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의 히메유리(1987, 요나조 노부코) 20.
● 제II부 제10장 럭키 스트라이크
이시미네 선생님과 우치야마 선생님이 나에게 외과의 벙커에서 일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그것은 나에게 편한 일이었다. 구미코(久美子)와 함께 있는 벙커에 갇히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나는 취사장에 두 번째 밥통을 가지러 가지 않은 사건이 늘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 일절 말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새로운 벙커 근무를 가기 전, 나는 나카타니 중사에게 찻그릇을 돌려줘야 겠다는 것이 생각났다. 일주일 동안이나 비가 계속 왔다. 그릇 두 개를 들고 벙커 밖으로 나가 보니 사람들이 비 때문에 진창이 된 좁은 흙길을 미끄러지면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미끄러운 길의 오른쪽에는 폭탄으로 파인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고, 거기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깊은 구덩이여서 사람이나 말이 떨어지면 빠져 죽을 정도였다. 한동안 내리는 비를 지켜보니 이미 길은 흙더미 밑에 묻혀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어떻게 나카타니 중사의 벙커를 찾아갈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진흙이 발가락의 틈 사이로 올라왔다. 근처에는 수십 개의 벙커가 있었지만, 비는 내리고, 진흙은 쌓여 있고, 낯익은 장소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미끄러지면서 그 쪽으로 다가 갔다. 간호사였다. 다가온 그녀에게 나는 길을 물었다. "알고 계신다면 내과 환자가 있는 장소를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길이 진흙탕이 되어 이전의 모습이 완전히 변한 것 같아요"
나는 그 간호사가 사팔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용무이신가요?" "찻그릇 두 개를 나카타니 중사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사팔눈의 간호사는 잠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나카타니 씨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해 드릴게요, 지금 어차피 그쪽으로 가는 중이니까."
"아,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나는 그릇을 건넸다. "깨뜨리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나카타니 씨가 소중히 여기는 그릇이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잠시 후 외과가 있는 제22호 벙커를 찾아냈다. 벙커 안에 들어가 여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근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 부근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하고 걸터앉을 곳을 찾고 있는데 "간호사님 변기를 부탁합니다라" 라고 근처 침대에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네, 네"라고 대답하고 변기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변기는 보이지 않군요..."라고 하니 "바로 옆에 있어요"
발밑을 보니 쇠고기 통조림의 빈 캔이 여러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간호 수첩에 설명되어 있는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그 하나를 집어 들고 말을 걸어온 부상병에게 다가가 그 옆에 빈 캔을 손에 들고, 민망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간호 수첩에 나타난 분뇨의 처리에 대한 설명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갑작스런 상황이라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서둘러 달라"고 환자가 말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담요를 아래에서 걷어 올리자,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라고 그 환자는 짜증을 냈다. 그리고 그는 담요의 중간 정도 되는 곳을 들어올려 오줌이 나오는 곳을 직접 내게 보여주었다. 간신히 볼일이 끝나고 빈 캔에 쌓인 소변을 통에 부으면서 나는 이상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통 안에 배설물을 다 붓기 전에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변기를 가져다 줘." "이쪽도 말이야." "나도 부탁해." 나는 침대에서 침대로 한동안 배설물 처리를 하며 돌고 있는데, 그제야 파트너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조금 쉬려고 벙커의 입구로 나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비가 그치고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골짜기가 내려다보였다.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 내린 비로 사탕 수수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녹색이 검은빛이 돌던 땅 곳곳에 녹색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탕 수수의 어린 잎사귀가 물에 적셔진 줄기에서 목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 파트너인 세츠코(節子)가 벙커 안쪽에서 태양의 밝음에 눈을 깜빡이며 나왔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았다. "변기는 저런 것밖에 없어?" "그래. 간호 수첩에 쓰여 있는 변기 같은 것은 본 적도 없어"라고 세츠코가 대답했다. 그녀는 긴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지만 세츠코가 불만의 말문을 열었다.
"이 벙커의 간호사는 바쁠 때만 모습을 감추는 거야." 세츠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기척이 났다. 아까 만난 사팔눈의 간호사였다. 그녀는 벙커 입구의 폭풍 막이용 둑 위에 서서 아래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괜찮아?" 라고 사팔눈의 간호사가 물었다. "네"라고 세츠코가 대답했다. 그리고 또 간호사는 자취를 감췄다. "이봐, 말한 대로잖아. 일손이 필요할 때, 저 사람은 항상 보이지 않아.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고 있어"라고 세츠코는 말했다.
