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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홈피에 있던 것들 해석해서 올립니다. 조금씩 추가해갈께요. 게으름뱅이라-_-
기병유닛 몇개만 해석하면 끝이군요.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맡아버려서 앞으로 엄청나게 바빠질듯합니다.
이제 업뎃은 언제될지모르겠네요_._);;;
http://www.europabarbarorum.com
디아도코이(안티고노스 1세, 안티파트로스,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셀레우코스 1세 등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로 후계자를 뜻함)나 후계자들에 의해 셀레우코스는 마케도니아 방식으로 싸웠지만 그들의 군대와 전술에는 동쪽의 그것이 영향을 줬다. 서쪽의 에게해에서 동쪽의 인도까지 셀레우코스 왕의 신하들은 많은 종류의 부대를 상납하여 그 어떤 셀레우코스의 왕도 세계에서 가능한 거의 모든 종류의 부대 -잘 훈련된 파이크 팔랑크스부터 페르시아 척후병, 그리고 중무장기병과 코끼리까지 많은 다른 유형의 군대-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 리스트는 셀레우코스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인 부대들이지만 국경확장으로 이 리스트에 없는 유닛을 훈련시킬 수도 있다.
Pantodapoi (Hellenic Native Spearmen)
비유럽인 후계국들에 의해 사용되어진 가장 기본적이고 수가 많은 보병부대가 Pantodapoi
보병이다. 이들은 다양한 민족사이에서 징병되었고 보통 일정한 지역에 수비군이나 그와 비슷한 임무를 위해 주둔했다. 그들은 유대인, 시리아인, 킬리키아인, 페르시아인, 아시리아인, 이집트 토속인들 그리고 많은 다른 민족들이었다.
그들은 특별히 믿을만한 병사들은 아니였지만 분명히 동방의 징집병들 보다는 나앗다.
그들은 전장에서 적당히 배치되는 한 괜찮을 것이다. 그들은 갑옷을 입지 않았고 단지 보호를 위한 작은 방패가 전부이기 때문에 다른 보병들은 그들을 떼로 살육할 것이다. 필요로 한다면 경기병에게 잠시간은 대항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Pantodapoi는 징집병이였고 마을과 도시를 방어했으며 다민족으로 구성되었었다. 그들은 그 시기의 기본적 군사력이였다. 기초적인 훈련밖에 받지 않았지만 다른 징집병들보다는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유목기병들을 상대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무장보병이나 경무장기병을 상대로는 효율적이다.
Akontistai (Hellenic Skirmishers)
이 노예에서 해방된 극도록 빈곤하고 운이없는 자유민들은 psiloi(장거리 사수) 로 근무하도록 강요되어졌고 그리스 보병중 가장 하위계급이다. psiloi는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다. 투창병, 투석병 그리고 궁수이다. 투창으로 무장한 akonistai는 남루한 농민이 투창과 작은 나이프로 무장했다. 그들의 역할은 간단하게 그들의 창을 던지고 안전한 시민군 방어라인 뒤로 최대한 빨리 뛰는 것이였다. 그들은 척후나 사기를 꺾을 수 있는 무수히 많은 투창을 두 phalanx 사이에 던지는 것으로 활용되었다.
akonistai 는 적을 낚기위한 미끼나 측면을 제외하고는 절대 근접전에 사용하지 말아라.
; 그들의 주임무는 아니지만 어쩌면 없는 것보다는 나을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akontistai 는 전장에서 특별히 두드러지지도 않았고 중요전력도 아니였다.
대부분은 적들에게 조급함을 야기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그들은 탁 트인 정면에서는 좀 귀찮을 뿐이지만 그들의 위치가 투창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매우 효율적이 된다. : 높은 곳에서 적들의 측면을 노리거나 혹은 성벽 위에 있을때
Artish Pada (Eastern Skirmishers)
작은 방패와 한 움큼의 투창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는 이들은 경무장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가까이에 서는 위험을 감수해야했다. 이들은 중무장보병이 뒤로 빠지면서 그들의 치명적인 장거리무기를 쓸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먼지구름 속에 배치되어 있는다. 이 보병척후병들은 개방된 위치에서 싸움으로써 최대한 많은 인원이 투척을 하고 최대한 적게 적의 장거리무기에 피해를 받았다. 갑주도 없고 훈련도 못되었고 묵직한 무기도 없기 때문에 이 경무장보병은 근접전에서는 가망이 없다.
