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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가리
이 홍사
저는 이제 아버질 포기했어요. 빚은 절대로 물려주지 마세요.
야, 이 자식아 빚은 절대로 물려줄 생각이 없다. 있는 거 팔아서 다 갚고 죽을게. 그래도 물려줄 게 남는다. 재방 밑에 자갈논 두 마지기와 잘 먹고 잘살다 간다는 비문碑文은 물려줄게.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너 새엄마, 이것들은 고스란히 내 아부지한테 물려받은 거야. 물려받은 거 중에서 하나도 뺀 것 없고, 더한 것도 없다.
새엄마고 뭐고 전부 포기할래요. 상속 자체를.
씰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밥 처먹어. 그리고 너 인마 담배나 끊어. 담뱃값도 못하는 주제에.
어제 아침에 밥상머리에 아들 녀석과 한 대화의 일부다. 새엄미라는 말은 빈말이다. 녀석도 안다. 웃자고 한 소리였는데 녀석은 웃지 않았다. 요즘 들어 밥상머리에 앉으면 껄끄럽다. 아내는 늘 밥을 먹으면서 가족끼리 오순도순, 대화를 좀 하자고 했지만, 내가 토를 달았다.
이 사람아! 밥을 먹으면서 무슨 대화를 해? 당신은 입이 두 개야?
그렇게 일축하지만, 오순도순 식구끼리 밥을 먹은 게 그립기만 했다. 그렇게 가족적인 밥상을 받아본 지는 오래되었다.
아들 녀석과 함께하는 밥상은 언제나 껄끄럽다. 아내와 마주하는 밥상도 불편하다. 요즘 들어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 그래서 혼자 먹는다. 요즘 유행어로 그걸 혼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역대 대통령이 중국에 국빈으로 가서 혼밥을 일곱 끼나 처먹었다는 보도가 있어 국민의 빈축을 샀다. 중국이 그리 먼 곳이냐? 밥을 먹으러 귀국했다가 밥을 먹고 다시 가면 되지. 전용기도 있겠다 뭐가 문제야? 아무튼, 가족과 함께하는 밥상이 불편해서 혼자서 밥을 먹는다.
나는 일을 나가든 나가지 않든 새벽밥을 먹는다.
그게 버릇이 되었다. 아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내가 밥을 먹는 시간보다 늦다. 아들 녀석은 아예 오밤중이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놈이다. 밤새 게임을 하다가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자서 점심나절이 넘어야 일어나는 놈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사무실에 내려와서, 조간을 기다리다가 신문을 다 보고 올라가면 아내는 그때까지 잔다. 자는지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아내의 방에서는 기척이 없다. 아내와도 대화가 단절되었다. 각방을 쓴 지가 이십 년이 넘었고 밥을 같이 먹어 본 지가 까마득하다. 돈에 관한 얘기가 아니면 별로 할 말이 없는 관계로 전락했다. 아내와는 관계없는 관계다.
어제는 오랜만에 아들 녀석과 아침을 같이 먹었다. 취업 준비생인지 아니면 실업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게임을 하는 녀석이다. 밤새 게임을 하고 내가 아침 먹는 시간에 식탁에 끼어 앉았다.
야! 야식이냐?
아뇨. 아침부터 먹고 자려고요.
밤샘을 한 게 분명하다. 밤샘을 한 녀석은 아침을 먹고 자겠다고 했다. 하긴, 아들 녀석만 탓할 게 아니다.
내가 일어나는 새벽 시간이면 집 앞에는 술 취한 녀석들이 소란스럽다.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상업지역 안에 든 상가 건물인데 이 층이 사무실이고 삼층을 주택으로 꾸며서 살고 있다. 바로 앞 골목에 식당가인데 밤새 소란스럽다. 휴일이면 새벽까지 마시는 녀석들이 있는 모양이다.
취객의 소란스러움.
