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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지금 뭐라고 했어?"
"나랑 미국 같이 가지 않을래요? 라고 했어요."
제인이 당황스런 눈빛으로 은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보고 아픈 우리 새엄마.. 아버지 네쥬까지 버리고 도망이라도 가자는거야?"
"아니..잠시 휴식기간을 갖자는 소리에요 당신이 너무 안스럽고 힘들어 보여서..."
"아.."
"추억을 잊기위한 여행이라고나 할까. 나랑 같이 가준다면 내가 외롭지 않고 정말 기쁠것 같아서.. 혹시나 같이 가더라도 당신은 아주 잠시동안만 머물테지만..."
"생각은 해볼게. 지금은 뭐라 확답을 못해 주겠네."
"알았어요. 생각해봐요."
"응."
"들어가요 추운데..."
"응, 너도 빨리가."
"먼저 들어가라니까요."
"아니, 너 가는 모습 보고 들어갈게. 난 집앞이잖아.."
제인의 고집에 은혁이 마지못해 차에 올랐고, 제인은 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질때까지 두 손을 힘껏 흔들었다. 그에게 해줄 수 있는건 결국 안녕이란 인사일테지... 제인은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도진과 그의 작품인 반짝이는 전구와 스티로폼의 눈꽃들을 서서 바라보았다. 눈꽃스티로폼은 아마 회사이름 네쥬를 생각하고 꾸민 것일게다. 반짝이는 대문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이 아민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흰 성속에 같혀있는 눈꽃같아요. 정말로요." 베시시 웃으며, 수줍은 듯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너무 차가워서 손대기 싫었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손을 대지 않을수 없었어요. 난 당신이 내 손에서 녹아버릴까봐 걱정되요.. 완전히 녹아서 없어져 버릴까봐. 지금 당신이 나에게 그래요." 그가 그말까지 했을때 너무 어이없고 유치해서 웃어버렸었는데.. 그녀는 여기 더 서있다간 감성적인 분위기에 혼자 빠져들고만 말까봐 집안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제촉했다.
그 시간 아민은, 자신의 방에 앉아 디자인 공모전에 낼 드레스 체색을 하였다. 그의 작업은 거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다. 드레스 테두리 부분을 연한 갈색으로 그려 넣은 뒤에 흰 종이에 묻은 새까만 연필가루만 정리하면 되었다. 가만히 앉아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던 그가 불현듯 일어서 서랍에서 큰 종이를 꺼내 벽에다가 붙였다. 그리고 제법 두꺼은 연필로 집어들어 집의 구조를 빠른 속도로 그리기 시작했다. 아담한 정원이 딸린 주택이었다. 창문이 크고 많아 햇빛이 잘드는, 그래서 사랑초를 포함한 다른 식물들이 맘껏 뻗고 자라 나갈 수 있는,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손놀림은 크고 아주 거칠어졌다. 섬세한 드레스작업과는 전혀 다른 작업. 그는 집의 모양과 식물들을 빠른 속도로 스케치해 놓은 후, 파스텔로 멋드러지게 체색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택의 가운데에 자신이 디자인한 그녀의 드레스를 그려 넣었다.
큰 종이에 담겨진 그녀와 함께 살고 싶었던 아담한 집과, 그녀에게 꼭 입혀주고 싶었던 웨딩드레스 이 두가지가 그가 예전에 가졌던 큰 바람이자, 꿈이였다. 그가 원하는 전부,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그림이었다. 아민이 자신이 머릿속에 있던 꿈들을 표출해 내고 지친 듯,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저 꿈일뿐이라는게, 너무나도 슬펐다. 이젠 꿈조차 꿀수 없게 되어버린 이 상황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엄청난 절망의 구렁텅이로 정신을 놓쳐 버리기 전, 탁자에 올려져 있는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여보세요."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다..."
아민이 익숙한 목소리에 당황하여 전화기를 고쳐 들었다.
