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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 날이 길리라
신 5:22-33
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
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26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30 가서 그들에게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르고
31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 하셨나니
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신 5:22-33 / [말씀의 전달자인 모세] 여호와께서 이 계명을 호렙산에서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그곳에 모여 들을 때에 주께서는 짙은 구름 속의 불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그 모든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고 십계명만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습니다. 23) 그때에 여러분은 산에 불이 붙은 광경을 보고 어둠 속에서 들려 오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러분 지파의 우두머리들과 장로들이 모두 내게 와서 24)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보게 하셨습니다. 불 속에서 들려 오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셔도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우리가 체험하였습니다. 25) 그러다 이제 그 큰불이 우리를 삼킬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조금만 더 오래 듣고 있으면 틀림없이 우리는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26) 살아 계신 하나님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서도 우리처럼 살아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7) 그러므로 이제는 당신이 혼자 가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두 듣고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하겠습니다.' 28)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백성이 네게 호소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는데 그들의 말이 다 옳다. 29) 다만 그들이 항상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면 좋겠다. 그들이 항상 그렇게 나를 두려워하고 내 명령을 지킨다면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언제까지나 복을 받아 잘될 것이다. 30) 너는 가서 그들에게 각자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라고 일러라. 31) 그러고 나서 너는 여기 내곁에 남아 있거라. 내가 네게 법과 계명과 규정들을 모두 알려 주겠다.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에서 그것을 지키며 살게 하여라.' 32)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지켜 행하십시오. 어느 한 계명도 어기지 말고 그 길에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벗어나지 마십시오. 33)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그 길로만 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살아 남아서 좋은 일을 보고 여러분이 이제 차지하게 될 땅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가나안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두 돌판에 써서(22) 신명기에서 십계명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을 다스리는 기본적인 원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정착하면 성공과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바알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에게 직접 들려주시고 또 두 돌판에 직접 써주신 것입니다. 거짓 신과 탐욕이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을 살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십계명이 선포되는 동안 시내 산 주변은 온통 불과 연기, 구름, 흑암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중재자 모세(23-27) 이스라엘 백성은 평생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모세에게 중재자 역할을 요청합니다. 죄를 범한 자는 누구든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자기 백성을 위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로 그리스도를 세워주셨습니다(히 8:6; 9:15). 그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유일하신 중보자이십니다(딤전 2:5).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28-3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이 모든 명령을 지켜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영원한 복을 주시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지표로 삼고 거기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것 중심에는 읽고, 깨닫고, 순종하며 지켜가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바르게 따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적은 외부에도 있고 내부에도 있습니다. 당연히 싸워야 할 싸움인데도 내 육신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 싸움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땅히 싸워야 하고 또 이길 수 있도록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께 간구하면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거짓된 입술로부터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직 주의 피 묻은 손뿐입니다.
< 설 교 >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신 5:22 / 이동휘 목사(평강교회)
1. 인간이 1천년 가까이 살던 시대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에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5:21-24)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8,9백년 이상을 살았는데, 에녹은 365년을 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의 3분의 1 정도만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평균 수명에 비하면 30세 정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므두셀라를 낳기 전 65년 동안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었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신앙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에녹의 자녀 므두셀라가 969세를 향수하여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長壽)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므두셀라는 969세라는 경이적인 생을 살았어도 죽음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미네소타 주 레드레이크 폴스에 있는 성 요셉 공동묘지는 어느 가을에 이색적인 공고를 신문에 게재했습니다. “11월 15일부터 겨울 3개월간 문을 닫겠사오니 그 사이에 죽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그 마을의 목사는 다음 주일 설교 제목을 교회 게시판에 즉시 써붙였습니다. “죽음에는 휴일이 없습니다.”(Death takes no holiday) 그렇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휴일 또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엄연한 죽음 앞에서 인간은 죄의 중함을 깨닫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바로 죽음인 것을 깨달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길만이 영원히 사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죽음을 바라보며 모든 육체는 풀과 같이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벧전1:24). 야고보는 이를 두고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고 말하므로 인간의 연약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무력하고 연약함을 절실히 깨닫고 전적으로 생명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실로 여호와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삼상2:6)
이렇게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승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있었지만 그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사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롬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에녹의 승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생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녹이 죽음을 맛보지 아니한 이유에 대해 본문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24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므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어떤 것이기에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여기 <동행>이란 말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그 생각과 뜻이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과 말, 행동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모스는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에녹이 살던 당시 그 땅에는 가인의 후손들도 함께 살았었습니다. 이들은 살인자의 후손들로 포악하고 타락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당시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하여 노아의 홍수가 예고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죄악이 창궐한 시대에 에녹은 오로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어느 한 순간만이 아니라 무려 300년 동안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마침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는 에녹에 관하여 평가하기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다.”(히11:5)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바로 변함없는 믿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300년이란 세월은 그 당시 수명에 비하면 짧은 세월이지만, 이 기간은 에녹이 여러 가지 많은 사건과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는 믿음,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삶의 환경이 좋아져 1천년을 산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는 삶은 무의미하고 헛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에녹처럼 이 시대의 기대수명의 3분의 1 정도만을 산다 해도 과연 에녹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항상 변함이 없는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계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따르는 이유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이적(표적)들을 행하셨기 때문에 그 표적들을 보고서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각종 불치병과 난치병들, 그리고 악령들에 시달리는 사람들 등을 완전하게 치유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를 요한복음2:23-25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2:23-25)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24절,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표적을 보고 따르는 사람들을 믿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놀라운 능력과 권능을 보고 따르는 무리들을 신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나타는 표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로 믿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표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격과 그 속성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표적의 중심을 본 것이 아니라 외모, 표적 자체만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을 믿지 않으셨고, 그들의 추종에 따라 좌지우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께서 그들을 믿지 않으신 중요한 이유는,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라는 말씀, 다시 말해 예수께서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울만한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무리들의 본성, 즉 만일 예수님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다면, 금방 배신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예수님을 따랐다가 자기에게 불리할 때에는 헌신짝처럼 버릴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어려울 때 나타납니다. 진정한 우정이 고난의 시기에 입증되듯이 진정한 신앙 역시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예수님 때문에 손해 봐야 하고, 핍박 받아야 하고, 매맞아야 하고, 어려움을 당해야 할 때 입증됩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은 기적 하나만 보고 예수님 뒤를 물밀 듯 따랐지만, 예수님은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게 될 배신자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찾기 원했던 제자들은 당신이 한창 인기 있을 때, 한창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때,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할 때, 당신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부활의 소망을 갖고 당신을 뒤따를 수 있는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잘 나가고, 가장 능력을 많이 베풀 때 당신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믿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반대로 가장 비참하고 처절하게 고난받고 낮아질 때, 끝까지 주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진정한 제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때에,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뒤를 따르고 계십니까? 어떠한 경우와 처지에서도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님과 끝까지 동행하실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신뢰할 수 있는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을 지닌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에녹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에녹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성도 여러분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2. 오늘 본문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과정과 그 후 일어난 일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새겨 주실 때, “시내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형상은 보지 못했습니다.”
