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자녀성장 지원 프로그램에 같이 갔으면 하는 눈치다.
난 지난번 광양 만남에서 작별인사?를 했기에 또 가는 건 오버라고 생각한다.
월파사업회 답사날인데 가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이제는 얼굴 아는 이들만이 아니라
새로이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나 관광객이 대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산이다.
바보가 오후 4시쯤 온다했으니 여유가 있어 조계산에 가자 한다.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고 조금 발품을 팔면 송광사와 선암사의 사찰 유적도 맘대로 둘러볼 수가 있다.
안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옛매표소를 지나 청풍각에 닿으니 11시가 다 되어간다.
불일암 무소유길이 좋고 법정스님의 의자와 자정국사탑도 보고 싶지만 점심길이 빠듯하여 바로 송광사로 오른다.
불일암가는 탑전 앞을 지나 건너편 비림 앞 개울의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말나리인지가 몇 개 고개를 쳐들고 물 위를 내려다 보고 있어 내려가 그들을 찍어본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피하며 돌 위를 뛴다.
다시 쇠난간을 딛고 올라와 조계문을 찍고 우화교를 지나친다.
산 앞에 서면 항상 설레지만 항상 숨이 가뿌다.
난 산 앞에서는 항상 신입생이다.
달밝은 밤에 스님들이 올라와 씻었을 법한 ‘출입금지’의 폭포는 지나친다.
하늘은 잔뜩 흐려 후텁지근하여 금방 땀이 난다.
오기로 개울을 건너면서도 쉬지 않는다.
위에서 한 떼의 산악회 회원들이 씩씩하게 내려온다.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송광사를 지난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굴목재에 닿는다.
하얀 머리의 남자가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의 인사를 받는다.
작은 나리를 다가가서 찍고 바로 내려간다.
배도사 대피소를 지나 보리밥집이 가까워지느 곳에서 또 한 떼의 산객들을 만난다.
퇴색한 산행깃발이 단성이라고 보인다.
나이 지긋한 남녀 어른들이 정겹게 보여 지리산 아래 단성이라고 하니 그렇단다.
단성 시천에서 지리산을 오른 때가 꽤 되었다.
12시 반이 지나 빨간 접시꽃이 반겨주는 보리밥집에 도착한다.
최씨 어른의 손자들이 왔는지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쫒아다니고,
부엌 안에 작은 딸인 듯한 이가 계산을 해 주고 덩치 큰 사위도 서빙을 한다.
신발을 바뀌신고 물에 씻고 온다.
사람은 많은데 금방 벨이 떤다.
건물쪽으로 등을 구부리고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월파 회고록을 읽는다.
초등학생들이 읽을 수 있게 다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염두에 두며 장면을 박스에 넣어본다.
재주없는 내가 쓰는 것보다 전문 동화작가에게 써 달라고 하면 좋겠지만 돈이 개입되어야 하는 일이 부담스럽다. 월파 고향 주변의 아이들에게만이라도 월파를 알게 하는 일이 내가 속한 사업회의 일이기도 하다. 교대 다니면서 인연맺은 몇 사람의 동화작가를 떠올려 보지만 나서기가 쉽지 않다.
밥을 먹고 잠깐 눕는다. 화장실 가는 이들의 소리가 거슬린다. 잠들지 못하고 일어난다.
본채 마루 위에 손녀와 손자가 예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쟁반을 갖다주며 말을 걸어본다.
장성중앙초 2학년 2반이라는 최남준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있고, 여동생은 말을 걸지 못했다.
젊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나오더니 선생이냐고 하기에 예전에 했다고 한다.
산 속 할아버지 집에 와서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 이쁘다.
오늘은 선암사까지 가보자고 2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다.
큰굴목재에 서니 2시를 지난다.
가파른 호랑이턱골바위를 지나 편백숲의 원추리꽃밭을 지난다.
삼인당 앞의 전나무를 찍으니 2시 40분이다. 빨리 걸어왔다.
선암사 대웅전은 사방으로 철비계가 감싸고 있다.
안내판에 벽화 조사 중이라 써 있다.
공포 사이의 퇴색한 단청을 찍어본다. 팔상전과 불조전 사이 조사당 안의 초상들을 찍어본다.
달마 양쪽으로 혜능과 임제가 앉아 있다. 오른벽에는 석옥정공과 양기방회선사가,
왼쪽벽엔 태고보우화상과 침굉당의 진영이 걸려 있다.
원통전 건물은 바깥만 보고
그 옆에 오랜 듯 소박한 첨성각 작은 살림집 같은 기와집 댓돌 위에 놓인 털신발을 보고 장경각으로 간다.
경판은 쇠문에 싸여 있고 송태회의 큰 현판 글씨만 본다.
근원 구철우의 삼성각 글씨는 소나무 뒤로 숨어 보이지 않는다.
적묵당은 공양간인 모양이다. 마애불을 지나 대각암에 들를까를 고민하다가 지나친다.
대선루 안에 파란 옷을 입은 남자가 앞산을 보고 있다.
선암사에서 30분을 보내고 비로암 길을 잡는다.
장군봉 가본 지도 꽤 되었지만, 흐린 날일지라도 물에 들어가려면 작은 굴목재 넘어 연산봉 가는 길에 계곡을 만나는 것이 좋다.
30여분 능선을 옆으로 가르다가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비로암 앞에 닿는다.
물을 받는 그릇들이 보인다. 비로암은 들르지 않는다. 쩨쩨하다.
하긴 언제 들렀더니 스피커에서 무슨 일로 왔느냐는 소리가 나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요샌 높은 암자는 CCTV로 관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라도 잠깐 앉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작은 굴목재를 넘으니 벌써 4시다. 대각암 앞에서 50분이 걸렸다.
바보의 귀가 시간이 신경 쓰이지만 장박골 다리 아래 바위에 들어가 옷을 벗는다.
빗물이 많이 섞여서인지 물은 그리 차지 않다. 몸은 금방 추워지는데 그래도 캔맥주는 마신다.
모기가 없어 다행이라고 하는데 몇 마리 다가 와 금방 일어난다.
4시 반에 일어나 연산사거리 거쳐 긴 골짜기를 부지런히 내려온다.
송광사 안은 안 들르고 우화각 주변을 사진 찍고 차로 돌아오니 5시 40분이 다 되어간다.
부지런히 석거리재 터널을 지나오는데 바보가 전화해 선아가 닭죽을 가져와 동네 사람들이랑 먹고 있으니 얼른 오란다.
누님이 보내 온 닭을 아들들이랑 먹고 죽을 쑤어 같이 가져왔다고 한다.
바깥 냉장고의 술이 많이 비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