상가 지역에 살면 나쁜 점이 그것이다. 나는 오늘을 열고 있는데 녀석들은 어제의 연장전이다. 소리만 지르는 게 아니다. 가끔 우리 마당 담벼락에 토사물을 쏟아 놓기도 한다. 땅값이 비싼 지역에 살면 가끔 남의 토사물을 치우는 수고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앞에 술집이 여러 곳이라 어느 집에 항의할 수도 없는 문제다, 남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 여자의 악다구니 쓰는 목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딸아이가 그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가면 집에서 찾지 않나? 아무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변했다.
집 앞에서 새벽부터 떠드는 건 쏘가리 새끼들이다.
내가 나가서 나무라면 가시로 톡 쏜다. 쏘가리 지느러미에는 가시가 달려있다. 시끄럽다고 뭐라고 할 수가 없다. 가시는 피해야 한다. 젊은것들하고 붙어서 덕을 볼 게 없다. 다만 마당 구석에 와서 토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늘도 집 앞에서 악을 쓰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때가 새벽 세 시가 좀 지나서다. 계집애의 목소리였다. 어느 녀석이 장난스레 젖을 만졌는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이 네 잠 속까지 들어와 비수로 꽂혔다.
어중간한 시간에 깨서 다시 잠들기가 곤란했다.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그 시간에 깨면 어지간히 잔 셈이다. 술집들은 간선도로 하나를 두고 건너에 있다. 술집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우리 앞마당이다. 쏘가리들은 한적한 곳을 찾는다고 뒷문으로 나오지만, 우리 집으로 보면 전혀 한적한 곳이 아니다, 집 앞에 전봇대의 가로등이 나가고부터 정도가 심해졌다. 날이 밝아 나가보면 발로 짓밟아 뭉갠 꽁초들이 늘려 있다. 처음에는 몇 번 쓸기도 했지만 이젠 무덤덤하게 그냥 보아 넘긴다. 오후가 되면 보다 못한 옆집 땅콩아줌마가 쓸기도 하는데 나는 모른 체 한다.
우리 집에도 쏘가리 새끼가 살고 있다. 사는 게 아니라 한 마리 키우고 있다고 하자.
다행히 이 자식은 술을 못 먹는다.
누굴 닮았는지 한 잔을 마시면 얼굴이 홍시다. 어쩌면 그게 다행이다. 살아가면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술이 필요하겠지만 세상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술이라는 도구가 아니더라도 연결고리는 찾으면 된다. 알아서 살겠지. 술이 있으면 신선에게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에게 배운다고 하지 않았든가.
쏘가리 생각은 그만하고 작은고모에 관해서 생각하자.
작은고모의 부음을 받는 건 새벽에 일어나 씻고 있을 때였다.
창문을 타고 넘는 쏘가리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어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세 시가 넘었다.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불을 켜고 씻으러 들어갔다가 나오니, 그 사이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고종사촌 동생 헌수의 이름으로 메시지는 들어와 있었다. 헌수가 맏상주다.
돌아가신 시간이 밤 열한 시라고 적혀있었다. 내일이 발인이다. 그렇다면 오늘 다녀와야 한다. 아내는 아직 모르고 있다. 아무래도 아들 녀석과 동행해야 할 것 같다. 눈치를 보니 내가 씻으러 들어갈 적에 잠자리에 든 것 같은데, 저 쏘가리 녀석을 깨우려면 또 한나절은 걸릴 것이다. 아내는 코로나에 걸렸다가 다 낳았다고 하지만 아직은 불안한 상태다.
지난 추석에 대전 선산에 갔을 때 한번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차가 너무 밀려서 그냥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어딘가 모르게 찜찜했다. 그게 마지막이 되려고 그런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작은고모는 얼굴이 약간 얽었다. 시쳇말로 곰보다. 귀밑과 볼에 마마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원래 곰보는 마음씨가 좋다는 말이 있는데 고모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고모는 성격이 컬컬했다. 여장부다.