(신4:10-13) (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12)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13)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이러한 일들을 모세가 시내산에서 돌아와 백성들에게 그 때 그 모습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22절입니다.
(신5:22) (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이렇게 십계명을 받을 때의 모습을 전하자 각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모세를 찾아와서 말합니다. 오늘 본문 24-27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오늘 우리들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보고도 죄인 된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으니 이와 같이 경이로운 경험을 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족합니다. 이미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으니 이제 다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면 우리들이 다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세 당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시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우리에게 전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따르겠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각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하는 고백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을 면전에서 뵙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때에 이제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6:5)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죄인 된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 경이로운 경험이라’는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게 되면 우리 모두 죽게 될 것이기 때문에 모세 당신이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기도해주시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의 부탁을 받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28-29절 말씀입니다.
(신5:28-29) (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이나 민족이 없었고, 죄인된 인생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살아있다는 것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귀하다고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시니 이젠 다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꼭 붙잡아야 할 말씀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2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이 기록된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신앙의 모습은 분명 귀하고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향해 “너희가 옳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그들의 믿음이 당장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 속에서 계속되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저들이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가진 믿음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으로 성도 여러분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며, 아브라함과 더불어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갈3:7-9)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은 곧 하나님의 자녀를 뜻입니다.
(엡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누리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있고 없음에는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가지는 것만으로 다 끝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면 또 하나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것은 그 귀한 믿음을 항상 품고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은 그 믿음을 한결같이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나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의 마음가짐, 그 마음가짐을 항상 품고서 두려운 마음으로 항상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광야 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한결같은 믿음, 세상과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라도 한결같은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3. 이렇게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9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우리가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해야만 합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기원전 1530년경, 400년 전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후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200만명이 넘었습니다.
(출1:7)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이에 크게 위협을 느낀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산아제한 명령이 내리게 됩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 아이만 살려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려냈습니다.(출1:17) 히브리 산파들이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남자 아이들을 살려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더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브리 산파들은 그 집안이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출1:20-21)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가질 때, 항상 변함없이 한결같은 믿음으로 범사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 막강한 권력의 횡포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더욱 더 흥왕하는 성도 여러분과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한결같은 믿음으로 사는 길은 하나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32-33절 입니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40여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온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죽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백성들에게 크나 큰 충격이었으며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한 지도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여호수아가 새 지도자로 세워졌지만 온유하고 노련하며 경험많은 모세에 비하면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꾼으로 여호수아를 세우셨지만 가나안 점령이라는 민족적 대 과업을 눈앞에 두고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동안 모세의 부관으로 임무를 잘 수행했었지만 정작 그가 지도자가 된 후 정국은 혼란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팽배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수1:2-9)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한 바를 반드시 성취하기 위해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길이 평탄하기 위해서는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생활할 때 세상에 한 눈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한 눈 팔았다면 그는 감옥에서 인생이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형통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한가롭게 옥상을 거닐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목욕하는 아리따운 여인에게 홀딱 빠지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도 한가롭게 되면 병들거나 세상 유혹에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발등에 불붙은 것처럼 가정과 맡은 일에도 충실하고 교회생활에도 열심을 다 할 때 건강하고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다윗이 이처럼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에 눈이 돌아가니까 나라의 충신이었던 그 여인의 남편까지도 죽이는데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다윗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냥 놔둘리 없으셨습니다. 선지자 나단을 불러 다윗을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삼하12:11-12) ...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이같이 준엄한 하나님 말씀앞에 다윗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회했습니다.
(시6:1-6)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다윗은 수척하며 뼈가 떨리는 회개와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시는 참회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므로 마침내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하는데 세상에 한 눈 팔지 마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므로 형통하시며 평탄케 하시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한남대학교 이사장이셨던 김용균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이 분은 3대에 걸쳐 한 병원을 지키고, 4대에 이어 한 교회를 섬기신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이렇게 3대가 다 산부인과 의사로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용균 장로 아버지가 천안에 내려가실 때만 해도 그곳에는 의사가 두 분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장로 아버지는 병원으로 돈을 벌어 ‘천안중앙교회’를 세웠습니다. 자신이 번 돈으로 교회를 지어서 교회를 사랑하고, 그 교회를 4대가 지나도록 떠나지 않으며 기도하고, 교회를 섬기는데 치우치지 않고 한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직분에 충실했습니다. 바로 이런 분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형통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며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되 일하는 손끝마다에 복을 주시고, 가정을 축복하시되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어린 감람나무처럼 아내와 자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같은 축복을 주시되 시온, 예루살렘 곧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시128:1-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그러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은 형통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김 장로의 아버지께서 얼마나 교회 생활에 충실했는지, 자녀가 6남매인데 아들 전부가 장로님이시고 자녀들 대부분이 교수, 의사 등으로 큰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게다가 김장로 부부는 건강과 장수의 축복을 받아 사셨다고 합니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이라면 서슴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김 장로님이 아이들을 서울에다 20년을 공부 시켰는데 그동안 한 번도 아이들하고 서울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늘 아침 일찍이 왔다가 저녁에 천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왜냐하면 본 교회 가서 새벽기도 하려고 한 번도 서울 와서 아이들하고 자 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치우치지 않은 것입니다. 기도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교회 생활, 주일성수 등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치우치지 아니하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는 마음과 정성으로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며 평탄케 될 것입니다. 한결 같은 믿음으로 주일성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계명입니다. 교인들 가운데 담임목사를 제일 곤란하게 만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입니다. “목사님, 저희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회갑잔치가 있어서, 장례식이 있어서 다음 주일에 못나오고 그곳에 가서 예배드립니다.” 이러면 마음 약한 저는 가지 말라고 하지 못하고 “예, 알았습니다.”고만 말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 교인은 아마도 이제 목사님이 허락했으니 마음 편하게 가는 모양입니다만 담임목사는 한 번도 마음 편한 적 전혀 없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주일의 주인은 목사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설사 목사님이 주일에 다른데 가라고 했을지라도 하나님 말씀 앞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섬기고 있는 한 교회, 본 교회에서 주일성수하시기 바랍니다. 또 이런 분도 있습니다. 부부가 싸움은 자기들이 해놓고 하나님과 틀어진 것처럼 교회에 나왔다 안 나왔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치우치는 신앙입니다. 어떤 분은 가난할 때는 십일조 잘하다가 사업이 잘 되어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할 때는 그만 십일조를 안 합니다. 기분 좋으면 감사 헌금 뭉텅 뭉텅 바치다가 심사가 뒤틀리면 십일조고 감사헌금이고 아무 것도 없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치우치지 말고 주님 앞에서는 그날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온전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며 평탄케 되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네가 밟는 모든 땅이 네 것이 되리라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되시는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토록 변함없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항상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앞에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신앙생활로, 평생에 당할 자가 없는 믿음의 성도,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며 평탄케 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 5:28-33 / 최지승 목사
