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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脫稅)를 부추기는 갑질
추석이 이십오 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오늘 아침에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8시에 회사에 도착했더니, 약속대로 대형 트럭이 회사 앞에 도착해 있었다. 며칠째 부둣가의 보세창고에 틀어박혀 있던 와인 3천 박스 중, 우선 급한 대로 천 박스만 분할 통관한 후 운송해왔다.
나는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지게차 기사의 단축번호 18을 쿡쿡 눌렀다. 10여분 후면 지게차가 도착할 것이다. 나는 승용차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내리라고 턱짓을 했다. 아내는 내 뒤를 따라서 건물 외곽의 벽면에 연해 있는 좁고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악!,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고꾸라졌다. 그 바람에 금세 바지 위로 검붉은 피가 비어져 나왔다. 통증이 밀려드는 듯, 아내는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계단에 주저앉았다. 나는 재빨리 아내를 부둥켜안고 끙끙대며 2층 사무실로 올라왔다. 바지를 걷어 올려보니 무릎에 5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찰과상을 입어 피범벅이었다. 나는 책상위에 놓인 티슈를 한 움큼 빼들고 상처부위에 엉켜 있는 검붉은 피 뭉치를 조심스럽게 닦아 냈다. 그러고는 구급상비약품인 포비돈을 바른 후 그 위로 얇은 붕대를 쳐 주었다.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이 정도 가지고 뭘요’, 하며 극구 사양했다. 나는 아내를 사무실의 원탁에 앉혀 두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창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오늘부터 열흘간은 추석 선물세트 포장 작업을 할 참이다.
포장 작업은 화물 트럭 짐칸에 가득 실린 와인을 창고 안으로 부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터였다. 지게차가 도착할 동안, 나는 트럭의 화물칸에 올라 박스 수량을 확인한다. 와인은 나무 팔레트에 일정한 수량으로 재어진 상태에서 투명 비닐로 친친 감겨져 있다. 모두 14팔레트다. 이중 13팔레트는 각각 72박스씩 이고, 나머지 1팔레트는 64박스이다, 박스 당 750㎖짜리 와인이 12병씩 들었고, 전체를 통틀어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각각 반반씩이다. 팔레트 맨 위의 박스 중에 뜯긴 흔적이 있는 게 두 박스 있었는데, 레드와 화이트 와인이 각각 2병씩 비어 있다. 이는 확인하나마나 ‘식품의약품안전청’ 부산 지청의 수입검사과에서 검사용으로 꺼내 갔을 게 뻔하다. 지금껏 통관 신고를 할 때마다 매번 그래왔으니까.
어제 퇴근 전에 창고 내에 설치해 둔 두 개의 작업대(작업대 하나당 가로 3m x 세로 1.5m 짜리 합판 세 개를 성인 여자 허리 높이만큼 띄엄띄엄 쌓은 블록 위에 길게 잇대어 놓음)사이로 줄지어 팔레트를 내려놓고 있을 때, 배송용 봉고 화물차를 끌고 다니는 네 명의 배송 직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십여 분쯤 지나자, 이번엔 경리 직원인 노처녀 미스 황이 털털거리는 경차를 끌고 주차 라인 안으로 빨려 들었고, 뒤이어 영업 과장 두 명이 각자 지프를 몰고 주차 라인 안으로 빠르게 미끄러져 들었다. 그 사이 배송직원 네 명이 단거리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서로 앞다투어 창고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들 중 선임에게 선물세트 포장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신청자들의 명단과 연락처가 적힌 A4 용지를 건네주면서, 전철역 3번 출구로 가서 선물세트 포장 작업을 할 알바 신청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나는 창고에 팔레트를 다 부리고 난 후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왔다. 홀로 원탁에 앉아 있는 아내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더니, 다행히도 통증을 애써 참고 있는 듯한 기색이 엿보이지는 않았다. 그새 통증은 어느 정도 가신 모양이었다. 나는 책상에서 다이어리를 들고 와 원탁에 앉았다. 그러고는 영업 과장인 오 과장과 탁 과장을 원탁으로 불렀다. 미스 황이 커피 네 잔을 타 와서 돌린 후 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걸 잠시 원탁의 빈자리에 돌라앉게 했다.
“자, 서로 인사들 하지. 이 분은 그저께 책상을 들여놓을 때 잠시 언급했던 ‘박숙녀 과장’이야. 앞으로 그동안 내가 해왔던 무역 업무를 도맡아서 하게 될 거야. 그 전에 오늘부터 열흘간은 와인 선물세트를 포장할 알바들을 관리하게 될 거고.”
나는 직원들에게 ‘박숙녀 과장’이 아내라는 걸 숨긴 채 소개했다. 그러자 미스 황은 덤덤한 표정인데 반해, 두 과장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저께 책상을 들여놓으면서 무역 업무를 담당할 여성 과장이 출근할거라고 했을 때, 두 과장은 제 또래인 삼십대 초반의 여성일거라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인사가 끝난 후, 나는 미스 황에게 전철역에 나간 배송 직원들이 돌아오면 그들에게도 인사를 시켜주라고 지시했다.
나는 이태 전에 경기도 부천시 외곽지역에서 백이십 평 남짓한 조립식 건물을 보증금 없이 월세로 얻은 후 주류 수입면허를 냈다. 건물 한쪽 끝에 스무 평 남짓하게 2층을 올려서 사무실로 썼다. 현재 수입하고 있는 주류는 프랑스 와인만 열 품목이고, 판매처로는 50개의 점포를 지닌 대형 마트 한 곳과 수도권에 있는 수입 주류 도매점 열두 업체이다. 거래처별 매출 비율은, 대형 마트가 80%쯤 이고, 도매점이 20%쯤 된다. 그러니까 대형 마트 매출이 다수를 차지하는 셈이다.
