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억 속의 너
- 사랑의 이별 -
김상옥 장편소설
사랑의 이별
1. 버림받은 운명
2. 그 언덕
3. 운명적 만남
4 사랑이 싹틀 때
5.추락,그리고 생사의 기로 .
6.고백
7. 대학시절
8.결혼
9,단장의 출산
10 천사의 궁전
11.이별,이런 이별이
12. 그대, 저문 날의 삽화
13. 방황의 시작
1. 버림받은 운명
운명에게도 사람에게도 버림받았을 때
나는 홀로 버려진 신세를 탄식하며
대답없는 하늘을 향해 헛되이 외쳐보고
내 신세를 돌아보며 운명을 저주한다.
-세익스피어, 소네트 29번에서
버림받은 운명
상옥은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것은 행선지도, 계획도 없는
출발이었다. 순전히 우연과 요행에 몸을 내맡기고 운명의 여신이
자기 편이 돼 주기를 바라면서, 오로지 불타는 복수심, 아니 오기
로 나선 길이었다.
'수빈이 그리운 이름. 나의 악마, 나의 천사, 나의 누이,
나의 아내여. 반드시 너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왜냐면 너는 나
의 모든 것이므로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므
로
그리하여 너와 내가 만나는 날 너의 애련과 나의 격정으로 오
작교가 무너져 내리고 상전이 벽해가 되더라도 서로 부등켜안고
천추에 맺힌 한을 풀어 보자꾸나. 천만 번의 입맞춤으로도 다하지
못할 사랑을 나누어 보자꾸나:
상옥은 남대문 시장에 들러 물들인 군복 한 벌과 더플백 하나
를 사서 입고 있던 양복과 바꾸어 입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한
결 편안해졌다.
상옥은 서울역 경부선 대합실로 들어섰다. 발걸음은 매표소 앞
에 머물러 있는데 가야 할 목적지는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
디로 가야 수빈이를 만날 수 있나?
완행열차 승차권이 예매되고 있었다. 매표소 앞에 승차권을 사
기 위한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상옥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로 행렬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정하지 않은 채 그들의 맨 끝에
서서 한 걸음 두 걸음 매표소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매표구 앞에 다 가도록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나.
'뭐 하요?"
뒤를 돌아다보니 건장한 경상도 청년이 상옥을 노려보고 있다.
그렇지 승차권을 사야지. 상옥은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 매표 창구에 밀어넣고는 또 멍청히 서 있다.
"보소, 이 양반아! 어데를 가는지 이바구를 해야 할 거 아이가.
정신 차리소. 멀정하게 생긴 사람이 와 그라요?'
"아,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
'참 별 우스운 사람 다 보겠네."
상옥은 고개를 숙여 창구에 대고 소리친다.
"어디든 돈 되는 대로 주십시오."
매표원은 별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표정으로 몇 푼의 잔돈과
승차권을 내밀어 준다. 승차권을 확인해 보니 부산진역으로 되어
있다.
종점에서 종점이다. 그래 가 보자.
운명의 신이시여, 당신의 뜻대로 하십시오
제발 비오니 수빈이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십시오
열차에 오르니 무슨 전쟁터 같다. 좌석은 물론이고 통로에까지
사람이 빽빽이 들어 차 있다. 승객들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
지 꼭 패 싸움하듯 시끄럽다 상옥은 승강구 쪽으로 나와 메고 있
던 더플백을 바닥에 깔고 자리를 잡았다.
