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으로 구성된 산울림은 우리나라 록계열의 실험적인 팀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한 김창완, 일부의 작곡에 참가한 김창훈 등 둘이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면서도, 13개의 앨범을 낼 정도로 다작을 뽐내는 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어린 시절 가정형편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3형제는 모두 학업능력이 뛰어났던가 봅니다. 첫째인 김창완이 서울대 농대에 입학하고 500원짜리 어쿠스틱 기타를 사오며 이들의 음악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기타 하나로 틈만나면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데위한 후 거의 1년마다 앨범을 하나씩 발매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절에 워낙 많은 곡을 작곡해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창훈이 서울대 식품공학과 입학 기념으로 약속된 피아노 대신 드럼을 사게 된 후 3형제는 연주를 취미생활로 즐겼습니다. 막내인 김창익도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77년 "무이"라는 팀으로 "문 좀열어줘"라는 곡으로 대학가요제 예선에 나가 1등을 했으나 김창완이 졸업을 하여 자격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센드페블즈의 "나어떡해"는 둘째인 김창훈이 만든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산울림 2집에서 리메이크하여 큰 인기를 얻기도 합니다.
1977년 김창완은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그 동안 작곡해둔 것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기념음반을 하나 내려고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녹음일정이 잡혔는데 하필 김창완의 은행 입사시험 날짜와 겹쪘다고 합니다. 그는 입사시험이야 다시 보면 되지만 녹음은 평행 한번 밖에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녹음실로 향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김창완 기타는 필리핀 그룹이 쓰던 중고였고 김창훈의 베이스는 국산 싸구려 였는데, 소리가 너무 좋지않아 음악평론가 이백천의 악기를 빌려 녹음했습니다. 워낙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하였기에 단 하루에 모든 녹음을 마쳤습니다. 음반이 발표되자 이상한 음악이 나왔다며, 신드롬을 일으키며 40만장에 이르는 판매를 하게 됩니다.
첫 앨범의 타이틀곡이 "아니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입니다. 아니벌써는 꽤 경쾌하면서도 밝은 노래가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밝은 가사는 당시 노래를 검열하던 시대의 산물입니다.
타이틀곡이 "아니벌써"와 "아마 늦은~"인 것에서 보듯 산울림 초기의 노래들은 밝음과 우울함이 자유분방하게 왔다갔다하는 조울증에 가까운 성향을 보여주는데, 아니벌써의 원래 의도는 "자살을 하려 했는데 날이 밝아버렸다."는 반어법적인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1984년 9집에서는 정말 록다운 시도를 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하게 되고, 두 동생은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14집을 준비하던중 캐나다로 이민 가 있던 막내 김창익이 지게차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공식 해체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에 노래를 어떻게 말하듯 하지, 곡의 흐름도 큰 변화가 없이 계속 반복된다, 참 이상하다 했는데, 이게 묘한 중독성을 갖고 옵니다.
video
https://youtu.be/fDhCUZ5IW1Y
live
https://youtu.be/zuOqi5zWZXQ
첫댓글 오래전 한참 음악다방을 전전하며
다닐때 음악다방에 앉아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산울림의 아니 벌써
노래가 나와서 락 팝만 들던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이음악이 들렷었지요
아니 벌써 이단어만으로도.....
이 노래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주 좋아요!
산울림의 노래는 노래마다 느낌도 가사도
다 좋은 듯....
"아니 벌써"."나 어떡해" 모두
20대 초반에 즐겨 들었던 곡이네요~
오늘도 신나게 잘 듣고갑니다~~
서울생활 시작하던 78년 명동 여악사 식당도 생각나고 명동 어음교환소 생각도 나네요,거기서 갓 스물이된 친구들과 많이 불렀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때가 내 인생의 최고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