충청도 이남지역과 강원도에 있는 거래처에 상품을 배송할 시에는 배송 물량에 따라 이삿짐센터의 단독 또는 함바 화물을 쓴다. 수도권과 경기도는 배송 직원들이 봉고 화물 차량으로 직접 배송하지만, 명절 선물세트 배송 시에는 이삿짐센터의 단독화물로 배송한다. 이는 직원들이 일일이 배송할 시간도 없거니와 봉고 화물차에는 부피가 큰 선물세트 박스를 얼마 싣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철역 3번 출구에 나갔던 배송 직원들이 스무 세 명의 알바를 봉고 차량에 태워서 회사로 돌아왔다. 어제까지 신청을 받은 알바는 모두 스무 다섯 명이었으나, 두 명은 나오지 않았다. 선임 배송 직원이 명부에 기록된 연락처로 연락을 해 보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선임 배송 직원한테서 알바 명부를 건네받아 출근하지 않은 두 명을 삭제한 후, 아내에게 건네주면서 별도로 출근부를 만들어서 잘 관리하라고 했다. 배송직원들이 흘끔흘끔 곁눈질로 자꾸 아내를 쳐다보자, 그새 눈치 빠른 미스 황이 그들을 불러 모아 아내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시켰다.
내가 전 직원들에게 오늘부터 포장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고 한마디 했더니, 사무실에는 미스 황과 아내만 남고 전부 창고로 내려왔다. 나는 그러나 두 영업 과장을 도로 사무실로 돌려보냈다. 그들은 이 일 말고도 거래처 수금을 비롯해서 나름대로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포장 알바 스무 세 명을 반반씩 두 개 조로 가름 지어 작업대 옆에 나란히 서게 했다. 레드와 화이트 와인 한 박스씩과 선물세트 케이스 열두 개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곤, “주목”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와인을 가슴 높이 만큼 쳐들어서 원산지와 특징, 맛, 향, 가격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생산성 제고 차원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포장 시범을 보였다. 또한 입으로는 연신 ‘취급주의’를 되뇌었다. 이는 나름 고가의 와인이라 각별히 주의를 요하라는 의미에서였다.
나는 조별로 배송 직원을 두 명씩 붙였다. 이는 무거운 와인 박스(박스 당 17㎏)를 작업대 위로 들어 올린 뒤 일일이 끄집어내야 하고, 또 포장이 끝나면 외진 곳으로 옮겨 가지런하게 재어야 한다. 그렇게 재어둔 와인은 일주일 후에나 포장지 포장을 할 터인데, 그 사이에 보세창고에 있는 와인이 추가로 들어 와야 하고, 또 선물세트 케이스도 계속 들어 와야 하기 때문에 그리 넓지 않은 아니, 옹색한 공간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창고 한 켠에 높이 쌓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여자들이 하기엔 아무래도 버거울 것이다. 배송 직원들은 다들 이미 한두 차례씩 경험을 한 터라, 그 점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아내가 출석부 파일을 손에 들고 다리를 쩔뚝거리면서 창고로 내려왔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노라니 못내 안타까워 마음이 저렸다. 아내는 그러나 아직 통증이 남아 있을 법도 한데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와 알바들을 향해 ‘주목’ 하더니, 간드러진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역 파트에 근무하는 ‘박숙녀 과장’입니다. 오늘부터 선물세트 작업이 끝날 때까지 여러분과 함께 포장 작업을 할 거예요. 앞으로 열흘 동안 시종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 손 맞춰 일 했으면 합니다. 자, 그럼 먼저 출석 체크 들어가요. 제가 이름을 부르면 네, 하고 손울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구아름, 김슬기, 김영선, 나혜경…….”
나는 아내가 출석 체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곧장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내는 미혼일 때, 선물세트 포장 작업을 수십 차례 경험했다. 당시 나는 주류 수입회사의 무역 파트에 사원으로 근무했고, 아내는 경리 파트에서 사원으로 근무했다. 그때 아내는 명절 때마다 선물세트 포장 작업을 하면서 알바들을 관리하곤 했다. 물론 다른 직원들도 제 업무가 바쁘지 않을 땐, 너나없이 모두 포장 작업에 매달렸다. 사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영업 파트 부서장들은 거래처 바이어와 미팅, 또 판매 계획 수립 등 사뭇 바쁘다보니 선물세트 포장 작업장에는 넥타이를 두른 채 나타나 생색만 냈다가 사라지곤 했다.
지난 설까지 두 번의 명절 선물세트를 준비하면서 선임 배송 직원에게 포장 작업 전반을 맡겨봤는데, 그는 내가 생각했던 만큼 원만하게 일을 처리해 내지 못했다. 그가 잘할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는 바람에 믿고 맡겼더니 알바들이 병을 깨뜨리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라벨이 탈락된 와인이 포장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로 인해, 소비자가 눈에 모를 세운 채 이게 프랑스 와인이 맞나? 며 따지고 드는 통에 무르춤해진 적이 적지 않았거니와, 또한 해당 점포에 불려가 간간이 욕지거리가 섞인 호통을 들어야만 했다. 새 상품과 교환은 당연한 것이었고, 죄송하다는 의미로 덤으로 한 세트를 더 얹혀주었다. 라벨이 탈락된 경우는 국제 택배로 라벨을 받아 부착하면 그만이지만. 파손 분은 그 손실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암튼, 배송 직원들은 두 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포장 작업 전반을 맡기기엔 미덥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경험이 풍부한 아내에게 맡겨 보았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지만 다음 주에 통관할 자금이 부족한 걸 생각하니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내일 통관할 자금은 그럭저럭 준비가 되었지만, 다음 주 초에 통관할 자금이 얼마간 부족했다.
나는 지난 5월에 추석 선물세트로 사용할 양으로 12병들이 와인 3천 박스를 CIF(cost, insurance, and freight, 상품가격, 보험료, 운임) 조건으로 프랑스의 와이너리에 주문했었다. 그 때, L/C(letter of credit, 신용장)를 개설했는데, 가진 자금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처가에 손을 벌렸다. 그렇게 해서 물품대금을 L/C 개설은행에 맡겨두었었다. 마땅한 담보물이 없었던지라 마지못해 현금을 맡기고 L/C를 개설한 거였다. 내 명의로 된 부동산이 통 없지는 않았지만, 이 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16평형 다가구주택이라 아무도 담보물로 쳐주지 않았다.