역사적으로, 고대에는 빈곤히 무장된 징집병들을 척후병이나, 특히 투창병, 그리고 비교적 작은 훈련과 비용 그리고 훈련이 필요없는 기술과 도구를 가진 부대들로 편성했다. 그들이 여전히 쓸만한 효과를 보여줬을지라도 말이다.
Sphendonetai (Hellenic Slingers)
Sphendonetai는 psiloi의 두 번째 분과이며 그들은 투창을 든 그들 동료보다 조금 더 유용하다. 그들의 sphendonai(슬링)은 뼈나 갑옷을 부수거나 방패를 멀리서 산산조각 낼만큼 위험한 무기지만 그들은 보통 적병사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굴어 조급한 공격을 취하게끔 사용되었다. sphendone(slings) 이 쉽게 만들 수 있게되면서 그리고 그리스의 바위가 많은 지역에서는 탄환을 쉽게 구할 수 있게되면서, Sphendonetai는 이 무기를 그들의 부족한 하루끼니로 인한 단백질부족을 채우기 위함이나 (사냥을 뜻하는듯) 그들의 가축으로부터 약탈자들을 내쫒기위해 쓰는 가난한 농민들과 양치기가 대부분이였다.
역사적으로 sphendonetai는 보통 적을 귀찮게 하거나 약간의 부상을 입히거나 적의 장비 특히 방패가 투척물에게 부서지거나하게 함으로써 적을 도발했었다. 알렉산더는 그의 sphendonetai를 고용하여 가가우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 중장기병대를 그들이 싸울때까지 도발했고 그 후 즉시 그들을 나머지 페르시아군으로부터 차단하여 Hetairoi로 하여금 그들을 박살내게 했다.
Shuban Fradakshana (Eastern Slingers)
슬링은 매우 쉽고 싸게 만들 수 있지만 여전히 쓸만한 무기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동부의 언덕에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부족들 사이에서 슬링이 널리쓰이는 이유이다. 전투에서, 투석병(slingers)은 갑옷이나 근접무기가 없는 경장 척후병으로 활용되었었고 적에게 돌들을 뿌려대며 전진했으며 전멸위기에서만 도망쳤었다. 돌을 슬링에서 던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밑으로 던지는 방법이다. 이 돌은 시간당 60마일을 넘게 갈 수 있다. 잘 훈련된 투석병은 돌을 괜찮은 궁수의 화살만큼 멀리 던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투석병은 고지대의 양치기소년이 양과 염소를 몰때 사용하는 것에서 왔다. 그들은 고지대의 목장을 지켰고 동물이 길을 잃고 헤맬때 돌을 그 앞에 던져 뒤로 안전하게 되돌아가게 했다. 고대의 슬링은 가죽이나 양모의 긴 조각과 중앙엔 돌을 위한 주머니로 되어있었다. 슬링이 길어질수록 사거리가 늘어난다. 긴사정거리의 슬링은 3피트 정도 되었다.
Toxotai (Hellenic Archers)
Toxotai는 psiloi의 3번째 분과이고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궁병이다.
그들은 보통 가난한 자들중에서는 최상위층이였고 다른 약탈무리로부터 양떼를 안전하게 지키기위한 기술로 활을 사용하는 산간지방에서 징집되었다. Toxotai는 잘 훈련되었었는데, 그렇게 될수 밖에 없던 것이, 그들은 무기를 태어나면서부터 사용했었다. 그들은 괜찮은 궁수들이였지만 남부나 동부의 궁수들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짧은활(Short bow)을 사용했는데, 이는 그들이 다른 지역의 궁병들에게 제압되는 이유가 되고는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 군에서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다른 많은 장거리부대처럼, 그들은 근접전에서는 완전히 박살나므로 그들은 적병들로부터 잘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리스인들은 그 어떤 중요한 흐름에서도 궁병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국들처럼 혼합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들의 땅은 이런 궁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말이나 소를 기르기에도 특별히 알맞지도 않았다. 그래서 궁수들은 다른 Psiloi 와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 긴 사정거리에서의 괴롭힘.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은 궁병의 전통도 없었고 동방의 궁병들에게는 상대가 안되었기에 양치기들 외에는 이 일을 할 사람도 없었다. 많은 그리스국가들이 스키타이인이나 크레탄 궁병들에게 이 일을 맡겼다.