고모가 처녀였던 시절은 내 기억에 없고 결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기억에 확신이 섰다.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고모부를 대동하고 일찍 내려와 할머니를 도와 제수를 장만했다.
넌 여자가 무슨 손이 왜 이리 크노?
할머니가 고모에게 날리는 힐책이었다. 고모는 손이 크다. 뭐든지 듬뿍 한다. 그래서 잘 사는지 모르겠다. 고모부는 상이용사였다.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지만, 얼굴 기억은 선명하다. 고모부는 왼쪽 광대뼈가 없다. 요즘 의술 같으면 인공의 광대뼈를 만들어 넣어 얼굴을 고쳤겠지만, 고모부는 한쪽 얼굴이 짜부라진 채로 평생을 살았다. 6.25에 참전했다가 백마고지 전투에서 얼굴로 총알이 관통한 자국이다. 고모부는 항상 말했다.
얘야 내 얼굴에 조국이 박혀 있다. 내 얼굴이 바로 조국이야. 김 상사의 얼굴이 이 나라의 평화를 지킨 거야. 내 얼굴이 훈장이라구.
그랬다. 고모부의 얼굴은 살아있는 역사였고 훈장이었다.
곰보인 고모는 얼굴이 짜부라진 고모부에게 시집을 가서 삼 남매를 생산했다. 고모부는 대전 부근, 대덕, 지금은 도회의 변두리가 된 그곳에서 남의 땅을 빌려 포도 농사로 시작해서 대농의 성장한 인물이다. 당시에 고등학교까지 나왔으니 눈이 밝아 군에서 채비지를 불하받은 땅도 어지간히 많았다. 그 많은 땅을 일구어 놓고 고모부는 돌아가셨다. 집에서 멀지 않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셨다. 작은고모도 남편을 따라서 대전현충원으로 모셔진단다. 부고에 장지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작은고모가 돌아가셨으니 헌수가 물려받겠지만 도회 변두리의 땅이 상당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아무래도 빈소에 가면 한 잔 할 것이다.
돌아올 적에 운전시키기 위해 저 쏘가리를 데려가야 하는데, 쏘가리를 깨울 걱정이 앞선다. 창밖의 쏘가리들은 돌아갔는지 새벽이 오는 마당 앞에 적막이 감돈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일어난 모양이다.
건성으로 훑고 있던 조간을 접고 아내에게로 올라갔다.
아내는 아직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작은고모의 별세 소식에 아내는, 그러니 선산에 갔을 적에 찾아뵙지, 그때 찾아뵙지 않은 점을 타박했다. 예상한 타박이었다. 쏘가리 녀석을 대동하고 둘이서 다녀오는 걸로 합의가 되었다.
저 자식 깨우는 거, 당신이 책임져.
아내는, 이제 자는데, 하며 점심나절이 넘어서 출발하라고 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차가 막히지 않을 것이고 고속도로에 올리면 대전 빈소까지는 한 시간 남짓이니 그때 가도 충분하겠다.
아침을 먹고 텃밭으로 나갔다.
올해 고추 농사를 처음 지었는데 완전히 패농했다. 고추는 어지간하면 사다 먹는 게 낫다는 옆집 아줌마의 말이 있었다. 농사에 대해서 박사라면 박사인 옆집 아줌마가 그렇다면 그 말을 존중해야 한다. 고추에 약을 그렇게 자주 치는 줄 몰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약을 치고 비가 와서 씻겨 내려가면 또 쳐야 한단다. 그걸 모르고 고추 모종이 나왔길래 이뻐서 사다가 심었는데 탄저병으로 완전히 망했다.
역시 농사는 관상용이 아니었어.