"당신....이 어떻게..."
"널 찾는건 내 손바닥 보는것 보다 쉬워. 지금 네 옆에 남아있는 친구가 그 둘 밖에 더있니?"
"무슨일로..."
"너! 나한테 이러지마라. 나한테 애미의 정은 기대하지마."
"당신, 이 밤중에 전화해서 무슨말을 하려는 거야.."
"네가 나와의 통화를 반기지 않는것 같으니, 최대한 짧게 말하겠다. 더이상 아무런 불란일으키지 말고 떠나!, 너와 나, 서로 이만큼 했으면 된거 아니니? 네가 원하는게 도대체 뭐니! 내가 이 집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나안기라도 바라는거야? 그게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목표야!"
"......"
"아니, 잘만했음 벌써 이루워졌을수도 있겠다. 네가 불의의 사고로 이리되지 않았음 네 남편 분명 나를 길거리에다 쫓아내고도 남을 분이니까."
"당신 아까 날 모른다고 했잖아...아직 하루조차 안 지났어! 날 모른척 한지."
"내가 병신, 머저린줄 아니?.. 내가 비록 머리가 이렇게 됬어도.. 너 하나만은.. 못 잊는다. 어떻게 잊을수가 있겠니.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됬는데. 네가 이 모든일의 화근인데.."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걸 보면, 지금 당신 옆에 서문혁이 없는가 보지?"
"그래..."
그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려는 듯, 입을 앙 다물었다.
"떠나달라는 나의 부탁 들어줄수 있겠니?"
"......"
"너만 떠나면, 나, 제인이한테 잘할께... 좋은곳으로 시집도 보내고 그 애가 행복해 지도록 최선을 다할게 정말 그애한테 내 인생을 다바칠게 그러니까.. 제발..."
"당신,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나를 아무렇게나 막 다뤄도 되는 패물로 보는 모양인데, 나도 인간이야!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모든것을 느낄수 있어! 난 지금 너무도 참담해 이젠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 나 자신도 장담할수가 없어. 그러니까 똑똑히 들어! 떠나고 안 떠나고는 내 맘이야!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 단 1%도 없어. 이젠 더이상 당신에게 휘둘리지 않을거란 말이야!
그는 그녀의 다음말을 듣지도 않고 전화기를 매몰차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실에서 그녀가 하는말을 몽땅 들어버린 선유도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녹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핸드폰에서 맑은 음성의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젠 연기까지 하시겠다.. 용서못해.. 절대로.."
지금 이 순간, 죽음보다 더한 분노를 느끼는 이는 그 뿐만은 아니었다. 선유는 아민의 방을 안쓰러운듯 바라 보았다. 도대체 그의 엄마란 사람은 자식에게 저 만큼의 고통을 주고도 더 괴롭힐 의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그녀가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때 그녀의 핸드폰에 담당형사라고 저장된 번호가 떴다.
"여보세요."
그녀는 재빠르게 전화를 받았고,
"이선유씨?"
"네, 그런데요."
"경찰입니다. 신고하신 살인미수 용의자 이영태씨가 오늘 아침 충북 제천에서 검거되었습니다. 빠른시일내에 서로 출두해 주세요."
"정말요? 정말 그가 확실해요?"
"예, 얼굴과 필체, 지문검식까지 모두 일치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고 제가 내일 아침 서로 갈게요. 그떄까지 그 사람 꼭 잡아 두셔야해요!"
"그건 염려 마세요. 증인, 피해자까지 모두 출두 하셔야 합니다."
"네."
이건 마치 하늘에서 복수할 시간이 왔노라고 알려주는것 같았다. 타이밍도 참 기막히지 않은가. 그녀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때, 그녀를 단단하게 틀어쥘 미끼를 손에 쥐다니... 선유는 아민을 위해 간단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일 자신을 죽일뻔한, 아니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까지 죽일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보통 정신 가지고는 견디기 함들테니까. 전복을 넣어 쑨 죽, 노릇노릇 구어낸 베이컨, 치즈, 양상추, 계란, 토마토를 넣어 만든 토스트, 유부에 검은 깨와 밥 식초를 섞어 만든 유부초밥, 약간의 간단한 과일까지, 한상 차려낸 선유는 흐뭇한 표정으로 음식을 보며 밝게 웃었다.
