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사건은 교차로의 빨간 불에 차가 멈춰 섰을 때 일어났다. 지난 2006년, 애틀랜타의 기업가이자 기고가인 케빈 살린(Salwen)은 전날 밤을 친구 집에서 잔(sleepover)14세짜리 딸 한나(Hannah)를 집에 데리고 가는 길이었다. 신호등 때문에 멈춰 섰을 때, 창 밖에 검은색의 멋진 벤츠 승용차와 그 옆에서 구걸하는 걸인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한나는 “아빠, 저 사람이 조금만 싼 차를 탄다면 지금 구걸하는 사람도 밥을 먹을 수 있지 않나요?”하고 물었다. 다시 파란 불이 들어와 길을 가던 동안에도, 한나는 멈추지 않고 부모님을 졸랐다. 고급 승용차 옆에서 누군가는 구걸해야 하는 불공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도 뭔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집이라도 팔아야겠니?” 참다못해 엄마가 한 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 되고 말았다. 한나는 크고 멋진 집을 팔고 평범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대신, 새 집을 사고 남는 돈을 기부한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결국 이 가족은 한나의 생각대로 하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이 행동은 케빈과 한나에 의해 ‘절반의 힘(The Power of Half)’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는 한나 가족의 이런 행동은 엄청난 지진 피해를 보고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티 사람들에게 트위터 메시지부터 오래된 신발까지 뭐든 보내려 하는 미국인들에게 한 가족이 힘을 합쳐서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 실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케빈과 부인 조안(Joan)은 큰 집에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작은 집으로 옮기고 나니 오히려 가족끼리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작은 집’이 뜻하지 않게 ‘화목한 집’이 된 것이다. 케빈 가족은 아프리카 가나의 40가구에 의료·식량지원 등을 제공하기 위해 8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기아퇴치운동을 벌이는 사람들과 함께 가나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케빈 가족의 이런 행동이 순조롭게만 진행돼온 것은 아니었다. 끈기 있게 부모님을 설득한 한나와 달리, 남동생 조(Joe)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남는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하는 행동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케빈 가족의 기부를 두고 “선량한 척하며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깎아내리거나, “미국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데 왜 가나에 기부하느냐”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케빈 가족에게 새집을 팔았던 한 가족은 감동해, 케빈의 자선 프로젝트에 10만 달러 기부를 약속했다. 한나의 친구 블레이스(Blaise)는 아기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수입의 절반을 환경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케빈 가족은 책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팔라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된 한나는 “집을 파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일”이라며 “우리 가족의 경우엔 집이 살기에 너무 컸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 돈, 재능 등 누구든지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며 “무엇이든지 너무 많은 것은 조금 줄여서 남들과 나누면 된다”고 했다.
[눅 16:1-눅 16:8] (2)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샘할때를 기억하라 눅 16:1-13 본문 말씀을 보면 큰 부자가 있는데 자기가 직접 그 재산을 관리한 것이 아니고 관리인을 두어서 돌보게 하였다. 그 관리인을 본문에서는 청지기라 하였는데, 본문에서의 청지기는 종이 아니라 주인의 회계를 맡아보는 "경리사"라고 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고용인이고 봉급을 받으며 부정이나 실수가 있을 때는 해고를 당하고 버림을 받게 된다. 그러 나 주인은 그를 신임하여 일일이 간섭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신임하고 일을 맡긴 청지기의 경리에 부정이 있다는 고발이 주인에게 들어왔다. 주인이 사정을 물었을 때 청지기가 아무런 변명이나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 은 것을 보면 그의 부정을 시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인은 결산을 명령하고 해고를 통고하였다. 그 결산은 새 청지기에게 사무인계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고라는 것은 청지기에 게 있어서 엄숙한 사실이요, 심각한 문제였다. 그는 독백의 형식으로 자기의 장래를 생각했다. 이 청지기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것에 대하여 생각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의 장래였다. 이렇게 부정이 발각되어 해고된 사람을 누가 다시 채용하겠는가? 지금의 지위보다 더 낮은 지위의 일을 할 수도 없을 것이 뻔했다. 가령 낮아진다고 해서 땅을 파는 노동자도 생각하고, 구걸하는 걸인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다 못할 일이었다. 땅을 파자니 그 동안 육체노동을 해본 경험도 없고 힘도 없었다. 그렇다고 구걸하자니 창피스럽고 부끄러워 그것도 할 수가 없을 것같았다. 그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또 하나의 일을 계획하였다. 악은 꼬리를 물고 생긴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열을 지어 세우고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 이 채무자들이 돈 을 금액으로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주인의 소작인으로서 감람나무 기름이나 밀을 공출하지 못한 사람들, 그렇지 않으면 기름이나 밀을 꾸어가고 갚지 못한 그 지방의 농민들이었던 것 같다. 옛날의 차용증서 계약은 청지기와 채무자 사이에 체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물건의 양의 숫자만을 고친 모양이어서 증서는 그대로 있었던 것 같다. 채무자 편에서는 이것 을 반대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청지기의 호의에 감사했을 뿐이다. 그것이 청지기의 뜻으로 되는 것인지, 주인의 지시에 의해서 되는 처사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소작인들은 그저 감사 한 처사라고만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물론 청지기는 해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그가 고친 증서가 유효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1. 우리는 다 청지기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오직 우리는 청지기로 있는 동안 사용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청지기의 책임은 주인의 뜻을 따라서 그 맡긴 것을 올바로 사용해서 주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그 뜻대로 사용할 책임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고전 6:19에 있는대로 "우리의 몸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므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 육체조차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몸의 청지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하나님을 뵈올 때 우리 몸에 대하여 셈할 날이 있다.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우리 몸을 바로 지키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 계신 성전"이기 때문이다. 대상 29:12에 보면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하였 다. 