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이 필수적이고, 정교한 제구력을 ‘신의 은총’이라고 부르는지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투수가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공을 던질 수 없다면 타자를 처리하는 조리법이 아무리 좋더라도 형편없는 요리가 되고 만다.’(레너드 코 페트 저 - ‘야구란 무엇인가’ 71p)
‘가위바위보’에서 상대를 이기려면 먼저 가위나 바위, 보를 정확히 낼 줄 알아야한다. 상대가 바위를 낼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보를 낼 줄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야구도 마찬가지다. 투수가 타자를 상대로 펼치는 수싸움에서 제구력이란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너드 코페트가 제구력을 ‘신의 은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이 ‘필수’임에도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베이스볼긱은 당대 최고의 제구력을 갖춘 투수들과 인터뷰를 통해 컨트롤 제구력, 로케이션, 피네스(FINESSE)란 과연 무엇인가. 그 실체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 추적해봤다. 모두의 답은 비슷한듯 달랐으며, 다른듯 또 비슷했다. 베이스볼긱이 던져 드리는 당대 투수들의 대답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그 해답을 찾기 바란다. 때로는 질문 자체가 답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통산 연속경기 완봉승 기록은 3경기로, 5명의 투수가 공동 보유 (하기룡(82년 당시 MBC), 이상군(86년 당시 빙그레), 선동열(86년 당시 해태), 김상진(95년 당시 OB), 송승준 (09년 롯데))하고 있다. 프로야구 기록집에는 이 5명의 기록을 표로 정리 해 두었는데, 이상군의 ‘비고’란에만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3연속 무사사구 완봉’
이상군은 86년 6월 11일부터 29일까지 3경기를 연속으로 완봉승을 거두면서, 단 한번의 볼넷도 허용하지 않았다.
◇ 이상군, '컴퓨터 제구력'의 원동력은 '벼 타작 훈련법'
'초등학생’ 송진우에게는 ‘우상’이 있었다. 3살 많은 중학생 ‘(이)상군이형’ 이었다. 송진우 코치는 “직구와 커브를 자유자제로 던졌어요. 먼 거리에서 봐도 대단한 선수였습니다”라고 기억했다. 그 후로는 이상군을 모델로 삼아 연습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상군 현 한화 코치는 김영덕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중학교(청주중)부터 투수를 맡았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제구력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컴퓨터 제구력’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의 제구력을 길러준것은 재례식 훈련법이었다. 부러진 배트를 손잡이 부분만 남겨두고 잘라 낸 후, 끝부분에 긴 줄을 매달았다.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하는 전통 농기구인 ‘도리깨’와 같은 모양이었다고 말했다. 그 도구를 잡고 운동장 한켠에 쌓아놓은 흙더미를 투구동작으로 내려치는 훈련이었다. 이코치는 “워낙 낙후한 훈련방법이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훈련방법이죠”라고 말했다. “흙더미 위에 패인 부분이 ‘한군데 뿐’이어야 했어요. 릴리스 포인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일정한곳을 때릴 수 없습니다”라고 전했다. 낮에는 정상적인 투구연습을 하고, 밤이 되면 수백 번씩 흙더미를 내리 치자 어느새 ‘청주중 이상군을 데려가면 향후 3년 동안 고교무대를 평정할 것이다’는 말이 돌았다.
이상군을 ‘모셔간’ 학교는 한국화약에서 설립한 신생 천안 북일고였다. 지역의 ‘에이스’를 다른 학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재단 사무국장이 이상군을 만나기 위해 청주를 70여차례나 오갔을 정도였다. 이상군과 함께 창단한 북일고는 1년 만에 전국대회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더니 이상군이 3학년인 1980년 마침내 봉황대기 정상에 올랐다. 그 후 북일고는 30년 넘게 고교야구의 최고 명문고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코치는 학생 선수시절, 곁에서 보고 배울 선배가 없어서 아쉬웠다고 전했다. 신생 북일고야구부에선 입학하자마자 ‘최고참’ 이었다. 한양대학교에 진학했으나 때마침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김용남-김시진 콤비가 졸업을 했다. 이코치는 학교마다 감독이나 코치의 가르침은 있었으나, 마음을 터놓고 노하우를 전수 받을 ‘본보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막막했어요. 결국 스스로 터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연습만이 살길 이었어요”라고 말했다.
