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적중한 북한 김일성의 사망!
이 내용도 무불통지 제 2권명리학통달편(95년 출간)에 기록된 내용이며 이 사주도 1992년에 평가한 것이다.
5.신강(身强)사주와 북한 김일성의 죽음.
己 丁 乙 壬
酉 未 巳 子
대운수리 2.
甲 癸 壬 辛 庚 己 戊 丁 丙
寅 丑 子 亥 戌 酉 申 未 午
이 사주는 북한 김일성의 사주다.
임자생 쥐띠가 4월의 무더운 화왕절(火旺節)에 출생하여 일주(日柱)인 정화(丁火)는 숨통이 막혀 답답할 지경인데 식신(食神)에 해당하는 일지(日支)의 미토(未土)와 시간(時干)의 기토(己土)가 왕성한 화기(火氣)를 설기(泄氣)하여 더위를 면하게 하고 있으니 이 두개의 식신이 희신(喜神)에 해당하고 또 시지(時支)의 유금(酉金)도 왕성한 화기에 의하여 파극될 듯 하나 식상에 해당하는 두개의 기미토(己未土)가 화기를 가로막고 루출(漏出)시켜 다시 재성(財星)인 유금(酉金)을 생조하고 있다.그래서 이 유금(酉金)은 용신(用神)이다. 따라서 이 용신(用神)은 혼자서만 배를 체우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년주(年柱)의 임자(壬子) 관성(官星)을 생조하니 이 관성은 한신(閑神:한심하다는 뜻)으로서 자식에 해당하고 이 자식궁은 또다시 월간(月干)의 편인(偏印)을 생조하고 편인은 또다시 일주를 생조하여 이 사주의 육신중에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생생불식(生生不息)하고 전전생생하여 부귀롭고 아름다운 사주로 구성되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 독제자로서 독일의 비스마르크(1871-1890년),독일의 히틀러(1933-1945년),이탈리아의 뭇솔리니(1922-1945년)와 쏘련의 스탈린(1922-1953년)에 이르기 까지 이들 보다도 더욱 철저한 자기위주의 독제자로서 가장 오랫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김일성은 세계의 역사상 보기드믄 공산주의의 자기위주의 독제자로서 1912년에 출생하여 초년의 병오,정미 대운에서는 어렵게 살다가 22대운에 해당하는 무신대운에서는 항일 독립군 및 마적단들과 어울려서 만주 벌판을 횡단하다가 기유대운(己酉大運)에 해당하던 34세때인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던 해 부터 쏘련의 사주를 받아 남북 적화통일을 꿈꾸면서 독제정치를 시작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굳혀 1994년 음력 5월 30일 죽던 날 까지 장장 49년간에 걸처 독제를 이끌어 왔다
이 사주 원국(元局)의 구성과 대운(大運)의 흐름에서도 보이다 시피 초년의 무신(戊申)대운이 들면서 부터 82세에 해당하는 갑인(甲寅)대운 까지는 전혀 막힘이 없는 사주였지만 왕후장상도 죽음앞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던가? 아니면 주어진 숙명 앞에서는 권력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가?
김일성의 나이 83세인 1994(甲戌)년 음력 5월 30일은 을미(乙未)일, 잠든 시간은 세벽 1시경으로 축시(丑時)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좀더 세밀히 연구 검토해 보면 그의 나이가 83세에 해당하는 해는 갑술년이지만 대운도 갑인(甲寅)대운으로서 갑목(甲木)과 인목(寅木)은 모두가 희신(喜神)인 기미토(己未土)를 곧바로 파극(破剋)하고 한신(閑神)에 해당하는 임자수(壬子水)를 흡수하여 왕성한 화기(火氣)를 억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면에 왕성한 화기를 더욱 왕성하게 만들어 용신(用神)인 유금(酉金)을 파극하기에 이르니 그가 비록 삼천갑자 동방삭이라 한들 도래하는 운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하물며 그가 죽던 달은 음력으로 5월이지만 명리학 풀이상 6월의 절기에 해당하는 소서(小署)가 몇일이나 지나고난 다음이니 신미(辛未)월에 해당하고 죽던날도 을미(乙未)일로서 사주의 희신(喜神)에 해당하지만 월,일에 해당하는 미토(未土)는 갑인목(甲寅木)과 상극되니 도리혀 갑인목을 화나게 만들고 또 죽던 시간도 축시(丑時)에 해당하니 일지(日支)를 충거(沖去)하여 멀리로 떠나게된 것이다.이와같이 누구던지 죽을때는 희용신(희신이나 용신)이 충거되는 예도 있지만 주로 일지(日支)의 희용신(喜用神)을 충거하는 날 임종(臨終)하는 수가 많다.