Thanvare Payahdag (Persian Archers)
이 들은 척후병들(skirmisher)이였고 적부대와 근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들은 긴소매와 페르시안Kapuris(이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_-;) 겉옷을 입었다. 보통 밝은 색의 이 전통 겉옷은 무릎 위까지 내려오며 허리에는 천으로 짠 큰 벨트로 묶었었다. 그들은 모직 모자도 썼으며, 헐렁한 바지와 부드러운 느낌의 신발을 신었다. 그들은 강력한 합성궁으로 무장했고 방어를 위한 긴 대거도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가죽 화살통을 등에 메었다.
역사적으로, 파르티아보병의 주요전력은 보병궁수들이었다. 이 보병 궁수들은 파르티아 보병 징집병들의 수준을 거의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파르티아에의 궁기병전통과 북쪽 초원인들로 인해 당연히 많은 징집병들이 보병궁수로써 배치되었다. 보통 이 파르티아 궁수들의 정위치는 창병들의 첫 번째 줄보다는 뒤고 스커미슁 줄의 앞이였다. 이 부대는 어떤 군대의 계획에서도 중요했다. 적의 군대가 전진할 때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했으며 전투 열의 측면을 경기병이나 다른 적 스커미셔부대로부터 보호했다.
Eranshar Arshtbara
창과 활로 무장한 이 부대는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패한 예전 페르시아 군대의 대부분을 새편성하는 그리스 장수들에게 그리 주목받지는 않았다. 그리스 중보병들과 함께 스커미셔나 보조병으로 전열에 있었던 듯 하다. 이 이란창병은 동부의 이란의 고원에서 소집되었고 박트리아군에서는 매우 흔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민병대의 중추였고 박트리아징집병의 주요부분을 형성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이란무기인 8' spear(??) 와 보병용합성궁으로 무장했다. 크고 장식된 갈색가죽화살통은 왼쪽에 메었고 활통(bow case)는 오른쪽에 메었다. 손목까지 소매가 오고 몸에붙는 단조로운 노란색 튜닉을 입었다. 얇은 파르티아산 벨트로 튜닉을 고정했다. 바지는 튜닉밑에 입었었고 몸에 적당히 붙어있었다. 부드러운 신발은 발목까지 왔고 가죽이나 가죽끈으로 보호되었다.
역사적으로, 광대한 이란고원은 서부에서는 거의 보지못할 형태의 보병을 만들었다. 8' spear 와 composite short bow로 무장한 이 보병은 동부에서 적 유목민들의 긴사정거리에 잘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유목기병은 밀집대형에 달려드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앟었고 그것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재다능했고 알맞게 사용된다면 위험스럽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중무장보병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개별적으로 그들은 뛰어났지만 눈에 뛰는 전사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다재다능함은 어떤 사령관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그들은 약한 보병이나 기병을 상대로는 전선을 유지할 수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 오랫동안 싸움이 계속된다면 신뢰할 수 없다.
Iudaioi Taxeis (Jewish Spearmen)
셀레우코스의 이상한 정책중 하나가 무장한 Ioudaios(고대 그리스어로 유대인)민병대를 만든 것이였다. 운명의 장난으로 이 Ioudaia(고대 그리스어로 유대)에서 온 용감한 사람들과 다른 곳에서의 많은 유대인들이 징집되고 훈련되어 리디아에서 인도까지 많은 마을에 수비병으로 주둔되었다.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차별을 당하면서 셀레우코스의 왕을 섬겼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예전 프라지아 스타일(the older Phrygian style)헬멧과 창과 방패를 갖추었었다. 여기에 가족들이 만든 가죽갑옷을 입고 떠나기도 했다. 그들은 셀레우코스의 수비군에 꽤 많은 수를 차지했고, 대게는 믿을만한 창병이였다. 그들이 받은 훈련과 비용 그리고 지휘관의 신용에 비해 훨신 더 잘 싸웠다.
