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사람

나는 행복한 사람                                                                         최월성 가족이래야 두 식구이지만 책벌레인 딸아이는 꽤나유모어스럽고 나 또한 질세라 동심으로 돌아가 딸아이와입씨름 해보는 장난은 남달리 느끼는 행복이라 여긴다.외출할 땐 이제 겨우 열한살된 딸에게 옷맵시를살펴달라하면 근사한 말로 나를 치켜준다. 나는 철없는소녀처럼 거울 앞에 내모습을 요리조리 비추어 보며 나의미모를 과시하는 겸손치 못한 말끝에 “칫 나는 이제 막피어나는 장미꽃이지만, 엄마는 아무리 예쁘게 치장해도 마른장미에 포장일 뿐”이라고 찬물을 끼얹는 장난스런 딸의애정을 느낀다.찐 감자를 워낙 좋아하여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딸에게꿀돼지 같다했더니 이렇게 예쁜 돼지도 있더냐며 돼지 같은딸일지라도 엄마 딸임에 틀림없다 했다. 딸의 못생긴 얼굴이감자 같지만 내 딸 이어서인지 예쁜 애호박 같아 귀엽다했더니, 콩심은 데 콩나듯 호박이 호박을 낳지 수박이 호박을낳을 수 없다 한다. 학용품을 아무데나 두고 나중에허둥대며 찾을 때 어린애가 왜그리 정신없느냐고 야단쳤더니머리빗 손에 들고 머리빗 찾아내라 고함치는 엄마 닮아그렇다 했다.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학과 공부에 관심 없다고야단쳤더니 그것도 엄마를 닮아 글쓰는 사람이 되려고작가수업 중이라 했다. 이렇듯 거울이 되어준 딸의 언행에서나 자신을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자라나는 아이의 교육을위해서도 예쁜 말과 바른 행동을 갖추어야 할 책임감도느끼게 한다. 내심 할 말은 없지만 괜시리 소리 높여 “시끄러”하고 고함쳤더니 엄마가 어젯밤 앓을 때는 무척 걱정됐는데이제야 엄마 본래의 모습을 찾은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며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표현 속엔 효심도 엿보였다.딸아이 말대로 지난밤에 고열로 심하게 앓았다.얼음주머니로 해열시켜 주는 작은 손끝에 전해오는 짜릿함!느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귀한 사람이나 자주아프다는데 왜 나 같은 것이 자주 앓게 되느냐고 푸념했더니아휴 엄마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데………. 이렇게 똑똑한윤정이 엄마인데 안그래유? 딸아이의 익살스런 한마디가 약이되는 듯 했다. 몽롱했던 머리를 시키기 위해 창문너머 쏟아지는 장대비와먹구름 뒤덮인 하늘에 천둥번개도 아랑곳 않고 빗속에 눈을던졌다. 잠시 멈추었던 생각을 거두어들이며 책상 앞에다가앉으니 앙증맞은 커피 병에 담긴 분꽃이나를 보며미소짓는다. 그것은 딸아이의 손끝에서 나온 작품이었다.나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뜨며 행복에 젖은 미소로 답례 해본다. 때로는 숱한 고독과 외로움을 물리치기 위해 기도해보지만, 아픈 만큼 지울 수 없는 검붉은 죄악은 마음 밭을파고들어 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딸아이와 함께 하는 한나는 참 행복하다.어두운 가시밭길 홀로 걷던 외로움도 오히려 나의 친구가되어 수필이라는 애인을 만나게 해주었으니 내가 바랄게무엇이랴!간혹 잘못한 일이 있어 한 대 맞고 눈물을 흘리면서도학교가기전 빼먹지 않고 해주는 딸아이 숙제가 있다. 양쪽볼에 쪽쪽 턱밑에도 쪽, 그리고 포옹까지 하고도 보너스로배에서 가슴 위에까지 옷을 걷어올리고 X자로 해보는젖치기는 우리 모녀만의 특유의 사랑표현이다.오늘도 서투른 원고에 고뇌함을 알아차린 딸아이가 작은손에 들려 권해주는 향긋한 커피한잔에 갈증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