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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재배의 역사
포도는 1억 4천만 년 전에 출현하여 지구 전 지역에 널리 분포하다가, 4백만 년에 시작하여 1만 년 전에 끝난 빙하기 시대에 저온으로 인해 대부분 멸종되고, 빙하기가 끝난 후에는 동 및 서아시아, 북아메리카 지역의 포도만 생존하게 되어 각각 동아시아종군, 서아시아종군, 북아메리카종군의 지리적 종군(種群)으로 분화하게 되었다. 포도는 3종군의 100여종이 존재하며, 이 중 서아시아종군에 속하는 유럽종(Vitis vinifera)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고 있으며, 유럽종 재배가 환경적으로 어려운 곳이나 대목 등 특수 목적으로 미국종(V. labrusca) 등의 북아메리카종군에 속하는 종 또는 이들과 유럽종을 교잡한 교잡종이 재배되고 있다. 동북아시아 등 일부지역에서는 불량환경 극복 또는 특수 기능성을 목적으로 왕머루(V. amurensis) 등의 동아시아종군에 속하는 종들이 재배되고 있다.
1) 재배역사
(1) 유럽
서아시아의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아라랏산 산록지대(현 터키 북부 트랜스코카시아 지역)의 초기 인류문명 발생지에서 포도 씨앗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BC 6000년경의 후기 신석기시대부터 포도가 재배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재배한 포도는 야생종에 가까운 자웅이주였으나 후기에는 자웅동주의 완전화로 바뀌었으며 송이, 과립, 종자가 큰 계통을 선발하여 재배한 것으로 보인다. 아라랏산 산록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포도는 BC 4000년경 남쪽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비옥한 초승달지역으로 확산되어, 바빌로니아, 수메르, 앗시리아 등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재배되었다. 이때는 완전화의 품질이 우수한 재배종 포도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으로 추측된다. BC 3000년경에는 포도재배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오시리스 등 이집트 신을 경배할 때 포도를 이용하였고, 이런 포도 문화는 피라미드 벽화 등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때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도 품종 ‘머스캇오브알렉산드리아(Muscat of Alexandria)'는 지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중
요 품종으로 재배되고 있다.
기원전 3,000년경에 터키의 히타이트족의 팽창에 밀려 페니키아 난민들이 서쪽인 크레타와 에게 섬으로 이동하였고, 이 때 메소포타미아의 포도 재배와 양조기술은 크레타와 펠로폰소스 반도에 전해졌다(BC 2200~1400년).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연안에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시실리, 서부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에도 포도 재배를 전파하였다. 이 당시 남부 이탈리아는 포도가 잘 자라서 오이노토리아(Oinotoria, 포도주나라)라 불리었다. 로마인에 의해 포도 문화는 유럽 내륙으로 확장되었으며, 기원 후 300년경에는 포도재배와 포도주 양조기술이 대서양 연안으로부터 다뉴브 강 계곡까지 전 유럽지역에 확대되었다. 프랑스의 최초의 포도 과수원은 기원 전 500년경에 마르세유로 이주한 그리스 정착민이 만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라(Syrah)', '피노누아(Pinot Noir)'는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현재까지 재배되는 중요한 양조용 품종이다.
그리스도가 포도주를 스스로의 피와 동일시함에 따라 포도주를 신을 선물로 간주하게 된 기독교 문명이 확산됨에 따라 성찬의식에 사용되는 포도주 문화도 같이 퍼져 나갔다.