복을 받으라는 덕담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을 비는 사람도 즐겁고 듣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복 받으라는 말은 우리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말씀기도 합니다. 세상을 처음 만드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바다와 땅에 있는 생명들을 만드시고 ‘복 주어 이르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 주시기를 즐겨하시고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게 되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하는 그의 백성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동안 산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열 두 지파의 두령들과 장로들은 불과 구름과 흑암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날 사람들이 시내산에서 보았던 불은 그냥 산불이 아니라 신비로운 불이었습니다. 모세가 전에 양을 치다가 호렙산에서 가시떨기 나무에 타오르는 불을 보았는데 나무는 타지 않고 불꽃이 계속 타오르자 이상하게 여겨 가까이 다가갔다가 불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 시내산 아래 모였던 백성의 지도자들이 산이 불타는 것을 본 것도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그런 종류의 불이었습니다. 온 산을 삼키듯 맹렬하게 타오르는데 그렇다고 나무를 태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한 불이었고 그 불 가운데 큰 음성이 들렸으니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의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두려워 얼굴을 가렸던 것처럼 두령과 장로들도 이 엄청난 광경을 보고 두려운 나머지 모세에게 찾아와 간절히 요청을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니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는데 그 사람이 죽지 않고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큰 불이 우리를 삼키려 하고 있으니 우리가 죽을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주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다면 죽을 것입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처럼 죽지 않고 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당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다 따르겠습니다”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한 불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열 가지 계명을 조목조목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을 감히 감당할 수 없었던 백성의 대표자들이 모세에게 중계자가 되어달라 간청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귀로 직접 들은 십계명의 말씀을 그대로 행하여 지키겠다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로 모세를 통해 전해주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도 다 듣고 행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는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들의 말이 다 옳다’ 하셨습니다. 그날 시내산 아래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참으로 현명한 판단을 했고 겸손한 마음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직접 뵙고 그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중계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으로도 족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들의 마음은 옳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말이 다 옳도다’ 하시고 모세를 백성을 위한 중계자로 삼아주셨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불꽃 속에서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지금껏 하나님과 백성의 중계자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그날의 사건 이후 모든 백성은 모세를 하나님의 중계자로 확실하게 인정하고 그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들어 순종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부여되었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공식적인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계자 모세에게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읽은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일 먼저 백성들에게 주실 복을 선언하시는데 아주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야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으면’ 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임재를 경험한 오늘만 이런 마음을 품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그 마음을 내려놓거나 까맣게 잊고 자기들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오늘과 같은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모든 명령을 지킬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자손 대대로 영원히 받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십니다.
산 아래 있던 백성의 지도자들을 각기 장막으로 돌려보내라 하신 하나님은 홀로 남은 모세에게 ‘너는 여기 내 곁에 섰으라’ 하시고 백성에게 전할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알리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보기 바랍니다.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듣고 행함’ 이라는 단순명료한 반응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라는 명령은 단순하지만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어렵고도 힘든 일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귀찮고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시내산 아래서 결심했던 그 마음, 하나님을 향해 고백한 첫사랑을 항상 품으면 이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이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 행하겠노라는 이 마음을 항상 품고 공부하며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논문을 써나가는 중입니까? 이 마음을 항상 품고 직장에서 일하며 가정에서 가족들과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도 풍성히 누릴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행한다’는 말이 세 번 반복하여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우리가 듣고 다 행하겠나이다’ 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로 이를 행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광야 4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제 새로운 세대들이 곧 가나안을 향해 들어가려는 순간에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다시 한 번 백성들을 향해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켜 준행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도’ 다시 말해 주의 말씀이 가라고 명하시는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십시오! 아무리 좋아 보이고 옳다고 판단이 되며 나에게 이득이 있어 보여도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하나님이 정해주신 그 길이 아니면 모두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허탄한 길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는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말씀, 하나님의 도에서 좌로나 우로 치우친 죄의 길입니다. 시편 34편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라고 묻고 답하기를,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시34:12-15)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원하는 바를 따라 좌우로 치우치는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책을 부적처럼 항상 몸에 소지하고 다닌다고 해서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마다 성경구절을 줄줄이 인용하고 성경말씀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해서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마음에 주의 말씀이 항상 머물러 있으며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73:28) 했습니다. 언제나 같은 마음을 품고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 말씀이 내가 걷는 길의 빛이며 내 발의 등불입니다. 체조선수들이 넓이 10CM의 좁은 평균대 위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체조를 합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바닥으로 떨어지고 몸을 다치기도 합니다. 그 좁은 평균대에서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끝까지 경기를 마친 선수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조금만 치우치면 발을 헛디뎌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삶의 길잡이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소중한 말씀이 없으면 결국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세상의 방식을 따라갑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친 결과는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인생을 허비하거나 돌아올 수 없는 자리로 추락합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길입니다(마7:13, 14). 좁고 험하지만 그러나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의 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의 길을 피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표점(과녁)에서 벗어남입니다. 논산훈련소 사격장에서 사격술 훈련을 하는 날 실거리 사격을 하기 전에 먼저 영점 조정이라는 것을 합니다. 사격훈련을 하는 날만큼 복과 저주, 희비가 엇갈리는 날도 없습니다. 교관이 가르쳐 준 대로 첫 번 사격에서 영점 조정을 잘한 훈련병은 다른 훈련병들이 사로에 올라가 사격하는 동안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영점 조정을 실패한 훈련병은 동료들의 사격 훈련이 끝날 때까지 한숨도 못쉬고 얼차려를 받으며 죽을 고생을 합니다. 표적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표적으로부터 벗어난 생각과 행동이 죄입니다.
2016년 새해 벽두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바쁘다고 미루고 힘들다고 생략하거나 귀찮다고 무시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말씀을 잘 행하여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율법이라는 굴레에 가둬놓고 율법이라는 족쇄를 채워 괴롭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행하면 복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그 복의 말씀이 바로 우리가 가진 성경에 모두 기록되었습니다.