고춧대를 일찌감치 다 뽑아내고 거기다가 가을배추와 무를 심었는데 실하게 자라고 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와 배추는 언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결이 달라진다. 무슨 말을 어떻게 뱉느냐에 따라서 나의 격이 달라진다. 평생 농사를 모르고 살다가 지어보니 매일 아침 밭에 나가서 내가 뱉은 언어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밭에 나가더라도 당장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보는 재미로, 버릇처럼 나간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집에 들어오니, 이게 웬일이야? 쏘가리 녀석이 일어나 있었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대전 고모할머니 돌아가셨다면서요?
녀석은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 고생은 안 하시고 잘 돌아가셨지 뭐.
그러기에 지난 추석에 찾아뵈었어야죠. 그까짓 차 좀 막히는 게 뭔 대수예요. 시간도 많았는데,
이 자식이 아주 훈계조로 나무랐다. 이 쏘가리 녀석이 철이 드는 것인가? 이럴 때 보면 아주 멀쩡한 놈이다. 녀석의 나무람을 듣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녀석은 씻고 갈 채비를 서둘렀다. 나는 아내가 내놓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검은색 넥타이까지 매고 완전무장을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아니니 복장은 문상 복장을 하고 나서도 상관이 없다. 쏘가리 녀석도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나섰다.
바로 출발이다,
점심은 아무래도 빈소에 가서 해결할 것이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대전은 금방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차는 밀리지 않았다. 내비게이터를 켰으니 빈소가 있는 장례식장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내일이 발인이라 그런지, 일요일이라 그런지 빈소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어젯밤 열한 시에 돌아가셨으니 삼일장을 한다면 하루는 그냥 접고 들어간다. 오밤중에 한 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이틀 만에 치르는 장이나 다름없다. 문상을 할 사람들은 오늘 하루에 다 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일요일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빈소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헌수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여느 상가에서 보는 빈소와 다를 게 없었다.
빈소에 예를 갖추고 나오니 나에게 그렇게 여동생이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오빠 왔어? 오빠 오셨네, 모두 그렇게 인사를 했는데 누가 누구인지 도통 모르겠다. 돌아가신 작은 고모 딸 둘은 상복을 입고 있어서 알겠는데 큰고모의 넷이나 되는 딸은 도무지 모르겠다. 자기가 누구라고 인사를 하는데 하도 오랜만에 보니 어느 게 언니인지 어느 게 동생인 헷갈릴 정도였다. 어질 적에 보고 못 봤는데 전부가 중년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여동생들이 판을 벌이고 있는 자리에 앉았다. 상조에서 나온 장례도우미 아줌마가 점심을 먹겠냐고 물었다. 그 말에는 쏘가리 녀석이 점심 전이라고 대답했다. 금방 일회용 그릇에 담긴 밥과 국이 나왔다. 여동생들은 쏘가리가 그만큼 큰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네가 준이냐? 아버지를 닮아서 인물도 훤하다. 몇 살이냐? 여자친구는 있어? 길에서 만나면 그냥 지나가겠다. 모두 한마디씩 했다. 우리가 돌아앉은 곳은 고모의 친정 일가붙이고 시댁의 친족이 되는 한 무리는 접견실 저쪽에 앉아 있었다. 헌수의 사촌이나, 고모부의 피붙이는 잘 모른다.
여동생들이 신기해하며 하도 묻는 바람에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밥을 다 먹자 한잔하시겠냐고 물은 아이가 큰고모의 큰딸 지현이였다.
네가 소주 생각나는 거 아니냐?
맞아요, 오빠! 한잔해요.
그 말을 하고는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가서 소주와 맥주를 제 손으로 꺼내왔다. 금세 술판이 벌어졌다.
청호는 어디 사니?
지현이에게 물었다. 청호는 지현이의 바로 밑에 남동생인데 언젠가 사업에 실패해서 빚쟁이를 피해 잠적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소식을 들은 게 없다.
빚 정리가 어지간히 되어가는가 봐. 일산에서 편의점을 하고 있는데 오늘 온다고 연락이 왔었어.