역사적으로, Iudaios(유대인) 수비군은 Pantodapoi으로도, 조금 부유하고 훨신 훈련이 잘된 병사로 동부 전역에 걸쳐 셀레우코스를 위해 열심히 싸웠다. 그들은 나중에 유대반란시기의 핵심이 되지만 처음 수백여년간은 믿을만한 군대였다. 최소한 Persai 보다 그리고 소아시아토착민들보다는 나앗다.
Peltastai (Hellenic Heavy Skirmishers)
Peltastai는 이동성과 사거리를 위해 무거운 무기와 갑옷을 포기한 엘리트 스커미셔 형태 중 하나이다. 그들은 리넨에 갑옷을 댓고 중간크기의 방패를 소지했다. 원래 그들은 트라케에서 유래한 초승달모양의 날카로운 ‘pelta' 방패를 들었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에 접어들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기는 몇 개의 투창과 칼 한자루였다. 이 장비들은 그들을 가볍고 신속하게 만들었지만 투창을 다 소모하고 난 후는 근접전도 가능했다. 그들은 다재다능하지만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주 무기는 투창이란 점이고 중무장보병과 맞대결 할 만큼 무장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재빠른 기동이나, 적을 괴롭힌다던가 혹은 치명적인 우회기동이였다.
역사적으로, 대게 peltastai는 호플리타이(hoplitai)나 페제타이로이(pezhetairoi)가 스커미셔 방법으로 싸운 것이였다. 이것은 그들이 투창을 쓰는 것만큼 근접전에서도 숙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Peltastai 는 고대전투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쓰였지만 270bc가 되면서 thureophoros 가 근접 스커미셔의 주력이 되고나서부터는 peltastai는 더 많은 투창을 들었고 일관되게 쓰였다. 이는 간단히 전문화의 문제였고 올바르게 배치만 된다면 peltastai는 여전히 쓸만했다. 그들의 가벼운 무장은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했지만 근접전투에서 손해를 입기 쉬웠다. 대부분은 투창을 다 쓰고난 뒤 마지막 순간에 돌격하는 장거리 지원부대로 쓰였다. 아테네 장군 Iphikrates은 Peltast를 특별한 부대로 만든 것으로 이름을 날렸고 제일 처음으로 저런 방법으로 이들을 사용하여 더 무장되고 더 훈련된 스파르타 시민군을 상대로 큰 효과를 봤다.
Toxotai Syriakoi (Syrian Archers)
Toxotai Syriakoi 는 대부분의 궁병들 중 거의 최고로 차지하게 만든 합성궁으로 무장했다. 그들은 긴 사정거리의 활과 많은 활을 가지고 있었고 수세기에 걸친 고향땅의 전통과 고기로 모자란 하루끼니를 보충하기 위해(사냥을 뜻하는 듯--;) 이 활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괜찮은 병사들이지만 그들이 피정복민이 된 후로부터는 사기에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화살로 엄청난 효과를 보는 것은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근접전에서는 떼로 살육당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리아는 수천년동안 그곳의 궁수로 유명했다. 이들은 아시리안 왕국이 그들을 보조부대로 활용하면서부터 거의 모든 주요동부전쟁에 참가했다. 그들은 괜찮은 보병부대의 보호가 있는 한은 전쟁에서 지속적으로 무서운 병기가 된다. 똑똑한 지휘관은 사용전에 이들의 강점과 약점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Pantodapoi Phalangitai (Hellenic Native Phalanx)
Pantodapoi Phalangitai 는 폰토스를 포함해 다른 디아도코이의 지배를 받는 곳과 셀레우코스왕국의 기본적인 징집병이다. 강하고 믿을만한 보병이지만 불평이나 폭동을 일으키고 쉬워서 마케도니안 징집병들 보다 비용이 더 비싸다. 그들은 인도, 시리아, 페르시아출신에서 강제로 군에 복무하도록 된 징집병이였다. 부드러운 가죽 흉갑과, 파이크, 둥근 Illyria 스타일 방패와 프리지아 모자를 쓰고 pikemen으로 싸운다.이것은 기강이 헤이하고 Pezhetairoi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보다 더 도주하기 쉬운 그들을 쓸만한 파이크부대로 만들어 준다. 적을 향해 단단한 창의 벽을 만드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낮은 군기와 혹독한 훈련은 측면 공격에 더 유리하다.
