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 전경. [중앙포토]
롯데백화점 사내 게시판에 근속 20년 이상 직원 대상 희망퇴직 공고가 붙은지 2주 가량 지난 2일 50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9년 창사 이후 처음 실시된 희망퇴직에 당초에는 ‘신청자가 얼마나 되겠냐’던 롯데백화점 내부에서도 뚜껑을 열자 희망 퇴직 대상자(2000여 명) 4명 중 1명이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한데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롯데마트 사내 게시판에도 지난달 29일 희망퇴직 공지가 게재됐다. 지난 2월 창사 23년 만에 처음 실시한 희망퇴직으로 60여 명이 회사를 떠났지만 8개월 만에 또 다시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닥친 것이다. 특히 이번엔 희망퇴직 대상자도 10년 차 직원에서 8년 차 직원으로 확대되면서 사내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한 롯데 관계자는 “소위 잘 나가던 동료들이 많이 신청해 당혹스럽다"며 "우리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해 위로금 같은 혜택이 있을 때 일찌감치 떠나는 것 같아 심란하다”고 말했다.
‘유통 왕국’ 롯데가 흔들리고 있다.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롯데는 재계에서도 그간 ‘안정적인 고용’이 강점으로 통했다. 그만큼 사람을 쉽사리 자르지 않았다. 하지만 연초부터 이어진 희망퇴직 행렬에 놀란 임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찍고 있다. 그룹의 중추인 백화점과 마트는 물론 롯데하이마트, 롯데아사히주류 등 계열사들도 줄줄이 희망퇴직을 실시 중이거나 앞두고 있다.
부진한 롯데 주요 계열사 실적.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롯데의 잇단 구조조정 배경에는 유례없는 실적 부진이 도사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2019년 영업이익은 5190억원이었지만, 지난해 3280억원으로 줄었다. 올 상반기는 1650억원에 그쳤다. 롯데마트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지난해 190억원을 벌어 적자를 면했지만, 올해 상반기만 250억원 적자다.
유통업계에서는 롯데의 ‘오프라인→온라인’ 전환이 늦어진 탓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쿠팡이나 네이버 등이 이커머스에서 치고 나가고 신세계 등이 발빠르게 온라인으로 전환을 시도한 것과 달리 롯데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했다. 신세계는 2019년 3월 그룹 통합 온라인 몰인 SSG닷컴을 출범하고 이마트와 연계한 마케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전략을 펼쳤다. 반면 롯데마트는 지난해만 점포 12곳의 문을 닫으며 오프라인 몸집을 축소하는 데 집중했다. 롯데마트의 적자 폭이 커지는 사이 이마트 실적은 개선됐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해 2950억원, 올 상반기는 1188억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올렸다.
문제는 실적 개선을 위한 탈출구가 마땅찮다는 점이다. 롯데는 경쟁사보다 1년 늦은 지난해 4월 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롯데온을 출범하고 3조원 투자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 여기에 공을 들였던 이베이코리아(지마켓‧옥션) 인수도 신세계에게 뺏겼다. SSG닷컴은 이베이코리아 인수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네이버에 이어 점유율 2위로 올라섰다.
롯데의 통합 온라인 몰인 롯데온. [캡처]
롯데는 롯데온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온라인 체제 구축방안에 고심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롯데온과 헬스·뷰티 부문인 롭스 등이 포함된 이커머스는 지난해 106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지난해 롭스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적자 폭이 줄어든 만큼 영업 손실의 절반 이상이 롯데온에서 발생했을 것으로 본다. 올 상반기 이커머스 부문의 영업손실은 매출(560억원)보다 큰 610억원으로 적자 폭은 더 커졌다.
롯데마트는 최근 창고형 매장인 빅마켓과 와인샵의 출점을 확대하고 있다. “자산 매각보다는 활용 방안을 찾으라”는 그룹 최고위층의 지시에 따른 유휴 점포 활용 방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의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 신세계의 와인앤모어 등이 실적 반등의 주요 열쇠라고 본 것 같다”며 “온라인 전환을 위한 장기 전략을 뚝심 있게 밀고 가지 못하고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하다 배가 산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설도원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롯데의 근간은 거대한 오프라인 채널인 만큼 이커머스 업체를 무작정 좇기보다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새로운 유통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며 “온라인 쇼핑으로는 느낄 수 없는, 오프라인에서만 제공
할 수 있는 체험 중심의 재미 요소를 찾아내고 온‧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