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이시백 · 라명재 지음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이시백시인
시를 읽고 이해하려면 시인을 알아야 한다. 이 시는 134편의 시를 마음, 생명, 자연, 도, 인간, 가족, 인생이라는 장(章)으로 나눠 있다. 각 시에는 라명재님(천도교 송탄 교구장)이 경전문구를 달고, 각주에 격언과 단상을 붙였다. 시인은 동학교도다. 동학의 사상을 당신의 삶에 구현하며 산다. 또한 숲해설사이다. 98년 부터다. 그야말로 이 분야의 원조, 살아있는 화석같은 분이다. 최근 보령에 정착했다. 시인은 『숲 해설가의 아침,2003』, 『아름다운 순간,2018』, 『널 위한 문장,2021』라는 시집을 냈다. 이번이 네 번째시집이다. 시인은 소망한다. 100년 뒤에 보아도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시를 쓰고 싶다는. 사물과 사태는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것. 그 시선들이 모여 세상과 우주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그 우주 별자리의 한 부분에 자신의 시가 놓여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스스로 꾀죄죄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았고 유랑하며 지냈다는 시인. 사람을 믿고 만나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숲의 생명들을 사랑하는 시인이 쓴 시. 이제 그 시를 읽고 소화시키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동학
동학이란 무엇인가?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이다. 사람이 하늘이고, 사람 안에 한울님이 있다는 말이다. 철학노동자로 자처하는 유대칠선생님은 동학을 대한민국 철학의 출산으로 보았다. 그는 민중의 고난과 아픔 속에서 민중이 주체가 되는 철학을 세우고자 노력한다. 그는 조선 성리학과 친일, 관변, 강단, 외래 철학으로 우리 보기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한글로 성서을 번역한 정약종의 <천주실의>를 대한민국 철학의 회임으로 보았다. 조선 백성들에게 위계의 사상이 아닌 평등의 사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위계의 양반들은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1801년 신유박해이후 수십만의 천주교 신자가 순교하였다. 이후 동학이 발흥했다. 서학이 도시 서민과 양반 지식인 중심으로 교세가 퍼져 나갔다면, 동학은 지방, 시골 농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최제우의 <용담유사>를 통해 동학은 사회 변혁의 주체로 민중을 내세웠다. 뜻이 밖에 있지 않고 사람 안에 있다고 했다. 동학은 갑오농민전쟁으로, 3.1운동으로 힘을 드러냈다. 지금은 동학이 힘을 많이 잃은 듯 하지만 그 뜻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철학은 윤동주, 류영모, 함석헌, 문익환, 장일순, 권정생을 통해 성장했다고 유대칠선생님은 바라본다. 그는 ‘더불어 주체성’과 ‘더불어 있음’의 형이상학이 민중을 주체로 보는 대한민국 철학의 제 1원리라 본다. 고난과 고통 속에 서로 자기내어줌으로 우리가 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성장했다고 말이다. 이 말은 동학의 유무상자(有無相資)와 통한다. 동학은 그렇게 우리 철학의, 우리 무의식의 원류에 놓여 있는 옹달샘인 것이다.
참나로 나아가는 길
동학은 진리의 존재를 밖에 두지 않는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맘에는‘욕심, 노여움, 어리석음’이 있다. 이 것이 수성(獸性)이다. 수성을 극복하고 참나로 나아가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다. 시집의 책 표지에는 ‘참 나를 발견하는 134가지 명상에세이’라고 적혀 있다. 경전을 시적 언어로 읽는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시인은 시 <길을 걸으며 느낀다>에서 ‘길은 덕이 있는 자의 소유이다’라고 했다. 시집의 행간을 읽으며 덕은 뭘까 생각한다. 덕은 ‘서로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세심하게 주변을 아끼고 살피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 <철없던 때>에서 시인은 어릴 때 줄 지어 나가는 개미들을 발로 쓸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며 덕의 부족을 반성하고 있었다. 사람은 길을 걷는 존재다. 지금 여기에서 과거를 반성하고 앞을 보며 옆을 본다. 시인은 이 길 위에서 덕을 쌓는 수행의 존재가 된다.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시인은 이렇게 자신을 지향한다. 왜 ‘홀로 피어’, ‘꽃이 되’고 싶을까? ‘오직 사랑하는 것을 자기 몸같이 하여 꿈에서 깨어 나를 돌아보라. 내가 피면 온 세상에 꽃이 피리라’는 자기 선언을 시인은 하고 있다. 바다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숲 해설사 시인에게 그래도 정체성은 꽃, 그리고 거기에서 배어 나오는 향기에 있을 것이다. <향기에 취하다>를 읽어 본다. ‘봄볕 좋은 날에 열매 모두가 떠나지만 헐거운 차림새로 어슷하게 나를 세운다. 묻지 말라, 내가 살아온 이력, 당신이 나를 찾아주면 난 족하다. 두고 가지 못하는 이가 있거든,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거든 나의 香情으로 이별을 대신하시라.’ 각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홀로 피어 향을 전하는 꽃이 되는 사람, 이런 살림꾼이 되었으면 좋겠네’. 들판에 홀로 핀 민들레가 된 시인이 보인다. 고통과 고난 속에 심산한 삶을 살아가는 나그네(민중)에게 희망이 되는 민들레.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