역사적으로, 셀레우코스와 나머지(디아도코이)는 다양한 민족에서 징집한 파이크 징집병들을 적군의 가장 약한 부대와 맞서 전선을 유지하는 것으로 사용 했다. 그들은 많은 전투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했으나 라피아에서는 프톨레미를 상대로 전선을 무너뜨려 재앙을 낳았으며 마케도니아에서는 로마를 상대로 하여 재앙을 낳았다. 파이크 부대를 구성할 그리스인 보충병의 숫자가 줄어듬에 따라 (대부분은 더 엘리트 부대로 갔다) 셀레우코스의 전선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숫자가 많아 졌으며 더욱더 많은 수의 아시아인들이 Pezhetairoi 형태로 복무하고 땅을 받게 되었고,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아직은 이 믿을 수 없는 이들은 많은 곳에서 쓰여지고 있다.
Klerouchikoi Phalangitai (Hellenic Medium Phalanx)
Kleruchoi Phalangita 비록 같은 방법으로 소집되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Pezhetairoi 와 함께 이집트와 시리아의 후계자 군대의 중추였다. 이들은 조그만한 영지나 *Kleruch 를 받아 아마도 몇몇 노예와 세금혜택을 얻고 그 댓가로 그들의 Basileos(그리스어로 왕)을 위해 팔랑스(phalanx)에 복무했다.
*Kleruch : 둔전과 비슷한 의미인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규율에 얽메인 이들을 Kleruchoi 라고 부르는 듯 합니다. 알아본 바로는 Kleruchoi 들이 당시 서구권 여러지역에 걸쳐 있더군요. 전 중국의 위촉오시기의 둔전제가 세계최초아니었던가요? 자세히 아시는분 멘트좀 부탁해요.
그들은 pezhetairoi와 마찬가지로 시민이였지만 *citizens-with-strings 이여서 전쟁으로의부름이 있을때는 싸우로 가야만 했고 이를 어길 경우 생계수단을 뺏겼다.
*citizens-with-strings : 확실히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의미하고자 한 것은 당시대의 시민보다는 낮은 단계의 자유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뒤져도 알아낸 것이라고는 선거권이 없었다 라는 것 정도-_-;
팔랑스가 그리스병의 대형일지라도 몇몇 트라케인, 켈트인, 인도인 그리고 다른 외국인들도 kleruchoi 신분을 phalangitai 숫자증강을 위해 받았다. 그러나 kleruchoi phalangitai의 대부분은 여전히 그리스인이다. 그들은 사리사와 리넨흉갑, 트라케식 투구, 청동 정강이받이(greaves), 단단한 군화 그리고 개량된 리넨으로 만든 강화된 어깨보호대로 무장했다. 전투에서 그들은 방어적인 태도나 점진적으로 적을 향해 전진하여 적을 압사시키거나 적의 대형을 묶어두어 다른 부대로부터 측면공격을 할 수 있도록 배치되는 것이 최고이다.
Megas Alexandros의 제국의 붕괴와 그 후의 마케도니아군을 흡수한 그의 장군들 사이의 전쟁에서, 디아도코이는 힘을 유지하고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인적자원의 원천이 필요했다. 파이크 팔랑스가 그들 군대의 중추임으로 자리를 채울 그리스인이 필요했고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많은 수의 용병들조차도 모집되었다. 해답은 그리스식 군사기지를 후계국들에 걸쳐 건설하는 것이였고 병졸들은 세금감면이나 작은 땅을 하사받았다. 이따금씩 그들은 땅을 경작할 노예를 받기도 했으며 전쟁을 위해 kleruchoi 병으로 풀려나는 수는 더욱 증가했다. 토속인들로 군을 구성하는 것은(프톨레미 왕국은 이집트인, 셀레우코스는 시리아인과 바바로니아인)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마케도니아인의 왕국이 저마다의 고향에서 반란의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Aigyptos(이집트)에서 kleruchoi 는 Fayum에 자리잡았지만 후에 가능한 땅이 부족해짐에 따라, 특히 남쪽에서 politeumata 라고 부르는 도시의 토대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방어거점으로 활용되었다.