L/C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수출입 업자 간에 서로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안전장치다. 가령 수입업자가 물품을 인도 받기 전에 대금을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업자가 고의로 물품을 선적하지 않을 시에는 국제 소송 등 복잡한 상활이 벌어진다. 반대로, 수출업자가 수입업자를 믿고 상품을 선적했는데도 불구하고 수입업자가 고의로 물품 대금을 지불하지 않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L/C 개설은 이와 같은 수출입 업자의 고민을 동시에 해결해 준다. 수입업자가 은행에서 L/C를 개설하면, 개설 은행은 물품 대금 지급 보증을 선다. 수출업자는 개설 은행을 믿고 선사(선박회사)를 통해 상품을 컨테이너선 또는 화물선에 선적한다. 이때 선사에서는 컨테이너선 또는 화물선에 물품이 선적되었음을 확인하는 B/L(bill of lading, 선하증권)을 발행하여 수출업자에게 교부한다. 수출업자는 이 B/L을 L/C 개설 은행에 발송하고. L/C 개설 은행에서는 수령한 B/L을 다시 수입업자에게 발송한다. 그리고 정해진 날짜에 물품 대금을 수출업자에게 지급한다. 수입업자는 컨테이너선 또는 화물선이 지정된 부두에 도착하면 B/L과 물품을 맞바꾸면 된다. 이로써 L/C 개설 건은 종료된다.
나는 지난 5월에 L/C 개설 대금과 또 이것저것 더해 2억4천여만 원을 썼다. 그로부터 불과 석 달 만에 이번에는 통관자금(세금) 9천5백여만 원을 마련하느라, 낯 뜨거움을 무릅쓰고 초중고교 동창생들한테 손을 벌려 근근이 8천여만 원을 마련했다. 어제 1차로 1천 박스를 통관하면서 세금 3천2백여만 원을 납부했다. 계획대로라면 내일도 통관 자금으로 세금 3천2백여만 원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 초에 최종 통관 자금으로 세금 3천2백여만 원이 필요하지만, 1천7백여만 원이 부족한 상태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지난주에 생활정보지를 샅샅이 훑어 내리다가 박스 광고를 보고 대부업체 구 실장을 만났다. 그는 생활정보지에 실린 광고대로 나에게 자기를 대부업체 실장이라고 소개했지만, 아무래도 낌새가 사채업자 같은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나로서는 어차피 두 달만 쓰고 갚으면 그만이었기에 그가 사채업자든, 뭐든 문제될 게 없었다.
나는 일면식이 있는 대부업체 구 실장의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그의 휴대폰 번호 11자리 수를 힘줘 눌렀다. 그는 첫 신호가 가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실장님? 와인나라 조찬입니다. 준비하라고 했던 서류를 다 준비했는데, 몇 시쯤에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아, 그래요? 그럼 오후 2시에 일전에 만났던 커피숍으로 나와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1천7백만 원을 꾸기 위해 지난주에 대부업체 구 실장을 만났는데, 부동산 담보물이 있냐고 묻기에 없다고 하자, 그는 창고 임차보증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전액 월세라 보증금은 한 푼도 없다고 했다. 그는 금세 뜨악해 하는 낯빛으로 변하더니, 그렇다면 법인과 개인 등기부 등본, 인감증명서, 또 법인 소유로 등록된 차량 다섯 대의 등록증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리고 1천7백만 원을 대출 받으려면 한 달 치 선이자로 20%를 떼기 때문에 1천3백6십만 원이 입금될 거라고 했다. 나는 선이자 때문에 발생하는 부족분 3백여만 원에 대해서는 머리를 숙여 사정을 해서라도 도매점에 깔린 외상매출금을 기한보다 조금 일찍 수금할 심산이었다.
오후 두시에 커피숍에서 구 실장을 만났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했다. 나는 조금도 싫은 내색 없이 그가 요청했던 서류가 담긴 노란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는 곰 같은 덩저리와는 달리, 재빠른 손놀림으로 서류를 넘겨가며 꼼꼼히 확인했다. 잠시 후 그는 근성으로 서류를 뒤적거리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며칠 전에 구 실장님께서 준비해오라고 했던 서류는 빠짐없이 챙겨 왔습니다. 다시 한 번 눈여겨보세요.”
서류를 뒤적거리는 구 실장의 행동거지가 어딘가 못마땅해 하는 듯해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되받았다.
“아니, 조 사장이 빠뜨린 게 아니라, 일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이번에 통관한다는 와인 3천 박스에 대한 인보이스(invoice, 송장) 사본과 어제 부분 통관했다는 수입필증 사본도 가져와요. 내일 이 시각에 여기서 다시 만납시다.”
대머리에 배불뚝이 구 실장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 할 말을 끝내곤 어슬렁어슬렁 사라졌다. 만난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일방적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내 사정이 급해서 만났다지만 이렇게나 막 대하다니…, 그의 태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화가 동해 속이 메스꺼웠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 모두가 다 약자의 설움인 것을…. 나는 쓰라린 속을 담배연기로 달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로 돌아온 맡으로 나는 창고에 들렀다. 대형 선풍기 네 대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은 양철 지붕으로 쏟아져 내리는 열기 탓에 되레 후텁지근한 바람을 확대 재생산하는 듯했다. 알바들은 하나같이 손을 바삐 움직이며 부산을 떨었지만 다소 어설퍼 보였다. 포장 작업을 하는 알바들 대부분이 초짜라 저마다 손에 익을 때까지는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리라. 가만 보니 아내는 감독관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포장작업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싶어 나는 아내에게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고는 곧장 사무실로 올라왔다.
자리에 앉아 사무실을 휘 둘러보니 미스 황밖에 없었다. 두 과장은 거래처에 나간 것 같았다. 아까 대부업체 구 실장을 만나러 가기 전에 그들에게 도매점에 깔린 외상매출금 수금을 독촉했던 터였다.
나는 지난 설에 O마트 본사 식품 구매부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일련의 행위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그때 나는 그들의 분별없는 처신에 화를 삭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난 해 추석 때와는 달리 판매촉진비 과목을 제멋대로 두 개로 늘렸기 때문이었다. 지난 추석 때만 해도 한 과목이었던 '전단지 광고'와 'POP(point of purchase) 광고‘를 따로 분리시켜 판매촉진비를 이중으로 청구했다. 다른 상품은 모르겠지만 주류 상품에 대해서는 마트 측의 마진율이 25%를 상회하는 데도 말이다.
