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자락의 하늘재
권정숙
예정에도 없이 충주행 버스를 탔다. 증평 음성을 거쳐
충주까지 한시간 30분, 충주에 도착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미륵사지로 향했다. 주변에 월악산의
절경이 늦가을의 정취를 물신 풍기게 한다.
올 가을 유난히 등산을 좋아하게 된 나는 지척에 월악산을
두고도 갈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왕이면 시간을 일찍
잡아서 올걸 하는 후회만 가득하고...
미륵사지로 올라가다가 예전 주막 같은 곳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커다란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그 위에
가마솥 두 개에서는 구수한 국밥이 아침도 못 먹고 온 나의
식욕을 마음껏 돋구어 주고 있다. 게다가 어느 무명
할아버지의 국밥만큼이나 구수한 창타령에 힘차게 오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고 월악산자락 주막의 정겨움을 한층 더
높여 주고있다. 누른 듯한 손두부, 지푸라기같은 맛이나는
예전 밀주 막걸리, 외할머니께서 특별한 잔치 때만 빚으시던
그 술맛과 손두부, 산의 정취에 마음껏 취하고 싶었던 나는
모처럼만의 옛 음식 맛에 몸도 마음도 토속적인 향기에 취한
것 같다.
배고픈 속을 채우고는 1차 목적지인 미륵사지로 향했다.
대구팔공산에 갓바위처럼 미륵은 모자를 쓰고 어여쁜 새색시
같이 곱상한 인상을 하고 있다. 수백년의 세월따라 얼굴
아래는 거의 마모가 된 듯 닳고 닳았는데 얼굴만은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머리에 쓴 돌 모자 때문인가. 옆에서 하는
관광객의 말을 들으니 미륵의 얼굴은 언제나 화장한 것 같은
새댁 같은 인상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단다.
수십개의 연꽃등이 유리관 속에 담겨져 있다. 불자들이
가족들의 이름을 쓰고 소원하고자 하는 글을 써서 그 속에
넣어 놓고 소원 성취, 누구의 합격, 가족 건강 등, 그렇지만
자신을 위한 소원 성취를 하는 사람은 없다. 왜 자신을
아끼는 사람은 없는지....
.
두 번째 목적지로 하늘과 가까워서 ‘하늘재'라고 했다는 곳
오솔길이 길고, 끝이 없다. 길은 평지인데 하늘과 가깝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양옆에 짜장나무라고 한다는 자작나무가
있다. 나무들은 대부분 곧게 쭉쭉 뻗어 있다. 반듯하게 뻗어
있는 나무들은 나무들 스스로가 반듯하게 자라도록 훈계를
한단다. 왼쪽으로 뻗으면 왼쪽 나무가 훈계를 해주고
오른쪽으로 뻗으려면 오른쪽 나무가 충고를 해 주고는 해서
나무들이 반듯하게 자랄 수밖에 없단다. 하지만 길가에 있는
나무들은 아무도 충고를 해주지 않아서 제멋대로 이리저리
기울어져 있는 것이라나,
곧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 들으라고 만들어 놓은 전설 같지
않은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깨달음을
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 너무나 자식들을 제멋대로
잘못 키우는 신세대 엄마들에게 깨달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가도 가도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한결같이 키가 큰
나무들로 하여 하늘은 향해 키재기를 하는지, 누가 먼저
올라가고 가지를 많이 뻗치는지 시합을 하 것처럼. 끝도
없이 키가 크다. 봄이 오면 숲속에 묻혀서 푸르른 소나무
향내와 다른 여러 종류의 나무들의 숨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유난히 키가 큰 나무들을 보면서 하늘은
볼 수 없어도 몸과 마음은 나무 끝가지에 서서 손 차양을
하며 이승과 다른 세상을 번갈아 보는 듯,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어느새 하늘재 끝자락 정상에 올랐다. 베를 짜서 널어놓은
듯 하다 해서 토암산(吐岩山) 이라는 곳.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하늘재의 길 끝이 끊어져 있다. 그 길은 문경으로
가는 길목인데 잘 닦여진, 길 닦음이 얼마 되지 않은 깨끗한
아스팔트로 되어져 있다. 그 동안의 나의 꿈은 아스팔트길을
보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하늘재의 오솔길까지도 아슬팔트로 닦여질 예정인가 보다.
그래도 흙냄새 맡으며 걷는 즐거움이 있는 것인데 비가 오면
토암산의 베자락같은 암벽에서 눈물을 흘리듯 아름답다는 그
느낌도 차안에서나 볼 것 같다. 현재까지는 차량 통행이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하늘재의
오솔길을 삭막한 아스팔트길로 걷게 될테니 말이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 길을 걸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다음에 또 언제 그 길을 다시 갈지도 모르는데다가 현재도
8년만에 충주 땅을 밟고 그곳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충주
시내로부터 그곳까지 갈 때는 걷는 것이 즐겁고 피곤한 줄도
몰랐었다. 그런데 아스팔트길을 보는 순간 그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몸도 마음도 삭막해지고 갑자기 마음속에
찬바람이 스치고, 길을 계속 가야 할지 다시 하늘재 길로
되돌아가야 할지 잠시 갈등이 생긴다. 실망스런 마음에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연습용 경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구름
길이 기찻길처럼 이어져 있다. 그 길로 인생 길을 걸을 수
있다면...
1998
첫댓글 아스팔트 길을 보는 순간 그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몸도 마음도 삭막해지고 갑자기 마음속에
찬바람이 스치고, 길을 계속 가야 할지 다시 하늘재 길로
되돌아가야 할지 잠시 갈등이 생긴다.
충주
시내로부터 그곳까지 갈 때는 걷는 것이 즐겁고 피곤한 줄도
몰랐었다. 그런데 아스팔트길을 보는 순간 그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몸도 마음도 삭막해지고 갑자기 마음속에
찬바람이 스치고, 길을 계속 가야 할지 다시 하늘재 길로
되돌아가야 할지 잠시 갈등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