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도, “주는 만큼 받아낸다”… 무역협상서 ‘퀴드 프로 쿼’ 전략 뚜렷해져(존 리드 FT 남아시아지국장)
O 최근 무역협상에서 인도의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 전략이 뚜렷해지고 있음. 즉, 세계 5대 경제국인 인도 시장에 대한 보다 자유로운 접근을 원하는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것임.
- 비근한 예로, 지난주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 4개국 경제 블록인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이 협상 개시 16년 만에 인도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함으로써 인도의 높디높은 관세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했음. 이와 별도로 인도 정부가 고가 수입 전기차 일부에 대한 수입 관세를 인하하는 계획을 승인함에 따라 테슬라의 인도 시장 접근이 한층 수월해지게 되었음.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 인도에 대한 투자 약속 혹은 투자 가능성이라는 응분의 대가가 뒤따랐음. EFTA는 향후 15년에 걸쳐 인도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일자리 100만 개를 창출하기로 약속했음. 테슬라의 경우에는 고가 전기차 수입 관세 인하의 대가로 인도에 저가 소형 전기차 공장 신설 투자를 단행할 방침임. 인도 당국자에 따르면 이번 고가 전기차 수입 관세 인하 조치는 3년 이내에 대인도 투자를 시행하는 모든 자동차업체에 적용되지만, 계획 수립 단계부터 특별히 테슬라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음.
- 인도의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 1947년 독립 이후 지금까지 인도는 집권 정부 기조에 상관없이 국내 민감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했음. 허나, 친무역 경제학자들은 산업을 선별해 관세장벽으로 보호해주는 이러한 관행이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 있음.
- 사실 현 모디 정부는 최근 UAE, 호주 등과 무역협정에 서명하는 등, 집권 10년 간 여러 건의 무역협정을 체결했으나, 지난 2019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가입을 거부했음. 협정 가입 시 자국 생산업체들이 더욱 취약해지고, 대중국 등 대외 무역적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음. 과도한 무역자유화는 모디 정부의 자국 제조업 육성 정책(Make in India)을 저해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던 것임.
- 영국 및 EU와의 FTA 협상은 앞서 언급한 다른 양자 FTA 대비 훨씬 더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 이들 국가는 경제 규모가 크고 협상력이 강한 만큼 협정 체결 시 인도 국내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클 것임. 최근 영국과 14차 FTA 협상을 진행한 인도는 섬유, 자동차 등 자국 상품의 영국 시장 접근 확대와 자국 IT 인력이 영국 내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요구했고, 해당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협정이 타결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최소한 오는 6월 4일 인도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더 이상 협상 진전이 불가능한 상황임.
- 인도는 또한, 영국, EFTA 및 여타 무역협정 협상국들에게 자국이 상대국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상대국이 얻어가는 파이(pie)도 커질 것이기 때문에, 관세 인하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왔음. 최근 체결된 인도-EFTA 협정에서도 이 내용이 반영되어 EFTA 국가들이 인도보다 훨씬 더 큰 폭의 관세 인하를 단행하기로 합의했음.
- 피유시 고얄 인도 상무장관이 지난 2022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구상에 인도 만한 국가는 없다는 사실을 온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모디 정부는 나라든 기업이든 인도 시장에 접근을 원한다면 기꺼이 응분의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음.
출처: 파이낸셜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