"어이 선유. 이게 왠 진수성찬이야?"
퇴근하고 들어온 서훈이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깜짝 놀란 듯 물었다.
"그럴일이 좀 있어."
"무슨 일인데? 이게 설마 나를 위해 만든 음식은 아닐거고...."
서훈이 아민의 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저 자식 저렇게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데.. 이렇게 음식 많이 해도 저 녀석 거들떠도 안볼껄?"
"오늘.. 아민이하고 같이 외출했었어."
"어딜?"
"그 여자가 있는 병원."
"누워있는 사람 뭐하러 보러가...혹시 그 여자가 깨어나기라도 했데?"
"어, 일어나있더라."
"별일... 없었니?"
"있었어. 아주 크게, 가라고 내쫓드라고, 옆에있는 잡다한 물건까지 던지면서 나가라고 소리치더라. 난 평생 그렇게 악하고 독하게 질긴 여자는 처음이야. 자식 못잡아 먹어 안달난 악귀라도 씌인건지 원."
"인간의 탈을 썼다면 어떻게..."
"아까 전화까지 해서 협박했어 여길 떠나라고."
"그런 여자는 내가 가서 그냥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줘야!"
"괜찮아. 내일 그가 보는 앞에서 내가 처절하게 응징해 줄테니까."
"어떻게 하려고...."
서훈이 암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영태.. 그 녀석이 잡혔다지 뭐야. 아까 연락받았어... 증인 피해자와 함께 동행해서 오래."
서훈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일 모든게 판가름이 나겠군."
"알아볼거야... 아민은 원해서 난 자식이 아니라지만, 한 피를 타고난 자기 동생이 감옥에 들어간데도 지금처럼 이렇게 당당해질수 있는지.. 한번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어.."
"친남매라고 그녀가 달라질까."
"원하지 않는 자식보다는 대하는게 더 낫겠지. 특별히 친한 친구하나 없고 그렇다고 친척들이 있는것도 아닌 그녀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그일거라 생각해 나는."
"나는 겁난다. 네가 그를 위해 해주고 있는 모든것이... 그게 모두 너의 희생으로 다 타버리게 될까봐."
"난 괜찮아,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은걸 그런말이 나에겐 더 상처가 돼.. 희생이라는말도 하지말고, 나를 불쌍하게도 보지마...어쨌건 그는 내 옆에 있잖아."
"그래 네말대로 모든 사람이 죄값받고 난 후에 그 후엔 너 어떡하려고! 어쩌면 그 후에가 너한테는 더 안 좋을지도 몰라! 네 희생이 다 재가 되버릴수도 있다고.."
"서훈아, 이건 당연히 거쳐야만 되는 일이야. 경찰서에 가서 애써 잡은 범인 다시 풀어주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내 말뜻은, 그게 아니라. 아민이 살아난건 정말 다행이지만, 죗값받을사람 받는건 정말 당연한 일이지만, 네가 얻는건 정말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벌을 받을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해. 그가 잡혔다는데 모른척 해줄순 없잖아. 여기서 더한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나쁜 싹들은 다 여기서 잘라 버릴거야. 끝을 내 버릴거라고."
"알았어. 네가 말하고자 하는 말을 이미 네가 다 아는것 같네.."
"모를리 있겠어 내 일인데.."
"그래.. 식사하자 다 식겠다. 이 녀석 무슨일이 있어도 오늘 식탁앞에 앉힌다 내가!"
아민은 예상과는 다르게 선유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웬일인지 그의 눈빛이 오랜만에 생기있게 빛나고 있었다.
