하는 음악적 효과를 내는데, 바하 이후로 수세기 동안 작곡가들이 이것을 모방해 왔다.
바하가 성경 구절들을 음악에 붙일 때 사용된 해학도 아주 기술적인 것이었다. 그의 작품인 '마니피카트'(Magnificat)에서, 바하는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 1:53)는 성경 구절을 라틴어로 곡을 붙이려 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공수로'라는 말을 묘사하기 위하여, 그는 갑자기 플루트 연주를 멈추게 하고 그 음악의 끝 부분의 공허함을 표현하기 위해 한 음만 계속 내도록 한 것이다.
바하는 독실한 루터교인으로서 성경을 비롯한 종교 서적들을 아주 열심히 읽으며 영적 문제들을 깊이 탐구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과 예술 사이에서 영적 연결점을 찾고자 애를 썼다. 역대상 25장의 성경 주석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했다. '이 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음악을 위한 진정한 기초이다' 그리고 역대상의 결론 부분에서 그는 '음악이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다윗을 통해 제정되었다는 놀라운 증거'라고 적어 놓았다.
바하가 특히 좋아했던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 예배 의식이 묘사되어 있는 역대하 5:13-14이었음에 틀림없다.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바하는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자기 주석 책의 여백에다 이렇게 써넣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음악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항상 은혜로운 임재로 가까이 와 계신다.'
바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 음악가였다. 그의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레오폴트 왕자의 궁정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 독일 왕후의 예배당에 소속된 지휘자나 작곡가)라는 유일하게 갖고 있던 세속적 지위를 버렸다. 그 대신 라이프치히에 있는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라는 애매한 지위를 선택하고, 그 곳에서 환호 받지는 못했지만 사랑받는 교회 음악의 세계에서 다시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다.
65세가 되어서 쇠약해지던 그의 눈이 완전히 멀게 되었다. 1750년 명성에 비해서 외롭게 죽었으며 마지막 작품으로는 침대에 누워 받아쓰게 한 것으로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는 갑니다'(Before Thy Throne I Come)라고 명명된 합창곡이었다.
천재 음악가 바하는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오히려 천재성에 대하여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만일 당신도 나와 같이 부지런히 일한다면 나와 같이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대단히 열심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바하게젤샤프트가 바하의 수많은 작품들을 최종적으로 다 모아 출판하는데 46년이 걸렸으며, 그 완성본은 60권 의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렇게 많은 작품을 쓰면서도 그는 다른 십여 가지의 일들을 동시에 함께 하였다. 오르간 연주자로, 지휘자로, 악장으로, 개인 교사로, 심지어는 어린 소년들을 가르치는 라틴어 교사로도 일을 한 것이다. 부지런하며 일에 대한 열심 즉 음악을 통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심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그 많은 걸작들을 쓴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있기에 가능하였으리라.
하나님의 사람 바하!
열심히 일한 바하!
멀티뮤지션 바하!
하나님께 대한 바하의 헌신과 그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불굴의 추진력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에게 바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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