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나무위키에서 발췌)
1597년 7월 8일ㅡ 왜선 600척이 부산앞바다에 정박.
7월 14일ㅡ (권율의 명에의해 부하들앞에서 곤장을 맞은 원균)부산앞바다에 정박중인 왜선을 급습했으나 실패ㅡ 후퇴 후 거제도 영등포에 상륙ㅡ 영등포에서도 왜군 복병으로부터 급습을 당하고ㅡ(하는수없이) 칠천량 포구로 들어감.
(하루종일 ㅡ 잠은 고사하고,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쫓겨다닌 조선수군은 기진맥진.)
7월 15일 밤 ㅡ 왜군의 '수륙양면 기습작전'에 조선함대 전멸.
* 7월 15일 기사에 나오는 '수륙양면 기습작전'은 어떤 형태의 작전인가.
수군은ㅡ 대형 선단을 형성하여ㅡ 조선 수군을 압박하고...
육군은ㅡ (왜선은 선폭이 좁은 구조로 화포를 배위에 장착할수 없었음) 화포를 육지에 거치하고 ㅡ 포환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육지로 상륙하려는 조선 수군은ㅡ 당시 세계 최강이라는 소리를 듣는ㅡ 사무라이의 칼에 당했을 것이고...)
이처럼 꼬박 이틀동안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쫒겨다닌 장병들이니ㅡ 살아 남았다는게 오히려 이상한거 아닌가.
이게 원균을 위한 김자의 변론 대강이다.
첫댓글 이토록 급박한 상황에서ㅡ 왜군들에게 판옥선을 넘겨주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불을 질러서라도ㅡ 적에게 넘겨주지 않은 것이 옳은가?
님이 원균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제는 수륙합동작전을 요구한 이순신의 지략이 얼마나 대단했는지ㅡ 이해가 됩니까?
(1592년 8월ㅡ 이순신이 부산포 탈환 작전(부산포 해전)을 벌일 때 이미 왜군은 육지에다 화포를 거치하는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ㅡ 권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그걸 방해하지 못했고)ㅡ 이순신 함대는 후퇴하는 과정에서 녹도만호 정운 장군이 전사하셨습니다.
나한테 망언(亡言)을 했다는ㅡ 모지리가 아닌 분의 반박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