"맛있는데? 선유 솜씨 아직 줄지 않았어."
"그치? 내가 재료보다 정성이란 녀석을 듬뿍 넣어버렸다니까."
"특히 이 샌드위치 정말 맛있다."
"내가 네꺼는 특별히 베이컨 두개 집어 넣었어!"
아민의 오랜만에 보는 밝은 미소에 선유가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가는 분위기가 어색해, 둘은 이 대화가 오래 이어지진 않을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대비하고 있었지만, 아민은 달랐다. 다시 미소를 지으며 서훈에게 물어온 것이다.
"킥, 서훈이 넌 일 잘하고 있는거냐? 진급 빨리빨리 해야지."
자기 샌드위치의 겉 빵을 들춰 베이컨의 개수가 하나임을 확인하고 분노에 찬 눈을 번뜩이던 서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칠게 샌드위치를 한 입 배어물며 말했다.
"진급... 말도마.. 그거 할수록 더 안 좋아 오늘때까지 올라서 내가 늙으면 회사에서 나 쫓아내려 할거야."
"그래도 페이가 세지는데."
"난 천천히갈 거야 아주 천천히. 잘리는건 정말 싫어!"
그가 잠시, 전과 같이 돌아 온것 같았다. 이 모든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네쥬 신입사원 때의 모습으로, 이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이집에서 사라진지 도대체 얼마나 되버린걸까. 집에 웃음이 사라지고, 말소리도 사라지고, 공기마져 무겁게 느껴져 버린건 절대 정상적인 변화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드려 버렸다.
"그런건 40대 넘어서나 걱정해. 지금 한창 젊을 땐데 뭐."
서훈의 투정에 선유가 반박했다.
"나는 지금이 좋다."
"왜 사무실에 좋아하는 여직원이라도 있어?"
"어.. 어떻게 알았냐 선유 너 눈치 백단이다."
"정말? 진짜야!"
"농담이야. 내 여태것 선유보다 아름다운 여직원은 보지 못했어. 이렇게 음식 잘만드는 여자도 네가 처음이고."
"아부하지마.. 그런다고 네 샌드위치에 베이컨이 하나 더 들어가진 않아."
"에이, 그러지 말고 하나만 더 넣어줘! 베이컨 하나 가지곤 고기 맛이 안 난단 말이야!"
서훈과 선유가, 베이컨 하나가지고 실랑이를 버리는것을 아민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자신때문에 웃음이나 장난 조차도 잊어버리고 살았던 고마운 친구들이다. 자신에게 지금 남은건 이 둘밖에 없지만 이 둘이어서 감사하다.
다음날, 아민은 새벽부터 외출준비를 했다. 옷은 단정한 캐주얼로 갈아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었다. 그리고 어제 밤세워 완성한 파일철을 옆구리에 끼고, 전신거울로 옷매무세를 확인한 후, 비로소거실로 나섰다. 지금쯤 곤하게 자고 있을 친구들 모르게, 아민은 살금살금 현관문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땄다. 자신이 드레스 디자인을 제출하러 가는데 그들이 알아서 좋을것이 없다. 적어도 그들에겐 자신이 그녀를 못 잊어 한다는 것을 되도록이면 티내고 싶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항상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직접 입혀주는게 오랜 꿈이라고 말했었는데, 이 디자인의 주인이 제인이라는 것은 그들이 눈 감고도 알 수 있을 터였다.
