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 / 김기택
다 열려 있지만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
비와 걸레가 닿지 않는 곳
벽과 바닥 사이오 들어가 나오지 않는 곳
하루 종일 있지만 하루 종일 없는 곳
한낮에도 보이지 않는 곳
흐르지 않는 공기가 모서리 세워 박힌 곳
오는 듯 마는 듯 날개 달린 먼지가 온다
많은 다리를 데리고 벌레들이 온다
바람과 빛이 통하지 않는 습기와 냄새가 온다
숨어 있던 곰팡이들이 벽을 뚫고 돋아난다
아기 손가락이, 어느 날, 만져본다
문이 없어도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
후벼본다 긁어본다 빨아본다
엄마가 없어도 튼튼하고 안전한 곳
머리를 넣어본다 누워본다 뒹굴어본다
손가락으로도 꽉 차지만 온몸이 들어가도 넉넉한 곳
(『현대시』 2014년 10월호)
이 시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을 구석구석 보았다는 점도 재미있지만 시행의 끝에서 각운처럼 쓰이고 있는 말들의 쓰임이 매우 흥미롭다. 전체가 3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연은 매 행이 ‘곳’으로 끝나고, 2연은 ‘-ㄴ다’로 끝나며. 3연은 번갈아 가며 ‘-본다’와 ‘곳’으로 끝난다. 1연에서 각운처럼 쓰인 ‘곳’은 내파음이어서 구석의 답답하고 비좁은 느낌과 잘 어울린다. 1연의 ‘곳’ 앞에는 모두 부정적인 수식 어구가 쓰여서 구석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상응한다. 반면에 2연의 ‘온다’와 ‘돋아난다’는 유음과 양성모음으로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에 호응하는 주어는 긍정적인 수식어구를 동반하고 있어 1연과 대조적이다. 3연에서는 앞의 두 가지 시행 구성 방식이 교차 반복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면서 눈길을 끈다. “엄마가 없어도 튼튼하고 안전한 곳”에서는 부정과 긍정이 섞여 있고, “손가락으로 꽉 차지만 온몸이 들어가도 넉넉한 곳”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마무리된다. 아무 편견이 없는 아기에게 ‘구석’은 안온하면서도 재미난 놀이터이기 때문이리라.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