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에는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자의 이야기 뒤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이야기가 이어지며
여자와 가룟 유다를 비교하게 됩니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주면 얼마를 주겠냐고 물으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주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여자는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부을만하다고 생각했고
가룟 유다는 은 삽십에도
예수님을 넘겨줄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가 향유를 부을 때에 제자들은
"허비했다"고 하면서 분개했는데
그런 반응을 보면 제자들의 생각도
가룟 유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시며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말씀하십니다.
가룟 유다는 28장에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말합니다.
여자와 가룟 유다의 행동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나타내고
사람마다 그 피의 가치를 다르게 매김으로
행동이 달라지게 됨을 알게 되고
앞의 24장, 25장의 갈라지는 이야기와 연결되어
구원과 심판으로 나뉘는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이,
그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경륜을 이끄신 하나님 아버지와 내가 멀리 있다면
여자처럼 매우 귀한 것, 전부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교회가 답일 것 같고 교회에 붙어 있으므로
알아갈 수 있고 가까워질 수 있게 됨을 확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는데 단순히 여자의 이야기가 하나의 본문으로
읽혀지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고
예수님은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머리되시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예수님께 엎드려 드리는 모든 일들 가운데에서
여자가 향유를 부었듯 내가 부어짐으로써
이 여자의 일이 기억되고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물로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드리신 예수님,
그 피의 가치는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한낱 피조물인 나의 몸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나
예수님의 피의 가치로 인해
예수님과 같은 가치를 갖게 해주셨기에
세상의 어떤 물질보다도
나의 몸을 드려 순종하여 구원 받는 일을
가장 기쁘게 여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몸을 강조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더욱 이해하게 됩니다.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예수님께 기억되듯이
예수님의 교회에 드려지는 모든 것이
영원한 가치로 하나님께 기억됨을 믿습니다.
아직도 사람의 계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과
몸의 욕구와 욕망대로 편하고
게으르게 보내는 시간들을 회개하며
이제는 더욱 애를 써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사랑 가운데에서 행하여
결국은 나에게 좋은 일이 되는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여
하나님이 좋다!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셔서
교회에 붙어 있게 해주심으로 내 인생을 구원하시고
교회의 가치를 알아가게 하셔서
예수님 오실 때를 준비하게 해주셔서
끝까지 구원의 이야기로 몰아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첫댓글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우리의 헌신과 섬김은 주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됩니다.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섬김과 순종을 기억하시며,
연약한 우리의 몸도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하게 하사
향유보다 귀하고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게 하십니다.
아멘. 예수님께 향유부은 여자처럼 내 몸으로 예수님의 교회에 드려지는 모든 것이 영원한 가치로 하나님께 기억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