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叛逆)
감성 공유 지대의 헐무리한 아지트에서 시대 상황의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친밀감을 깊이 느낀다. 우리들 전후 세대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의 작가 선우휘(鮮于輝, 1921~1986) 이다.
「반역(反逆/叛逆)」-재목이 공연히 좀 이념적이고 강박감의 벽을 마주하는 것 같지만, 매우 자연주의적인 풍미(風味)로 인간 내면세계를 해석해 주는 명작이다.
단편치고, 스토리 텔링도 재밌고 그 흡수력과 한세대를 아우르는 압축 감각에 매력이 풍부하다. 논픽션의 전개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산좋고 물 맑은 그런 시골에서-1인칭 ’나‘와 죽마고우 3인칭의 ’김,J‘ 간에 벌어진 「마음」이란 풍향의 엉뚱하지만 진지하고 절묘한 감각을 풀어나간다.
1.-열 한 두살 조무래기들이 초등학교(보통학교) 4학년 때 동학년 계집애한테 누군가 흙덩이를 슬쩍 던져 소란을 피운 놈이 나서지 못하는 놈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언놈인지 정직하게 나서라!”고 닥달을 했으나 교실안은 바다 속 같이 고요한 가운데 콧물 소리만 들렸다. 쾌거(快擧)에 대한 공명감이나 영웅사적 동경심은 싹 사라지고 말았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무거운 침묵이 질식할 것 같았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반 전체를 가둬둔다는 항의와 역정을 내는건 다름 아닌 내 옆의 ’김,J’로 담임선생을 성토했다. 그러다 무거운 침묵 속에 낑낑되는 ‘김,J의 거친 신음소리가 또 다른 사고를 치지 않을가 가슴 조이는데-느닷없이 책상 뚜껑을 냅다 튕기면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그것은 제가 했습니다」 아연실색 했다.
「너냐?」
「그럼, 모두에게 사과해! 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그는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하드니,
「미안해!」 애매한 인상으로 짧게 사과했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리며 책상에 얼굴을 쳐박고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J는 교무실로 끌려갔고, 갈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고 사실로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고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진범이 아닌 것이 그 시각에 그와 나는 뒷 산에서 아카시아 꽃을 훑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는 한 달이나 교실 청소를 도맡아 해야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어!」라는게 그의 포괄적인 반응이었다.
2. 그 후 전혀 의도하지 않았든 제2 버전이 또 터졌다. 중학교 4학년 (고등보통)에서다. 이번엔 살벌한 분위기를 깬 지난번의 영웅적 행위와는 크게 排置되는 것이었다. 수학 幾何 점수를 짠돌이같이 주는 선생에 대한 스릴 넘치는 스트라이커 급우들 謀議를 보기 좋게 빅엿을 먹여 버린 기똥 찬 반역이였다.
선동자의 신호에 따라 수학 선생이 슬리프를 끌고 교실에 들어서면 일제히 가방을 들고 일어나 뒷문으로 몰려나간다는 거였다.
마침내 수학 선생이 교실에 들어설 때 우루룩 뒷문으로 몰려나가 축구 골대가 있는 곳으로 가 모였다.
근데, 희한하게도 <김,J>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斥候兵에 뽑혀 그의 동정을 살피게 되었다. 교실로 접근해 角을 잡고 교실 안을 딜바다보니, 수학선생과 김,J가 수학 수업을 하고있는게 아닌가? 귀신이 哭 하능거도 아니고-우찌댕기 그것이 감동의 전율로 보였다.
나는 잠시 후 축구 골대 쪽으로 가서 상황설명을 보고했다. 그러나 그가 울고 있었다는 것만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스트라이크 주동 몇놈은 무기 정학 처분을 얻어 맡고 학교는 잠잠 해졌다. 그러나 김,J는 정학 당한 애들이 복교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동급생들로 부터 외톨이가 될 거라는 부담도 있었지만 수학의 최저 점수에 대한 자책이 숨어 있었다고 했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해 그는 전문학교에 무사히 패스했고, 나는 일본으로 가 관립고등학교에 입학 –서로 서신 교환을 하는 가운데 방학때는 함께 무전여행을 했다. 그는 ’알트 하이델 베르히‘적인 청춘구가의 기풍을 떠나 내성적인 자기 탐구의 차원에 몰입했다.
『근데, 여기서 한 독자로 이 소설의 중심적 맥락에서 가장 소중한 메시지의 조명을 받고 감동을 느낀 부분이다. 그것은 언젠가 일본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김,J가 탐독하고 있던 일역「아라비아의 로렌스(이와나미신쇼)」에 대한 질문의 진지성이 못내 잊혀 지지 않는다.
「로렌스가 뼈속깊이 느낀 것이 무엇인가 아는가?」 차창밖의 여름 풍광을 내다보고-
「아라비아 부족을 이끌고 그처럼 초인적으로 싸웠고, 갖은 고난을 이겨낸 그가 가장 强敵이 누구냐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야!」
-최강의 강적은 자기 자신- 영화에서 본 사막에서의 압도적 돌파력이 눈앞에 서린다.』
-그당시 숱한 日人학생들 틈에끼어 3년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대학의 시기를 보낸 김,J와 나의 반생은 즐거웠다. 그후 우리들은 마음의 彩色도 달라졌다. 극한상황이 도래했다. 일제 學兵의 징집이 물결을 탓고 나는 징집 기피를 위해 절간이나 친척 집을 숨어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는 자원 입대하여- 자네같은 명분과는 다르다고 일갈했다. 그러다 끝내 나는 일본 형사에게 붙들려 일장기를 어께에 걸치고 정든 고향의 정거장을 떠났다.