O마트 본사에서는 명절 때마다 선물세트 판촉 활동의 일환으로 전단지와 POP를 제작했다. 매번 원하지도 않았는데 선물세트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채근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보내주었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전단지에 실었다. 또한 보일락 말락 한 크기로 POP를 제작해서 상품진열대 하단에 부착했다. 물론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이미지를 부각시켰기 때문에 광고 효과가 통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의 진행과정이 너무 일방적이었고, 또 광고 효과에 비해 판매촉진비 청구액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거다. 점포 별로 40만 원짜리 세금계산서가 두 개나 발행되었다. 점포수가 모두 50개이니까 전부 합치면 판매촉진비 만도 무려 4천만 원이었다. 광고래야 고작 전단지에 나오는 사진 한 컷과 상품진열대 하단에 부착하는 자그마한 쇼 카드(show card)가 전부였다. 50개 점포를 다 합쳐 제작비로 5만 원이나 들었을까. 4십만 원짜리 세금계산서 1백장이 뭉텅이로 배달되어 왔을 때, 나는 불쑥 치솟는 화를 참지 못해 갈기갈기 찢어발겨 버렸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러나 정작 나를 더 화나게 했던 것은, 명절 전 열흘간의 선물세트 판매 기간 동안 투입하는 판매도우미와 관련된 건이었다. 그동안 주류 납품 업체들은 명절 때마다 각 사별로 제 형편에 맞는 판매도우미를 채용하여 철저히 교육을 시킨 후 매장에 투입시켜 자사 선물세트를 판매해 왔다. 그런데 지난 설에는 직전 해 추석 명절 때 판매실적이 저조했던 하위 열 개 업체에 대해, O마트 식품 구매부에서 직접 내레이터 모델을 판매도우미로 채용하여 투입했다. 물론 우리 회사도 하위 열 개 업체에 속해 있었다. 작년 추석에는 판매도우미로 여대생을 알바로 채용하여 투입했다. 이는 인건비 때문이다. 여대생을 알바로 쓸 경우 일급이 5~6만 원이면 충분하지만, 내레이터 모델을 쓰게 되면 일급이 갑절 이상 늘어난다. 회사의 오 과장 말로는 지난 설에는 선물세트 판매 행사 두 달 전부터 O마트 본사 주류 구매 과장이 윗선의 지시로 이벤트회사 대표를 불러 내레이터 모델을 판매도우미로 투입하겠다고 미리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다른 업체는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내레이터 모델을 쓰고도 판매량이 늘지 않았었다. 점포별로 열흘간 고작 두 세트 남짓 더 판매했을 뿐이었다.
마트를 찾는 고객들의 소비 패턴이 두 부류로 구분되어져 있다는 걸 O마트의 경영진은 모르는 것 같았다. 하나는 브랜드를 찾되 그러나 백화점보다는 싼 값을 원하는 고객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브랜드보다는 실속 있는 상품을 찾는 고객들이다. 전자는 마트에 오기 전에 미리 구매할 브랜드를 머릿속에 그리고 온다. 이런 류의 고객들에게는 제아무리 늘씬하고 언변이 뛰어난 내레이터 모델일지라도 노브랜드상품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후자는 주머니가 얕은 고객을 대상으로 홍보해야 하기 때문에 외모가 밑받침이 되고 언변이 뛰어난 판매도우미보다는, 차라리 진정성을 가슴 가득 괴고 있는 판매도우미가 제격이다. 어쩌면 O마트 경영자는 자사(自社)가 다수의 경쟁사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할 양으로 애초부터 작정하고 언변 뛰어나고 후리후리한 44사이즈의 내레이터 모델을 썼는지도 몰랐다. 납품업자들이야 어찌되든, 제 알 바 아니라고 치부하는 자들이니 그러고도 남았을 터였다. 지난 설 이래로 나는 울화가 복받치고 심기가 사나워 근 달포 동안 밤잠을 설쳐야 했다. 판매도우미 비용을 당초 예상보다 갑절이나 더 썼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O마트에 식품류를 납품하는 업체 중 80% 이상이 판매촉진비 청구액이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거세게 항의하자, O마트 측에서는 꾸물꾸물 늑장을 부리다가 마지못해 금번 추석 때부터 원상 복귀시켰다. 원상 복귀시켰다지만 점포 하나당 40만원씩이니 여전히 높다. 판매도우미 건 또한 동종 업계로 소문이 퍼져 뒷말이 무성해지자, 결국 O마트 경영진은 애먼 식품부 주류 구매 과장을 희생양 삼아 목을 쳤고. 차후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이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안녕하세요, 구 실장님! 그런데 무슨 일로…?”
“아, 딴 게 아니라 내일 커피숍보다는 커피숍 맞은편 1층에 있는 냉면집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소? 그 집 냉면 맛이 딱 그만인데…….”
그렇잖아도 지난 설에 O마트 본사 식품부의 일방적인 처사로 근 1억 원을 날린 것을 상기하며 치를 떨고 있는 참인데, 능구렁이 같은 구 실장이 거드름을 피웠다. 나는 속 보이는 그의 말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어찌하랴! 참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네, 그렇게 하죠, 뭐. 하하.”
구 실장은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이내 전화를 끊은 듯했다. 연신 뚜-뚜- 하는 기계음만 들려왔다.
미스 황이 내가 구 실장과 통화중에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지못해 흘린 억지웃음을 엿듣고 뭔가 크게 오인한 듯, 만면에 진한 웃음을 머금은 채 다가와 급여 지급 품의서가 첨부된 결재서류를 책상위에 내밀었다. 내일이 월급날이었다. 미스 황은 법인 계좌에 통관자금으로 쓸 4천8백만 원의 잔고가 남아있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급여명세서를 보니 나를 제외한 직원 7명의 급여액이 1천8백만 원이었다. 기실, 나는 직원들 급여는 거래처인 도매점에서 외상매출금을 수금해서 지급하리라고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거래처인 도매점 예닐곱 군데에 깔린 미수금이 3천만 원쯤 되었는데, 늦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이천만 원을 수금하라고 지난주부터 두 과장을 계속 채근해 왔다.
