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를 아는 척 안 했다 / 김경애
간판도 없는 서산동 할매집,
미자 언니는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듯
소문내지 말라고 당부를 하며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보리마당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한 지붕이 파란 집,
비탈진 텃밭에는 봄동이 꽃을 피웠고
빨랫줄에 걸린 서대 몇 마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기별 없이 찾아간 고향집 풍경처럼
동네 사람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
작은 방에서 서대찜을 기다리는 동안
압력밭솥이 요란스럽게 칙칙거렸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보해소주, 크라운맥주, OB맥주……
때 묻은 작은 진열장에는
한라산, 88디럭스, 라일락, 엑스포, 시나브로…….
창고 같은 방 안은 보물들이 꽉 찬 흑백 필름 같았다.
막걸리 몇 잔 들어가니 목포 앞바다가 출렁거렸다.
옆방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들려 돌아보았다.
20여 년 전, 타향에서 적금 들어
내가 엄마에게 맡긴 돈 오백만 원 떼어먹고 소식 없던
아직도 춤추러 다닌다는 고모를 봤다.
끝내, 고모를 아는 척 안 했다.
(『시향』 2014년 봄호)
이 시는 고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누이니 고모처럼 가까운 가족은 없다. 시인이 “20여 년 전, 타향에서 적금 들어” “엄마에게 맡긴 돈 오백만 원 떼어먹고 소식 없”는 고모이다. 시인은 집을 나간 고모를 찾기 위해 미자 언니를 따라 “간판도 없는 서산동 할매집”을 방문한다.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보리마당”이 그곳이다. 이 지붕이 파란 집에 “동네 사람들은 대낮부터 취해 있었”다. “작은 방에서 서대찜을 기다리는 동안/압력밭솥이 요란스럽게 칙칙거”리는데, 문득 “옆방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들려”온다. 그곳을 돌아보다가 시인은 “아직도 춤추러 다니다는 고모”를 확인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끝내 그는 고모를 아는 척 안 한다. 적금을 탄 시인의 “돈 오백만 원 떼어먹고 소식 없”는 고모를 그냥 용서하고 마는 것이다.(d)
첫댓글 고모를 찾으러 갔었나 봅니다.
엄마의 돈 오백만 원 떼먹고 바람난 고모를 찾으러 간 목포집 식당에서 고모를 봤는데
그사이 몰라볼정도로 피폐해진 고모를 보고
끝내 아는 척을 안하고 말았습니다.
만나기 전엔 엄마 돈 오백만 원 떼먹고 달아난 고모에게 시원스레 한마디 퍼부을 생각이었을 텐데
고모는 그동안 얼마나 초라해졌는지, 차마 그냥 돌아서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