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최전방 이영돈 PD “감춰진 것 세상에 알리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30여 년간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 싶다’ ‘먹거리 X파일’ 등 히트작 만들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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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종로에 있는 한 식당은 테이블 5개 규모의 작은 식당인데 밥솥은 서너 개가 넘는다. 더 놀라운 것은 30인분 밥솥에 밥을 지을 때 미련 없이 15인분만 앉힌다. 집에서 방금 한 듯한 맛있는 밥을 손님에게 내놓기 위해서라는데, 밥과 함께 나오는 찌개류 평균 가격이 6천 원대일 정도로 값도 싸다. 채널A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먹거리 X파일’에서 지난 2월부터 소개 중인 ‘착한 식당’ 첫 타자다. PD가 웬만한 자신감이 없다면 이처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선전(?)해주는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30여 년간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개척해온 이영돈(57·채널A 제작담당상무·사진) PD를 만났다. 마침 5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을 며칠 앞뒀기 때문인지 그는 유난히 우리 사회가 전근대적으로 유독 담배에는 관대하다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술·담배·스트레스에 관한 첨단 보고서’가 1999년 1월 다큐 6부작으로 KBS 전파를 타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간접흡연에 대한 정면 문제 제기로 금연운동에 한 획을 그었고, 그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 됐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작 과정 내내 그는 “담배 이슈야말로 내 인생을 걸고 해보고 싶은 사업”이라고 거듭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이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엔 그도 하루에 담배 2~3갑을 피우는 체인 스모커였다는 점이다. 담배 없인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중독 상태였지만, 호주에 이민 가 잠깐 살면서 1989년 금연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사주, 궁합, 관상, 굿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운명 예측 방법들을 과학의 잣대를 통해 논리적으로 검증하는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채널A) 내용을 ‘운명, 논리로 풀다’란 책으로 엮어낸 데 이어 새로 시작한 같은 프로 시즌2에서 프로포폴 주사를 맞고 간헐적 단식을 시도하는 등 여전히 현장 곳곳을 직접 몸으로 뛰어다니며 의도적으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괜히 ‘스타PD’란 말이 따라붙는 게 아니다.
▲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임원이 된 후에도 여전히 현장 곳곳을 현역으로 누빌 수 있는 것이 부럽다.
“우리 언론계도 이젠 나처럼 임원 하면서도 현장에서 뛰는 것으로 개념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현장에서 손을 놓아버리면 길어야 1년이면 감을 다 잃는다. 내 경쟁 상대는 다른 방송사의 임원이 아닌 비슷한 프로를 제작하는 PD들이란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그것도 현장감이 펄펄 살아 있는 30대 중반의 PD들로, 그 친구들의 프로를 끊임없이 본다.”
- 방송 프로그램 발전이 상당히 역동적이다.
“드라마 면에선 확실히 그렇다. 내용 면에선 큰 변화가 없지만, 컴퓨터그래픽, 촬영·편집 기술 등 세련되게 만들어내는 면에선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탐사 프로는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여기선 테크닉보다는 진정성이 훨씬 중요하고, 시청자 의식도 나날이 구체화되고 있기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면서 여기에 콘텐츠가 따라줘야 한다. 특히 소비자 관련 콘텐츠는 점점 세분화될 것이 확실하다.”
- ‘운명, 논리로 풀다’도 출간했지만, 전생 사주 등 기존 주제와 다소 다른 주제를 다뤄 이색적이다. ‘논리로 풀다’ 시즌2 첫 방송에서 직접 최면에 들어가 자신의 전생이 1930년대 미국의 여성 가수였다는 증언을 해 화제였다.
“그게 설마 내 전생이겠느냐. 기억되지 않은 현생의 어느 한 부분일 수도 있다.(웃음) 사실 종교적 영역은 과학적 입증이 어렵다. 의식·무의식적인 기억의 메커니즘을 통해 굉장히 비과학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밝혀보고 싶었다. 운명엔 누구나 다 관심이 있고, 또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그런데 이 운명을 봐주는 사람들의 어떤 거짓말도 면책 사유가 된다. 한 개인의 진로에 문제가 생겨도 그에 대한 손배소도 당연히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또 운명을 보러 가곤 한다. 나만 해도 무슨 일이 있거나 방송사를 옮길 때 철학관을 가긴 했지만(그는 KBS에서 시작해 개국한 SBS, 다시 KBS, 그리고 채널A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마음속으론 다 결정을 하고난 후였다. 그래서 이들 주제가 논리로 풀어내기에 재미있는 허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최근 연예인 성형을 통한 성형중독 현상을 다뤘다. 충격이었다.
“연예인들 중 성형 안 한 친구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에 일반인들이 얼마나 영향을 받겠는가. 성형이 너무나 가까이 있어 광기 수준인 이 성형공화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성형에 대한 겁과 거부감이 옅어져 성형 문턱이 턱없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를 이끄는 것은 소위 ‘프티 성형’이라는 보톡스, 필러 등을 이용해 5분~1시간 이내에 간편하게 시술하는 성형술이다. 이러니 큰 것에 대한 시술도 겁없이 자꾸 하게 된다. 예뻐지기 위해 순간은 힘들지만 비교적 간단한 방법에 중독돼 있는 것이다. 이승연, 장미인애, 박시연 등 문제가 된 친구들이 쁘띠 시술이나 카복시 시술(신체의 지방이 많은 부위에 약물이 아닌 액체가스를 주입, 직접적인 지방분해 효과를 주는 시술)을 받을 때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프로포폴을 맞았다고 변명하는데, 내가 실제로 프로포폴을 맞아봤더니 조금 따끔 하는 정도로 고통이 거의 없긴 했다. 혹자는 연예인들이 직업 관리 차원에서 성형수술을 수시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연예인 자신의 마음이 약해지는 게 바로 문제다. LCD TV가 등장하면서 너무 얼굴이 자세히 나오는 게 부담된다 하지만, 연예인의 자기관리가 성형을 해야만 가능한가. 자신감, 연기력, 독서 등 얼마든지 방법은 많다. 우리나라 연예계가 할리우드보다 80% 이상으로 성형을 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일리가 있다. 이 외모지상주의를 완화할 캠페인도 충분히 펼쳐볼 만하다.”