“통장에 있는 돈은 내일 오전에 통관 비용으로 써야 하니까 손대지 마. 급여는 내일 중으로 거래처에서 입금될 거야. 이 품의서는 도로 가져갔다가 내일 다시 올려. 참, 미스 황? 보세창고에 있는 프랑스 ‘사토 매독’ 와인 인보이스와 B/L을 관세사사무소에 팩스로 한 번 더 보내 줘. 보낸 후 그쪽 담당자한테 받았냐고 확인하고. 내일 수입 신고할 때 필요한 서류니까….”
내 말이 끝나자, 미스 황은 웃음이 싹 가신 얼굴로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급여 지급 품의서를 들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조금 전과는 사뭇 딴판으로 풀이 죽어 있었다. 제 자리로 되돌아가는 발걸음 또한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더니, 사무실 벽상에 걸린 커다란 시계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어느새 다섯 시를 지나고 있다. 나는 작업장인 창고로 내려가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와 철 계단을 밟고 내려간다. 아까 아내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던 계단에는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친다. 저건 무슨 차? 저만치 창고 창밖 한 켠에 수북이 쌓여 있는 헐어진 종이 박스 더미 사이로 정체 모를 낡은 트럭이 서 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박스 더미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박나룻이 텁수룩해 도무지 나이를 가늠키가 쉽지 않은 넝마주이 하나가 창이 긴 모자를 눌러 쓴 채, 빠른 손놀림으로 빈 종이박스를 쥐어뜯으며 분해하고 있다. 입고 있는 빛바랜 하늘색 반팔 티셔츠는 온통 땀으로 절었다. 가민히 지켜보니 사내는 빈 종이박스를 쥐어뜯다가도 뺨 위로 또르르 구르는 땀방울을 목에 두른 눅눅한 수건으로 연신 문질러댔다. 지난 설에는 팔순이 지났을 법한 노부부가 점심나절 때부터 리어카를 끌고 와서 말끔히 수거해 가곤 했는데….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그분들이 통 보이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신 걸까. 어쩌면 그새 어디 먼 곳에라도 갔을지도 모른다. 다박나룻의 사내는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개의치 않고 제 하던 일을 재촉하듯 손놀림을 더욱 재우친다.
나는 창고 문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삐 움직이는 배송 직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와인이 가득 든 종이박스를 작업대 위에 올려 와인을 빼놓은 뒤 헐어진 빈 박스를 창밖으로 힘껏 내던진다. 또한 알바들이 포장을 끝낸 선물세트 케이스를 외진 곳으로 들고 가서 가지런하게 쌓아올린다. 꽤나 힘이 든 모양이었다. 얼굴과 목덜미는 온통 땀투성이이고, 입고 있는 티셔츠에도 땀이 잔뜩 배어들어 후줄근하다. 이 직원 저 직원 할 것 없이 넷이 다 그러하다. 그들은 모두 이십대 후반이고 미혼이다. 시선을 좀 더 멀리 밀어내었더니 금세 아내가 동공에 사로잡힌다. 그녀 또한 콧잔등에 좁쌀 낟 같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작업을 마치려면 아직 1시간쯤 남았다. 나는 창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서 작업이 완료되어 가지런하게 재어져 있는 선물세트를 눈어림을 하면서 손구구를 해본다. 대략 2천6백 세트쯤 된다. 썩 성에 차지는 않지만, 초짜들 치고는 그런대로 흡족할 만하다. 나는 내일 2차로 1천 박스를 통관해서 밤새 고속도로로 이동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사무실로 돌린다.
내일 구 실장에게 전해줄 인보인스와 수입필증을 복사한 후 사본을 노란 서류봉투에 넣고 있던 중에, 언뜻 열린 서창으로 한 자락의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치는가 싶더니 금세 열린 동창으로 빠져나갔다. 서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하느작거리는 수양버들잎 사이로 스러져 가는 늦여름 오후의 햇살이 비껴들고 있었다.
아내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그새 6시 20분이었다. 아내는 방금 작업을 마쳤고, 배송 직원들이 저마다 알바들을 봉고 차량에 태워서 전철역으로 갔다고 했다. 내가 미스 황의 눈치를 살피며 아내에게 눈짓으로 수고했어. 하자, 아내 또한 미스 황의 눈치를 보며 눈짓으로 이 정도 가지고 뭘요, 했다. 아내와 나는 이를 씨익 드러낸 채 서로 마주보며 싱그레 웃었다. 아내는 이내 PC 앞에 가 앉았다. 나는 아까 미끄러져 다친 무릎은 좀 어떠냐고 물어보려다가 관두었다.
‘자기야, 전화 받어, 자기야, 전화 받어.’
갑자기 내 휴대폰에서 음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탁 과장이었다.
“탁 과장, 지금 어디야?”
“예, 서울주류입니다.”
“그래? 수금은 어떻게 됐어?”
“예, 두 곳에서 내일 오전까지 천만 원을 입금키로 했습니다.”
“수고 했군. 회사로 올 필요 없이 바로 퇴근해.”