오라는 곳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바쁠 것도 없다. 수
빈아! 네가 왜 이렇게 미워지니! 이 불꽃 같은 그리움을 너는 알
고나 있는 거니
완행열차는 모든 역에서 정차했다. 상옥은 열차가 정차할 때마
다 길을 비켜 주어야 했다. 사람이 타고 내리면 열차는 덜커덩거
리며 또다시 속력을 낸다. 차창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기
울고 산 밑 초가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한가롭게 피어
오르는 모습이 아마도 다정한 어느 농사꾼 부부가 하루의 일을
끝내고 오순도순 마주 보며 저녁밥을 짓고 있는 것이리라. 밥이
다 되면 상 위에 토장국을 올려놓고 어린 자식들과 밥상에 빙 둘
러앉아 행복한 마음으로 만찬을 즐기겠지
상옥은 승강구에 앉은 채로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도착하고 나니 수빈이와 신혼여행 왔을 때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상옥은 무엇에 쫓기듯 개찰구를 빠져나와 택
시를 잡아 타고 해운대 관광호텔로 향했다. 신혼여행의 첫밤을 보
내며 행복해했던 그 방이 비어 있기를 빌면서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 인 해보니 다행히도 상옥과 수빈이 함께
묵었던 방은 비어 있었다. 호텔 보이의 안내를 받아 추억어린 방
문 앞에 도착한 상옥이 무심결에 지폐를 여러 장 건네 주자 보이
가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행색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정
이다
방에 들어온 상옥은 감회어린 눈길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
의 커튼이 모두 열려 있었다. 싸늘한 바닷바람과 비릿한 바다 내
음이 몰려 들어온다.
상옥은 창문을 열어 둔 채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바닷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 위로 수빈이의 환영이 스친다 환영 속의
수빈이 상옥에게 다가와 감미롭게 키스를 한다. 순식간에 부드럽
게 얽히며 애무하던 신혼 초야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상옥
의 감정을 격하게 만든다. 상옥은 마치 누군가를 껴안고 있는 양
부드럽게 침대에 쓰러졌다. 침대 시트에 辯을 부비면서 손으로 간
절하게 어루만져 보기도 한다. 마치 초야의 체온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아! 모두가 옛날 그대로인데 수빈이! 너만 여기에 없구나:
신혼 초야의 행복했던 추억을 되살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샌 상
옥은 다음날 아침 호텔을 나와 부산 시내를 배회했다. 얼마 동안
은 이곳에서 수빈이를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올 때 그리
많은 돈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온
종일 이곳저곳 수빈과 함께 여행하던 곳을 찾아보았다.
상옥은 며칠 동안 여관, 여인숙을 전전하면서 수빈의 행방을 탐
문해 보았다. 뒷모습이 비슷한 여인을 쫓아가 확인을 해보기도 여
러 번이었다. 이제 주머니의 돈도 거의 바닥이 나 가고 있었다.
궂은 비가 질척이는 서면 뒷골목 항도 부산의 환락가답게 네온
사인이 휘황찬란하다. 허기진 상옥의 눈에 유난히 반짝이는 네온
불빛이 들어온다.
'살롱 야화:
야화? 밤에만 피는 꽃! 상옥은 비 맞은 땡중처럼 중얼거리며
'야화 라는 술집 가까이 다가갔다. 입구에 '구인! 웨이터 및 보조
침식 제공'이라는 구인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웨이터, 보조, 침
식 제공
상옥은 갑자기 구미가 당겼다 업종 특성상 낮 시간이 많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돈 버는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데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상옥은 일단 한 번 부딪쳐 보
기로 했다. 그만큼 상옥은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상옥은 출
입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소."
까만 바지, 하얀 Y셔츠에 나비 타이가 잘 어울리는 귀엽게 생
긴 소년이 상옥을 반긴다. 아마도 손님으로 착각한 것 같다.
"아, 난 손님은 아닌데 말 좀 물어보자:
말이라예?"
"으응, 웨이터를 구한다면서 ."
"예! 맞심더. 그런데 경험은 있능교?
"없어 ."
"그라모 곤란한데 예 ."
'꼭 경험이 있어야 되니?"
"경험이 없으면 아마 안 될 깁니더."
아 이것도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상옥이 실
망하여 막 돌아서려는 순간에 인기척이 났다.
"용아, 무슨 일이니?" 하는 카랑카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등뒤에
서 들려왔다 주인 마담인 듯 보이는 세련된 여자가 안에서 나오
고 있었다.
