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허가 필요 없다더니 3주 만에 말 바꿔 개업 지연
웃돈 주면 수속 빨라지는 급행료 제안에 투명성 논란
메트로 밴쿠버에서 8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성공 신화를 쓴 앵거스 안 셰프조차 시청의 오락가락하는 행정 절차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최근 밴쿠버 다운타운에 태국 음식점 사이남을 개업한 안 씨는 인허가 과정에서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경험했다. 안 씨는 이러한 행정 시스템이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 씨는 2024년 11월 사이남의 면허(Business Licence)를 신청할 당시 시청 직원으로부터 내부 수리에 별도의 건축 허가(Building Permit)가 필요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3주 후 시청 측은 입장을 번복해 허가가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안 씨는 연말 연휴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허가 신청을 도와줄 전문 인력을 수소문해야 했다.
행정의 난맥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요건을 갖추고 하염없이 대기하던 안 씨가 지연에 대해 항의하자 시청 측은 별도의 추가 비용을 내면 초과근무 서비스를 통해 처리를 앞당겨 주겠다는 제안을 건넸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용을 지불한 끝에 계획보다 두 달 늦은 3월에야 면허를 손에 쥐었다. 안 씨는 급행료 성격의 이 옵션이 처음부터 고지되지 않아 투명성이 결여된 '숨겨진 선택지'처럼 느껴졌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류 판매 면허(Liquor Licence) 발급 과정에서도 행정 장벽은 높았다. 과거와 달리 사업 면허 번호가 발급된 이후에야 주류 면허 심사를 시작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두 절차가 동시에 진행되지 않고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식당 오픈 일정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안 씨는 지난 10년 사이 소규모 자영업자를 둘러싼 비즈니스 환경이 더욱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규제 지연은 고스란히 업주의 금전적 손실로 이어진다. 인허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임대료와 고정비는 계속 지출되기 때문이다. 안 씨는 시청이 소상공인을 돕기는커녕 불필요한 규제로 발목을 잡고 있다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행정 절차 간소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 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캐나다 자영업 연맹(CFIB)이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캐나다 소상공인의 55%가 정부 규제와 서류 작업을 주요 경영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캐나다의 규제 부담은 2006년부터 2021년 사이 37%나 증가했다.
밴쿠버 보드 오브 트레이드(GVBOT) 자료를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BC주 소기업이 부담하는 직원 1인당 규제 준수 비용은 대기업의 7배에 달한다. 자영업 연맹은 2024년 한 해 동안 평균적인 소상공인이 관료주의적 서류 작업에 허비한 시간이 영업일 기준 32일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캐나다 전체 기업이 규제로 인해 지출한 비용은 515억 달러이며 이 중 불필요한 레드 테이프 비용만 179억 달러로 추산된다.
BC주의 규제 개혁 의지는 낙제점 수준이다. 자영업 연맹이 발표한 2025년 주별 규제 개혁 성적표에서 BC주는 10점 만점에 5.5점을 기록,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자영업 연맹 BC주 입법 담당 라이언 미튼 이사는 BC주 기업들이 전국 최고 수준의 규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타 주에 주류를 판매할 때 겪는 유통 장벽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했다.
데이비드 반 헤멘 밴쿠버 보드 오브 트레이드 부회장은 다가오는 미국 관세 문제와 경기 침체, 2025-2026 회계연도의 기록적인 116억 달러 적자 전망 등을 언급하며 규제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가 검토 약속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비즈니스 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당국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BC주 정부는 지난 6월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한 검토 작업에 착수해 온라인으로 기업들의 고충을 접수하고 있다. 연방 정부 역시 불필요한 규제 철폐를 위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밴쿠버시는 2023년 도입한 3-3-3-1 허가 목표제를 통해 2024년 상업용 개보수 허가 기간을 2022년 대비 40% 단축했다고 밝혔다. 켈로나시는 인공지능 챗봇을 도입해 허가 신청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밴쿠버시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안 씨와 같은 자영업자들은 관료주의의 벽을 여전히 높게 느끼고 있다. 미튼 이사는 법을 바꾸는 것과 일선 관료 조직에 변화를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개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자영업 연맹은 규제 하나를 신설하면 기존 규제 하나를 폐지하는 원-인 원-아웃 규칙의 재도입과 2030년까지 규제 순증가 제로 정책 확대를 요구했다. 또한 복잡한 공문서를 알기 쉬운 언어로 바꾸고 온라인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 씨는 자금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을 위해 대규모 개발업자와 분리된 별도의 신속 심사 경로를 신설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라비 칼론 BC주 고용경제성장부 장관은 기업들과 협력해 더욱 강력한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