내일 직원들 월급을 맞추려면 아직도 8백만 원이 부족했다. 오 과장은 수금을 얼마나 했을까. 나는 오 과장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는 담배를 빼물곤 불을 붙였다.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가 거진 타들어 갈 무렵, 휴대폰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전화 받어’
오 과장이었다. 그는 지금 수금 관계로 도매점 사장과 티격태격하며 상담 중이라, 상담이 끝나는 대로 다시 보고를 하겠다고 했다.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끄고 창가로 가서 창고를 내려다보니, 빈 선물상자와 뜯겨진 박스들로 낭자하게 어질러져 있던 작업장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내가 작업을 마치자마자 알바들에게 정리정돈을 시켰을 게 분명했다. 곧 죽어도 지저분한 건 못 보는 치밀한 성격이니까. 나는 슬쩍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사이 배송 직원들이 알바들을 전철역까지 태워주고 돌아왔다. 나는 직원들에게 냉장고에 캔 음료가 있으니 꺼내 마시라고 했다. 원탁에 둘러앉아 음료를 마시는 직원들을 보니 언뜻 아까 생각해 둔 게 떠올랐다. 내일부터는 회사에 출근했다가 알바들을 데리러 가지 말고, 출근길에 지하철역 3번 출구에서 만나 잠시 기다렸다가 알바들을 태워서 오라고 지시했다. 또한 특별한 일이 없을 땐, 작업을 마치고 나면 알바들을 전철역까지 태워준 뒤 회사로 돌아올 필요 없이 바로 퇴근하라고 했다
배송 직원들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로 마주보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그러다가 선임 직원이 PC앞에 앉아 뭔가를 작성 중인 아내의 뒷모습을 흘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사장님, 오늘 입사하신 박 과장님 있잖습니까. 일을 조리 있게 잘 하시던데요? 알바들을 다루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고요. 어떤 알바 학생 둘이서 장난을 치다가 병을 떨어뜨려 깨지자 바로 혼찌검을 내며 닦아 세웠다가도, 이내 기분 상하지 않게 달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요.”
“호! 그랬어?”
아내를 살짝 바라보았더니 분명 듣고 있으면서도 기꺼움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 챈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미스 황에게 내일 출근길에 녹차와 커피를 사오라고 말한 뒤, 배송 직원들과 먼저 퇴근시켰다. 아까 창고에 내려갔을 때 정수기 앞에 놓인 테이블을 살짝 봤더니 일회용 녹차와 커피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아내가 대체 무엇을 저토록 열심히 작성하나 싶어 살며시 뒤로 가서 어깨너머로 훔쳐봤다. 아내는 작업일보 서식을 만들어 작성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와인 선물세트 포장 작업 일보
●일자 : OOOO년 O월 OO일.
-금일 선물세트 포장 작업량 : 2,853set,
-파손 와인 및 수량 : 사토 메독(화이트) 1병.
-라벨 탈락 및 찍힘 발견 : 사토 메독(레드) 2병. 사토 메독(화이트) 1병.
○특기사항 :
① 열흘 내에 마무리 지으려면 포장 알바 인원 충원이 필요함. 우선 2명 정도 충원하면 될 것으로 사료됨.
② 손에 익으면 속력이 붙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인원이 추가로 필요함.
③ 포장지 포장은 다음 주에 반나절 동안 직접 작업을 해본 후에 보고 예정. -이상-
‘자기야 전화 받어. 자기야 전화 받어.’
내 휴대폰에서 여자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막 워드 작업을 마친 아내가 몸을 움찔, 움츠렸다. 아내는 방금 자신이 작성한 ‘작업일보’ 서식지를 한 장 프린트해서 손에 들고 출입구 옆의 복사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오 과장이었다.
“오 과장, 상담은 끝났어?”
“예, 사장님. ‘프라자리쿼’와 '모닝코리아‘ 두 업체 합쳐서 내일 오후 3시까지 9백만 원을 입금키로 했습니다.”
“수고했군, 회사로 돌아올 필요 없이 거기서 바로 퇴근해.”
내일 거래처에서 1천9백만 원이 입금되면 직원들 급여는 얼추 맞춰지는 셈이었다. 사실, 나도 걱정을 많이 했었다. 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데, 행여나 월급을 제때 못 줄까봐 내심 며칠째 애가 달아 조바심을 쳤다.
발등의 불은 껐으니 퇴근을 하려고 문단속을 하려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급히 나를 불렀다. 아내의 손에는 이번에 수입한 프랑스 와인의 인보이스 원본과 미스 황이 쓰는 소형 계산기가 들려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아까 내일 대부업체 구 실장한테 건네줄 인보이스를 카피한 후, 원본을 복사기에 그대로 놓아둔 모양이었다.
“여보, 지난 5월에 프랑스 사토 와인 병당 물대가 6.7us$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인보이스를 보니까 병당 3.8us$로 돼 있는데, 어떤 게 맞는 거예요? 그때 L/C를 개설한다면서 물대만 2억5천3백여만 원이라고 했잖아요. 그때 환율이 1,050원쯤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아내는 인보이스에 us$로 표기된 단가를 원화(\)로 환산하여 계산기를 두들기는 시늉을 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아직 정확한 셈법을 모를 것이다. 아내는 뭔가 의혹에 찬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꼭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 같아 아내에게조차 비밀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일이 별안간에 발생한 탓에 핑계를 댈 만한 마땅한 구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 숨기려 들다간 되레 딴 주머니를 찼다고 오해를 살 듯해 기왕 이렇게 된 것, 이참에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언행이 불일치하게 된 계제를 추호의 거짓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태 전에 O마트와 거래를 트면서 위스키를 납품하는 남 사장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땐 외모가 앙칼지고 감사나워 기피했지만, O마트 식품부를 드나들면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외모와는 달리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코틀랜드산 위스키를 수입하여 백화점과 대형 마트와 주류 도매점에 공급하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서른아홉이었지만, 절세(節稅)에 관해서만큼은 걸핏하면 휠체어에 의지한 몸으로 TV 화면에 나타나는 대기업 회장들 못지않게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O마트에서 거래처 대표 미팅이 있는 날에는 이따금 함께 술을 마셨고,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호칭도 스스럼없이 남 형, 조 형, 하고 부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 설 명절 연휴가 끝나고 그와 단 둘이서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날 나는 그에게 O마트에 죽도록 와인을 납품을 해봤자 남는 게 없다고 탄식조로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답답한 심사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내게 주류 수입업체가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대다수의 주류 수입업체들은 쉬쉬하면서 절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절세에 관해 얘기하는 동안, 그는 연신 주위를 살폈다. 주위를 살피는 그의 눈빛은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형했다. 우리 둘밖에 없는 두 평 남짓한 룸인데도 무슨 거리낌이 있는지, 연신 고개를 돌려가며 살폈다. 솔직히 나는 터무니없는 그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한순간 등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자기는 이 사업에 뛰어든 지 이미 십 수년째라, 대부분의 주류 수입업체를 웬만큼 알고 있다고 했다. 십여 년 사이에 타산이 맞지 않아 폐업한 회사만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절세를 한 기업은 대부분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이슬처럼 사라졌다고 했다. 특히, 절세가 무슨 훈장인 양 아무데서나 자랑삼아 마구 떠벌리고 다닌 치들은 하나같이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허덕거리고 있다고 자못 힘줘 말했다.