쉴틈 없이 바쁜 데 성경 읽으라는 숙제를 주고 거기다 짐을 더해 성경을 쓰라고도 하니 힘들고 귀찮다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 복 받으라고 드리는 선물이니 기쁨으로 행하면 복이 됩니다. 하루 일과 중에 스마트폰을 사모하고 즐거워하여 가까이 하는 시간을 조금 줄여 말씀 묵상하는 시간에 투자하십시오. 별로 중요치 않는 잡담을 하느라 전화기를 오래 붙잡고 있는 시간을 줄여 주의 말씀 읽고 듣고 쓰면서 묵상하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확신하건대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을 우리가 함께 받고 함께 이 길을 갑시다!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 교우들이 이 복을 풍성히 누리게 하면 좋겠다 여겨 말씀을 가까이 하는 훈련을 하자는 것입니다. 읽고 듣고 쓰면서 주의 말씀을 묵상합시다.
주의 말씀이 곧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옛 어른들이 ‘밥심(힘)로 일한다’ 하듯 성도는 영의 양식으로 살고 그 힘으로 일합니다. 영의 양식을 먹지 않고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없습니다. 규칙적으로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면서 세상 경험이나 관록을 의지하여 주의 일을 하겠다 섣불리 덤비지 말기 바랍니다. 일하다 힘이 달리면 도리어 시험에 빠집니다. 운동선수들이 평소에 훈련을 많이 하여 근육을 잘 키워놓으면 실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평소에 사용치 않았던 근육을 사용하려면 쉽게 몸이 반응하지 않지만 늘 사용하던 근육은 즉각 반사작용을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을 날마다 하면서 그 습관이 몸에 배면 영혼의 근육이 붙고 더 강한 연단이 와도 거뜬히 감당하게 됩니다. 세상 염려와 근심 걱정이 앞을 막을 때 평소에 주의 말씀으로 단련이 된 성도는 즉각 떠오르는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하며 어려움에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시내산의 불 가운데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확실하고 권위있는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중보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겠다 말한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에 감당치 못할 죄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계자 모세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전달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복음과 사도들의 편지가 있습니다.
죄로 허물진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뵙거나 음성을 들으면 죽고 살지 못한다 했던 말씀이 옳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육신의 눈으로 뵐 수 없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죄인들과 친히 교제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말씀으로 친히 가르치신 주님이 마지막에는 당신의 몸을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드려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주께서 명하신 성찬예식에 참여합니다. 평소에 하나님 말씀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는 교우 여러분, 오늘 아침에는 눈에 보이며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혀로 맛볼 수 있는 주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누며 주께서 주시는 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그 마음을 항상 품고 그렇게 살기를 힘쓰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이 주시는 복 넘쳐나기를 빕니다.
잘 믿는 길은 오직 훈련입니다
신 5:28-29, 딤전 4:7-8 / 김삼환 목사
잘 믿는 길은 오직 훈련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잘 믿어야 하죠. 이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왜 그러 냐? 하면 믿는 것만큼 은혜 받기 때문입니다. 믿는 것만큼 잘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봉사하는 것도 믿음만큼 봉사하고요, 은혜 받는 것도 믿음만큼 은혜 받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그릇입니다. 그래 서 믿음이 크면 큰 은혜를, 믿음이 적으면 적은 은혜를 받는다고 하죠. 하나님이 주신 이 온 우주의 보 화가 가득 담겨있지만 내 믿음만큼 하나님이 내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잘 믿을 수 있느냐? 잘 믿는 길이 뭐냐? 그것은 하나입니다. 훈련에 있습니 다. 연습에 달려져 있습니다. 그냥 교회 다녀가지고는 잘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훈련을 해야 합니 다. 철저한 믿음의 훈련을 거친 자들이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과 기도의 훈련하는 것 은 다릅니다. 자동차에 올라타는 것과 운전하는 건 다릅니다. 운전은 훈련받은 자가 운전합니다. 비행 기에 올라타는 사람하고 조종하는 건 다릅니다. 조종하는 사람은 훈련을 거친 사람이 조종하는 것입 니다.
우리는 인생을 믿음으로 조종하고 믿음으로 운전해 가려면 믿음의 훈련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이 세상에서 훈련을 거치지 아니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와도 사는 것을 믿음으로 살지를 못합 니다. 믿음으로 행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면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 다. 그래서 훈련이 중요합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좋은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저절로 잘 믿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훈련하는 사람이 땀 흘리고 정성과 힘과 노력을 다하여 오랜 세월 고생할 때 어떤 하 나의 전문인이 되고 전공인이 되고 베테랑이 될 수 있듯이, 신앙의 베테랑도 신앙의 전문적인 믿음의 사람도 오랜 세월 훈련을 거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빈 몸으로 태어나지만 훈련을 통하여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빈손으로 나와도 이제 믿음의 훈련만 잘 받으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 온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축 복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보화가, 하나님의 영광이 이 우주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야 이 우주에 살면서 하나님 주신 것을 잘 관리하고, 쓰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고, 정말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세상으로, 소망이 없는 세상으로, 걱정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인생으로 모두 비유합니다. 모든 문학이,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의 고뇌와 슬픔과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그런 눈으로 이 세계를 보지 않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행 복한 세상인 줄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오직 훈련에서 오는 것입니다. 훈련받은 믿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 이 한 가지 기술을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 그 분야에 조금 뭐 잠깐 쉬어도 별로 그 분야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훈련이든지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군에 가서 사관학교를 나왔다, 걷는 것 보면 다릅니다. 제대를 해도 다릅니다. 많이 다릅니다. 군에 장군으로 나왔다, 많이 다릅니다. 보면 다 릅니다. 군에 벌써 지난 세월이 오래지만 다릅니다. 악기를 많이 훈련을 했다, 몇 년 쉬었지만 그러나 역시 피아노 위에 딱 올라앉으면 역시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실력이 조금 왔다갔다 떨어질 뿐이지 전 공한 사람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믿음의 훈련받은 사람이 믿음이 약할 때는 조금 있 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 나오거나 덥다고 안 나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훈련을 받은 사람은 추우 나 더우나 어떤 경우에도, 환란이나 핍박이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 바로 훈련에서 오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민족이나 개인이나 하나님이 택하여 주셔서 부름을 받은 사람은 훈련 을 많이 시킵니다. 