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태복음 18:1-4 2026/5/3 부활절 제5주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노래하나 불러볼까요?
믿음과 소망으로 함께 모여서
사랑을 실천하는 주의 어린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모두 모여라
여기는 장정교회 생명의 샘터
어떻습니까?
장정교회 교회학교 교가로 사용할까 하는데 마음에 드시는 지요.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이 있는 5월의 첫날은 우리나라에서만 ‘근로자의 날’이라고 애써 표현하는 ‘세계 노동자의 날’입니다.
노동의 가치와 신성함을 일깨워주는 날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넘어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워준 분이 계십니다.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 베네딕토입니다.
베네딕토는 하나님의 안에 정주할 수 있는 진실한 행동을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Ora et Labora(오라 엣 라보라):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
기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있어야할 마땅한 행실을 말합니다.
노동,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있어야할 마땅한 행실을 말합니다.
베네딕토는 이 두 가지 일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 안에 정주 stabilitas(스타빌리타스)하는 진실한 인생이 될 수 있다고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기도와 노동을 게을리 하지 마시고 ‘맡겨진 기도’ 그리고 ‘주어진 노동’에 충성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린이와 노동자
기도와 노동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림 하나를 감상하겠습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목수 성 요셉’(oil on canvas, 137 *101cm, 루블 박물관)입니다.
‘목수’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테크톤‘은 나무나 돌을 다루는 장인 곧 건설 건축 노동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노동자의 아들인 동시에 그 자신이 노동자였다는 말입니다. 일용직 노가다 일꾼이지요. 그래서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거친 손을 가진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새)막6: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6:2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6: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이처럼 ‘달갑지 않은 목수(테크톤)’를 ‘달가운 목수(테크톤)’로 복원시키기기 위해 평생 노력을 기울인 건축의 천재가 있습니다.
바로 안토니오 가우디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 가족교회(Sagrada Familia)’를 설계하고 시공한 가우디(Gaudi)는 목수 곧 노동자 요셉을 성가족(요셉 마리아 예수님)교회의 중심인물로 내세웁니다. 아주 특이한 경우이지요. 보통은 아기 예수님이나 어머니 마리아를 성 가족교회의 중심인물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가우디가 기도뿐만 아니라 노동의 가치와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노동자 요셉을 성가족 교회 중심인물로 내세웠다는 것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 가족교회가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가치이자 특징입니다.
그래서 가우디는 '탄생의 파사드(건물의 정면)'를 건축할 때, 요셉의 노동 그 노동의 가치와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요셉 머리 위로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일벌들을 마치 하늘의 면류관처럼 새겨놓았던 것입니다.
자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서 조르주 드 라 투르 작품 ‘목수 성 요셉’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목수 요셉과 목수의 아들 예수입니다.
이 그림에서 저는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의 노동과
또 하나는 아버지의 노동을 돌보는 아들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노동과 아들의 기도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가족(생계)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모든 노동을 귀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노동자의 안전을 비추는 기도의 촛불을 밝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마태복음을 읽다보면 예수님의 행적 사이사이에 다섯 편의 설교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 오경을 연상시키는 구조이지요.
①마태복음 5-7장: 산상설교
②마태복음 10장: 12제자를 파송할 때 한 파송설교
③마태복음 13장: ‘천국은 마치’로 시작하는 천국에 관한 비유설교.
④마태복음 18장: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에 관한 설교
⑤마태복음 24-25장: 종말에 관한 설교
이중에서 오늘 본문이 담겨져 있는 18장은 네 번째 설교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질문, 이 질문은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합니다.
첫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겨야한다는 것
둘째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평가받을만한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제자들의 어리석고 기분 나쁜 이 질문에 예수님은 세 가지로 답을 주십니다.
첫째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의 해답은
돌이켜서,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새)마18:2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곁으로 불러서,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18:3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쓴 동시입니다.
내가 누나니까
과자 사로(러) 갔다.
동생이 자동차를 산다고 했다.
돈이 모자랐다
(돌이켜서)내가 천원만 사먹었다.
(*돌이킴의 결과들)
(동생)자동차를 살 수 있었다.
(나)기분 참 좋았다.
내가 누나니 그래야 된다.
둘째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의 해답은
예수 공동체 안에 있는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마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18:6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18:7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과 25장 종말 설교에서 예수님이 이런 기준을 잡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마25: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25: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25: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25: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25: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25: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5: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셋째‘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의 해답은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새)마18:10 "너희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가 참 많이 인용하는 비유 하나를 들어주십니다.
(새)마18: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18: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가 그 양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그러니 여러분
미천한 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무능하다 하여 배제하고, 힘없다 하여 외면하는 일이 없기를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확신에 찬 이 어리석은 질문에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주목시킵니다.
첫째 돌이켜서,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
둘째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지 않는 사람
셋째 작은 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새겨
첫째 돌이켜서,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십시오.
둘째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지 않는 사람이 되십시오.
셋째 작은 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