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4월 7일(주일) 오전예배
말씀 : 마태복음 21:18~22
제목 : 열매 맺는 기도
도입 :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신 그 한 주간에 있었던 사건 중 하나입니다.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들어가시기 전에 성 가까이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합니다. 아침 일찍 예수님이 나오셔서 시작하셨다고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그 무화과나무에게 말하기를 이제는 네가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오늘 말씀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당시 열매 없는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비유로 교훈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의 기도는 역사를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열매 없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 할 때 길가에서 무화과나무를 보고 가까이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당시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주님이 시장하셨다는 것은 배가 아주 고팠다는 것인데 주님이 인자로 오셔서 배고픔과 고통을 느끼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나중에 십자가를 지실 때 고통이 있었겠는가? 어떤 사람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아마 고통을 못 느낀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완전한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배고픔과 고통을 다 느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시관을 쓰시고 등에 채찍에 맞으시며 고통받으실 때 그 고통을 다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혀서 돌아가실 때 그 고통을 다 느꼈습니다.
주님이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 가까이 갔는데 그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했습니다.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열매 없는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비유로 교훈하기 위함이라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배가 고픈데 열매가 없으니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무화과나무가 바짝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예화) 성전청결 사건
예수님이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후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보니 온갖 장사하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소와 양을 팔기도 하고 또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도 있고 또 비둘기파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으로 그 소나 양을 다 쫓아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도 보내버리고 돈통도 엎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13절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이사야 56:7에 [~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이 어떻게 해서 장사하는 집으로 바꾸어 버렸는가?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양이나 소를 몰고 옵니다. 약한 사람은 비둘기를 가지고 옵니다. 백성들이 멀리고 소나 양을 몰고 오려면 지치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팔아서 돈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인근에서 소나 양을 다시 삽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립니다.
이렇게 하다가 보니 성전 근처에는 늘 소나 양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둘기가 있고 돈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화폐가 생활에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헬라 돈도 있었습니다. 이런 돈은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이스라엘의 구별된 헌금이어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돈을 바꾸면 이윤을 좀 남깁니다. 이 이윤이 많은 사람일 경우 엄청난 이윤이 됩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이 이것을 남겨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 독점권이 있었습니다. 성전 밖에서 하면 독점권이 될 수가 없으니 성전 안에서 짐승을 팔아 주기도 하고 돈을 바꾸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엄청난 이윤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 성전에 가보니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이 소나 양을 팔아서 돈 버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비둘기 팔고 그리고 돈 바꾸어 주고 돈을 버는 것입니다. 이 독점권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다 내쫓아버렸습니다. 성전 밖으로 쫓아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돈 통도 엎어버리고 비둘기도 날려 보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마음을 쏟지 않고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집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돈을 버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당시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신앙 상태를 잘 반영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데 실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열매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열매 없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영접하고 섬겨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가장 잘 영접하고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배척하고 심지어 결국 십자가의 죽음에 내몰았습니다. 그들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열매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신앙의 열매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오늘날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전혀 변화하지 않고 전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장이 없으면 열매 없는 유대인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들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라 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아주 큽니다. 그리고 잎이 가득 맺혔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화려합니다. 그러나 정작 무화과 열매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바로 열매로 맺힙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입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중요합니다. 무화과가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도 아닙니다. 향기로운 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잎만 무성하여 사람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읽은 이 말씀은 동일하게 마가복음 11장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는 이것을 시간을 두고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기고 성 안에 가셔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다시 말씀 드리기로 하고 그 주님이 다음 날 아침에 일찍 그 성 앞으로 갔는데 그 무화과나무를 만났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니까 그 나무가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이것을 간략하게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하시니 다시는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 하시니 나무라 말랐다고 했습니다. 단순한 사건을 묘사한 것입니다. 중요한 사건을 주제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1장에서는 시간차별로 상세하게 묘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지 못하고 말라 죽었다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이렇게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겉으로 종교생활만 하고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돈 버는데 관심이 있고 장사하는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열매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친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예레미야 8:13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받을 징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호세아 9:10에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도나무같이 무화과나무같이 여기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귀중하게 여겼거늘 그들이 주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이 가득하게 됨으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되어서 말라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부족하더라도 정직하게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죄사함을 받습니다. 주님의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삶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아멘
둘째, 믿음의 기도는 역사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이 무화과나무로 교훈을 하신 것은 믿음의 기도에 대해 말씀을 가르치기 위함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못함을 보고 저주를 합니다.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나무가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무화과나무는 화려하고 잎이 무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곧장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아주 놀라는 모습을 보고 주님이 교훈하셨습니다.
2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이렇게 싱싱하던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그와같이 너희가 진실로 믿고 기도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기도에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7:6에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기도는 이렇게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예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주님의 믿음의 기도에 대해 말씀을 하실 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 세 사람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산 아래에서 남은 제자들과 사람들이 난리났습니다. 왜냐하면 한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제자들에게 왔습니다. 그 아들은 귀신이 들려 간질이 났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물에나 불에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산 아래에 있는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는데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마침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주님께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할 수 있으면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그 아버지를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그 아버지가 예수님께 믿음 없음을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믿음을 더하여주시고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즉시로 그 아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고 조용할 때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우리는 그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까?’ 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적은 여고니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유는 기도 외에는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멘
그런데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이 유월절 절기를 기점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 예루살렘에 가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1월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양력으로 환산하면 약 3월이나 4월 정도 됩니다. 이 때에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 열매는 양력으로 6월 정도 되어야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랍니다. 빨라도 8월 그리고 가을이 되어야 무화과가 익어서 먹을 수 있고 맛이 좋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어서 무화과 열매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8월도 아닌 4월에 무화과나무 열매를 보러 갔습니다. 무화과가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무화과가 언제 열리는지 모르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안 되어서 열매 맺지 못합니다. 아예 열매가 없습니다.
그럴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열매가 아예 없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이렇게 믿음의 기도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주님이 간절히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니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싶은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부당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기적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과 기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멘
결론) 열매 맺는 성도가 되고 믿음이 기도로 간구하라!
우리는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열매 없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열매 맺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매 맺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열매 맺기 위해서는 죄를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구하는 것은 얻게 될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데 특히 믿음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믿고 구한 것은 이루어진 것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