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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창조하며 진화한다
우리는 바야흐로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곧 AI가 인간의 지능을 앞지를 날이 코앞이라 하고, 이에 걸맞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곧 어렵고 힘든 일들은 로봇이 해결하고, 인간은 편안한 생활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새로운 세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공장 노동의 기계화가 가속화되고, 사무직 업무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체하면서, 오히려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부작용 역시 드러나고 있다. 자본과 효율 우선의 시대, 심지어 AI는 인간만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예술 활동마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침범하는 중이다.
점점 더 빠르게 변해가는 인공 환경 속에서, 인류는 다시금 거대한 변화의 초입에 서 있다. 구석기시대를 벗어나 문명이 시작된 지 고작 1만 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인간은 어떻게 다른 동물들과 달리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존재론적 위기에 처한 인류는 또 어떻게 변해갈까?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에드윈 게일의 『창조적 유전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변한 인간의 몸과 마음을 그간의 역사에 비추어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그 변화의 양상과 과정 그리고 전망까지 깊이 탐구한 독창적인 저서다. 저자가 생각할 때 인간이라는 종의 가장 특이한 점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연선택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인류는 식량 부족을 해결했고, 감염병을 돌파해왔으며, 정신적으로도 성장했다. 『창조적 유전자』는 변해왔고 또 변해가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유전자의 “표현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깊이 있게 통찰하면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미래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요,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라고 말했다. 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 때론 순응하고 때론 이용하며 문명을 개척해온 인간 역사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 저자 소개
에든윈 게일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의학으로 전공을 바꿔 케임브리지, 노팅엄, 코펜하겐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으며 런던 세인트바설러뮤 병원에서 교수를 지냈다. 1997년 연구진과 함께 브리스틀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으며 2011년 은퇴했다. 현대사회에서 당뇨병이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연구하던 중 우리의 몸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 유전자의 표현형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창조적 유전자』는 자연선택에서 해방되어 풍요를 맞이한 인류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관해 흥미롭게 풀어낸 그의 첫 책이다. 인류는 식량 부족을 해결했고, 감염병을 돌파해왔으며, 정신적으로도 성장했다. 이 책은 변해가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깊이 있게 통찰하면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 목차
서문
머리말
1부 대탈주
1 프로메테우스적 순간
2 샤를마뉴의 코끼리
3 토끼섬으로 가는 길
4 세계를 먹여 살린 발명
2부 가소성
5 인간 가소성의 발견
6 자궁
7 출생 이전의 삶
8 키가 커지다
9 스포츠 기록
10 설계자 표현형
11 뚱보 세상
3부 삶의 여정
12 다중우주, 제2의 보금자리
13 감염병의 퇴조
14 최종 한계선
15 죽어가는 짐승에 옭매여
4부 마음의 변화
16 인간의 친절함이라는 젖
17 옛 마음을 이해하는 새 마음
5부 함께 살아가기
18 인류 길들이기
19 표현형의 변화, 사회의 변화
후기
감사의 글
삽화 설명
주
참고 문헌
📖 책 속으로
유전자는 우리를 빚어내지만 불변의 청사진에 대고 찍어내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단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장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쪽에 가깝다.
--- p.25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였으며 승자는 도시에서 살았다. 도시 주민과 그들을 먹여살리는 농민은 5000년 전 세계 인구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역사에 남지 않았다.
--- p.46
성장 가속화, 조기 성 성숙, 신체 크기 증가, 수명 증가의 뚜렷한 증거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는 1870년경이었다. 그 기초는 여성의 몸이었다.