그래서 큰 영광을 드러내죠. 아브라함의 믿음이 한 순간에 생겼습니까? 5년, 10년 만에 그런 믿음이 온 게 아니거든요. 25년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이 훈련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믿음 의 조상 될 만한 믿음이 그 때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이 몇 십 년 믿음의 훈련, 요셉이 몇 십 년 믿음의 훈련, 모세가 40년 믿음의 훈련을 광야에서, 사도바울이 여러 해를, 14년 동안 그런 훈련을 거쳤습니 다. 하나님께서 이런 훈련을 거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 를 얼마나 철저하게 훈련했는지요. 그들이 세계를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걸 너무 잘 아시죠.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미술, 음악, 예술 각 분야, 금융계, 교육 계, 과학계, 세계를 다 잡다시피 합니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머리 좋아서 왔습니까? 공부 많이 해 왔 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훈련을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하나님 믿는 믿음의 훈련을 시켰기 때문입니 다. 어디에 가든지, 어떤 일이 있든지, 하나님 이외에 소망이 없고 믿을 이는 하나님밖에 없고 우리가 믿는 창조자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의 훈련을 철저하게 시킵니다. 저도 유대나라 한 여름에 가보면요, 막 40도 올라가도 애들도 정장입고 예배드리러 갑니다. 얼마나 교 육이 잘 되있는지요. 뉴욕을 가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가는 유대인들, 한 여름인데도 까 만 양복 쫙 입고, 거기에다 겉으로 또 두루마기 입고, 모자 쓰고 짝짝 걸어갑니다. 이렇게 머리를 싹 꽈 가지고 이렇게 돌려 가지고는 모자 쓰고 가는 유대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훈련이 잘 되어 있 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확실하게 믿으면 여러분, 어떤 분야에도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가정도 그렇습 니다. 우리는 가정생활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면 가정도, 믿음으로 살면 사업도, 가정 이 별 가정 있나요? 성경 말씀대로 주님이 본을 보여주신 대로 겸손하고, 서로 사랑하고, 인내하고, 성경대로 훈련 받아가지고 가면 가정은 100% 행복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사업 100% 되게 되어 있습 니다. 성경의 훈련받아 믿음의 훈련받아 나가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 성실합니다. 부지 런합니다. 남을 존경합니다. 멀리 바라보고 꿈이 있습니다. 기도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잘 될 수밖에 없죠, 나쁜 길로 안 가죠,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훈련을 받아야 되는데 물론 육의 훈 련도 우리가 다 받지만 특별히 우리는 성경이 오늘 가르쳐주신 대로 경건의 훈련, 믿음의 훈련, 영적 훈련을 우선하여서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른 훈련 다 받아도 인생 실패할 수 있습니다. 다른 훈 련 다 받아도 때가 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훈련은 세상 끝 날까지 가고, 자자손손 가고, 천국까지 영원히 이 훈련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가서도 생명의 면류관 얻게 되는 줄로 믿 습니다. ‘사람은 훈련이 인생의 전부’라고 트윈이라고 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훈련받은 것만큼 영광이 오 고, 훈련받은 것만큼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육신의 훈련도 이렇게 좋은데요. 신앙의 훈련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금생과 내생에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영원히 너희가 이런 훈련 잘 받아 서 하나님 잘 경외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히 너희와 같이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7월 8일 한국일보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전남 여천에서 목포까지 뱃길 20리 길을 어머니 박 승희씨가 딸 정숙현씨를 6년 동안 1956년부터 62년까지 배로 어머니가 이 딸을 통학시킨 거예요. 6년 동안. 여러분, 걷는 것도 20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뱃길 20리, 그 풍랑 가운데 손으로 노를 저어 가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 섬에는 주민이 세 가정밖에 없습니다. 세 가정에 전 주민이 20명이에요. 그 런데 이 마을에는 시계도 하나 없고 그 때 시계 있는 사람이 어디 있었어요? 1956년에 시계를 봤어 요? 이 마을은 장 닭 한 마리가 없어가지고 새벽에 울음소리를 못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분 이 바람소리, 파도소리 들어가 보면서 오늘 날씨가 어떻겠구나! 이걸 짐작하고 만일 갔다 태풍 만나 면 큰일 나거든요. 그런데도 언제나 그런 육감을 가지고 별 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이 아이를 매시 데 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루 여섯 시간, 일곱 시간을 배를 노를 저어 가지고 다닌 거예요. 드디어 국민학 교를 졸업했어요. 사라호 태풍을 만나 가지고 배가 깨어졌지만 끝내 이 딸을 공부시켰어요. 이게 감동 이 되어 가지고 한국일보 신문에 나고요 그래서 박대통령이 알고 장학금도 보내 주어가지고 여수 여 자 중ㆍ고등학교를 나와 가지고 성균관 대학교를 정숙현 씨가 졸업한 거예요. 이 어머니가 믿음이 좋 아요. 이 배를 저은 이 어머니가 믿음이 있으니까 이런 열심이 있는 거예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녀 잘 가르칩니다. 우리 가정에 이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할 수 없다. 이래가지고 섬에서 글자 하나 모르 는 이 섬에서 처음으로 국민학교 졸업자를 내고요. 이 섬에서 대학 졸업자가 나와 가지고 지금 강남 에 좋은 아파트에 이 어머니도 80인데요. 어머니 모시고 잘 살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놀라 운 일입니까? 훈련, 연습은 육체의 연습도 이렇게 놀랍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노력하고, 땀 흘리고, 수고하고 참는 거 다 거둡니다. 열 배, 백 배 거둡니다. 어떤 훈련이든지 하면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군에서는 땀 흘려 훈련 받으면, 피 흘리지 않는다는 이런 말을 군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 렇습니다. 피 흘리지 않으려면 땀 흘리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공부하는 사람은 환 한 세상을 만납니다. 노력하고 수고하면 수고한 것이 반드시 오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훈련 을 더욱 게을리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광, 영원한 축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내 앞날을 위하여 노 저어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앞날은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줄 이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국민들이 너무 정신적으로 해이해져 가지고요, 남의 일에 너무 간섭하고, 인터넷으로 남의 정보, 남의 사생활, 남의 일에 너무 너무 간섭해고 나쁜 글 띄우고 이런 사람이 수십 만, 수백 만, 세계에 그런 젊은이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 인생길도 빨리 달려가도 정신이 없는데요. 저도 신학이요, 서른 여덟 살까지 쉬지 않 고 공부해도요. 끝끝내 어디 뭐 한 해 두 해 논 게 아니에요. 그래도 그때 겨우 졸업해서 목사 안수 받 는데요. 언제 여기 남의 일 다 간섭하고 언제 제 공부합니까? 몇 개 국어도 해야 되는데, 요즘 현대인 들이 지금 외국어 몇 개 안 하면 그게 현대인이에요? 요즘 20대 젊은이들이 이 어떤 시대, 국제화시대 에 날마다 앉아 가지고 엉뚱한 짓이나 하고, 인터넷으로 포르노나 보고, 그래 가지고 뭔 일을 하겠단 말이에요?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되고 앞으로 이룩할 내 가정을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허송세월 하느냐 말이에요. 우리가 아시아의 1등 국가가 되고, 세계 1등 국가가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정신 차 리고 모든 삶에 경건하게 인생을 연습하고, 훈련해 나가면 위대한 일이 개인과 이 민족에게 주어질 줄 로 믿습니다. 여러분 들어보셨지요? 성공은 어디에서 오느냐, 1%의 영감과 99%의 노력에서 온다고 그랬어요. 노력하는 거예요.