“조 형, 법에 정해진 대로 세금을 온전히 내고서는 이 사업 못합니다. 어느 곳 할 것 없이, 하다못해 동네 슈퍼에서조차 갑질을 해대는 데 무슨 수로 버텨내겠어요. 제아무리 경영의 도사라도 터무니없는 갑질 앞에서는 못 버텨요. 이 분야에서 살아남으려면 눈 딱 감고 절세하는 수밖에 없어요. 한 수 먹고 들어가지 않곤 못 버텨요.”
그러면서 그는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방법과 다른 방법도 몇 가지 알려주었다. 자기는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두었다고 했다. 페이퍼 컴퍼니 통장에 일정 금액을 예입해 두었다가 영국의 위스키 제조사에서 수입을 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위스키 제조사로 보낸다고 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위스키 한 병당 물대가 1만 원이라면, 수출업체에서는 인보이스에 물대를 오천 원으로 발행해서 수입업체에게 보내고, 수입업체에서는 이 인보이스를 근거로 L/C를 개설하든, T/T(telegraphic transfer, 전신 송금)를 쏘든, 대금을 수출회사에 지급한 후 상품을 통관할 때 관세청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나머지 대금 오천 원에 대해서는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 계좌에서 인출하여 위스키 제조사로 보내는 것이다.
위스키의 경우, 물대도 물대이지만 세금도 엄청나다. 세금은 관세,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표준 관세는 CIF 조건의 수입을 기준으로 물대의 30%, 주세는 물대 + 관세의 72%, 교육세는 주세의 30%, 부가가치세는 물대 + 관세 + 주세 + 교육세의 10%이다. 가령, 위스키의 병당 물대가 원화(\)로 1만 원이라면, 세금은 무려 15,200원이다. 수출업체에서 인보이스를 반값으로 발행하여 만병을 수입하면, 무려 칠천육백만 원을 절세하는 셈이다. 남 사장의 경우, 매년 명절 때마다 3만병 이상을 수입한다고 했다. 수입 물량을 최하로 잡더라도 연간 6만 병이다. 이를 기준으로 연간 절세 액을 산출하면 무려 4억5천여만 원이다.
매일같이 긴장과 초조와 돈에 쫓겨 왔던 나는, 남 사장으로부터 절세에 대한 방법과 조언을 들었을 때,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회오리가 심장을 훑고 지나가기라도 한듯 거세게 요동쳤다. 그가 말하는 절세가 나에게는 일종의 칠흑 같은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 같았다. 이 뜻밖의 횡재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때까지 주 거래처인 O마트에서는 전체 점포에 대해 매월 매출액의 18%를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뗐고, 또 신규 점포 오픈 시마다 3개월간은 일방적으로 공급 단가를 10% 낮췄다. 이와 같은 일이 불문율로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거래를 트고 나서조차도 몰랐을 뿐더러. 거래를 트기 전에는 바람결에라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월 마감을 해보면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달이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밑지는 장사를 한 달도 수두룩했다.
이태 전 O마트와 계약을 틀 당시, 거래 조건은 일반 상품에 대해서는 직매입이었고, 명절 선물세트에 대해서는 특정매입이었다. 특정매입이란 한시적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판매가 끝나고 나면 단말기에 찍힌 바코드를 기준으로 금액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팔고 남은 상품은 행사 종료와 함께 모조리 반품한다. 반품이 끝나면 바코드 또한 이슬처럼 사라진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매입분의 대금 정산 시에 매장 내에서 발생한 도난분에 대해서는 대금 정산을 일체 거절한다는 것이다. 도난의 경우, 점포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한 점포에서 30세트를 상회했다. 마트 직원들이 가져갔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를 금전으로 환산하면 백이십만 원쯤 된다. 지난 설에는 전체 점포에서 천만 원어치를 도난당했다.
남 사장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절세를 유난히 강조했다. 그는 마치 절세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같았다. 처음엔 절세란 말이 다소 헛갈려 어리벙벙했지만, 그가 내뱉는 말의 문맥을 꿰맞춰 보니 곧 반어적(反語的) 수사임을 알 수 있었다. 주류 수입업계에서는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하니 범죄 행위도 아닌 듯싶었다. 간혹 TV를 통해 청문회를 보면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발각되면 관행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을 봐도 말이다.
나는 남 사장한테서 절세의 방법을 듣고 난 후, 내게 안성맞춤인 방법을 선택해 지난 3월부터 와인 수출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을 추진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5월에야 비로소 6 : 4의 비율로 인보이스를 발행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인보이스에 나타나는 물대가 6이다. 이번 추석 선물세트용으로 수입한 와인부터 적용했다. 와인은 위스키에 비하면 절세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주세만 봐도 위스키는 물대의 72%인 반면, 와인은 고작 30%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대란, CIF 조건으로 수입하는 경우의 물대를 일컫는다. 말하자면, 상품 값과 보험료와 운송비를 합친 가격 말이다.
나는 지난 5월에 인보이스 상에 낮춘 물대만큼 암달러상을 통해 원화(\)로 us$를 샀다. 그리고 내친김에 남 사장을 통해 알게 된 외항 선원(컨테이너선 기관장)에게 수고비조로 얼마간의 금전을 지급했다. 이는 곧 프랑스에 가면 수출업자에게 us$를 잘 전달해달라는 의미에서였다.
나의 설명이 끝나자, 아내는 잔뜩 수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그렇게 해서 절세한 금액이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일부러 계산기를 집어 들고 두드리는 척하며 말했다.