--- p.121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스물두 개의 메달을 획득한 마이클 펠프스를 우사인 볼트 옆에 세우면 두 사람의 키와 BMI가 거의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달리기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다리이고 수영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몸통과 팔이다. 펠프스의 팔은 노와 같다. 양팔 벌린 길이가 208센티미터이고(일반인의 양팔 길이는 자신의 키와 같다), 발 길이는 355밀리미터로 오리발 수준이며, 몸통이 길어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 p.119
바비의 성공에는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다. 그녀는 성장기 소녀들에게 중요한 무언가를―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우락부락한 슈퍼 히어로들이 결코 달성하지 못하는 방식으로―포착한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녀의 몸가짐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바비 인형은 평온하고 침착하고 미소 짓고 자율적이고 자제력이 있고 (성인인데도) 거의 무성적인 존재다. 켄은 일종의 액세서리이며, 좀처럼 진열장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 p.203
비만은 표현형이며 이 표현형은 우리 생활 양식의 직접적 결과다. 우리가 기르는 개와 고양이조차 비만에 시달린다. 나날이 증가하는 소비로 인해 나날이 증가하는 생산은 도무지 합리적이거나 달성 가능한 목표가 아닌데도 우리는 많게든 적게든 모두 이 사태에 동참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슈퍼마켓에 가서 포장 식품을 차에 한가득 실을 때마다 메시지가 강화된다. 질병은 치료할 수 있지만 표현형은 치료할 수 없다.
--- p.245
우리는 세포가 만들어낸 산물이지만 세포 또한 우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생명은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하며 그 세포가 200여 가지 전문화된 변이형으로 분화한다. 이 딸세포들은 환경의 단서에 반응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라고 죽는다.
--- p.315
두 세기 전 사람들은 계절의 태곳적 장단에 맞춰 살았다. 햇빛이 노동 시간을 규정하고 계절이 활동을 규정했으며 화폐 교환은 일주일의 활동에서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사소한 부분을 차지했다.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15킬로미터 이내에 살았으며 묘비 없는 무덤에 매장되어 망각되었다.
--- p.420
풍부한 문학적 유산 덕에 우리는 트로이 벌판에서 무거운 청동 창을 던지는 것이나 제인 오스틴의 응접실에 앉아 멋진 신랑감을 꿈꾸는 것이 어떤 경험이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조상들의 삶을 엿볼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매우 낯설어 보일 것이다.
--- p.432
🖋 출판사 서평
표현형이란 무엇인가
“표현형”이라는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역작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 널리 알려진 단어지만, 그럼에도 대중들에게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우리 몸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유전자는 집단이 되어 유전형genotype을 형성하는데, 특정 환경에서 유전형이 표현되는 각각의 형태를 표현형phenotype이라고 한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한 덴마크의 식물학자 빌헬름 요한센은 이를 “유기체에서 관찰할 수 있거나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표현형은 당신이 방금 만난 사람의 모든 특징이다. 그리고 우리의 유전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눈동자의 색과 같은 표현형의 일부 요소들은 고정되어 있지만, 키나 몸무게 같은 표현형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의 매력, 성격, 지성과 특징도 환경의 체에 걸러지고 인생 역정의 손에 빚어진 유전자의 표현이다. 춤추는 무용수가 음악과 하나 되듯, 유전자와 환경도 하나로 어우러진다. 이 둘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헛수고다. 이 상호작용의 생물학적 원리는 복잡하고 논쟁적이고 여전히 수수께끼다.
에드윈 게일은 당뇨병 연구의 권위자로서, 현대 사회에서 왜 당뇨병이 이토록 빨리 증가하는지 의아해하다가 인간 유전자의 복잡한 표현형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당뇨병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몸이 우리의 조상들과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유전자 가소성이 인간이라는 종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신체적 · 정신적 변화에 깃든 표현형의 역사
에드윈 게일이 주목한 것은 우리의 변화 가능성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생물이기 때문에, 그 변화의 폭이 단순히 크키나 색깔이 달라지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적 변화와 함께 정신적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한데, 당연하게도 뇌는 인체 장기 중에서 가소성이 가장 크다. 면역계도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지만 생각은 오직 뇌만이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학습 프로그램을 그저 업로드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며, 학습한 기술을 자동화될 때까지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인류의 무한한 가능성이 멀리 뻗어나간다.