(2) 아메리카대륙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포도재배는 16세기경 미국 동부해안에 도착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유럽의 이주민들에 의해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신대륙 각지에 야생포도가 자라고 있고 원주민에 의해 과실이 이용되고 있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이러한 야생포도는 품질이 좋지 않고 호취향(fox flavor)이 강하여 이주민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다. 따라서 모국의 품질이 좋은 유럽종 포도를 도입하고자 유럽에서 포도 재배 전문가를 초빙하여 중부 및 동부지역에 시범 재배하였으나 대부분 실패하였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은 북부지역의 겨울철 저온에 의한 동해, 중남부지역의 하계 고온과 다습에 의한 병충해, 특히 노균병, 흰가루병 및 새눈무늬병(흑두병) 등의 피해 때문이었고, 특히 포도뿌리혹벌레(phylloxera)의 피해는 심각했다. 하지만 당시는 포도뿌리혹벌레의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였고, 19세기가 되어서야 나무가 죽는 이유가 이 벌레의 피해임이 구명되었다. 포도뿌리혹벌레는 당시 신대륙에만 있던 해충으로 잎이나 뿌리에 혹을 형성하여 포도를 고사시키는데, 특히 유럽종 포도에 치명적이었다. 이 벌레의 피해가 구명되었을 때는 이미 미국 야생 포도와 함께 유럽 각지로 도입되었고, 유럽의 포도재배에 큰 타격을 주었다. 미국의 야생 포도종을 저항성 대목으로 개발하기까지 유럽 포도원의 60~90%가 황폐화 되었으며, 아일랜드 감자 역병과 함께 세계 농업 역사상 2대 재앙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캘리포니아주는 태평양 서해안에 위치하여 유럽의 지중해연안과 비슷한 기후로 북동부지역 비해 포도뿌리혹벌레의 피해가 심하지 않았기에 16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에서 유럽 포도가 도입되어 그 재배지가 확대되었다. 19세기에는 스페인에 대한 멕시코인의 반란이 있어 포도원이 파괴되는 등 많은 곤란이 있었으나, LA에 이주한 프랑스 이민자들에 의해 최초의 상업적 포도원이 개원되었고, 캘리포니아 남쪽을 중심으로 포도재배가 발전했다. 또한 19세기 후반에는 북부지역에서 발견된 금광으로 인해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포도주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샌프란시스코 주변까지 포도재배가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는 포도주용 품종이외도 생식용 및 건포도용으로 ‘마스캇오브알렉산드리아’ 및 ‘톰슨시드레스’ 등이 재배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포도재배도 과잉생산, 포도뿌리혹벌레와 피어스병(Pierce disease)의 피해, 20세기에 시행된 금주법(1920~33년) 등으로 큰 곤란을 겪었다. 금주법이 해제되면서 다시 포도재배가 확대되어, 20세기 후반 경에는 이 지역의 포도 생산량이 330만 톤을 넘어서 전 미국 생산량의 90%를 점유하게 되었다.
(3) 동아시아
중국의 한나라 7대 황제 무제(BC 156~BC 87)는 북방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서쪽의 월지(月氏)와 동맹을 맺기 위해 관리 장건(張騫, ?~BC 114)을 파견(BC 139)하였다. 장건은 흉노에 두 번이나 포로(11년 동안)가 되면서 대완국(大宛國, 페르시아지방)과 대월국(大月國, 사마르칸트) 등을 여행하여 서역과 비단길로 불리는 무역로를 개척하고 문명의 가교를 놓았다. 총 13년간의 여행을 끝내고 귀국하면서 포도(유럽종), 말, 클로버 등을 중국에 도입하였다. 포도(葡萄)란 단어는 유럽종 포도의 원산 지역인 이란의 언어 Budaw(페르시아어 Budawa)를 중국어로 음역하였다는 설과, 도연(陶然)이 취한다고 하여 포도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한나라시대이후, 실크로드를 경유해서 중국에 도입된 포도는 현재의 감숙성, 섬서성 및 하북성을 거쳐 점차 동방의 산동성까지 확대되었다. 한편으로는 건조와 저온이 심한 북서부 지역으로도 전파되어 동해 예방을 위한 겨울철 매몰, 성 안에서 재배, 번식, 덕 사립형 전정, 관수 등 이 지역 특유의 재배기술이 확립되었다. 또한 도입된 중앙아시아의 유럽종 포도를 오랜 기간 동안 개량하여 ‘용안(龍眼)’, ‘마내자(馬奶子)’ 등 중국형의 유럽종 품종을 육성하기도 하였다. 일본에는 가마쿠라(鎌倉, 1185~1333년)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유럽종의 ‘갑주(甲州)’ 품종이 현재에도 야마나시(山梨縣)와 오사카(大阪縣)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1186년 가이노쿠니(甲斐國, 현재의 山梨縣)의 아마미야카케유(雨宮勘解由)씨가 처음 이 포도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중국 교역과 인적교류가 활발하여 이 시대에 포도의 종자가 도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사카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재배되어온 ‘자(紫)포도’는 임진왜란때 병사들이 조선에서 가져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품종은 약 400년의 재배역사를 가지고 있는 ‘갑주’ 품종과 특성이 매우 유사하나 착색과 과방의 형태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며, 아직 오사카지역에 보존되고 있다.