예수 믿고 아멘, 아멘 한다고 하나님이 주셔요? 가정은 가정대로 그 믿음대로 실천해 야 돼요. 공부도 예수 믿으면서, 공부도 주여 믿습니다. 그러면 공부가 되나요? 공부는 공부대로 밤새 워 해야 되고. 어떤 신학생 여러분 들으셨죠? 밤새도록 할렐루야 아멘, 아멘 그러고 시험지 갖다 놓으 니까 알 게 뭐예요? 아무것도. 그래서 나중에 답안을 적어낼 때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게 무슨, 공부 를 그래가지고. 공부 열심히, 연습을 해야, 모든 건 연습에 달린 거예요. 건강도 연습. 예수 믿는다. 그 래서 가만히 앉아 기도나 하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아요? 운동하면서 기도해야 돼요. 열심히 운동해야 된다고요. 음식도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요. 성경대로 먹어야 돼요. 연습을 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 대로 하나하나 순종해야 돼요.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이렇게 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어요. 모 든 건 내 책임이에요. 국가가 다 해주겠지, 남을 의지하면 안 돼요.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슨 일을 좋 은 일을 할지언정 기대면 안 돼요. 그러면 내 정신상태가 해이해져 안 되는 거예요. 부잣집 아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그러잖아요. 부모 믿고 공부 안 하는 거예요. 부모 믿고 그냥, 내가 며칠 전에도 보니 까 20대 초반인데 막 BMW 멋진 거 몰고 이래 다녀요. 그래서 내가 야, 앞날이 훤하다. 젊을 때 무슨 20대가 그래 좋은 차타고 돌아 다니냐? 외국의 부자들은 안 그런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아이들 그 렇게 기르지 않는대요. 인생을, 훈련을 시켜야지. 유명한 존슨 대통령은 사람을 쓸 때 두 가지는 안 쓴 다고 합니다. 하나는 고생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 고생하지 않고 큰 사람 안 쓴대요. 그게 뭐 큰 일 하 겠어요? 도움이 되겠어요? 금방 한순간에 돈 벌고 이런 사람도 안 쓴대요. 사람이 계단을 밟아서 차근 차근 힘들게 올라가야 그 사람이 큰일을 하는 것이지, 그런 사람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어요? 사 람이 큰일을 하려면 땀 흘릴 것만큼 흘리고, 고생할 것만큼 고생하고, 눈물 흘릴 것만큼 흘려야 인생 도 알고, 사람도 알고, 어른도 알고, 아이도 알고, 인생을 알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여 러분은 신앙의 경주자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적 훈련을 날마다 게을리 하지 않고, 이만하 면 됐다 이런 마음 갖지 않고, 늘 깨어 기도하며 잘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이 연습, 훈련 에 대해서 세 주간 시리즈로 계속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다음 주일은 기도의 훈련, 그 다음 주일 은 성령의 훈련 이렇게 해서 계속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믿음의 훈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에 나가 훌륭하게 뛰는 선수들이 있는데, 그 중에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박찬호 선수가 있습니다. 이 박찬호 선수는 작년부터 너무 지금 잘 안 되어서 풀리지 않아 가지고 어려운 가 운데 있습니다. 그 대신 최희섭 선수라고 플로리다 팀에 뛰고 있는 최희섭 선수가 대를 이어서 오늘 아침에도 홈런이 나고요. 아주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홈런이 금년에 벌써 14개인가 이렇게 미국 그 세계 최고의 시장에서 한 번 내기도 어려운데 안타도 얼마나 잘 나오고요. 훌륭한 선수입니다. 나이 도 어린데요. 얼마 전에 제가 신문에 보니까 이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절대로 기자들하고 인터뷰를 안 한대요. TV에 안 나온대요. 이거 관리 너무너무 잘하는 거예요. 매일 다섯 시간 어떤 일 이 있어도 이만하면 됐다, 내가 세계적인 선수다 이런 자만이 오면 연습이 안 됩니다. 항상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매일 야구 방망이를 수천 번씩 휘두르고 몸 관리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연습만이, 영광 이 연습의 뒤에 따라오는 것이지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분은 인기가 있을 때, 부 시 대통령이 백악관에 초청을 해도 안 갔어요. 뭐 하러 갑니까? 선수가. 우리나라 선수들이 인기만 있 으면 TV에 막 기자들 찾아가니 자꾸 TV에 나오고, 신문에 나오고, 인터뷰 응하고 그러니 그 선수의 정신상태가 해이해지는 거예요.