Pezhetairoi
Pezhetairoi 는 모든 디아도코이 왕국 군대의 중추였다. 군기가 높았고 무서운 기세로 무장된 매우 능률적인 파이크맨이였다. 그들은 리넨 흉갑과, 트라케식 투구, 왼쪽발에는 청동 그리브와 단단한 군화, 좋은 팔목보호대와 개량된 리넨으로 만든 강화된 어깨보호대(트라케의 곡도curved swords로 인한 경험으로인해)로 무장했다. 가죽끈으로 그들의 몸에 붙인 일리리아식 둥근 방패는 방패의 무게로 인한 제약을 덜었고 길고 묵직한 사리사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도록 했다. 전형적인 방어형 보병이였고 마케도니아 전투시스템의 두 부분중 중무장기병이 망치가 되고 이들은 모루였다. 그들은 Theurophoroi가 측면을 괴롭히고 중무장 기병이 측면과 배후를 깨부술동안 적병을 묶어두는데 쓰인다.
역사적으로, Pezhetairoi는 고전적인 알렉산더의 팔랑스이다. 그들은 페르시아인, 박트리아인, 인도인등 많은 민족들을 상대로 탁월한 효과를 봤다. 그들은 유능한 군사력이고 수세기가 지나도록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로마인은 두가지 이유에서 그들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첫째, 로마군은 매우 유연한 상태였고 Karchedoi 를 물리친후 전술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둘째, 디아도코이의 병과인 중무장기병이 알렉산더의 모루와 망치전술을 수행할만큼의 수가 안될정도로 퇴보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자잘한 이유들이 있는데 몇 개를 헤아려보면 Thureophoroi 의 오용과, Peltastai의 비사용, 그리고 Diodachoi 후계국들이 그래왔듯이 느슨한 전투임관상태를 들 수 있다. 어찌되었든간 팔랑스는 보통 알고있는 시대에 뒤 떨어진다던지 유연성이 떨어진다던지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지원의 부재와 잘못된 사용일 뿐이다. 13세기를 넘어서도 유사한 대형의 파이크맨은 유능한 장군과 뛰어난 기병이 있으면 놀라운 일을 할 수도 있었다. 파이크맨을 얕보지 말라. 그들은 여전히 승리의 주역이다.
Thureophoroi (Hellenic Spearmen)
Thureophoroi는 팔랑스를 보강하고 phalangite 와 peltastai 중간정도되는 형태의 병사로 스커미쉬와 근접전투 모두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그리스 군대의 새로운 타입이였다. 이들은 번개같은 기동력으로 다량의 투창을 이용해 강한 타격을 준 뒤 파이크부대의 측면으로 돌진해갈 수 있었다. 임무를 위해 단단한 청동 투구, 리넨 갑옷, 날카로운 thureos 방패, 무거운 투창과 튼튼한 창으로 잘 무장했다. 그들은 매우 다재다능한 보병이였고 로마의 레기온들과 매우 닮았다. 그들은 그리스군의 전투기술 노하우의 최고에 이르는 매우 효율적인 중무장 보병이였다.
