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
어느 한 나라의 임금은 남 모르는 심각한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크다는 것이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이런 건 절대 아니었다. 6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하던 귀가 5년 전 어느 날부터 갑자기 조금씩 커져가더니 1년 전 겨우 커지는 게 중단되었지만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귀가 볼성 사나워, 엿새간은 몸이 아프단 핑계로 국사에 참여하지 않고 대신들에게 위임하고 있었지만 평생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머리를 써서 큰 모자를 쓰기로 결심했다.
이에 나라 내의 최고의 갓장이를 부르기로 한 왕. 갓장이는 왕의 명을 받아들이고 서둘러 왕의 침소로 달려갔다. 갓장이가 오자 내시가 침소 밖의 문을 서둘러 닫고, 침소 안에서 왕은 갓장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갓장이는 왕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웃음을 꾹 참았다. 감히 무엄하게 왕의 모습을 보고 웃으면 목이 달아나는 건 둘째치고 일족이 멸족당하는 불온한 일을 당하니까. 왕은 갓장이에게 이 귀를 가릴 만큼의 큰 모자를 만들어달라 하고 만일 소문을 내면 반드시 일족을 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갓장이는 왕의 명을 받아들여 서둘러 집으로 가서 귀를 가릴 정도의 큰 모자를 만들어 바쳤다.
왕은 그 모자를 쓰고 병이 나았다고 하면서 다시 정무를 보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갓장이였다. 그 사달 이후 갓장이는 왕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지만 함부로 발설할 수가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심한 마음고생을 하며 지내야했다. 결국 골병이 든 갓장이는'에라, 어차피 병으로 이래 죽으니 처형당해 저래 죽으니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을 하고 죽자' 라고 굳게 결심하고 한밤중에 뒷산의 대나무 밭 중심에 땅을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닷!!!'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계속 소리를 지르자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뻥 뚫려 속 시원하게 병이 나았는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그 이후, 대나무밭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고 심지어 대나무를 사용하는 물건 전체에 그 소리가 나자 궁궐은 난리가 났으며 왕은 이 사태에 놀라 서둘러 대나무를 자르라 했으나, 대나무가 자라면 바로 그 소리가 들렸으니... 아예 문제의 대나무밭 전체를 다 밀고 싸리나무를 심었지만 이마저도 싸리나무가 그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결국 싸리까지 다 베어버렸으나... 이미 온 나라 전체가 왕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 나라 전역 뿐 아니라 나라에 오가는 사람마다 왕의 당나귀 귀 얘기를 하는 등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자 결국 왕은 진짜로 병이 들어 몸져누워버렸다. 그러던 중 왕에게 두 사람이 상소를 내고자 오게 되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가 보니 중년의 남자와 남자의 아들인 젊은 청년이 왕에게 온 것이다.
중년의 남자가 왕에게 왕의 귀는 결함이 아니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라고 당부하자 왕은 자신을 놀리는 거냐고 화를 냈다. 그러자 청년이 다급하게 아버지께선 다른 뜻이 아니라 왕에게 조언을 하고자 온 것이라고 해명하였고 왕은 노여움을 풀고 청년의 말에 따라 남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중년의 남자는 자신은 관상을 조금 볼 줄 아는데 본래 큰 귀들은 장수와 복을 불러오는 관상 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왕은 이에 노여움이 다 가라앉았으나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귀는 이미 그 정도까지 넘어선 상태라며 우울해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것은 하나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얘기하며 그 귀는 백성의 소리를 잘 들으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설명해주었다. 본래 큰 귀를 가진 왕들은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서 후에 명군이라 칭송을 받았다고 얘기하며 왕에게 그것은 전혀 숨길 일이 아니라며 얘기했다.
왕은 중년 남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것은 백성의 소리를 들으란 것임을 깨닫고 완전히 마음을 풀어서 남자와 청년에게 수많은 금은보화를 상으로 내린 뒤 자신의 약점이던 귀를 마음 편히 내놓고 백성의 소리를 들어 훗날, 위대한 성군 중 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1. 미다스 왕 버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미다스 왕 설화가 있으며 만지면 금이 된다는 그 마이더스다. 그 일로 학을 뗀 그는 화려한 것이라면 질색을 했는데, 훗날 음악의 신 아폴론이 숲의 신 판과 악기 연주를 겨루게 되자 심판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아폴론의 리라 연주가 판의 피리 연주보다 많은 호응을 얻게 되자 그는 화려한 리라 연주보다 판의 소박한 갈대 피리 연주가 더 낫다며 혼자 편파판정 [1]을 했고 분노한 아폴론 신이 그딴 것도 귀라고 달고 다니냐며 잡아 당겨서 귀가 길어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2. 경문왕 버전
한국 버전은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그 주인공으로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여기서는 우물이 아니고 대나무 숲이다. 또한, 사실을 안 사람은 복두장, 즉 왕의 모자를 다루는 기술자로 나온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이 이 소리를 싫어해서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더니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혹은 크다)"라는 소리로 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