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가 기타로 작곡하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로 작곡한다면 드러머는 드럼으로 작곡할까요? 로저 테일러에 의하면 "그렇다"입니다. 로저 자신도 이야기 했듯이, 로저는 브라이언과 더불어 퀸 멤버 중 가장 즉흥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입니다. 퀸 네명을 십자 구조로 이야기 하자면, 로저와 프레디는 완전히 극과 극의 작곡가고, 로저와 브라이언은 즉흥적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프레디와 브라이언은 정교한 곡을 만든다는 특징을, 브라이언과 존은 아쿠스틱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아주아주 일반화 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는 로저의 작곡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Rock It Prime Jive 는 Millionaire을 제외하고는 퀸의 모든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 하지만 그럼에도 로저의 곡을 (듣는 것만큼은) 상당히 좋아하는 이유는 로저의 노래에는 로저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맞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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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저는 단순한 작곡가
지난번 프레디를 소개할 때 복잡한 온갖 용어가 난무했었습니다만, 로저의 경우에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로저의 작곡은 네 명중 가장 간단하고, 키나 코드 변화란 눈 씻고 찾아볼래야 없죠. (3분동안 12번을 변하는 Bicycle Race 같은 곡을 짓는 프레디와는 천지 차이…) 이 특징은 로저가 나쁜 작곡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반대로, 로저의 솔로 앨범들은 팬들 사이에서 브라이언이나 프레디의 솔로 앨범보다 훨씬 더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단지, 이 “단순한 작곡 스타일”이라는 말은 (1) 로저의 ‘트레이드마크’ 는 훨씬 한정되어 있다 (2) 로저의 작곡은 음감보다는 리듬감에 의존한다 (3) 로저의 곡 구성은 다른 멤버에 비해 반복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죠.
그럼 이 세가지 특징을 하나하나 살펴 볼까요? 먼저 트레이드마크를 보면, 트레이드마크란 단순히 작곡가가 곡을 지을 때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는 코드라든가, 리듬이라든가, 특징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존의 트레이드마크는 두개 혹은 세개의 사이클, 초기 프레디의 경우는 피아노 왼손 연주와 거의 비슷한 베이스) 프레디의 트레이드마크는 다른 세 멤버에 비해 엄청나게 많았고 다른 밴드와 비교해 봐도 확연히 달랐습니다만, 그와 정반대인 로저는 많이 쓰는 구조가 상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Rock It 과 Action This Day를 제외하고는 모듈레이션, 템포 혹은 미터 변화가 전혀 없고 (다시 말해 리듬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피아노 반주 쪽에서 간결한 코드 연주가 두드러지죠. 뒤에 더 자세히 나오겠지만 로저의 노래는 앞에서 뒤까지 일관적이고 탄탄하게 뭉쳐 있습니다. 로저가 음악적 지식이 부족해 트레이드 마크가 적다기보다는 그가 곡을 만드는 과정이 즉흥적이고도 리드믹하기 때문에 자연 단순화가 된다는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또 로저의 가장 큰 강점은 작곡이 반복적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레디의 몇몇 곡을 볼 경우 너무 많은 변화 혹은 변주의 나열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Body Language 와 한두개의 솔로 곡) 그것을 봐도 단순화 = 능률이라는 것이 예술에도 잘 먹혀들어가는 공식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특징, 로저는 리듬맨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제가 표현을 잘못한 것이 있다면 너무 개개인의 작곡 스타일과 악기를 밀접하게 관련시킨 것입니다. 로저의 경우 드럼과 더불어 초기에는 기타리스트로 시작했고 자신의 솔로에서는 거의 모든곡에 기타 작업을 할정도로 능수능란한 기타리스트였습니다. 단순히 드러머이기 때문에 리듬감이 뛰어나고, 프레디의 경우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음감이 뛰어나고, 존의 경우 베이시스트이기 때문에 예쁜곡을 잘 만든다 (?) 는 것은 원인과 이유를 바꾼 것이 되죠. 오히려 로저는 리듬감이 뛰어나기 때문에 주로 드럼을 치고, 프레디는 음감이 뛰어나기 때문에 주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입니다. 로저가 드럼으로 작곡을 할수 있는 이유도 즉흥적으로 떠오른 리듬을 음과 연결할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저 자신의 말을 볼까요?
“가끔은 가사가 떠오르지만, 보통은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르죠 – 그냥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가요. 전 취미로 작곡을 하고, 전문적인 프로 작곡가라고는 할수 없습니다. 때때로 창조적인 시기가 오면 많은 성과가 있는데, 몇 개는 즉각적이고 다른 곡들은 좀 시간이 걸리죠. 전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밥먹기 전에 작곡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작곡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라도 하려는 듯 보이죠. 저는 자주 드럼으로 작곡을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타악기 연주자라 곡이 리듬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타와 피아노를 가장 많이 쓰죠.”
