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는 폭염이 전국을 달구고 있다.
밤 기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도 사상 최장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가정이 멀쩡한 에어콘을 모셔둔 채 선풍기만으로 불볕더위를 견디고 있다.
사용량에 따라 무섭게 뛰는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가정용 전기에 대해 100킬로와트시(KWH) 단위로 6단계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단계별 요금이 kwh당 60.7원에서 709.5원으로 11.6배 차이가 난다.
이러다 보니 평소 전기요금을 4만4000원 가량 내는 가정이 하루 세 시간씩 에어컨을 틀면
요금이 9만8000원으로 껑충 뛴다.
6시간씩 틀면 18만원이 넘는다.
'폭염보다 전기요금이 더 무섭다'는 말이 우스갯서리로 들리지 않는다.
전기료 누진제는 1차 오일쇼크 뒤인 1974년 가정용 전기 소비를 억제해 산업용용 전력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도입했다.
전기가 부족했던 당시로선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12배 차이를 두는 건 도가 지나치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처럼 징벌적 누진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미국은 2단계에 1.1배, 일본은 3단계 1.4배다.
다른나라도 많아야 3단계 범위에서 2배 이하 요금을 부과한다.
누진 구간과 요금이 합리적이지도 않다.
도시지역의 4인 가족이 매월 쓰는 잔기량은 360kWh 가량이다.
이들은 이미 발전원가나 산업용 요금보다 훨씬 높은 5만5000원 가량이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에어컨을 켜면 '폭탄' 수준의 전기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짧고 가전제품이 적은 1~2인 가구는 원가 이하 요금을 지불할 가능성이 크다.
가구원 구성의 변화와 생활 패턴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누진제의 허점이다.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산업용과 업소용 전가엔 누진제가 아예 없다.
이 때문에 산업용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문을 연 채 냉방을 하는 가게가 속출하는 전기 과소비가 초래된다.
가정에서 쓰는 평균 전력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절반밖에 안 되는 데도
1인당 전력 사용량이 OECD의 두 배에 이르는 역설이 나온다.
'대규모 정전(불랙아웃) 예방'이냐 '과소비 억제'를 위해 전체 전기의 13%가량을 쓸뿐인
가정에 누진제를 적용한다는 명분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약하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국민과 가계가 희생해야 하는 1970년대도 아니다.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를 손볼 떄가 됐다.
누진 단계를 줄이고 구간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산업.업소용 요금 체계 개편도 필요하다면 검토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성, 국민 편익, 산업 경쟁력을 균형 있게 고려한 새로운 전기 요금 체계를 고민해야 할 때다.
미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손보지 않으면 전기료 누진제는 내년 대선에서 정치쟁점이 도리 가능성이 크다.
합리성보다 포퓰리즘이 기준이 되면 통신요금이나 카드수수료처럼 문제가 더 꼬일 수 있다.
정부와 한국전력의 전형적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