"예! 사장님. 이 사람이예, 웨이터를 하고 싶은데예 경험이 하나도
없다 안 합니까."
그래 !
사장이라는 여자는 상옥의 위아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학생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지금은 학생이 아닙니다. "
"무슨 말이 그래요. 학생이면 학생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지금
은 학생이 아니라니?"
'휴학중이니까 학생이 아니죠."
"오 그래요 몇 학년인데?"
"1년 남았습니다 "
그래요."
그녀는 눈도 깜박하지 않고 상옥의 눈을 쏘아보았다. 상옥은 슬
그머니 오기가 발동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어 지지 않고
그녀의 눈을 業어지게 쏘아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옥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실례했습니다. "
상옥이가 돌아서서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이봐요, 학생!"
사장이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상옥은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학생, 이리 와 봐요"
상옥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 그녀 앞에 섰다.
"잠시 내 방으로 따라와 봐요!"
그녀는 홀 안을 가로질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실은 별로 크
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학생, 그리 앉아요."
상옥은 그녀가 권하는 소파에 앉았다.
'한 가지만 묻고 싶은데 대답해 줄 수 있겠죠?"
"네, 물어보십시오."
'정말, 전혀 경험이 없어요?"
'그렇습니다. "
"지금 묵고 있는 곳은 어디죠? 보아 하니 이곳 출신은 아
닌 것 같은데 "
"일정한 거처는 없습니다. 여관이나 여인숙에 있었으니까요."
"학교는 어디고?"
'서을 K대학이고 집도 서울입니다 "
'그런데 휴학하고 부산에 온 이유가 뭐죠? 혹시 운동권 학생인
가요?"
"운동권은 아닙니다만, 그것까지 말을 해야 합니까?"
"아니에요. 됐어요.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
"마지막으로 묻겠어요 만약 여기에서 일을 하게 되면 얼
마 동안이나 있을 수 있겠어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녀는 한참 동안 호호대며 웃었다.
상옥은 불쾌했다. 사람 면전에서 의미 모를 사장의 행동이 기분
나빴다. 그런 상옥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사장이 웃음을 거두며 정
색을 한다.
'미안해요, 학생 그렇지만 기분 나쁘게는 생각지 말아요."
상옥은 '이건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기분 나
쁘게 해 놓고 기분 나빠하지 말라니
"사장님, 그건 말이 안 되는데요 기분 나쁘게 해 놓고 기
분 나빠하지 말라니요?"
"학생, 참 솔직하군요. 배짱도 있고, 그런데 그게 너무 지
나치면 오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좋아요. 언제 떠날지는 알 수 없지만 부산에 있는 동안 우리
업소에서 일해 봐요. 마침 우리 업소에 사무장하고 멤버가 없어
요. 며칠 전 그만두었기 때문에 구하고 있었던 거예요."
"전 사무장이 뭘 하는 건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며칠만 배우면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상옥은 생면부지인 자신을 채용해 준 사장에게 감사했다. 일단
부산에서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밤에 일하고 낮 시간을
이응하여 수빈이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학생 !"
"말씀하십시오."
'내가 왜 경험도 없는 학생을 채용하는지 알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
"학생의 눈에 반했어요. 학생은 거짓이 없고 사람을 꼼짝 못하
게 하는 아주 매서운 눈매를 갖고 있어요. 배짱도 있어 보이고."
"잘 봐 줘서 감사합니다. "
상옥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운명이 시작된 것이다.
첫댓글 그동안 연제하던 오민지코드 부득이하게 중단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김상옥]하얀 기억 속의 너 새로운 연제 소설 올려 드릴게요.
다음부터 도중에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새로운소설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즐감 합니다
잘읽고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히 읽고 갑니다.
잘받어요~ 계속 이어서 볼게요~ㅎ 15년전 군대에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로록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잘보았습니다.
감사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