역사적으로, Thureophoroi 는 적을 귀찮게 괴롭히거나 측면공격용 부대로 후계국들에의해 사용되었다. 종종 라틴연대작가들에 의해 레기온의 복제판이라고 설명되기도하지만 이들이 이탈리아의 전투지식으로 인해 발전된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많은 Thureophoroi는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중간계층 Pezhetairoi 이여서 충분히 훈련이나 연습할 시간을 가지고 있었고 사기도 매우 높은 용맹스러운 부대였다. 이들이 움직임이 적은 팔랑스 부대를 상대로 엄청나게 효율적이 되고나서부터 이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이유 때문에 디아도코이는 이들을 그저 평범하게 사용했지만 셀레우코스는 이들을 매우 잘 활용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이들을 마케도니아군에 대항하면서 매우 많이 사용했으며 궁지에 몰렸을때는 더욱 강한 군대도 막아낼 수 있었다. 아직 이들의 사용엔 제약이 많고 그들의 다재다능함에도 불구하고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제일 효과적인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 시기 지휘관들의 실수였지만 기민하거나 창조적인 지휘관들은 아마 정적인 팔랑스와같이 활용될때의 위력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Thorakitai
Thorakitai는 Theurophoroi 개념의 두 번째 혁명을 나타내며 이들의 완성에서있어 로마인에 의한 분명한 영향을 보여준다. 그들은 미늘 갑옷을 입었고 Thureophoroi의 투창보다 더 무거운 투창을 소지했다. 그들은 더 비싸며 비교적 경무장한 그들의 동료(Thureophoroi)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모든 그리스 군에게 완벽한 충격부대(shock troops)를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아군의 측면에 있거나 팔랑스가 적 팔랑스를 붙잡아 둘동안 측면을 노리거나 팔랑스의 약한 측면 부위를 공격하는 적군을 막는 것으로 활용될때가 최고이다. 이들을 여분의 자벨린과 가장 중요한 기동성으로 Thorakitai를 포위당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Thureophoroi와 같이 사용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이다.
역사적으로 Thorakitai는 Thureophoroi 와 비슷하게 사용했지만 Thureophoroi보다 수가 적었고 한참 후의 일이였다. 매우 비싼 병사라서 Thorakites로 무장할려면 상당히 부유했었다. 그들은 그리스 도시국가나 셀레우코스에서만 사용되었었다. 로마인이 그리스에서 군단을 만들기 이전까지는 결코 그들의 진면목을 보이지 못했고 로마군단과 Thorakitai의 전술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표준적인 것이 되었다.
* 밑에 화목란님의 해석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Hypaspistai 는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 군의 정예 창병spearmen이다. 이들은 몇가지의 뚜렷한 차이점을 제외하고는 전통적인 hoplitai(호플라이트)와 매우 유사하게 무장했다. 전통적인 호플라이트 방패와 철제 흉갑, 보조무기로 전통적인 호플라이트의 검이나 갈라티아에서 온 켈트 장검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다재다능하고 정예병들이며 보통 그리스군 전선의 좌측날개를 맡았다. 이들의 중무장은 정예 창병이나 검병swordsmen 으로도 싸울 수 있게 하고 적의 방진에 맞설 수 있다. 적들이 창을 부여잡느라 힘을 소진했을때 이들이 한번에 돌진할수있도록 전투가 완전한 밀집될만한 곳에 배치되는 것이 좋다.
역사적으로, Hypaspistai는 기원전 5세기의 호플라이트와 매우 유사하게 무장한 마케도니아왕의 정예근위병이였다. 알렉산더는 이들이 중동의 사막에서 싸울 수 있도록 갑옷과 무기를 바꾸었다. 알렉산더가 살해당하고(was killed로 살해당했다 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흠흠) 셀레우코스와 마케도니아가 정예병들을 물려받으면서, 주로 서로를 죽이는 사소한 전쟁를 일삼았다. 아직 전통은 그곳에 있기는 하지만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의 디아도코이에 의해 다시 활용되어졌다. 중갑옷을 재조명하는 큰 변화를 거치면서 이들의 무장도 바뀌었다. 이제는 덜 비싸지고 더 쉽게 생산가능하고(청동 플레이트와 관련이 있다) 방호력이 약간 떨어지는 미늘갑옷mail armor을 입는다. 이들은 필리포스5세의 치세동안 너무도 비싼 유지비로 인해 최후의 보루로 사용되었다. 로마인은 디아도코이의 보병중 가장 강력한 이들에게 결코 쓴맛을 보지 못했다.
