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알려 주시고 증거케 하시며 계시해 주셨는데..
그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의 복과 저주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고, 어느 곳에 있든지 순간순간에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며, 실상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이고 현장적이며 실제적이며 명료하고 선택이 가능한 것이며, 참으로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어 있는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근원적, 근본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통찰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말씀 자체부터 제대로 이해하거나 깨닫기가 힘들게 되는 것임은 물론 실제로도 좋은 믿음으로 하나 하나, 순간순간 선택하면서 잘 실행함과 함께 그 영혼과 심령과 육신, 가정, 자녀, 일터, 학교, 관계, 진로 등과 같은 사안과 부분과 영역들 속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됨이 심히 어렵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사실상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잘 통찰하면서 전심으로 의지하지 못한다면 그 자신이 아무리 믿음으로 하려고 해도 결국에는, 또는 자신은 믿음으로 하면서 하늘의 힘과 은혜로 한다고 나름 자부하지만 실상은 조금만 분별해 봐도 순간순간 속에서의 예수님의 십자가나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을 간과한 체 인간적인 힘이나 의, 세상적 능력이나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게 되는 이치와 실제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내 앞에,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일과 사안들, 상황과 영역들 등에 있어서의 복이냐 저주냐에 있어 모든 기준은 단적으로 말해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인데..
우선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는 자체부터, 그 처음부터 애초에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불가인 것이고, 철저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로 인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곧,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말씀의 동산인 에덴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는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통해서만, 다시 말해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깨어진 반석, 회막, 제사장과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야 말로 복이냐 저주냐에 있어서의 전적인 기준인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게 함에 있어 모든 우선이자 전제이며 근본이고 시작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만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날마다 순간마다 더 이상 옛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이나 의, 세상적인 능력이나 방법 등에 우선을 두거나 함몰됨과 함께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미움과 원망과 우상과 자기 소견과 불신앙들 등으로 인한 미지근하고 잠자며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거나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연약과 한계들, 문제와 위기들, 광풍과 홍수 같은 일들 등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혹 범한 죄악들에서는 즉시로 자복하고 참회하며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실제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가능한 것이며, 더 나아가 무엇보다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장 최우선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제대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한 것이고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생생하고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게 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이 차고 넘치게 됨으로 인해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매사에 어떻게든 저주가 아닌 복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또는 혹 험악한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특별하신 뜻과 계획, 훈련과 준비 등으로 인해 잠시 간의 의로운 시련이나 환난이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하늘의 힘이 예비되는 것임은 물론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가장 찬란한 복이 되고 생생히 누리게 됨이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11:26~28)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8월 24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