세번째 특징, 반복적인 구조입니다. 사이클이 없는 작곡을 하는 프레디나, 중간중간 브리지와 스페이서를 즐겨 쓰는 존의 경우와는 달리 로저는 거의 모든 노래가 브리지가 중간에 하나 있는 one-cycle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로저의 노래 중에서 약간 복잡한 형태를 띄고 있는 노래들은 거의 프레디가 편곡을 한 것인데요, 한 일화에 의하면 A Kind of Magic 의 경우에는 로저의 초안을 본뒤 프레디가 로저를 짐싸게 해서 스키여행을 보내놓고 간 사이에 자기가 노래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고 합니다. 프레디의 뛰어난 점은 그럼에도 원작의 기본 아이디어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작곡권도 완전히 원 작곡자 (이경우에는 로저) 에 돌린다는 점이죠.
2. 로저만의 작곡/편곡
Roger (1984): 나는 본능적인 음악가입니다. 키보드, 기타, 드럼을 할수 있고 작곡도 하죠. 음악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코드 같은 복잡한 건 알고 싶지 않습니다. Radio Ga Ga 에서도 어려운 코드가 좀 들어가기는 했지만 뭐라고 불리는 지는 알지도 못하고 상관도 없습니다. 전 키보드보다는 기타를 훨씬 잘하지만 가락적으로 키보드에서 작곡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Radio Ga Ga는 완벽하게 키보드로 작곡한 곡입니다. 기타로 작곡하려면 코드 찾는 게 너무 힘들고, 보통 기타리스트는 그 작업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할 겁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로저는 드러머일 뿐만 아니라 정말로 멋진 기타리스트입니다. 로저의 솔로 (특히 Electric Fire) 은 퀸의 스타일과 확연히 다를뿐만 아니라 정확하고 완벽한 구성을 자랑하는, 어느 퀸 앨범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들이죠. 로저의 편곡 스타일은 우선 ‘요상함’으로 표현할수 있는데요, 특히 초기에는 좀 이상하다 싶은 노래가 있으면 다 로저 노래일 정도입니다. 이건 단순히 로저 목소리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로저만이 쓰는 가락상의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룹 (loop)을 들수 있는데요, 단순히 한 구간을 반복 연주하는 것 이상으로 기계적인, 혹은 굉장히 리듬적인 효과를 내는 기법이죠. Invisible Man, Breakthru, More of That Jazz, Fun It, Fight From the Inside, Action This Day, A Kind of Magic, Don’t Lose Your Head, Machines, Ride the Wild Wind, Rock It, Coming Soon 등 퀸에 실린 노래 뿐만 아니라 No More Fun, Man On Fire, Future Management, I Wanna Testify 등 솔로 앨범에서도 자주 보이는 특징입니다. 200GB 자료실에 I Wanna Testify 뮤비를 올려드릴 때 받으셔서 한번 확인해 보세요.
또 퀸 멤버 중 가장 목소리가 높이 올라가는 아름다운 보컬을 가져서 그런지 옥타브 보컬을 노래에 넣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로는 퀸 앨범으로는 Drowse, Action This Day, Radio Ga Ga, 솔로로는 I Wanna Testify, Interlude In Constantinople, Beautiful Dreams, People On Streets 등입니다.
자신의 곡들에는 꼭 리듬기타를 치기 좋아하는 특성이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베이스가 리듬 기타와 비슷하게 가는 노래들도 꽤 지었습니다. 예를 들면 Modern Times Rock ‘n’ Roll, Sheer Heart Attack, More of That Jazz, Action This Day, Don’t Lose Your Head 등입니다.
하프를 켜는 것처럼 “디리리리리리리링” 하고 음이 화음 대신 연속으로 나는 것을 아르페지오라고 합니다. 로저는 기타 아르페지오도 즐겨 쓰는 편이었는데 Tenement Funster, More of That Jazz, A Human Body, Rock It 등의 노래에 들어 있습니다.
또 앞에서 소개드린 것처럼 피아노가 기타처럼 멜로디 대신 코드만 치게 작곡을 했는데, 그건 로저가 피아노를 많이 안쳐서 그렇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프레디의 경우 잘 못치는 기타도 작곡은 자신이 손수 함 – BoRhap 등) 제 추측으로는 아마 피아노의 duality, 혹은 이중적/대위적 성격에 익숙하지 않아서 인 것 같고, 예로는 Tenement Funster, I’m In Love With My Car, Nazis 1994, Happiness 등이 있습니다.