(4) 한국
우리나라에 포도가 언제 전파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중국에 포도가 중앙아시아에서 BC 114년 이전에 전래되었고, 중국 산동지역 고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 530~550년)의 포도 관련 서술과 신라시대 와당의 포도문양 등을 고려해보면 산동지역과 교역이 활발하던 삼국시대에 이미 포도가 도입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포도에 대한 우리나라의 최초의 기록은 박흥생(朴興生, 1375~1458년)의 촬요신서(撮要新書)로 그 후 농가집성(農家集成, 1614), 색경(穡經, 1676) 등 중요한 고농서에 빠짐없이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15세기부터는 널리 재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들 고농서에 소개되는 포도 품종에는 ‘자(紫)’, ‘청(靑)’, ‘흑(黑)’, ‘마유포도(馬乳葡萄)’, ‘수정마유(水晶馬乳)’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중국의 지방종이거나 유럽종 포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신사임당의 포도도, 이계호의 포도도, 백자철화포도문호(국보 93호, ~18C) 등 조선시대 문화재의 포도 잎 그림은 전형적인 유럽종 포도 잎 모양이다. 박세당의 색경(1676) 에는 덕재배, 겨울철 동해 방지를 위한 매몰 재배, 보릿대 멀칭, 무에 삽목 번식, 쌀뜨물 및 고기 육수로 영양제 시비 등의 재배기술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머루는 동북아 원산으로 머루 (V. coignetiae), 왕머루 (V.amurensis), 새머루 (V. flexuosa), 까마귀머루 (V. ficifolia), 개머루(Ampelopsis brevipedunculata)가 있으며 동북아시아 원산이며 이중 까마귀머루는 한국원산 고유종이다.
2. 우리나라 포도재배현황
1) 재배면적 및 생산량
우리나라의 포도 재배면적은 꾸준히 증가되어 1986년 17,037ha에 이르렀다가 1990년 포도주 수입 개방에 따른 양조용 포도 품종의 폐원 정책으로 서서히 감소하여 1991년에는 14,802ha까지 축소되었다. 그 후 포도 가격의 호조로 인하여 1998년에는 29,871ha로 최고의 정점에 이른 후 다시 점차 감소하여, 2010년 17,572ha의 면적에서 305천 톤이 생산되고 있고, 생산액은 5,463억 원이다. 2015년 현재 15,397ha에 271천톤이 생산되었다.
2) 재배규모
우리나라 포도 농가의 평균 재배 규모는 80년대와 90년대 전반기 증가 이후 정체되고 있다. 2010년의 경우 호당 평균 재배규모는 0.56ha이고, 전문 경영이 가능한 1ha 이상의 농가는 7% 수준이며, 포도 주작목 복합경영의 수준인 0.5~1.0ha 규모가 23%, 포도부작목 복합경영의 수준인 0.5ha미만 규모가 69%로 아직 규모면에서는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지포도 재배면적은 점차 감소하고 있고 한․칠레 FTA 후속 조치로 가온재배시설을 폐원하여 시설재배 면적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무가온 시설은 노지포도에 비하여 병해충 피해가 적어 친환경이나 저농약 재배가 가능하고, 외기가 저온이라 착색이 잘되며, 단경기 판매로 판매가가 높아 시설지원을 받는 무가온 시설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포도로 인한 지속적인 가격하락으로 인해 폐원보상 및 FTA 피해보전 직불금 등 포도 농가에 대한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3) 품종구성
우리나라의 포도산업은 ‘캠벨얼리’ 67.4%, ‘거봉’ 17.1%, ‘MBA’ 7.2%, ‘델라웨어’ 0.7% 등 4 품종이 전체 재배면적의 92%를 차지하고 있고, 재배작형의 분화와 가공산업의 발달이 미흡하기 때문에 포도는 출하기 분산과 과잉생산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여 항상 홍수출하의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흑구슬’, ‘흑보석’ 등 국내 육성 신품종의 신규 재배면적이 급속히 늘고 있고, 유럽종 등 신품종의 재배면적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품종 구성은 현재보다는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4) 포도가격 및 출하동향
우리나라 주품종인 ‘캠벨얼리’의 성 출하기(8~9월) 가격은 1994년 이후 재배면적 급증으로 하락하다가, 2000년대 전반기에는 소비 증가로 상승 추세로 바뀌었고, 2000년대 후반에는 경제 불황, 과채류와 수입 과실에 의한 소비 대체의 여파로 다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8월 가격은 9월에 비해 대체로 높은 경향이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상여건에 따라 시기별 가격이 결정되고 있다.