모든 분야가 그래요. 해이해지면 망하는 거예요. 연습을 게을리 하면 망하는 거예요. 자기 분야에 항상 하던 일을 꾸준히 해야지 TV에 뭐 하러 나옵니까? 조금 사업 해봐요, 사업이 잘 되면 높은 사람 친구 생겨서 골프장 가자 그러죠, 자동차 바꿔서 벤츠 바꾸죠, 비서실에 아가씨들 이글이글하죠, 나가면 룸살롱에 아저씨 사장님 그러고 오빠, 오빠 그러죠, 그만 해이해지는 거예요. 정신상태가 해이해지는 거예요. 아파트 바꾸고 전부 바꿔요. 바꿔, 바꿔 그러다가 나중에 마누라까지 바꾸고요, 그래 가지고 사업, 우리 교회에도 여러 분 있었어요. 사업하는 사람은 끝까지 작업복 입고 이런 자세로 뛰어야지 사장은 뭔 사장이에요? 정신 차려서 사업을 평생 동안 부끄러움 이 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될 거 아니냐 말이에요. 목회자도 그래요, 교회가요 2천명이 대체로 마지노 선이래요. 왜? 2천 명 되면 유명해 지거든요. 목사님! 목사님하면서 방송국에 나오고, TV에 나오고, 신문에 나오고, 강사로 오라. 오라 그러니까 기도 안 하고 돌아다니고요, 성경 안 읽고요, 내가 유명 한 줄 알고 잘난 척 하고 회장님. 회장님 감투 다 덮어쓰다가 영력 떨어지는 거예요. 뭐 하러 신문에 납니까? 그런 거 좋아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신문사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개인은 자기 관리를 잘해 야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영적 경주자로서 끝까지 긴장하고 이 신앙 잘 지키면 이 세상에 어떤 환란, 시험도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주신 땅에서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 함, 이삭, 야곱의 축복이 분명히 여러분과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 믿음이 잘 흔들립니까? 왜 연약합니까? 왜 죄악과 타협 합니까? 훈련이 안 되어서 그래요. 어려서부터 철저한 영적 훈련을 받는 거예요. 우리 교회 오늘 전웅선이라고 애가 왔는데요. 얘가요. 세계 테니스에는 윔블던 테니스가 최고인데요. 여기에 가서 주니어 팀으로 8위에 올라간 거예요. 한 국, 아시아에 처음 있는 일이에요. 여기서 주일학교 때부터 잘 큰 애가요. 전 세계 주니어 팀으로 랭킹 이 11위예요. 이 윔블던은 너무너무 유명합니다. 내가 오늘 보니까요, 운동만 잘해 가지고 사람이 성 공은 하죠. 그러나 다른 불행이 따라오는 거예요. 그로 인하여, 영광과 함께. 여기에 중요한 게 뭐예 요? 신앙을 가지고 사업하고, 신앙을 가지고 인기 관리하고, 믿음을 가지고 스포츠를 할 때 부작용이 없는 거예요. 자세가 되었어요. 여기 우리교회 새벽기도 다니는 아이들, 그래서 외국 유학 보내는 것 도 다 좋지만 명성교회 여기서 새벽기도 훈련 아이들 잘 받고요. 내보내면요,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여기서 훈련 잘 받아도 이 세상 어디 가도 다 이겨낼 수 있어요. 왜? 사람 사는 게 다 사람이 관리하 는 거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고 나가 봐요. 뭘 못하겠어요? 그래서 오늘 윔블던 테니스라 고 그러면서 자기가 치던 걸 나 있는데 선물로 가져왔어요. 그런 걸 보니 인간이 더 되었어요. 우리나 라에 골프도 이제 유명한 사람 나오는가 하면 테니스에 아직까지 못 나오는데, 이런 세계적인 선수가 우리 교회에서 나온다, 우리 교회 안에 많은 각 분야에 훌륭한 분들이 앞으로 물밀 듯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훈련입니다. 신앙의 훈련입니다. 교회는 훈련시키는 곳입니다. 순종의 훈련, 감사의 훈련, 말씀의 훈련, 기도의 훈련, 찬송의 훈련, 성령의 훈련, 은혜의 훈련, 예배의 훈련, 봉사의 훈련을 항상 배우고 반복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훈련이 얼마나 되어 있습니 까? 기도의 훈련이 얼마나 되어 있습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딱 하나님 앞에 그 자리에 엎드리십니 까? 훈련이 되어 있어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여 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까?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영광 을 크게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제자란 말은 ‘disciple’이라고 하는 이 말은 ‘discipline’이라고 하는 훈련이라는 말하고 말이 같대요. 어원이 같이 내려 왔대요. 제자, 예수님은 너 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말은 훈련시켜라, 너는 예수 믿거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하 게 훈련이 되어야 그게 제자가 된다는 거예요. 주님의 제자가 누구냐, 예수님의 제자가 누구냐? 굉장 한 인물이냐? 아니에요. 하나도 배운 사람도 없고, 별난 사람 없지만 훈련된 사람이 큰일 하는 거예 요. 여러분, 인생이 별난 인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 부르지 않습니다. 부족한 사람, 보통 사람 불러서 훈련시켜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 줄로 믿습니다. 미국사람은 야구를 참 좋아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게 뭐냐? 면 야구는 인간적이래요. 참 인간에 대한 것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학교가 야구래요. 왜 그러냐? 보십시오. 야구 는요 제 아무리 잘 치는 선수도 3할 대 이상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30점이라는 거예요. 30 점이면 최고라는 거예요. 사람은 다 누구나 30점 인생이라는 거예요. 특별한 인생이 없다는 거예요. 어느 누구도 특별한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야구 보면 다 실수하는 거예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실수 하는 거예요. 몸을 던지고, 잘 던지는 선수도 몸 던지고, 잘 받는 사람도 공을 날리고요. 제가 며칠 전 에도 미국에 뉴욕 양키즈하고 둘이 팀 하는데 공이 오는 걸 둘이 싸인을 안 해 가지고 다 가서 서로 받 으려 그러다가 떨어뜨리는 거예요. 왜? 그게 야구예요. 야구는 항상 실수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전체 가 모이는 거예요. 어떤 선수도 팀도, 예를 들어 팀이 90% 이기는 팀이 하나도 없어요. 졌다가 이겼다 가 다 그러지. 세계 제일 잘 하는데 복싱이 뭐 50승 1패지, 이런 거는 복싱같이, 이렇게 되는 게 없어 요. 다 점수가 비슷하게 1대 0, 2대 3, 4대 5, 서로서로 이래 나오는 것이지 아예 딱 떨어지거나 그러 지 않아요. 다 모두 서로 비슷하게 이래 살아가는 것이 이 야구 게임이에요. 야구 게임은 또 가정과 같 답니다. 돌아가도 홈으로 돌아가요. 스위트홈, 하나 하나 1루, 2루, 3루를 지나 내 집으로 돌아오는 거 예요. 야구의 생명이 뭐냐? 부족한데도 왜 이리 야구가 사랑을 받느냐?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이 운동이 왜 야구냐? 팀이 서로 협조하는 데, 생명이 바로 거기 있는 거예요. 부족한 사람끼리 모여가지 고 서로 패스해주고, 연결해주고, 서로 같이 막아주고 하나가 다 한 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야구 가 어디서 왔느냐? 고린도전서에서 왔고 성경에서 나온 게임이에요. 우리 몸과 같고 교회와 같아요. 교회가 어떤 곳이에요? 서양의 운동, 서양의 정치, 서양의 교육, 다 교회에서 나온 거예요. 모든 스포 츠가 다 교회에서 나온 거예요. 성경 말씀에서 나오는 거예요. 여기는 누가 특별한 사람이 없는 거예 요. 교회는 ‘에클레시아’란 말이 모여 가지고 서로 협조하는 게 교회예요. 서로 도와주고. 잘 난 사람 이 아니에요, 교회는, 죄인이 모여 가지고, 3할 대 인생이 모여 가지고, 서로 서로 돕는 게 교회예요. 가정도 어떤 거예요? 가정이 100% 잘 하는, 100점 부부가 모이는 게 아니라 대체로 자기는 4할 대인 줄 알지마는 대체로 2할 대예요. 1할 5푼. 우리 가정 같으면 저는 1할 5푼, 집 사람은 3할 그 정도 돼 요. 우리가 서로 협조하는 거예요. 집 사람과 내가 서로 협조하는 거예요. 우리 식구들 간에 서로 패스 해 주면서. 저는 결혼한 지 금년이 이제 40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집 사람이 어떤 실수를 하거나 어 떤 부족함이 있어도 그게 인생이에요. 