다음해 봄-중국 南京에서 조우했다. 거기서 둘다 견습 사관으로 임관, 서로 다른 일선 부대에 배치 –먹는일과 자는 일 외 모든 것이 힘들고 고통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그는 충실한 소대장으로 전투를 치뤘고, 조선이 병사들과의 관계망 또는 탈주를 막는 임무사이의 갈등으로 刀身을 칼집에 들락거리게 하며 밤잠을 잃었다. 그렇다고 소대장의 임무를 던져버린것도 아니었다.
어쨌던 그후 조선인 탈주자들을 영창에서 끌어내 델고 주둔지로부터 함께 탈주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곤 일본 패전 순간 광복군 지대장으로 임명됐으니 일주일도 못되 광복군 대열에서 이탈하여 완전한 거지꼴이 되어 상해까지 나와 귀국선을 타고 말았다.
목숩을 건진후 귀국한 그는 다음 해 봄 서울로 갔다. 그리고 O신문사 조사부에 들어가 6.25까지 근무, -한편 나는 중학교 교사를 하다 별 동기도 없이 6.25가 나기 1년 전 육군에 입대-후퇴후 육군본부 부산에서 <김,j>를 만났다.
그는 뜻밖에도 계급장 없는 군복을 걸치고 있으면서 ‘국사편찬위원회“에 밥탁을 하고있다꼬-했으며, 문관 근무를 하며 국방장관에게 봉급문제로 어필하며 대들다가 때려치우며 서성거리다가 탈영이라는 죄명을 덮어쓰고있다고 했다.
-그는 또 수복 된 평양거리에서 얼빵한 군복차림으로 北進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말하고는 다시 평양 거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4~5년 시간이 지난 후 부터 서울의 유력 일간 S 신문의 논설 위원으로 있으면서 그 이름을 휘날리고 있었다.
-근데 자유당 말기에 이르러 사설 논조보다 곱뻬기로 신랄한 시론(時論)으로 <감,j>가 여론에 풍파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다 筆禍사건으로 이곳 저곳에 끌려 들락거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느날 허름한 빈대떡 집에서 약주를 나누게 되었을 때 「어디 이번에도 저도 모르게 그렇게 갈겨 버린 것인가?」라고 빈정됐는데- 「아니야,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나 자신과 맞붙어 싸운거야! 지나간 10여 년간 학병이다, 6.25다. 혼기도 놓치고 더티한 정치판 만이 아니라 못난 내 자신을 두둘겨 친 거지」
「일종의 자학이고 强敵 자기자신과 싸움 이었군!」
-4.19후 그는 신문사를 오가며 사귄 한 여성과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으나 나는 그대 喪을 당해 참석치 못했다.
그후 부인을 동반한 그를 만났고 그의 전세 집을 찾아갔더니 아랫목에 앉아서 2살 난 아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있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그에게 농을 걸었다.
「어디 이제 강적은 없어졌는가?」 그는 아들을 가르키며-
「이젠 저놈이 강적이야, 그런데 귀여운 것은 귀여운거란 말이야」
「저놈 때문에 야코가 죽어있지만 이젠 더 가만히 앉아서 참고 있을수 없을 것 같아」
「또 자기 자신에게 반역하려나?」
「어디 개버릇 남주겠나!」
<김,J>와 나는 서로 마주보고웃었다!
End-
첫댓글 추석 명절을 잘 넘겼오? 이젠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만 드네요.
선우휘 씨의 글을 좋아했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는데,
'반역'은 또 처음 듣네요. 이제 낮도 급속히 짧아 질게고 날씨도
성글해질 건데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함다.
명절 잘 보냈습니까?
폭군여름이 남긴-건강 방까이에 매진중입니다.
소공원의 벤치에 앉은 내남없는 영혼들이 익숙하지 않은 외로움으로 흐르내요.
추석이면, 추억을 관통하는 유년기에 벼논에 가서 참새 쫒는 미션이 젤로 많이 떠 오릅니다. 그 당대에 "떼기, 테, 피대 破帶"라는 걸 손수 만들어 머리 위로 길게 휘둘러 반작용 굉음을 만들어 냈죠. 그것들이 눈에 선하고 지금도 짚과 삼(麻)껍질 or 소꼬리 등으로 함 만들어 후리쳐 보고싶은 욕망이 있어요! ㅋㅋ 꿈인가? 그땐 고놈의 참새들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어 벼이삭을 작살 내놓고 조롱하고~
할일 없는 일상에- 읽는둥 마눈둥 도서관의 책갈피만 후루룩 넘기다가- 피보고 쌈박질하는 유툽 영상에 눈길이가는 일상들~ 병원에가서 빌빌되고.-
영적 진화를 겪는 친구들도 -무소식이 희소식-!
감사합니다.건강하세요!
@panama 그래도 그것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살아 있으니 할 수 있는 일 아닌감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오늘도 벤또 들고 출근합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날까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자 몸도 마음도 설쳐 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