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산 오름회" & 가고픈산야!
보덕사~신선봉~영취(축)산~암능길능선~청련사
♧ 2024년11월07일(목) ♧
육산과 골산이 즐비한 화왕지맥.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영취산.
호탕한 풍광에 호연지기가 절로 난다. 멀리 화왕산 줄기가 보인다
<부산일보 답사때 메아리朴모습>
◈ 산행코스:- 성내리~보덕사~541봉~신선봉~영축산성~영취산~고)김한출 추모비~삼거리~627봉~
암능길능선~청련사 **** 산행시간:- 약5시간 소요
■ 영취산과 청련사절에 대한 안내글 ■
‘아기자기한 암릉길과 함께하는 멋진 산행지’
골짝마다 능선마다, 각종절들과 암자가 줄줄이…
이번산행은 산행 초기부터 비탈길을 약30분~40분정도 타야 하기에
다소 힘들지만, 이 비탈길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신선봉에만 오르면
왜 사람들이 힘들게 산을 오른는가 알 정도로 최고의 경관을 보여주며
그곳부터 앙능을 타는길은 산행 재미가 새록새록 솟아나는 특징이 있다.
특히 영취산 북쪽의 화왕산~관룡산 능선, 남쪽의 함박산~종암산 능선을
양쪽으로 관망하는 이점이 있어서, 산행이 즐거워 권할 만하다.
암능능선을 즐기며 여유있게 걷다보면 화왕지맥능선과 관룡산 주능이
파노라마 되여 옥천저수지를 끼고 멋지게 펼쳐진다. 하산후
청련사절 입구에 마애석불 구경과 청련사절을 둘려보면, 법당오른쪽에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시주해 만든 범종이 종각에 걸려 있다.
영명사절 경내모습
▲ 병 봉牟峰(꼬깔봉)
△ 육산과 골산이 즐비한 화왕지맥.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영취산.
호탕한 풍광에 호연지기가 절로 난다. 멀리 화왕산 줄기가 보인다.
▣ 창녕/영산:- 영취산(故*김한출 비석)= 시신을 찾아준 사연
△ 부산의사협회 등반대장 (故:- 김한출 추모비)
언제나 이곳산야를 산행하면, 막걸리한병 챙겨가서 따루며
편하게 영면 하시라고 마음으로 조의를 표한답니다
산이 있어서 걸어왔습니다!
평생을 산과 함께 살아온 메아리朴 & 인생길
故:-김한출 비석)= 시신찾아준 사연- 30년전
부산시 의사협회- 등반대장
故*김한출씨 시신찾아준 사연
◈● 사연애기:- 1994년 6월29일 날에 메아리사무실로 긴급히 울려온 전화 1통
사모님의 애절한 이야기는 자기남편이 부산시 의사협회- 등반대장인데
일요일 아침에 답사 나간다고 혼자서 배낭매고 산에 나갔는데 저녁이 되어
어두워 졎는데도 전화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다. 아무레도 사고난것 같으니
메아리 박대장님이 나서 좀 찾아 달라고 애절하게 부탁을 해 왔는데...
혼자서 답사간다 하고서 간혹 여자을 되리고 갔다가 놀다 늦을수도 있지 않는까?
혹 사정이 생겨서 늦게라도 돌아 올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말고 기다려 보자고
사모님을 달래고 하루밤을 지나 월요일 아침새벽에 "아무연락 하지않을 사람이
아닌데 아무래도 무슨사고가 난것 같다" 며 좀 찾아봐 달라고 신신당부 함
그래서 주변지인들게 수소문하여 만어산장 안승래님이 같은 계군이라기에
부탁하여 친구들과 일차로 창령 영산 영축산을 찾아 보도록 도움을 청했음
※ 故*김한출= 서면 태화백화점2층 치과원장-부산시 의사협회- 등반대장 ※
외 그쪽산을 선정하여 찾게 해냐면 집책상위 메모지에 영산:- 영축산에 대한 매모가
적혀 있다고 하기에 그쪽으로 단정함, 참고로 국제신문 근교산소개에 향교출발~
영명사~영취(축)산~병봉~종암산~부곡온천 종주코스가 실려 나오자마자 나도
혼자서 종주답사를 다녀 왔기에 암능이 많은 이산을 답사 갔다가 사고날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쪽산을 중점적으로 의심하고 찾아 나선것 이였습니다.