◇ 심판 교육에 쓰였던 제구력
이상군은 프로의 세계도 신생팀 창단멤버로 입문한다. 그의 소속팀 빙그레는 86년 창단 첫해와 이듬해에 각각 7위와 6위에 그친 약팀이었다. 이상군은 2년간 무려 490이닝을 책임지며 30승 28패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했다. 패가 다소 많지만 당시 이글스의 부족한 타선지원을 감안하면 에이스다운 성적이다. 이상군은 88년과 89년을 합쳐 26승(8패)를 기록한뒤 이후 10시즌을 더 활약하며 100승을 채운다. 96년 은퇴를 선언했다가 3년만에 팀명이 바뀐 한화로 복귀하여 5승을 보태며 한화의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화(빙그레)의 프로 첫 우승이었다. 크지 않은 체구 (176cm 65kg)였던 이상군은 빠른공을 가지진 못했으나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그의 제구력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있다. 그 중 심판에게 스트라이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1987년 가을 마무리캠프 때 였던걸로 기억해요. 김광철 심판위원장과 심판들이 창원의 캠프에 찾아와서 훈련을 했었어요. 그런데 김 위원장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심판들을 교육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한 개 차이로 넣었다 빼면서 공을 던져줬어요. 볼판정을 교육하는 훈련이었죠.”
◇ 류현진과 윤석민, 그리고 김광현
이 코치는 예전에 비해 현재 투수들의 제구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는 투수들의 구속과 제구력이 ‘반비례’한다고 말했다. 빠른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움직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코치의 현역시절 투구폼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의 고개와 시선은 임팩트 순간에도 한치의 움직임이 없이 정면으로 고정되어 있다. 송진우 코치가 말했던 것 처럼 이코치의 투구폼은 하체부터 시작하여 상체와 고개가 일직선을 이루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코치는 “고개 움직이거나 젖혀지는것은 빠른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특징입니다. 제구력에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팔에도 무리가 생기는 폼입니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의 폼은 간결하고 얼굴과 시선이 일정해서 던지고 난 후에도 끝까지 목표지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역선수 중 제구력을 갖춘 투수로 LA다저스의 류현진과 볼티모어의 윤석민을 꼽았다. 제구력에 스피드까지 겸비했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하는 좌.우 에이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코치는 “2명에 비해 SK김광현이 조금 처지는 이유는 임팩트 시 고개가 젖히고 지나치게 역동적인 폼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제구력이란 팀 전체를 위한 능력
이상군 코치에게 제구력이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제구력이란 ‘동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투수의 제구력이 그 투수 개인이 아닌 팀 전체의 성적을 향상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이코치는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의 제구력이 좋으면 수비를 하는 동료 선수들에게 믿음을 갖게되요. 또한 경기 시간도 줄어들어 야수들의 수비에 대한 집중력도 생기죠. 반대로 투수가 제구력이 없으면 전체가 같이 흔들릴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현역시절 ‘가을까치’라고 불렸던 KIA 김정수 투수코치는 “제가 기억하는 선수 중 제구력은 이상군이 최고였어요”라며 “이상군이 등판했던 경기는 대부분 일찍 끝났던 기억이 나요. 2시간 안에 끝난 경기도 있을걸요? 한번 알아보세요.”라고 말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이코치가 3연속 경기 완봉승을 거뒀던 경기 중 2번깨 경기는 소요시간이 1시간 46분에 불과했다. 이는 프로야구 역사상 6번째로 짧은 경기 시간이며 86년 6월 19일에 청주구장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빙그레는 롯데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