포장은 대형유통업체의 활성화, 소비자 구매단위의 변화 등 유통환경의 변화로 인해 소포장 단위로 변화되고 있다. ‘캠벨얼리’는 10kg 포장에서 5kg과 2kg 단위로, ‘거봉’은 4kg 포장에서 2kg 단위로 작아졌으며, 포장이 작아질수록 단위 무게당 가격은 높아지고 있다.
3. 우리나라 포도재배전망
1) 생산전망
포도는 우리나라 과수 중 감, 감귤, 사과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고 있는 중요 과수 작목이다. 우리나라의 포도 생산량은 1994년에 200천 톤을 넘어선 다음, 2000년 476천 톤을 생산한 이후, 한․칠레 FTA 체결에 따른 신선 포도 수입이 허용됨에 따라 점차 감소하여, 2015년 현재는 270천 톤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전반까지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수입 자유화 이후에도 주요 과수 작물로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이유는 타 작물에 비하여 소득이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시설포도는 시설감귤 다음으로 소득이 높으며, 노지포도는 우리나라 6대 노지과수 중 가장 소득이 높다.
최근에는 FTA 등으로 포도 수입량이 증가되고 농업인 고령화 등에 의해 국내 포도 재배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연구기관에서 전망하고 있으나, 국내산 포도가 기존의 품종을 벗어나 다양한 품종으로 소비가 유지되고 귀농자 등 새로운 젊은 인력이 유입된다면 감소 속도를 늦추거나 오히려 증가도 가능할 것이다.
2) 소비전망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포도 소비량은 최근 급격히 증가되어 2000년에는 1990년의 3.3배 이상인 10.3kg까지 증가되어 과실 소비량의 17.6%를 차지하였다가, 2010년에 약 6.9kg으로 과실 소비량의 11.1%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2011년에 2021년 1인당 소비량을 7.5kg으로 현재보다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3) 수입포도
외국에서 수입되는 포도는 씨가 있는 적포도는 레드글로브, 씨가 없는 적포도는 플레임씨들레스, 씨가 없는 청포도는 톰슨씨들레스가 대부분이다. 이들 포도는 품질도 우수하지만 무엇보다 저장성이 우수하여 생과유통용으로 생산되어 전세계에 유통되고 있다. 씨가 없는 품종의 경우 원래 3g 정도의 작은 과립을 가지고 있지만 인위적인 GA처리를 통해 과립을 비대시켜 생산하고 있다. 포도의 수입은 주로 국내산 포도가 생산되지 않는 겨울철에 칠레산 포도가 주로 수입되고 있으나 같은 북반구의 미국의 경우 국내산 포도의 주출하기인 여름에 2029년 까지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포도가 생산되는 여름에 미국산 포도와 경쟁을 해야되는 상황이 발생할수도 있다. 2015년 현재 수입포도의 규모는 약 6 만톤으로 국내전체 포도시장의 20%를 차지하며 kg당 4,000 ~ 5,000원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어 국내산 포도의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다양한 수입과일로 인해 포도 가격하락 자체가 온전히 수입산포도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수입포도는 현재 우리나라 포도소비시장에서 기존의 국내산 포도와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카테고리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으며 당도가 높은 포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주품종인 캠벨얼리를 대체하여 위와 같은 특성을 가진 품종으로 갱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출처 :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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