이러한 사주를 확실히 모르던 사람들은 철학관 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음력으로 9월 14일 인시에 그의 사망설을 퍼트렸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그의 이름이 나빠서 더 살지 못하고 이때 죽었노라고도 했지만 1992년에 출간된 필자의 저서 "오복 이손안에 있소이다."에는 아무리 늦어도 6-7월을 넘길 수가 없고 그의 아들 김정일은 94년 5월달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기록되었으니 어느 누구보다도 적중률은 가장 높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라면 그의 생일이 확실한 것인지를 몰랐기에 더욱 적중시키지 못한점이 아쉽지만 그를 직접 만나보지 않고 그의 생년월일이 과연 맞는지 맞지 않는지도 확실히 모른체 풍문에 떠도는 그의 생일과 풍수지리에 해당하는 북한땅의 지기(地氣)를 살피고 그것을 풀이하여 같이 응용했던 것일 뿐이다.
김일성의 약력.
1912년 쥐띠, 4월 15일 유시생.임자년,을사월,정미일,기유시 생.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출생. 본명은 김성주(金聖柱).1926년 만주 길림성 육문중학(毓文中) 입학,공산청년동맹 가입.1929년 동만지구(東滿) 공산주의청년동맹위 서리,9월 육문중 중퇴.1931년 중국공산당에 입당.
1935년 김일성으로 개명.1942년 소련으로 넘어감,1945년 소련군 소좌가 되어 평양으로 돌아옴.북조선 5도공산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주재,조선공산당 북조선조직위 책임비서.1946년 7월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장.48년 9월 제1기 내각수상.49년3월 소련방문,6월 노동당 중앙위 위원장.50년6월 군사위원회 워원장,7월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최고의 자리를 92년 12월24일 김정일이 승계).53년2월 원수(元首)칭호,8월에는 영웅으로 칭호.56년4월 당 중앙위 위원장.57년8월 제2기대위원,9월 제2기 내각수상,10월 소련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에 당 및 대표단장으로 참석.61년9월 당중앙위원장,정치위원회 위원장.62년10월 제3기 대의원16,제3기 내각수상.66년10월 당중앙위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당중앙위 총비서.67년11월 제4기 대의원.70년 11월 당중앙위 총비서,정치위원.72년12월 사회주의헌법 채택으로 국가주석,중앙인민위원장.국방위 위원장.75년4월 중국방문,모택동과회담.75년5월 동구라파,아프리카 5개국 순방.92년4월 대원수로 칭호.회기록(세기와 더불어)를 펴냄.1994년 5월30일 2시,축시에 사망(양력,7월8일)에 사망하였음.평양시 대성구역에 위치한 김일성주석궁(금수산의사당 부지 1백5만평에 거주해 왔음.
* 김일성 자신은 지금 죽었지만 그의 사주로서 지금 북한의 현실을 대략 살필 수가 있다.물론, 북한의 현실과 그 자식에 해당하는 김정일의 건강 및 동태(動態)도 대략 감지할 수는 있으나 현재 한창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남북한의 교류관계로 확실한 논설은 피하고자 한다. 다만, 이 사주의 구성으로 봐서 1995년 10월달 부터 1999년 사이에는 북한 내부에 변동이 생길 듯 하고 우리나라의 안보(安保)문제도 더욱 튼튼히 다져나가야 할줄 믿는다.즉, 우리의 쌀을 줘도 걱정, 주지않아도 걱정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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