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매거진 2005년 10월호에 실린 카푸(브라질 & AC 밀란) 선수 인터뷰입니다. ------------------------------------------------------------------- 헌신적이고 겸손한 브라질 수비수 카푸는 월드컵 결승전 그라운드를 세 번 밟은 세계유일의 사나이다. 내년 6월 만 36세 생일을 맞을 카푸는 그 직후인 7월 9일, 독일 베를린에서 브라질을 이끌고 네 번째로 월드컵 무대를 누비길 꿈꾸고 있다.
브라질 축구의 끊임없는 활력이 기계적인 현대 축구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해소해왔다면 지난 15년간 그 가운데서 브라질 축구의 재미를 온 몸으로 구체화시킨 축구 선수가 있다. 바로 카푸다. 내년 6월이면 만 36세가 되는 수비수 카푸는 여전히 매 경기 운동장에 나선다. 월드컵 결승전이건, 팀의 연습이건 단지 축구장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하다는 웃음을 머금고 말이다. 2002년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2002 한일월드컵 결승전을 승리로 장식한 후 카푸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며 보인 어린 아이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이 축구의 아이콘과도 같은 이미지가 된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브라질은 일군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2006 독일월드컵을 준비하고 있고, 브라질의 화려한 면모는 많은 이들이 브라질의 6번째 월드컵 우승가능성을 점치게 만들고 있다. 호나우디뉴,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호비뉴, 카카의 스트라이커 라인업은 펠레, 자일지뉴, 토스타우, 게르손, 히베리뉴 등이 주축이 된 1970년 월드컵 우승 멤버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브라질 팀에 대한 전망의 초점은 항상 공격 라인의 새로운 세대에게 집중되어 왔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심지어 위대한 펠레조차도 카푸가 세운 업적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카푸는 A대표 출전횟수 139회로 펠레의 92회를 훨씬 앞서며, 세 번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활약해 두 번 월드컵 결승전 무대를 밟은 펠레보다 한 번 더 월드컵 결승전에 나섰다(펠레는 비록 월드컵에 세 번 참가했지만 1962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에서는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월드컵 결승전에 세 번씩이나 참가한 유일무이한 축구선수인 카푸는 내년 7월 브라질을 이끌고 네 번째로 월드컵 무대를 노크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AC밀란의 챔스 우승 후 디다와 기쁨을 나누는 카푸 ⓒFIFA매거진
다른 이들의 불운이 가져온 행운
카푸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마르코스 에반젤리스타 데 모라에스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브라질의 주장 카를로스 알베르투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우승해 줄리메 컵을 높이 치켜든 지 딱 14일 전이다. 6살 무렵, 축구 실력을 알리기 시작한 마르코스는 주니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이타콰퀘세투바FC에서 뛰던 마르코스가 카푸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팀 동료들이 그를 1970년대 플루미넨세와 아틀레티코 미네아루에서 활약했던 오른쪽 공격수 카푸링가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여기면서 부터였다. 카푸링가는 부르기 쉽게 바로 카푸로 줄어들었고 그 때부터 마르코스는 쭉 카푸로 불려졌다.
18세이던 1988년 카푸는 상파울루 유소년팀으로 드래프트됐고, 2년 후 1군으로 올라선 이후 상파울루가 1992년과 199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남미 클럽축구대항전) 정상에 오르는 데 일조한다. 이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사라고사에서 한 시즌을 보낸 카푸는 팀을 유러피안 위너스 컵 결승에 올려놓았고, 그 직후 다시 브라질 팔메이라스 팀으로 돌아가 2년을 보낸다. 1997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S로마로 둥지를 옮긴 카푸는 파비오 코펠로 감독이 2001년 이탈리아 챔피언십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으로 활약하며 명성을 이어간다.
카푸의 국가대표팀에서의 경력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믿을 수 없게도 가끔 브라질 서포터들은 그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카푸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선수들의 불운에서부터였다. 카푸는 1994년 월드컵 결승에서 조르디뉴가 경기시작 20분만에 부상으로 실려나가며 그라운드를 밟게 되기 전까진 본선에서 교체 멤버로서 짧게 두 번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카푸는 또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주장이던 에메르손이 연습중 어깨 골절로 결장하게 되자 처음으로 주장완장을 차게 된다.
에메르손을 대신할 주장으로 카푸가 선정된 것은 그 때까지도 카푸의 성실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던 몇몇의 브라질 언론을 놀라게 만들었다. 브라질 언론은 2000년 파라과이와의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팀이 1-2로 패한 직후 팀을 이탈한 것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 비록 카푸가 당시 감독이었던 룩셈부르고 감독의 허락으로 팀을 떠났다고 해명했지만 브라질 언론은 그에 대해 믿음을 보이지 않았다. 또 카푸의 주장 선발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이끌었던 스콜라리 감독조차 결승전을 한 참 남겨두었을 때 카푸의 수비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했던터라 더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특별한 재능을 갖춘 선수
하지만 2002 한일월드컵 결승전 하루 전 날 스콜라리 감독이 새 주장에 대해 발표하며 카푸에게 보낸 찬사는 대단했다. “카푸는 특별한 선수다. 모두에게 침착함을 전달한다. 헌신과 겸손함을 갖춘 그는 그라운드에서의 내 명령의 조달자다”. 혹시 남아있을 카푸의 성실성에 대한 주위의 의심을 의식하듯 스콜라리 감독은 당시 이렇게 덧붙였다. “만일 브라질 팀을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고 희생할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카푸다. 브라질이 월드컵을 우승하든 못 하든 카푸는 이미 챔피언이다”라고.