즉, 우리에게 얼마의 재산이 있든지, 또 수입이 많거나 적거나 그것은 주님께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우리의 지위가 낮든지 높든지, 이 자리에 있든지 저 자리에 있든지 다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과 지위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물질과 지위를 맡기신 것으로 생각하고 청지기로서 모든 것을 바 로 쓰도록 힘써야 한다. 자신을 위해 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벧전 4:10에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였다. 우리들에게는 각각 받은 은사가 있다. 자연적인 은사도 있고 우리가 믿 은 후에 받은 은사도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천부의 장기가 있다. 음악, 미술, 문학, 손재주, 수학, 역사, 어학 등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요, 우리는 그 청지기이다. 주를 믿은 다음에 받은 은사도 각각 다르다. 우리는 다만 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느냐?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봉사하는데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 교만한 마음을 품으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기주의로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떠한 은사를 받았든지간에 우리는 다만 그 청지기이고 후에는 결산할 날이 있을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1절)라고 하였다. 주인으로부터 맡은 것을 주인을 위하여,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허비하는 것과 같다. 주인의 것을 자기 것처럼 썼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맡은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주인을 위해 쓰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 것으로 착각하고 나를 위해 쓰고 있는가? 주인은 자기가 신임하여 맡긴 청지기가 자기의 마음에 들게 모든 것을 바로 잘 관리해 주기를 기대하였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청지기인 우리에게 신실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모든 것을 관리해줄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2. 보던 일을 셈할 때가 온다.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2절). 주인은 청지기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자 실망하였다. 청지기 역시 주인의 이 말에 부인도 승락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얼마 안 있어서 관리인의 직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청지기의 책임을 지는 것도 주인의 뜻이요, 직책을 빼앗는 것도 주인의 뜻이다. 모든 권한은 주인에게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맡은 청지기의 직책이 얼마 오래 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권세를 맡았는가? 오래 남은 것이 아니다. 많은 재물을 맡았는가? 우리가 원하는대로 오래 맡겨두지 아니하신다. 교회의 직분을 맡았는가? 그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기한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맡은 것을 결산하라고 하실 때가 온다. 그러므로 기회를 주셨을 때, 직책을 가지고 있을 때, 주인에게서 맡은 것을 낭비하지 말고 주인의 뜻대로 바로 관리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란 예고 없이 그리고 예외 없이 닥쳐온다. 이때는 아무리 버둥거려도 이 청지기의 직분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맡은 것을 바로 쓰지 못했을 때 불평도, 변명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결산할 때가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 이것이 곧 최후의 심판이다. 3. 셈할 때를 예비하라. 주님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칭찬하였다. 왜 이러한 칭찬을 한 것일까? 이 청지기는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를 알았고, 현재의 주어진 기회를 이용할줄 알았으며, 미래의 필요를 위하여 준비할줄 알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 세대의 일에 대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슬기롭다." 그런데 세상의 아들들이 지혜로운 것은 이 세대 뿐이다. 이들은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내쫓기고 말 것이다. 세상의 아들들은 이 세상이 모두인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이 후에 다른 세상이 있다. 그러므로 빛의 아들들은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지 아니하고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산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 사업을 해도 세상의 아들들은 이 세상만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빛의 아들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세상이 있는 것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아들들처럼 하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맡긴 것으로 빚진 사람과 친구가 되게 하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오래 갈는지 알지 못하므로 가지고 있는 동안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하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전 11:1에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하였다. 이 세상의 재물로 자신의 만족을 얻을 수 없다면 그것으로 친구를 도와주어 결국 그것이 헛되지 않은 것임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형제를 위하여 이 길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고 말씀해 준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고 하였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즉, 물질적인 것에 대하여 신실하고 바로하는 사람이라야 영적인 것에도 바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11절)고 하였다.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바르고 좋게 보이며, 충성된 사람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고 하셨다(전 2:26). 우리는 다 청지기이다. 우리가 맡은 것을 바로 관리하고 있는가?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허비한다고 인정할 정도는 아닌가? 내게 주어진 이 몸을 어떻게 쓰고 있는 가? 내게 주어진 재물, 지위, 은사,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대로 쓰고 있는가? 청지기의 일을 결산할 때가 온다. 심판할 때 우리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을 형편은 아닌가? 우리는 모세처럼 남은 날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내게 건강을 주셨으나 하나님 뜻대로 쓰지 못하면 빼앗을까 두려워 해야 한다. 내게 재물을 주셨으나, 지위를 주셨으나, 은사를 주셨으나, 시간을 주셨으나 하나님이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모두 빼앗길까 두려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셈할 때를 예비하여야 하는 것이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선한 청지기의 자세를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계속 노력하는 선한 싸움의 대상이겠죠.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오늘도 함께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생각을 돌이키고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가 갖고있는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울수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리는것들을 조금만 내려 놓는다면 얼마든지 길이 있을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