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박제가 선생의 생애를 자세히 연구한 적은 없으나
기본적으로 북학파 실학자로서 '북학의'를 후세에 남겼다는
것이다.
덧붙이면 초정 선생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에 비해 신분상의
한계로 인해 다양한 관직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정 선생이 1850년생이니 사암 선생보다 12세 연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사암 선생과 초정 선생이 교류하였다는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암 선생의 문집인 '여유당전서'에서 발견하였는데,
비록 2편에 불과하나 두분간에 교류한 서찰이 발견된 것이다.
덧붙이면 한편은 사암 선생이 초정 선생에게 답장을 보낸 것이고,
다른 한편은 사암 선생이 초정 선생에게 서찰을 보낸 것이다.
사실 이 서찰만으로 당시 두분의 친분 관계를 자세히 알기 어려우나
그래도 서찰을 통해 두분이 교류하였다는 흔적을 발견하였다는
점이다.
필자가 여유당전서를 조사한 이유는 사암 선생과 우초 선조의 교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였는데, 전혀 생각치도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을
보람있게 생각한다.
필자는 이번의 발견을 하나의 신호탄으로 우초 선조를 포함하여 사암
선생이 교류하였던 인물들을 추적할 생각이다.
2025년 10월 15일(수)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