Thorakitai Argyraspidai (Hellenic Armored Spearmen)
셀레우코스는 Thureophoroi 를 한층 발전 시켜, 이들에게 위력적인 갑옷을 입히고 넓은 칼wider blade과 긴 창을 쥐어주었다. 이들은 고도로 훈련되었고 종종 이들의 무시무시한 외관으로 어떤 전투에서든 변화를 줄 수가 있었다. Theuros방패에 은색 메두사의 머리로 전면을 장식했고 강화된 미늘 ‘가면’을 썼는데 이 가면은 이들을 더욱더 무시무시하게 보이게 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무거운 투창을 이용해 적의 전선을 붕괴시켰고 투창을 다 던진후에는 긴 창을 이용해 돌격하며 몰아붙였다. 이들은 조밀한 진형이였지만 팔랑스만큼은 아니라서 좀 더 유연했었다. 이들은 Hypastistai 중에서도 건장하며 최고들이였고 때때로는 적의 전선을 깨트릴 수도 있었다. 이들은 전투에서는 뚜렷한 약점이 없지만 유지하는데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감으로 인해 이들의 숫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극히 드물었다. 이들을 정예 충격 보병 shock infantry로 사용하는 것이 이들의 창설이유임으로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들은 지원을 잘 받아야 되는데 왜냐하면 이 백전노장들이 도망가버리면 나머지군대도 모조리 도망쳐 버릴 것이 자명하게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Seleukidos Thorakitai Argyraspidai는 보병 돌격의 리더격인 Hypasistai 중에서도 소수정예부대였다. 이들의 중갑옷은 매우 공을들였고 비싸서 이들의 수는 1000명을 넘지 못했다(6000명의 Hypasistai 사이에서). 이들은 많은 전투에서 활약했지만 악명높은 라피아 회전에서는 불참했는데 파르티아가 지원하는 반란군들과의 싸움으로 재정비중이였기 때문이였다. 이들은 왕국의 재산이 줌에 따라 이들의 숫자도 점점 줄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에서 셀레우코스가 로마와 싸울때는 불행중 다행인지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었다. 유능한 통치자가 셀레우코스의 권위를 되찾고 조심스럽게 왕국의 재정을 회복시킨다면 역사와는 다르게 이들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heraspidai
Pheraspidai는 Basilikon Agema, 즉 고급 근위대의 두 번째 부분이였다. 이들은 큰 호플리테스 방패와 칼로무장했고, 추가타격을 위해 약간의 무거운 투창이 추가되었졌다. 이들은 돌격보병Assult infantry 로 중무장 보병의 중요 전력이였으며 전투가 밀집된 곳의 구멍을 매꾸어줄 기동예비대로 사용되거나 요새를 공격하는 것으로 쓰였다. 중갑옷을 입었고 근접전에서의 곤궁을 피하고자 두꺼운 투구를 썼다. 징집병을 손쉽게 살육한다던가 겁에 질린 보병부대를 떠받드는 것보다는 원래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 낫다. 이들은 정예병들이고 비싼 중무장 보병이다.
역사적으로, Pheraspidai 즉 돌격 방패부대assult shield bearers는 알렉산더의 돌격군 중 정예였다. 그의 사후에 셀레우코스와 마케도니아에 의해 재편성 될 때까지 분열되어 서로를 살육했다. 이들은 매우 많이 쓰였지만 파르티아와의 전쟁때 경보병과 경기병의 지원이 없어 거의 다 죽어버렸다. 아마 창조적인 지휘관은 이들을 끝없는 절망에서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정말 신경쓰신 해석이네요~ 수고하셧어요 근데 이비 홈피가 어디죠?? 저도 영어는 왠만큼 하는데 다른 팩션이나 번역해볼까 -_-;;
마케도니아나 그리스 어떠세요? ^^;;
http://www.europabarbarorum.com 에요.
번역 감사합니다. 이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겠네요.
오옷 번역감사해요 ^^
번역 감사합니다 ^^;
판토다포이 팔랑기타이의 경우 2차 무기가 도끼라서 심지어는 상급보병도 떡실신 시키는 경우가 있더군요. 허흐-_-
번역 감사드립니다. 요즘 교양으로 고대문명사를 듣는데 EB모드가 얼마나 세세한 모드인지 느끼게 해주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