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추석 연휴에 바이칼 호수에 다녀오다.
가을 가득 담은 하늘 사무치도록 맑은 호수로 내려온다.호수 멀리 물안개
피어오르고 하얀 자작나무 숲은 호수에 누워 일렁거린다.흰 구름이 자작
나무 숲으로 내려안듯 양떼 한 무리가 서서히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게으른풀꽃 서늘한 가을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호수 위로 백조 한쌍 내려
앉는다. 바이칼 호수에 얼굴을 비춰보며 잠시 그리움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한 마리 양이 되어서..흰 구름 따라 자작나무 숲으로 천천히 걸어들
어간다.눈처럼 하얀 나무는 곁가지 없이 하늘까지 솟아오르고 멀리 가지
끝에는 노란 나뭇잎이 하늘하늘 거리며 맞닿은 옆 자작나무와 속삭인다.
나는 살아있으매 자작나무 숲에 한 마리 양이 되어 내 가슴 속에 깊이 담
긴 그리움을 저 바이칼 호수로 한껏 띄워 보내리..가을이 깊어 숲에 잎이
떨어지고 가지사이로 하늘이 드러나고 구름은 한결 선명하고 또렷하다.
가을의 짧은 해는 바이칼 호수로 급히 떨어지며 바람을 일으킨다.바이칼
호수 서편 언덕에는 풀들이 누렇게 말라있고 오직 석양빛에 자작나무숲
만 붉게 타오른다.잔잔했던 바이칼 호수는 어둠속에 파도를 일으키며 서
해의 밀물처럼 호수가로 밀려들어 바위를 때린다.밤이 되니 가을 호수는
바다가 된다. 밝은 달빛은 물처럼 스며 옷을 적시고 차가운 안개 속 저
멀리 긴 가을밤에 걸어오는 한 사람.멀리 초원에 낮은 집에선 한줄기 불
빛이 새어나온다.부리야트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의 종족은 시베리아
에는 야쿠트, 부리야트, 에벤키, 퉁구스 등 몽골로이드의 여러 소수 종
족들이 번갈아가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거주해 왔다.오랫동안 시베리
아는 유형지의 상징과도 같았다.바이칼 호수는 문학의 무대로 등장한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유형당한 카튜샤를 쫓아가는 네플류도프는 시베
리아를 헤매고,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를 태운 썰매가
시베리아 벌판을 질주한다.오래 전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유리는 우연
히 라라를 다시만나 사랑을 나누던 라라의 소박한 작은 2층 집이 향기롭
게 가슴 속에서 피어오른다. 영화 주제곡 “Somewhere my love”의 선
율이 하얗게 눈 덮인 창문을 흔든다. 춘원,이광수도 이곳 시베리아의 바
이칼을 무대로 1933년에 “유정”을 썼다.여행 5일째 날에 알혼 섬에서
아침 식사로 흰 죽에 버터와 우유를 넣은 “까샤”, 부침개 같은 “블린“
계란 후라이와 홍차를 마시고 오리털 잠바와 장갑을 끼고 나섰다.두 개
의 작은 바위섬은 마치 알혼 섬에서 막 떨어져 나와 바이칼 호수에 빠진
듯 물가에 날카롭고 당당히 서있다. 해를 마주보고 브르한 섬을 사진에
담았다.움직이지 않는 바위섬 풍경이건만 스냅 사진처럼 이리저리 옮기
고 옮겨가며 원 없이 셔터를 눌렀다. 가슴으로 사진을 찍었다.호수 건너
하얀 설산이 브르한 바위를 감싸 안고 나도 그 속에 안기었다.추위와 어
둠이 내려 사진이 안 찍힐 때까지 찍었다.알혼 섬의 아침은 찬란하다.호
수 위로 태양은 불타오르고 바이칼 호수 안에서 제일 큰 알혼 섬에선 아
득한 푸른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나온다.저 멀리 푸른 늑대는 온 몸으
로 숨이 끊어질 듯 긴 울음을 토해낸다.숲속 낙엽송 노랑 잎이 살랑살랑
떨어진다.낙엽은 무게감 없이 떨어지며 낙엽 두께로 가을이 내려 앉아
소리 없이 내 곁으로 다가온다.낙엽 쌓여 외줄기 길은 먼데 그길을 걷고
싶다.메마른 가을바람이 분다.가을바람이 선선이 불던 날에 바이칼 호수
를 천천히 걸었다. 가을 소리는 나그네가 가장 먼저 듣는 단다. 올가을
나의 귀는 바이칼 호수의 나그네 귀이기를 바래본다. 호수는 하늘과 맞
닿아 하늘호수가되고 하늘은 호수로 내려와 호수하늘이 된다.백조는 호
수 위를 날다 구름에 앉고 영혼은 구름 위에 떠서 천국에 앉고 하늘이
처음 열리던 날이 천지 창조 두번째 날이니 강물이 처음 흐르던 날이 천
지창조 여섯째 날이니 하늘호수 앞에 서서 아득한 신의 눈길을 호수하
늘 앞에 앉아 포근한 신의 음성을 파란 하늘엔 흰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그 뭉게구름은 파란 바이칼 호수로 내려 앉아 하늘에서 흐르듯 호수 위
에서 흐른다.바이칼 하늘호수는 천지창조 이후에 생명의 근원이요 깊은
숨결이다.새벽 닭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던 9월 29일, 가을날에 집
대문 밖을 나섰다. 사진기 메고 바이칼 호수의 가을을 담으러 떠나며
“바이칼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백조 처녀“라는 설화를 읽
고 우리나라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생각해본다.“바이”는.시베리아 샤
머니즘에서 샤먼을 지칭하는 것으로 호수이름에 샤먼을 뜻하는 “바이”
를 붙였다는 것은 바이칼이 무속신앙의 대상이자 주체였음을 말해 준다.