오랜만에 보겠구나. 청호는 어릴 때 보고 못 봤다.
청호의 외가가 우리 집인데 유독 그 애는 자주 오지 않았다. 큰고모는 아직 살아계신다. 큰고모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친정에 발길이 뜸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도 거동이 불편해지자 오시지 않았다. 돌아가신 작은고모는 자주 왔었지만, 큰고모는 아니었다. 청호가 사업에 실패하자 기가 죽은 사람은 바로 큰고모였다. 큰고모도 이제는 연세가 많아 동생이 죽어도 못 오시는 모양이다. 큰고모부의 고향인 논산 시골집에 홀로 살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논산에 그 많던 땅은 청호가 다 거덜을 낸 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오빠! 재 있지?
다른 좌석에 앉은 고종사촌 여동생을 슬쩍 가리켰다. 그쪽에는 자매가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신이 없었다,
누구?
막내 숙현이 말이야.
이름도 얼굴 기억도 희미한 아이다.
저, 애 광주에서 새로 등장한 신흥 갑부다.
그래?
쟤를 보면 정말 팔자 고친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팔자는 고치는 거야. 발칙한 것.
발칙하게 팔자를 고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지현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숙현이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큰고모의 막내딸이라는 것만 알았지. 이름도 나이도 기억하지 못했다. 빈소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서로가 몰라보고 그냥 지나쳤을 아이다.
저 애 시집을 세 번이나 갔어.
지현이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소곤댔다.
능력이 있는 거야, 팔자가 험한 거야?
둘 다.
지현이 말에 의하면,
아무리 살려고 해도, 살아지지 않는 부부가 있다고 했다. 뭐가 맞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함께 못사는 부부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혼했단다. 숙현이의 나이를 물었더니 서른여섯이라고 하고 지현이는 제 말을 이어갔다.
이혼하고 두 달이 안 되어 다른 놈과 눈이 맞아 시집갔는데 그 물건도 물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현이는 그 두 번째 남자라는 인간을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일 년이 채 안 되어 숙현이가 차버린 것이다. 이유는 성격 차이라고 했다. 그 작자와 혼인신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기간에 파탄이 난 것이다.
지현이가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는 이상, 내가 거들어 주거나 캐물을 말이 없었다. 듣기만 했다.
지금 시집을 간 곳은 광주인데, 중매, 아니 소개는 바로 상주인 헌수가 했다는 것이다.
나는 숙현과 고종이지만 헌수는 숙현과 이종이다.
숙현은 헌수와는 연락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같이 광주에 있으니 가끔 만나기도 했던 모양인데, 헌수가 거래처 사장과 접대성 술을 마시다가 숙현에게서 전화가 왔는지 헌수가 전화를 먼저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소개하려고 작정했던 게 아닌 모양이었는데 그렇게 합석 자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숙현이가 나타나니 옳은 접대성 술자리가 된 셈이다. 살롱이나 노래방의 영업용을 부르는 것과는 격이 다른 접대성 술자리가 되었겠지. 그때 숙현이는 두 번째 남자와 헤어지고 홀몸이었던 모양이다.
지현이는 숙현이가 동생이지만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암팡진 구석이 있다고 했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흡연 욕구가 불쑥 솟구쳤다.
지현아. 우리 담배나 피우러 나갈까?
지현이는 내가 자리를 옮기자는 뜻으로 이해를 했는지 냉큼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니 장례식장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특별할 데가 없는 평범한 작은 쉼터였다.
저 애도 쏘가리 기질이 있지?
공원의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숙현이를 두고 그렇게 물었다.
쏘가리 기질?
뒷생각 없이 막 행동하는 아이가 아니었나? 불리하면 숨어버리고
쏘가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지현이는 알았다는 듯이 쏘가리가 숙현에게 적절한 표현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도 쏘가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했더니 지현이는 농담도 잘한다면서 그 애는 쏘가리가 아니라고 했다. 쏘가리 녀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헌수의 아들과 빈소에서 노는 모양이다. 그 애들도 오랜만에 만나니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공원은 비어있었다. 남을 헐뜯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지현이는 차분하게 숙현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 동생이지만 정을 가진 게 아니었다.