그런 것 가지고 말하는 일은 저는 한 번도 없어요. 왜? 사람이 니까 실수하지. 실수 안 하면 그게 귀신이지 사람이에요? 아유, 신경 쓰지 말라고. 괜찮다고. 며칠 전 에도 뭘 이래 떨어 뜨려 가지고 아이고! 괜찮다고. 사람이 떨어뜨릴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그 게 사람이지. 나는 집 사람이 좋아요. 3할 대지마는 나는 너무너무 좋아요. 그러니까 조금 3할 대 부족 하니까 더 다듬고, 더 좋은 옷 입고. 왜? 최고의 미인이 아니니까요. 3할 대니까 잘 다듬고. 집 사람 옷 입는 거 가지고 말하지 말아요. 나하고 사는 데 뭐 하러 말 해요, 여러분? 내가 좋다는데 뭐 하러 말 해요. 여러분이? 내가 좋다는데 뭐 말할 필요가 있어요? 나는 집사람 옷 자주 갈아입는 게 너무 좋 아요. 화장 자주 하는 게 너무 좋아요. 나는 다시 살라고 해도 역시 영원히 나는 이유자하고 살려고 해 요. 부족해요. 나는 부족함을 너무 알아요. 그러나 집 사람 부족하다고 마음에 생각해 본 일은 없어 요. 저 사람, 저렇게 부족하니까 좀 바꿔볼까? 이런 마음은 안 드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하고 만나도 부족한 거예요. 부족한 사람과 잘 서로 패스하는 연습만 잘해 놓으면 행복이 오는 거고 교회가 잘 되 는 거예요. 잘 되는 교회는 어떤 교회냐? 100점 교인이 아니라 부족한 교인끼리 모여서 목사님과 장로 님, 장로님과 집사님, 목사님과 목사님들, 서로 교인들끼리 패스 잘해주면 그게 좋은 교회예요. 좋은 정치 어떤 정치예요? 서로 패스 잘해주는 거예요. 여, 야가 패스 잘 하는 거예요.
정부와 언론도, 정보 도 주고 자료도 주어야 되니까 패스 서로 잘 해주고. 우리나라가 국민과 지도자가 패스 잘 해주고. 우 리 국민 얼마 안 되는데, 이 어려운 가운데 지하자원도 없는데, 세계와도 국제 사회에 우방국가도 패 스 잘 하고, 선진국은 다 이거예요, 패스 잘하는 나라 그게 선진국이에요. 얼마나 정치적인 패스로 잘 풀어 나가고, 국제적으로 세계화 절대로 어름거리지 않고 모두 이렇게 연결 잘 해 가지고 나라를 잘 이끌어 가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지금 패스에 대한 연습이 필요한 거예요. 연습 부족에서 오는 거예 요. 훈련 부족해서 오는 거예요. 전혀 준비 안 하고 누구나 나서서 일하니까 패스가 전혀 안 되고, 제 멋대로 던지고, 자기 팀에도 공 막 머리를 던져 가지고 자기 팀끼리 부상 입고 그러는 거예요. 저도 목 회 처음 할 때 패스를 훈련을 안 하고 하니까 자꾸 교인들 머리 내려치고요. 이 화 있을 진저 그러고 요. 교인들 약점만 자꾸 보는 거예요. 절대로 약점을 보면 안 돼요. 누구에게든지 약점 보면 안 돼요.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축복해주고,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당신이 귀하다 그러고요. 저도 오늘 아 침 집에서 나오는데 집 사람이 그래요. 문 밖에 나와서, ‘여보, 힘내시고 잘 다녀오세요.’ ‘그래요, 당 신도요.’ 서로가 이런 패스가 있어야 돼요. 듣고, 알았어! 이건 패스가 아니에요. 집구석 잘 봐. 어디 집구석이에요 홈이지, 무슨 집구석이에요? 스위트 홈이요, 홈으로 돌아오는데 왜 구석이라 그래요? 패스 잘 해주는 거예요. 여보, 집에서 오늘 천국같이 잘 지나세요, 그리고 한 시간 되면 잘 갔다고 빨 리 전화하고, 반드시 궁금하잖아, 지금 어디쯤 가고 있다고, 왜 그거 소식 전화기 다른데 자꾸 엉뚱한 데 쓰지 말고 집에, 내가 지금 가고 있습니다, 잘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소 식을 알려줘야지. 예수 믿고 잘 되는 길을 좀 찾아서 가정에 스위트 홈이 되고, 여러분 영적으로 홈을 밟는 일에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때에 이 땅위에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선민의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신 5:33 / 피종진 목사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가정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행복하고 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견해 차이와 의견 대립으로 가정에 불화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아름답고 복된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민(選民)의 가정에 대한 하나님은 약속은
첫째, 장구(長久)한 삶에 대한 약속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 5:33) ‘장구’라는 것은 ‘길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하루살이처럼 반짝 빛나다 끝나는 삶을 살다가 마치게 하지 않고, 사람들 각자에게 삶의 날을 주셨는데, 50년 이상, 70년, 80년, 오래 살면 100년도 살 수 있도록 장구한 삶을 우리에게 약속해주셨습니다.
장구한 삶을 살려면 ①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②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③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④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둘째, 자녀에 대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뼈와 살의 분신입니다. ‘농사 중에서 제일 귀한 농사는 자식 농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약속했습니다. 신명기 5:29에 보면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했고, 신명기 7:13에도 보면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라고 말씀했으며, 신명기 7:9에도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우리의 자녀들이 대대로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는 복을 받았는데, 자녀가 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신앙의 복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복을 받게 하려면 ①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6,7)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줄 때 신앙의 복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의 말씀을 기호로 삼게 하고, 모든 행동의 지침이 되게 해야 합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8,9) 집의 출입문이나 자녀들이 공부하는 책상 앞에 성경 구절을 붙여두면 좋습니다. 성경 말씀은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되고,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육신의 거처에 대한 약속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신 6:10,11)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게 육신의 거처를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나 세밀한지 모릅니다. 집 때문에 고생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야 됩니다. 성도의 거할 곳은 궁극적으로는 하늘나라이지만, 이 땅에서도 살 집을 주십니다.
넷째, 내세의 천국에 대한 약속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후 5:1)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 즉 현재의 육체는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비해주신 곳입니다. 요한복음 14:1~3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서 선민의 가정에 약속하신 “장구한 삶, 자녀의 복, 육신의 거처, 내세의 천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 받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