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450) – 만주바람꽃 외(천마산, 팔현계곡)(3)
1. 만주바람꽃
▶ 산행일시 : 2024년 4월 5일(금), 맑음
▶ 산행코스 : 오남호수공원,팔현계곡,돌핀샘,호평동
▶ 산행거리 : 도상 10km
▶ 산행시간 : 5시간 43분(11 : 40 ~ 17 : 23)
천마산을 다시 갔다. 지난 3월 19일에는 야생화가 피기에는 시기가 너무 일렀고, 고개 내민 너도바람꽃과 만주바람
꽃은 비가 오락가락하여 잔뜩 움츠러들었다. 적잖이 실망스런 하루였다.
그런데 오늘은 화창한 날씨에 만화방창이었다. 너도바람꽃은 가고 없지만 큰괭이밥,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얼레지, 노루귀 등이 만발하였다. 그들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덩달아 춤을 추고 있었다.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샘터, 2007)에서 시문 몇 개를 골라 함께 올린다.
그러므로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삶은 찬란한 삶이 아니라 중심 있는 삶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도 나처럼 상처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날이나, 이제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삶이라고
생각되는 날은 중국 시인 아이칭(芥靑)의 <외침>이란 시를 읽어 보자.
밤새 소리에
태양은 횃불 눈을 뜨고
밤새 소리에
바람은 부드러운 팔을 뻗어
밤새 소리에 도시는 깨어난다… 이것은 봄
이것은 봄의 아침
나는 어두운 곳에서
그 하얗게 밝은 우주를 슬프게 바라본다
그곳에
생명은 돌고 있고
그곳에
시간은 치달리는 바퀴처럼
그곳에
빛은 훨훨 날아… 나는 어두운 곳에서
하얗게 밝은
파도처럼 도약하는 우주를
구슬프게 바라본다
그것은 생활의 절규하는 바다
꿩의바람꽃
내 목소리는
안나 아흐마토바
내 목소리는 가냘프지만
의지는 약하지 않네
사랑이 없으니 내 마음 오히려 가벼워졌네
하늘은 드높고
산바람 불어오니
티 하나 없는 나의 생각들
불면증을 돌보던 간병인도 다른 이에게 가버렸고
나 이제 회색빛 재를 갈망하지 않으니
시계탑 문자판의 휘어진 바늘이
죽음의 화살로 보이지도 않네
과거는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네
자유는 눈앞에 와 있으니
나는 모든 것 허락하네
햇살이 촉촉한 봄의 담쟁이덩굴을 따라
뛰어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전원
박인환
풍토의 냄새를
산마루에서 지킨다
내 가슴보다도
더욱 쓰라린
늙은 농촌의 황혼
언제부터 시작되고
언제 그치는
나의 슬픔인가
지금 쳐다보기도 싫은
기울어져 가는
만하
전선 위에서
제비들은 바람처럼
나에게 작별한다
큰괭이밥
마음의 소리
에리히 케스트너
좀 더 큰 소리로 말해요
마음의 목소리는 왜 그렇게 작을까요
마음은 그저 소근거릴 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어요
마음이 천진한 아가들은
바라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말로 하지 않아요
아가들은 바라고 있는 멋진 것을
마음에 품고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대지요
마음을 만든 신은
목소리를 만들기를 잊었나 봐요。
‘요람과 무덤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는 단 한 줄의 <숙명>이란 시와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다’는 단 한 줄의
<틀림없는 교훈>이란 처방시로 유명해진 케스트너는 정신과 의사이며, 시인이다.
노루귀
소원
이용악
나라여 어서 서라
우리 큰놈이 늘 보고픈 아저씨
柳呈이도 나와서
토장국 마시게
나라여 어서 서라
꿈치가 드러난 채
휘정휘정 다니다가도
밤마다 잠자리발
가없는 가난한 시인 山雲이 맘놓고 좋은 글 쓸 수 있게
나라여 어서 서라
그리운 이들 너무 많구나
옥이랑 껴안고
한번이나 울어도 보게
좋은 나라여 어서 서라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 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굿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잠'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