“칼”은 넓은 계곡을 지칭한다.바이칼 호수가 바로 그 샤머니즘의 뿌리라
고 한다.바이칼 호수 주변 사람들은 우리와 얼굴 모습은 물론 풍습이 유
사하고 많은 전설들이 닮았다. 바이칼 호수는...러시아의 이르쿠츠크 주
와 브리야트 주에 걸쳐 초승달 모양의 바다 같은 호수로“시베리아의 진
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호수다.총길이 647Km,
최대 폭 80Km, 수심이 약 1700m. 상징적인 의미는 접어두고 숫자로만
보아도 바이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한민족 시원의 상징”,“시베리
아의 파란 눈”,“세계최대의 내륙담수호” 등등으로 불린다. 수정처럼 투
명한 물속에는 담수물개“네르파”, 청어류의“오물”, 속이 다보이는 투명
한 물고기“골로미양카” 등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없는 1500 여종
의 다양하고 고유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여행 중 기차에서 파는 건조된
“오물”을 술안주로 먹었는데 어찌나 짠지 오물오물 씹었고 알혼 섬에서
운전기사가 끓여준“오물”국 “오물”은 비린맛이심해 오물오물 삼켰다.
바이칼 호수의 기온은 11월부터 얼기 시작해 1월부터는 호수 얼음 위로
화물 트럭이 다닌다. 바이칼의 봄과 가을은 달력으로만 있고 실제는 여름
에서 곧 겨울로 간다.이번 10월의 사진여행도 가을이지만 겨울옷으로 준
비를 했다.다만, 털모자를 빠트려 새벽엔 머리가 시원했다. 요즈음 주말
이면 서민들의 별장“다차” 문화도 성숙되어있다.다차란 통나무로 지은
집과 텃밭이 딸린 주말 농장이다. 그 곳에서 장작불로 돌을 달군 뒤 자작
나무 가지로 돌위에 물을 뿌려 나오는 증기로 땀을 빼는 “반야“로 불리
는 러시아식 사우나를 즐기며 보드카와 소시지 그리고 철갑상어 등을 꼬
치구이로 구워먹는 ”샤실릭”을 차린다.다차가 일반화 되기 시작한 것은
흐루시초프가 집권 초기에 인민주의와 평등을 강조하면서 직장인들에게
백팔십 평 정도의 땅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고 샘도 났다. 바이칼 호수의 밤 하늘은 별들의 천국이다.
그들은 여행객에게 북두칠성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바이칼 호수에띄운다.
나는 술잔에 북두칠성을 담아 마시며 바이칼 호수에 반짝이는 북극성을
찾아본다. 그들도 우리처럼 북두칠성을 국자로 보는 전설이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바이칼 호수 일대를 우리 민족문화의 발상지로서 주목한
바 있다.한민족의 정신적 고향 바이칼 호수...오늘날의 한국인은 멀리 만
주와 시베리아, 연해주 등지에 살고 있는 퉁구스족으로 구성되는 몽골로
이드 황인종들이 구석기시대에 바이칼 호수를 떠나 동남쪽의 따뜻한 한
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브리야트 족은 바이칼 호수에 대한 숭
배가 대단하여 발을 담그기만 해도 5년, 세수하면 10년, 목욕하면 영원
히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마치 삼년고개에서 동방삭이가 한번 구르면
삼년을 더 산다하여 떼굴떼굴 굴렀다는 전설과 유사하다.나도 그들의 전
설을 듣고 호숫가에서 열심히 손을 찬물에담갔다.2017 10- 6 여행 마지
막 날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향하는데 눈이 내린다.멀리 눈 덮인 자작나무
사이로 “Somewhere my love” 노래가 흐르고 닥터 지바고와 라라가
걸어오며 나에게 손을 흔든다. “즈드 라스트 브쩨..." 나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만나 반갑습니다.” 2017 10 9 바이칼 호수를 다녀와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