붕대를 감은 손을 어깨에서 매달아 내린 부상병 한 명이 벙커 안쪽에서 나왔다. 회색으로 색이 변한 붕대는 마른 피로 얼룩져 있었다. "도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그는 우리 두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 쪽에 부탁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신발 속에서 담배를 꺼내고 싶은데요..." "저가 도와드리죠"라며 내가 일어섰다. 신발 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많이 들어 있었다. 포켓용 칼, 통조림, 생선 냄새가 나는 군용 식량, 작은 노트, 사진과 시계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 가운데에 일장기를 그린 작은 상자는 도대체 뭘까? 여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한 덕분에 가로 문자의 LUCKY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거예요, 그거예요"라고 군인은 말했다. 군인 중 한 명이 침대 위에 누워 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호리카와(堀川) 씨, 이것을 어디서 가져왔습니까?"라고 세츠코가 물었다. "적중으로 치고들러 갔을 때예요"라고 호리카와 중사는 대답했다. 또 다른 환자가 다가와 호리카와를 도왔다. 담배 갑을 집어 들고 그 속에서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여 호리카와에게 건넸다. 그리고 담배 갑을 돌려주려고 나에게 내밀었다.
"당신도, 피우세요"라고 호리카와 중사가 권했다. 군인은 "아니, 고맙습니다만"이라고 형식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호리카와 중사가 다시 한 번 권했다. 락키스트라이크 담배는 군인들의 손에서 손으로 돌아갔다. 모두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보라색 연기로 주변이 가득 찼다.
“적중으로 쳐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죽은 사람도 있었나요?”라고 나는 물었다. “때로는.” “그 팔 부상은 그 때 당하셨나요?” "아니, 함포 파편으로 당했어요. 아직 팔 안에 파편이 조금 남아 있을 거예요, 이쪽으로 오기 전에 군의관이 거의 뽑아 주었어요. 그건 그렇고, 여기 군의관은 언제 오시나요?" "글쎄요, 우리는 모르겠지만, 사흘 전에 오셨습니다"라고 세츠코가 대답했다.
"미국인은 왜 일본의 일장기를 담배갑에 그렸을까요?" 하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당신은 우리나라 국기만큼 아름다운 무늬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름다움이란 간결함 그 자체입니다." 윗쪽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가 말했다. "일장기는 그 녀석들에게도 예뻐 보이거든요." "적이 우리나라의 일장기를 담배 상자 장식에 사용하는 것은 우리 쪽에 운이 향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거예요, 분명. 우리 일본인은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어야 할 운명이니까요." "만세! 만세!" 라고 부상병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히노마루(일장기)의 여행에 관한 영화를 보신 분 계십니까?"라고 나는 물었다. "아니, 나는 아직 못 봤는데, 여러분 중 본 사람 있어요?" "나도 아직 못 봤어요. 그게 어떤 내용이었나요?" "들려주지 않겠습니까?" 라고 호리카와 중사가 부탁했다.
"그 영화에는 두 명의 외교관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일본인, 다른 한 명은 미국인이었습니다." 라고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인은 일장기 깃발을 사고 싶다고 제안하고, 금화를 테이블 위에 높이 쌓고 일본인의 승낙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일본인 외교관은 '노' 라고 거절했습니다. 미국 외교관은 금화를 더 추가했습니다.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 금화는 천장까지 산처럼 높이 쌓여 버렸습니다. 하지만 일본 외교관은 끝까지 그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만세! 만세! 우리 외교관 만세! 우리 일장기 만세!" 하고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 벙커에서 근무하는 것이 유쾌하게 생각되었다. 용감하고 명랑한 병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필시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이 만든 담배 치고는 맛이 좋은 담배군." 호리카와 중사가 코에서 연기를 내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뭐라고 하나요?" "노부코입니다." "몇 살?" "18세입니다." "아직 18세?" 그는 나를 잠깐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도 열여덟이 되는 여동생이 있다." "몇 살이라고?" 누군가가 벙커 안쪽에서 질문했다.
"열여듧이라고" 하고 아래 침대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새로 온 간호사의 이름은 뭐야?" 계속 안쪽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는 정식 간호사가 아닙니다. 학생입니다. 지원해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정규 간호사가 아닌 것 같아. 학생이라고 말이야. 지원해서 왔대." 가장 가까운 침대의 환자가 벙커 안쪽의 전우들에게 내 말을 충실히 전달했다. 나는 이 벙커의 근무에 임한 것을 기뻐했다. 병사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매우 기뻤기 때문이다.
본부의 벙커로 돌아가는 길에 나카타니(中谷)에게 들르기로 했다. 저녁 식사 전의 조용한 한때였다. 나카타니에게 새로운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장용 나뭇잎을 목표로 그의 벙커를 찾아갔다. 위장용 나무의 잎은 반쯤 땅에 묻혀 있었다. 나카타니는 나를 예전과 마찬가지로 붙임성 있게 맞이해 주었다.
웃는 얼굴을 보이면서 비단 방석을 꺼내 나에게 권하면서 위로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신경쓰지 말아요." "신경 쓴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 찻잔 그릇을 깨뜨린 거 말이야." 그는 내가 미끄러져서 찻잔 하나를 깨뜨린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꾸중을 들을까 봐, 사팔눈의 간호사에게 남은 하나를 돌려주게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 사팔눈이 간호신 정말 거짓말쟁이네. 그 간호사로부터 지시를 받는 거, 싫지만 어쩔 수 없어. 어쨌든 그 사람이 22호 벙커의 간호책임자니까" 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화가 난 듯 중얼거렸다. 나카타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