“이번에 수입한 3천 박스에 대해 대략 2천8백만 원쯤 절세했어. 글구, 당신을 입사시킨 것도 이 때문이야. 당신도 알다시피 사장이라고 해서 회사 공금을 마음대로 못 쓰잖아. 앞으로 절세를 위해 비밀리에 써야 할 자금이 계속 늘어날 텐데, 그것을 처리할 마땅한 방법이 없잖아. 그렇다고 내 월급을 하루아침에 몇 배로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내달부턴 내 월급을 지금의 5백에서 배로 올려 절반을, 또 당신 월급은 전액을 절세를 위한 비자금으로 쓸까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아내는 눈살을 찌푸린 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표정에서는 불안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나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고, 다만 아내에게 배고파 죽겠다며 퇴근을 재촉했다.
선물세트 포장은 애초에 계획한 대로 일말의 착오도 없이 착착 진행되어 사나흘 후에는 2천 박스, 그러니까 선물세트 1만2천개의 작업을 마쳤다. 또한 대부업체 구 실장으로부터 1천3백6십만 원이 통장에 입금되었고, 도매점에서도 4백만 원을 추가로 수금했다. 이와 같이 애초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보세창고에 남아 있던 와인 1천 박스도 모조리 통관해 운송해왔다.
열흘 후에는 1만8천개의 선물세트를 포장지 포장까지 모두 마쳤다. 포장지 포장을 끝낸 선물세트를 쇼핑백과 함께 두꺼운 종이박스에 열 세트씩 담아 테이프를 쳐서 매조졌다, 50개의 점포별로 분리하여 출하 준비까지 끝내자, O마트 본사 식품부에 갔던 오 과장이 돌아왔다. 그는 A4 용지 50쪽짜리로 된 추석 선물세트 전단지를 나에게 가져왔다.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니 우리 회사 상품인 선물세트도 한 컷 나와 있었다. 레드와 화이트 와인으로 구성된 선물세트 그림 상단에는 검정색 글씨로 ‘사토매독와인세트’라고 진하게 표기 되어 있었고, 하단에는 ‘\39,900’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페이지를 넘겨 다음 장에 나와 있는 타사의 와인 선물세트를 눈여겨보던 차에, 언뜻 내 눈이 뒤집힐 정도로 강렬한 문구가 눈에 띄어 이내 소스라쳤다.
전체적인 라벨의 모양새와 그 위에 새겨진 문양과 글씨는 우리 것과 확연히 달랐지만, 병의 생김새나 용량, 선물세트 케이스는 우리 것과 얼마 상관 아니었다. 눈동자를 와인 선물세트 그림 위아래로 굴리면서 진하게 표기된 문구를 재차 눈여겨봤다. 선물세트 상단에는 붉고 진한 글씨로 ‘1 + 1’이라고 표기되어 있었고, 하단 역시 붉고 진한 글씨로 ‘\19,900’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것은 곧 \19,900원짜리 하나를 사면, 덤으로 똑같은 상품을 하나 더 준다는 뜻이다. 이 뜻밖의 문구에 치솟는 열화를 참다못한 나는 그만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오, 오, 오 과장! 이, 이리 와봐. 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너, 넌 도대체 뭘 한 게야?”
나는 허겁지겁 달려온 오 과장의 얼굴에 전단지에 나와 있는 와인 선물세트 사진을 거칠게 들이대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필시 오 과장은 알고 있을 터였다.
“어, 어떻게 된 건지 말, 말해 보란 말야. 어, 어서!”
나는 얼김에 화가 나고 당혹스러워 격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말을 더듬거리면서 고함을 뒤질렀다.
“……”
오 과장은 숫제 입을 꾹 다문 채, 못 알아들은 척 멀뚱한 표정으로 계속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추석 선물세트를 준비하느라 지난 5월부터 사흘이 멀다 하고 O마트 식품 구매부에 드나들었기 때문에 귓등으로 흘리지 않은 이상, 내용을 어느 정도 알게 마련이었다.
“에두를 필요 없이 곧이곧대로 말해 봐.”
내가 간신히 노여움을 추스르고 점잖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꼼짝 않고 서 있던 그가 그제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꾹 다문 입술을 뗐다.
“저도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구매 바이어 말로는 이번 추석부터 O마트 본사에서 프랑스 와인 제조사와 계약해서 PB(private brand)상품으로 내놓기로 했대요. 명절뿐만 아니라, 상시 상품 진열대에 디스플레이해서 판매할거라고도 했어요. 선물세트 포장은 포장 전문회사에 도급을 줬다고 했어요. 저도 이렇듯 소주보다 더 싼 가격에 출시될 줄은 몰랐죠. 출시 가격은 아까 전단지를 보고서야 알았어요.”
“…가, 가봐.”
덤 상품까지 포함하면 4병에 19,900원인 셈이다. 도대체 병당 얼마에 들여왔기에 이토록 싼 가격에 내 놓는단 말인가. 판매가인 19,900원에서 통상적인 마진 25%를 제한 단순 계산만으로도 세금을 포함한 병당 수입가가 3천7백3십 원. 여기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 즉 선물세트 케이스 비용, 쇼핑백 비용, 포장지 비용, 포장 인건비, 판매도우미 인건비, 점포별 운송비 등등을 제하고 나면 순수 와인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내려갈 것이다. 상품의 인지도나 라벨, 빈티지로 봐선 브랜드 가치가 우리 것과 비할 바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정상적으로 통관을 했다면 이 가격으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을 것이다. 대관절 얼마나 기막힌 재주가 있길래 이렇게까지 가격을 후려친단 말인가.
추석 선물세트 전단지가 제작되어 기업체 등에 배포된 이상, 본전치기라도 할 양으로 우리 상품에 대해서도 가격을 대폭 내리든지, 아니면 다른 실마리를 찾아보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이제 다 틀렸어! 이 우라질 놈! 금년 추석에는 천 세트도 못다 팔겠어. 이 망할 놈의 새끼가 온갖 갑질을 해대며 나로 하여금 탈세(脫稅)를 부추기더니, 결국 나를 끝 간 데 없는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는구나! <끝>
첫댓글 습작인지라 퇴고중입니다.
이렇게 수정하면 이렇다 할 문장이 되지 않을까 성싶은 곳이 있으면 토를 달아 주세요. 그 즉시 수정할 게요.
아름답게 가꾸어서 연말에 아랫녘의 지방지 '신춘문예'에 쓰윽 밀어넣어 볼까 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