혹시나 누군가 따라올까 빠른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나다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보니, 비라도 내릴 듯 구름이 잔뜩 끼고 한산했다. 그는 하늘이 노하기 전에 서둘러 갔다와야겠다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택시를 타고, 브랜드의 본점이 있는 상가 앞에 도착하니, 벌써 접수처에 디자인을 접수하고 있는 수많은 신인 디자이너 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막 접수를 마치고 나오는 검은 생머리의 키가 크고 낯익은 뒷모습이 아민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설마 아닐거라고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 보았지만, 분명 옆모습은 자신이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이 맞았다. 그녀가 완전히 그의 쪽으로 뒤를 돌고, 접수하는 사람들 무리에서 동 떨어져 서있는 그를 발견하곤 놀란 눈 으로 바라 보았다. 검은 코트에 가죽장갑, 분홍색 목도리를 한 그녀의 모습은 무리들 중에서도 당연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그를 본 그녀의 표정이 왠지 낭패라는 표정으로 일그러 졌다. 아민은 잘못한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들고있던 파일철을 재빠르게 등 뒤로 숨겼다. 제인이 그의 이상한 행동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의 파일철에 관심을 갖진 않았다.
"꽤 자주 보내, 디자인 접수하러 온거야?"
"어."
"그럼 접수하고 가."
제인이 짧고 냉정하게 말한 후, 그에게서 뒤돌아섰다.
"잠깐만... 잠시 ..."
그가 예기나눌만한 장소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친환경적으로 잘 꾸며놓은 건물옥상이 눈에 띄었다.
"위층으로 가있을래? 접수하고 올라갈게."
제인이 거절의 말을 꺼내려다가, 그의 간절한 눈빛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5분 ,뒤 그가 따뜻한 커피두잔을 사들고 계단으로 헐레벌떡 뛰어와 그녀의 옆에 섰다.
"추워, 쥐고있어."
그가 캔커피 두개 다 그녀에게 건냈다. 제인은 마지못해 받았고, 할말이나 빨리 하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왜 불렀어. 나 바빠 지금가서 아침회의준비해야 돼.
"...이영태가 잡혔대."
"뭐?"
"너는 그 자리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왜? 나도 그 자리에 있었고 나도 피해잔데."
"그냥 내 바람이야......"
"그건 내 맘대로 할거야. 네가 상관할일이 아니라고봐. 할말이 그게다야?"
"......"
"궁금한게 있는데, 너는 왜 안떠나고 있는거야? 자꾸 이렇게 내 눈앞에 보이는거 너무 번거롭고 신경쓰여."
그가 상처입길 바랐다. 그가 자신을 떠나 행복해져버리는거 바라지 않았다. 죄책감이라도 두 세배 얹어주고 싶었다. 그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도록.
"이영태 일만 해결되면, 다신 네 눈 앞에 띄는일 없을거야."
"그래, 뭐. 할말 다했니?"
"그래..."
"그러면 나 가도 되겠지?"
그녀가 핸드백을 고쳐매고 뒤를 돌다가.. 멈춰섰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대답을 들을 수 없을것 같아서...
"너 아직도 나를 위해서 무슨일이라도 할 수 있니? 그때처럼 날 위해 죽어줄수 있어?"
10초간의 정적후에도 그가 여전히 대답이 없길레, 뒤를 돌아 그를 바라 보았다. 잠시동안 그가 아무런 미동조차 없어서, 그의 주변의 공기만 얼어버린건 아닐까 생각했다.
"또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난 몇번이라도 그렇게 할거야."
그의 눈이 잠깐의 흔들림도 없어서,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게 가슴으로 와 닿는듯 했다. 안그래도 아픈 심장이 더 아려오는것 같았다. 그도 날 원하고 자신도 그를 원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왜!
"하, 그럼 죽은듯이 살아. 날 위해 죽은 그 모습으로.."
서로를 보아서는 안되는 불편한 사이가 되버린 걸까. 왜 헤어진 커플의 말로를 그대로 밟고 걷고 있는 것일까. 결국 그의 어머니와 똑같은 말을 하기까지 되버린걸까.. 똑같이 내 앞에서 떠나라고 없어져 버리라고 종용을 하다니! 제인은 정신을 온전히 차릴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에게 받은 따뜻한 캔 커피 두 잔을, 옥상으로 막 올라오는 초면의 커플에게 쥐어주었다. 확실한건 그가 주는건 아무것도 필요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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