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8. 큐티
느헤미야 6:10 ~ 16
느헤미야를 죽이려하는 모든 궤계를 물리치고 성벽 공사를 마치다
관찰 :
1)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거짓 예언
- 10절.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a.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에 대해서 그닥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전에 들어가는 신분을 통해서 미루어 볼 때 제사장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는 선지자 행세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판단할 때 느헤미야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영험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b. 그런 사람이 공사장에도, 예배 처소에도, 식사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으니 사람들이 느헤미야에게 고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마야 역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신탁을 받은 것처럼 행세를 했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c. 스마야는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예언을 받은 것처럼 행세하면서 산발랏과 도비야의 무리들이 느헤미야를 죽이려 자객을 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면, 철저한 방비를 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발각될 수밖에 없고, 또 서로 간에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하며,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산발랏과 도비야가 뒷감당을 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자객을 보내어 느헤미야를 암살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한 실제적인 정황을 이용하여 스마야는 느헤미야를 피신하도록 하고자 한 것입니다.
d. 이러한 정황은 모두가 그럴 수 있는 상황이고, 정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말을 따라서 하나님의 전 외소에 들어가 문을 닫고 숨어있게 되면, 이제까지 느헤미야가 보인 솔선수범의 리더십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다른 형제들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부끄러운 지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죽는다면 성벽 재건은 물건너 간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e. 그러나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게 되면, 그 이후의 영적 부흥의 길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바로 그러한 것을 노려서 느헤미야를 두렵게 해서 그의 지도력에 커다란 흠집을 내고자 한 것입니다.
- 11절.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a. 느헤미야는 자신이 총독의 신분으로 성전으로 몸을 피신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더구나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성전으로 몸을 숨기는 것은 율법에서 허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b. 스마야의 예언은 사리에 맞지 않는 예언이었고, 산발랏과 도비야 등의 성향에서는 충분이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자객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더라도 그러한 예언에 느헤미야는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담대하고 견고한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스마야의 간계와 그 뒤에 숨어있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궤계를 꿰뚫어보았던 것입니다.
- 12절.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a. 성령의 은혜로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마야는 하나님이 보낸 존재가 아니라 산발랏과 도비야로부터 뇌물을 받고 예언을 한 것이었습니다.
b. 느헤미야가 이렇듯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나중에 이 일에 대한 전모가 밝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이 때의 상황이 자칫하면 자신이 넘어갈 뻔했던 위기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밝혀두고 있습니다. 스마야의 예언도 분명히 거짓이었다는 것을 또한 드러내고 있습니다.
- 13절.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a. 산발랏과 도비야 등의 대적들이 스마야 제사장까지 동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여 성전에 도피함으로 율법을 범하게 하고, 총독이전에 영적 지도자로서 성벽 재건의 리더십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궤계였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파악했습니다.
- 14절.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a. 이제 느헤미야는 다른 수를 쓰지 않습니다. 곧바로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최강의 무기는 바로 기도였던 것입니다.
b. 느헤미야의 기도는 매우 짧고 굻고 담대합니다. 느헤미야는 성령의 은혜로 대적들의 그러한 궤계를 깨닫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른 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내용은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담대했습니다.
c.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역시 스마야의 예언에 한목소리로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궤계에 동참한 이들로 여겨집니다. 한 두 명이 아닌 제사장과 선지자 무리들이 느헤미야를 대적해서, 사지로 몰아가려 했던 이 급박한 상황을 느헤미야는 간략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인식해 주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최강의 무기였습니다.
2) 성벽 공사가 끝나다
- 15절.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a. 예루살렘 성벽 공사는 52일 만에 끝이 났습니다.
b. 이 공사는 유대력으로 압월에서 부터 엘룰월에 이르는 기간, 양력으로 하면 7월부터 9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뤄졌습니다. 이 때는 예루살렘 지역의 건기로 비가 오지 않았기에 덥지만, 성벽 공사를 하는데 아주 적절한 시간이었습니다.
c. 유다의 모든 이들이 합력하여 동시에 예루살렘 사방에서 시작해서 겨우 52일 만에 성벽 재건의 공사를 마무리 한 것입니다. 대적들이 상상하지 못한 시간에 성벽 공사를 마무리함으로, 대적들이 갖고 있던 다른 술수들을 사용하기 전에 끝을 내버렸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허를 찌르며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던 것입니다.
- 16절.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a.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주변이 이방 족속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 성벽이 52일 만에 공사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 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방해 공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내분과 여러 가지 한계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이 마친 것으로 인해서 이 일이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감하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공사를 담당한 유대인들 스스로는 더욱 이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르침 :
1) 느헤미야의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제거하고자 이제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스마야를 동원했습니다. 그의 거짓 예언을 통해서 느헤미야가 걸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선지자 노아댜와 여러 선지자들이 합세했습니다. 그만큼 유대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들이 썩어있던 상황이었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느헤미야를 제거하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궤계는 어찌하던지 느헤미야의 지도력에 흠을 만들어서 성벽 재건의 단합된 힘을 흐뜨려 놓고, 그리고 성벽을 다시 무너뜨리려고 하는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이 일을 이제 와서 보니까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지, 당시 느헤미야의 상황에서 이런 일들은 매우 심각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몸을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마땅한 곳은 그나마 성전 외에는 없었고, 자신을 죽이려는 자객들의 습격에 자신이 죽으면 성벽 재건은 물 건너갈 것이라는 선지자들의 외침에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일이 율법에서 어긋난 것이고, 또 자신의 위치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시라면 그렇게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편에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성령의 은혜로 스마야 뒤에 있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궤계가 보이게 되었고, 그에 동조하는 악한 무리들의 비겁하고 더러운 전략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적의 은밀하고도 무서운 궤계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52일 만에 재건된 예루살렘의 성벽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느헤미야와 그 공사에 동참한 이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대적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의 성격이 이런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할 때, 반드시 대적들의 궤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람은 정공법으로 그것을 대적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분명한 태도가 적들에게도 하나님께도 드러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저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날마다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