퀸 이후로 솔로 앨범을 보면 상당히 고급스러운 기법도 많이 연출하는데요, 부드러운 부분과 거친 부분, 극히 간단한 부분과 웅장한 부분을 멋지게 대조시키는 기발한 작곡을 합니다. (어쩐지 멋진 솔로곡들.) Surrender, Pressure On (정말 아름다운 노래죠), Nation of Haircuts, Is It Me, Working Class Hero 등의 노래가 있습니다.
Loser In the End, Tenement Funster, Drowse 등에서의 글램 스타일의 기타 작곡도 초기 로저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로저 곡의 보컬에서 가장 큰 특징은 리드 보컬을 중간중간의 의외의 부분에서 약간 느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삼아 곰 플레이어 있으신 분들은 아무 노래나 느리게 돌려 보세요. 목소리가 낮아집니다.) 예로는 Radio Ga Ga, Breakthru, Touch the Sky, London Town C’mon Down, A Kind of Magic, No Violins, Surrender, Is It Me, Believe In Yourself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위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만남 (?) 을 중시하여 그에 관계된 노래를 많이 지은 로저답게 인간의 목소리도 로보트 처럼 일그러트린 소리를 집어넣기도 했는데요, Radio Ga Ga, Machines, A Human Body, Interlude In Constantinople, No More Fun, Surrender, Future Management, Fun In Space, Calling All Girls 등이 있습니다.
3. 작곡의 특징
앞에서 편곡할 때 즐겨쓰는 가락상의 트릭을 설명드렸다면, 여기서는 작곡할때의 노래 전체의 구조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로저의 경우에는 뭐라고 복잡하게 설명할 여지 없이 딱 세가지로 나뉩니다.
첫번째로, 아까 나온 원-브리지 모델입니다.
-Modern Times Rock ‘n’ Roll
-Loser In the End
-Tenement Funster
-I’m In Love With My Car
-Drowse
-Action This Day
-Don’t Lose Your Head
-Invisible Man
-Heaven For Everyone
-Happiness
두번째로는 완벽하게 반복적인 원-사이클 노래입니다.
-Fight From the Inside
-Fun It
-More Of That Jazz
-Coming Soon
-A Human Body
-Calling All Girls
-Machines
-Breakthru (앞의 콰이어-인트로만 빼고)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마지막으로는 alternate verses입니다. 이 기법은 코드가 반복될 때 같은 코드라도 앞과는 다른 멜로디를 사용하는 기법인데, 이 기법 때문인지 로저의 노래는 전혀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또 같은 코드 프로그레션을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곡에 일관성이 있죠.
-Fun It
-Tenement Funster
-More of That Jazz
-Drowse
-I’m in Love with My Car
-Surrender
4. 개인적 감상
이부분은 프레디와 존 쪽에는 쓰지 않았습니다만, 로저의 경우에는 간단히 쓸까 합니다.
제가 초기에 퀸을 들을 때 앨범에서 가장 싫어하는 곡이 로저의 곡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로저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예쁘다기보다는 힘차고 (물론 후반에 가서는 아름답고 세련되어졌지만… 특히 솔로곡들) 문명보다는 이상하게 원시적인 요소를 더 많이 불러일으키는 노래라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로저는 사실 솔로에서 자신의 작곡과 음악적인 능력을 더 정돈된 형태로 배출한 작가였고, 특이하지만 아름답고 프레디보다도 높은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1991년 이후 브라이언보다도 공연에서 빛을 발한 가수입니다. 사실 제가 현재 로저 노래 중 좋아하지 않는 단 하나의 노래가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인데 프레디의 고운 목소리가 너무 감상적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저의 노래들은 사실 로저가 리드보컬을 하는 게 (혹은 프레디와 공동 리드)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앞으로 로저가 계속 솔로 음반을 내었으면 하는게 (혹은 최소한 브라이언과 공동작업이라도…) 저의 바램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퀸 앨범의 로저의 작곡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Rock It Prime Jive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로저답고 (심지어는 프레디의 인트로 부분도) 신나는 멋진 곡이죠.
첫댓글 이번 글도 역시 엄청난 내공을 보이시는..//갠적으로 로저의 작곡은 끌리지 않음..뭔가 퀸 특유의 어떤 양념이 부족한 느낌이랄까..그 중 좋은건 Fun It 과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kuku님 퍼온글인가요? 아님 자작?
감사하게 잘봤습니다. ^^
1편과 2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물론 자작입니다. 많은 정보를 Sebastian 의 분석사이트에서 번역하고 정리해 왔으니 꼭 그 사이트도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