-PD 생활 30여 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역시 담배에 관한 것이다. ‘술·담배·스트레스에 관한 첨단보고서’ 방송 당시 간접흡연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 담배 회사 항의도 많이 받고 ‘KT&G가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해서 소송에 걸릴 뻔도 했다. 담배야말로 21세기 최대 아이러니이자 패러독스라고 생각한다. 발암물질이 조금만 발견돼도 난리 법석을 떠는데, 그걸 먹는다고 당장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반면 담배엔 그 몇천 몇만 배 발암물질이 들어 있고, 담배 반 개비 피우는 사람 옆에만 있어도 소변검사 하면 발암물질이 나오곤 하는데 이를 용인해주는 관행이 우습다. 담배를 ‘기호식품’으로 흔히 생각하는 것 자체도 담배회사의 기업 논리에 끌려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담배를 피우면 날씬해진다거나 사회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담배회사의 고도의 전략 때문이다. 발암물질 만 개 들은 식품을 먹는 것보다 담배 한 개비 피우는 것이 암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배금자 변호사가 10여 년간 KT&G를 상대로 담배 소송을 벌여 폐암과 흡연과의 법적 인과관계를 처음으로 이끌어냈음에도 획기적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알 수 있다. 판결도 미국의 1970년대 수준이다. 담배가 암 발병 요인임이 뚜렷한데 간접흡연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담배회사의 판촉을 허용하고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이 그렇다. 담배값에 경고의 의미로 흉측한 그림을 집어넣는 관련 법안조차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지 않은가. WHO의 권장 사항인데도 말이다.”
- ‘먹거리 X파일’을 통해 유해식품 추방 운동을 하고 있다. ‘MSG 선택제’ ‘나트륨 줄이기’에 이어 빙초산 식탁 추방 캠페인 중이다.
“가정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입맛은 꼭 3가지다. MSG, 소금, 빙초산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것은 한국인 고유의 입맛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입맛이다. 특히 빙초산은 식초가 아니라 (석유를 원료로 해 초산을 추출한) 아세트산 99%로 이루어진 화학약품이다. 이 공업용 빙초산에서 중금속만 제거한 것이 식용 빙초산인데, 한국에서는 이를 희석해 사용하면 식품첨가물로 인정된다. 미국, 유럽 등지에선 순도 20% 이상의 빙초산을 독극물로 분류, 사용량을 규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선 순도 99%의 빙초산을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고, 사용량 제한도 없다. 자연 재료로 만든 양조식초보다 가격이 절반 이하이기에 단무지, 회냉면의 회 무침 등에 애용되고 있다. 빙초산을 물에 담가도 되는 규정부터 없애야 한다. 외국인에게 양조식초와 빙초산을 넣은 음식을 먹게 하면 빙초산이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초장에 빙초산을 타야 톡 쏘는 맛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습관이다.”
-먹거리 취재를 많이 해왔는데, 가장 개선이 절실한 부분은 무엇이라 보는가.
“음식 재탕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너무나 고질적 관행이고, 더 심각한 것은 식당 주인 자신도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특유의 반찬문화 탓도 있다. 지금이 양반이 상을 물리면 그 나머지는 아래 사람들이 먹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일전 뉴욕 특파원으로 있을 때 미국 친구에게 한국 식당을 소개해줬더니 갔다 온 후 참 찜찜해했다. 반찬이 너무 많이 나와 그 가격에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해결책은 밑반찬은 가격제로 해서 따로 받는 것이다. 가령 갈비탕 값이 6000원이라면 갈비탕 원가 3000원에 그 나머지는 반찬값이란 얘기인데, 이를 분리시키면 음식 원가도 낮출 수 있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점 주인들이 ‘재탕은 비양심적 행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다.”
-탐사보도의 원칙이 있다면.
“철저히 팩트(fact)를 찾아내고 (TV엔 영상이 개입되기에) 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것이다. 영상 효과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하느냐, 이 지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소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팩트를 잘 찾아내고도 스토리텔링을 잘 못해서 실패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후자의 경우 허위 보도로 가는 것이다.”
그는 2003년 ‘추적 60분’을 통해 이단인 영생교의 실체를 파헤치면서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영생교도들이 KBS 본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은 물론, 신도 40여 명이 그를 비롯해 담당 판사, 검사에게 살해 위협을 가해 몇 달간 가족과 함께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이때를 회상하며 그는 “이젠 스트레스가 아예 체질화돼 있는 것 같다”며 “사람 사는 게 늘 피곤하기 마련”이라고 웃었다. 스스로 “호기심 천국”이라며 “진짜 하고 싶은 프로 중 하나가 ‘개그콘서트’(개콘)”라고도 말했다. 실력만 있으면 상대방 포맷에 익숙해지는 순간 장르를 불문하고 다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열정과 창의성은 모든 것에 통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개콘’도 ‘먹거리 X파일’도 이런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스토리텔링은 맥락이 없게 보이던 것들을 맥락에 맞게 연결해 주는 것으로, 테크닉을 넘어서 이를 포장하는 능력이다. 때문에 스토리텔링 능력이야말로 성공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2013 여성신문의 약속 - 여성이 힘이다
http://www.womennews.co.kr/news/58353#.UfsZqDKwe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