스콜라리 감독은 또한 카푸의 수비 능력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는데도 재빨랐다. 스콜라리 감독은 “카푸는 AS로마에서 활약할 당시보다 브라질 팀을 위해 뛰는 현재 수비의 대인방어에 있어 훨씬 신중하다. 지난 세 경기동안 카푸에게 대인방어에 좀 더 집중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3년 AS로마와의 계약이 불발로 끝난 후 카푸는 어찌보면 축구인생의 내리막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본 J리그의 요코하마 마리노스행을 택한다. 그러나 구름도 잠시, 이탈리아의 AC밀란이 카푸에게 손짓한다. 카푸와의 계약은 AC밀란이 유벤투스를 꺾고 2003 UEFA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직후라 다소 예상 밖이었다. AC밀란은 이미 최고의 팀이었으며, 만일 보강이 필요하다면 셰브첸코와 함께 공격을 이끌 공격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 그러나 점차적으로 4-3-1-2 시스템을 개발해온 안첼로티 AC밀란 감독은 공격진을 지원할 빠른 풀백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카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브라질 주장 완장을 찬 카푸 ⓒFIFA매거진
일 펜돌리노 : 시계추와 같은 카푸
AS로마의 팬들은 카푸에게 이탈리아를 관통하는 기차인 ‘일 펜돌리노’(Il Pendolino)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이름은 단순히 빠르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펜듈럼(pendulum)을 뜻하는 펜돌로(pendolo)에서 유래된 단어 뜻 그대로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그라운드를 질주할 수 있는 카푸의 수비 능력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카푸가 시계추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2004년 9월 볼로냐와의 원정경기 승리 후 <라 리퍼블리카>지에 실린 관전평은 카푸가 AC밀란 유니폼을 입은 이후 의심을 물리치고 갈채를 받고 있음을 여지없이 나타냈다. “34세인 카푸의 플레이는 빈 틈이 없다. 오른쪽 측면을 진두지휘하며 적어도 10번 이상은 그라운드 끝에서 끝을 내달린다. 한번은 유래없는 파워로 슛을 날려 크로스바를 거의 두 동강낼 뻔 했던 적도 있다”며 카푸를 높이 평가했다.
카푸는 “성실한 노력과 프로정신”을 장수비결로 꼽았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장수비결은 오늘날의 카푸를 있게 한 선수로서의 재능 및 인간적 자질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른 많은 브라질 출신 축구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카푸 역시 천성적으로 겸손하다. 상파울루의 가난한 지역인 자르딤 이레네에서 여섯 아이 중의 하나로 자란 카푸는 이웃에 있는 친척과 친구들을 잊지 않고 있다. 카푸는 종종 이들을 방문하며 카푸 재단을 설립해 브라질의 가난한 아이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웃음 띤 채 마감하길
아무도 영원히 선수로 남지는 못한다. 지난 시즌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보인 AC밀란의 실망적인 시즌 종료(준결승에서 세 골씩이나 PSV에인트호벤에 내 주고, 결승에서는 리버풀에게 세 골을 더 헌납한)후 카푸는 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예전과 같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특히 올해 독일에서 열린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맹활약한 브라질 상파울루클럽의 오른쪽 수비수 치치뉴의 급부상과 동시에 카푸가 왕년의 기량으로 선수 활동을 계속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
카푸는 25살의 치치뉴에 대해 “유럽 빅클럽 입성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며 칭찬했지만 치치뉴 영입에 관심을 보였던 AC밀란 대신 레알 마드리드가 치치뉴를 영입하는데 성공한 이후 안도의 한 숨을 내쉬어야했음은 분명하다. 한편 치치뉴는 카푸를 그의 우상이라 밝히며 “카푸의 계승자로 일컬어지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라 표현하고 있다.
카를로 안첼로티 AC밀란 감독은 (치치뉴의 레알 마드리드행으로) 팀에 두 명의 라이트 백을 두는 문제를 비껴갈 수 있었지만 파레이라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그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파레이라 감독은 내년 독일월드컵에서 누구를 주전으로 기용할지 결정하기까지 채 1년의 시간도 남겨놓지 못하고 있다. 축구에서 인정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따라서 2006 독일월드컵에서 브라질 팀 오른쪽 사이드의 주전 자리를 차지할 인물은 카푸가 아닌 치치뉴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축구 애호가들은 카푸가 4회 연속 월드컵 결승전에 나서서 세계 최고의 팀을 이끌고 우승을 일궈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의 축구 인생이 웃음과 함께 마감되길 말이다.
FIFA 월드컵 우승 2회(1994, 2002), 코파 아메리카 우승 2회(1997, 1999)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우승(1997), 브라질 리그 우승(1991) 코파 리베르타도레컵 우승 2회(1992, 1993), 도요타 컵 우승 2회(1992, 1993) 유러피안 컵 위너스 컵 우승(1995), 이탈리아 리그 우승 2회(2001, 2004) 유러피안 슈퍼컵 우승(2003),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2004) 올해의 남미 선수상(1994), 국제대회 139회 출전(5득점)
첫댓글 언제나 한결같은 플레이어란 말이 맞는 플레이어가 아닐까요?...물론 동영상으로 가끔 떠오르는 네드베드에게 농락당하는 그 동영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네드베드에게 농락당한" 이 아니라 "네드베드를 농락한" 이에요.
솔직히 네드베드는 공격수라서 농락당해도 별 상관없는듯............. 테리옹이나 네스타형님을 농락시킴 재밌을듯
생각해보니 카푸 기록도 정말 기억에 남는 기록........결승전을 3번 연속 해보다니........
브라질..역대 최고의 윙백으로 기록 될 전설이 이미 되어 버린 사나이......^^
카푸 36살까지 뛰네 ㅋㅋ 오~ 카푸는 진짜 나이에 비해서 너무잘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