숙현이가 헌수의 술자리에 찾아간 날, 바로 눈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엉망으로 취한 헌수는 택시에 실려 돌아가고 거래처 사장과 숙현이가 남아서 그날 밤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사장이라는 작자는 유부남이었다. 그 작자의 나이가 궁금했다. 일곱 살 차이가 난다고 했다. 어쨌거나, 지금 숙현이와 살고 있으니 나에게는 고종사촌 매제가 되는 셈이다. 은근히 그 작자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었다.
유부남이었다면서, 그 마누라는 어쩌고 안방을 차지한 거야?
숙현이가 모질게 굴었지, 그쪽은 아이가 없는데 숙현이가 임신을 한 거야. 그러니 게임은 끝이 난 거야.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아이가 없어 걱정했는데 아들을 둘이나 낳아주니 그쪽 시부모들이 환장한 거지.
광주에서 떵떵거리고 산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데 숙현이는 여성단체 운동가로서 매일 나가서 산다고 했다. 무슨 후원단체를 운영하기도 하며 치맛바람을 흘리고 다니고, 남편은 서울에서 오피스텔 생활을 하고 숙현이는 제 세상을 만난 거라고 했다.
제 애 오늘 벤처를 끌고 왔는데, 지금 또 새 차를 신청해 놓았대, S 클레스라나 뭐라나.
지현의 말을 들으면서 애를 못 낳고 살다가 숙현에게 밀려난 여자를 생각했다. 그 여자는 어디서 이를 갈고 있을까? 좋은 남자를 만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숙현이 신랑은 무슨 사업을 하는데?
나도 잘 모르지만, IT산업 쪽인데 무슨 부품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을 가지고 있나 본데 어지간한 대기업보다 매출이 많다고 들었어.
다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빈소로 돌아오니, 그 사이에 청호가 와 있었다. 청호는 오랜만에 본다. 한눈에 보아도 얼굴이 야위었고 고생한 티가 얼굴에 줄줄 흘렀다. 지금 편의점을 한다고 했으니 큰 벌이는 되지 못한다.
이상한 일은 청호가 제 동생인 숙현이를 몰라보았다는 것이다. 친남매지만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던 모양이다. 큰고모가 낳은 고종사촌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첫째가 지현이, 딸이고 그 동생이 청호다. 그 아래로 미현이, 숙현이, 이렇게 넷인데, 청호는 숙현이가 기억 밖의 동생이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청호는 군에 가기 전에 숙현을 보고 그다음부터는 못 보았다고 하니 그게 이십 년이 넘는 것이다. 군에 있다고 못 보았고 제대하고 서울에 있었으니 떨어져 있었고 사업을 하느라 바빴고 또 잠적 생활을 사 년이나 했으니 제 친동생을 몰라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청호도 몰랐지만, 숙현이도 빈소에 들어서는 허름한 남정네가 제 친오빠라는 걸 몰랐다고 했다.
청호도 오십이 훌쩍 넘어 늙어가고 있었다.
야 숙현아! 네 오빠 소개해 줄게 꼬셔 봐.
지현이는 그 점이 재미있다는 듯이 숙현에게 제 오빠를 소개해 주겠다고 농을 했다. 자연스럽게 사남매가 모인 자리에 술판이 벌어졌고 나도 끼었다. 나로 보면 전부가 동생들이다. 술을 마시면서 들어보니, 숙현이는 제 오빠인 청호에게 앙금이 있었다. 청호가 사업을 한다고 설쳐서 가계를 거덜을 내는 통에 숙현이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건 나도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다. 숙현이는 제 오빠 사업에 최대의 피해자라고 공공연히 떠벌렸다. 빚쟁이들보다 더 억울하다며 평생 안 보고 살려고 마음먹었는데 여기서 마주쳤노라고 했다. 그 말에 청호는 입을 다물고 술만 축내고 있었다.