그러나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변화는 기상천외하고 허황된 청사진이 아니다. 우선 에드윈 게일은 인류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우리가 변해온 과정과 이유들을 차분히 설명한다. 그리고 경작을 시작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굶주림을 극복하고, 병을 이겨내고, 인구를 늘리고, 수명을 늘리고, 교육 수준을 높이는 기본적 변화들이 사실은 유전자 표현형과 떼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곡물을 먹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기아에서 벗어났다. 곡물로부터 구조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소화를 돕는 장내 유산균들과 공존하면서 마침내 자연선택을 벗어났다. 음식물을 익혀 먹게 되면서 위턱이 뒤로 물러났으며 아래턱은 작아지고 돌출했다. 얼굴이 납작해진 덕에 얼굴 근육으로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언어와 노래가 탄생했다. 사교술이 번식 성공의 관건이 되어 이른바 사회적 뇌의 진화를 이끌었다. 우리가 초대형 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음식을 익혀 먹은 덕분이다.
시간이 흘러, 20세기에 일어난 농업 혁명으로 인해 더이상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공기 중의 질소를 비료로 전환하는 기술이 단연 으뜸이었다. 우리에게 배고픔을 잊게 해준 교잡종 작물은 질산염으로 재배되었으며 살충제를 비롯한 화학 기술 덕분에 수확량이 늘었다.
이렇게 다가온 풍요의 시대는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선 아동의 사망이 줄었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다섯 낳아서 둘을 보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나, 산모의 건강 상태가 좋아지자 태아도 커지고 건강해졌다. 태어난 아이의 영양 상태에 따라 신장과 몸무게가 증가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신장 차이는 같은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다.
표현형의 변화와 함께 문명이 발전해온 과정에서 일어난 환경의 변화는 다시 인간의 모습에 영향을 미친다. 스포츠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약물로 근육을 키우기도 하고, 바비 인형의 미적 기준에 맞춰 여성의 신체가 통제되기도 한다. 이러한 ‘설계자 표현형’에 따라 현재 많은 최상급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이용해 표현형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며, 여성들의 체중 감량에 쓰이는 약물의 역사 역시 유서 깊은 재앙에 가깝다. 이는 정신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IQ 테스트에 따라 아동을 분류하고 시험 성적에 따라 선별된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영양 과다에 따른 비만은 이제 세계에 널리 퍼진 대표적인 ‘소비자 표현형’이다. 비만 유행은 여러 달갑잖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게 오래 산다. 만성적 영양 과잉은 새로운 규범이 되었으며 우리는 여기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자연선택에서 해방된 인류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변화가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처럼, 미래에 관해 전망하는 사람들은 쉽게 부정적인 시각을 내놓기 마련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 붕괴가 그중 하나이며, 오염의 누적에 따른 환경 위기 가능성도 크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무한한 경제 성장의 전망을 제시하며 유전공학과 전자 뇌 이식의 미래를 그린다. 에드윈 게일은 이에 대해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살고 싶어하지 않을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생각할 때 인류의 긍정적인 변화의 방향은 성장, 교육, 기회가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목표가 실패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약물이나 기술을 동원한 표현형 개조에만 지나치게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다른 미래 과학 서적들과 사뭇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은 자연선택이 결코 대비할 수 없었던 삶에 우리가 놀랍도록 훌륭히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며, 어려운 일이지만 앞으로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뻔한 디스토피아도, 화려한 장밋빛 미래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나름의 문화를 지닌 인공적 존재이며 우리가 만든 세상에 적응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받아들이려고 분투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연적’ 존재 방식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과거의 성과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미래로 나아갈 것이며 그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예측을 비켜 갈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라졌고 여전히 달라지고 있으며 이것이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중요한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창조적 유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시대에 인류가 나아갈 길을 비춰줄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