야 숙현아! 전시에 장군을 태우던 군마도 전쟁이 끝나서 잘 실으면 봉물짐이요, 못 실으면 똥장군이라고 했다. 사람은 자고로 시대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네 오빠 탓을 하지 마라, 네가 좀 일찍 태어났으면 되지 않아? 따지고 보면 네 탓이야.
내가 그 말을 하자 지현이가 끼어들었다.
숙현아, 네 오빠가 지금 임대로 점포를 얻어서 편의점을 하며 임대료도 못 내고 있는 모양인데 번듯한 점포 하나 사 줘, 네 오빠 명의로. 엉뚱한 남에게 후원하지 말고, 형제간에 원수는 그렇게 갚는 거야. 내 동생이라고 편드는 거 아니야. 너도 내 동생이다?
그 말에 미현이도 끼어들었다. 그건 맞는 말이라고.
숙현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신 맥주 탓이 아니었다.
대학을 나온 언니들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네?
숙현은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말했다. 억양에 당돌한 데가 있었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일어섰다. 담배가 급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정도가 심했다. 어색한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빈소를 나와 공원으로 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되새가 떼거리로 나무에 내려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되새.
저 새들도 형제를 알까? 촌수가 있기나 할까? 되새 한 마리가 죽으면 저들도 무슨 의식을 치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다시 빈소로 들어갔다.
오빠! 어디 갔다 왔어?
지현이가 나를 찾았던 모양이다.
쟤 있지? 저 오빠 명의로 상가를 하나 사주기로 했어. 대단하지 않아? 우리 숙현이.
나에게 전한다기보다는 듣고 있던 숙현이 약조에 못을 박는 말이었다. 지현은 그 말을 하며 다른 동생들이 눈치를 못 채게 나에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 말에 눈치를 채고 내가 다시 약조를 받겠다는 듯이 숙현이에게 물었다.
정말 네 오빠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점포를 하나 사주기로 했니? 네 오빠의 명의로?
숙현이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 잘했다. 너 참 어른이 되었구나. 형제간에 도와주는 것은 보험에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대단하구나. 우리 숙현이.
그렇게 숙현이를 다독이고 보니 숙현이가 쏘가리라는 생각을 들지 않았다.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숙현이 너? 쏘가리는 아니구나.
동생들 모두 눈이 둥그레졌다.
쏘가리가 무슨 뜻이에요?
어느 동생이 물었다.
응, 그런 게 있어. 제 마음대로 막 저질러 놓고 수습이 안 되면 숨어버리는 쏘가리.
그 대답은 지현이가 했다.
야, 술이나 한잔, 더 하자. 내가 속이 다 시원하다.
말이 떨어지자 누군가가 맥주를 더 가져오고 안주를 더 가져왔다.
상가의 빈소가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호상의 상가는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것이다. 죽은 어른이 살아있는 아이들 모이라고 자리를 주선한 것이 아닐까? 술병을 따서 청호의 잔에 술을 부어주면서 좋은 동생이 있는 걸 축하한다고 했다. 그 말을 숙현이는 또렷이 들었을 것이다. 이젠 약조를 어기지 못할 것이다.
안색이 달라진 청호에게 술을 따르면서 내 눈에는 난데없이 배추가 어른거렸다.
밭에서 시퍼렇게 자라는 배추가 보고 싶어졌다. 아침에 다녀왔는데, 그사이에 또 보고 싶은 것이었다. 배추는 내 발소리를 듣고 자라는 작물이 분명한 모양이다. 그 발소리를 전하고 싶어졌다.
우리 집 쏘가리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빈소에 퍼질러 앉아 헌수 아들과 노닥거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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