월요일날 내려간 일차 탐사팀은 경찰서 신고하여 의무경찰을 동원 영축산이 아닌
화왕산~관룡산쪽만 뒤져보다가 그냥철수함 화요일= 그날 화요산행이 있어서
경주남산 가이드산행중, 어디 부탁할곳도 모르고, 3일째 소식이 없으니 사모님
안절부절 계속 전화가 옴. "어쩌던지 제발 좀 찾아봐 달라" 고... 그리하여 회원들게
이사정을 애기하고 산행후 온천취소후 급히 부산으로 내려오며 사모님과
부산일보 커피솦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집행부께 영산 타고갈 자가용을 수배하여
부산일보앞에 대기시키고 사모님+장모님을 만나서 매모되것과 경비:1백만원을
받아서 출발 <시신을 찾아주면 천만을 준다고 했음> 하지만 돈에대한 생각은 조금도
않고 오직 산악인 으로서 시신을 찾는다는 마음에서 야간산행을 결정후, 왜 야간에 시신
찾으려 나가는냐?- 등반중 바위능선 떨어져 다쳐 꼼짝도 못하고 김밥,물 먹으며 견디고
있다면 밤에는 외침소리가 잘 들기기도 하고,비상용 휴라쉬(렌던) 있다면 잘 보이기 때문에
야간을 선택 영축산 산야을 야간에 올라보기로 결심, 파출소에다 만약 무슨신호가 있음
연락 한다고 무전기 한대을 마끼니, 소장님 왈 (왜 이곳에와서 찾는다고 야단이며
야간에 시신찾으려 간다고 야단인냐? 아니라도 자기관할에 모래땅이 꺼져서 대학생
둘이죽고,아들이 애비를 지개작대기로 패서 죽인사건 땜에 골아파 죽게는데...)
하시는것 이였다. 하지만 어떡해요,서장을 달래고 이해시킨후 무전기 마끼고...
△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시주한 청련사 종각.
따라 가게다고 나서는 강바우대원 한명을 대동하여 청련사절에서 부터 계곡 안으로
찾아 들어감, 하늘에 샛별을 중심잡으며 출발 "환출형님~아" 을 수없이 외치며...
깜깜한 계곡을 휴라쉬에 의존하며 바위에 자일걸고 배낭+사람을 당겨 올리며
야간산행을.... 바위 위에서 목이 터져라 "환출형님~아"를 외치다가 나중에는
형님빼고 "환출~아" 을 외치며 바위암능을 치고 오르니 창녕시내 야경이 멋지게
내려다 보이고, 하늘에 별은 총총 밝게 솟아져 내리고...
좋긴한데 한가닥 희망 이였던 고함소리나 불빛이 보이질 않는다.
그것이 이 야간산행에 최고의 희망선 이였는데... 영취산 정상쪽 기도용 촛불보고
정상에 서서, 불러도 불러봐도 밤공기는 적막하게 조용하기만 하다
파출소에다 정상 올라는데 아무반흥이 없어서, 그만표기하고 영면사로 하산 한다고
무전하고 하산하며 계속 이름외치며, 살피며 하산 하는데 반바지 입은 상태라서 산딸기
가시에 찔려서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여 있었다. 파출소에 오니 찾으려 올라간 우리소식을
들으려고 파출소로 사모님 전화가 계속왔다기에 사모님게 보고를 드리고 내일
다시수색 하게다 약속하고 잡아준 여관에서 피로에 쌓여 곤히 잠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부산일보 故*김철우국장님게 사정애기하여 마산 적십자 구조대원=5명
지원받아 A코스능선, 가족이 마을사람= 5명사서 B코스능선, 우리팀=C코스능선, 김한출 친구분
= D코스능선등 4팀으로 배정하여, 능선수색중에 부곡온천쪽으로 향하던 친구팀이 나무가지에
매달린 배낭을 발견 그아래 시신을 발견하게 되였다(이때 발견 못했다면 이산 수색포기)
찾았다는 함성소리 한달음에 가로 질려서 달려가다 나무뿌리에 딱 걸려 넘어지니 바로
故*김한출씨 얼굴과 마주보고 넘어졎다,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에 아! 이분 이였구나!
※옛시절 설악산 용아장성 가이드 갈때 부부가 함께 오셔던분※
경찰들이 올라와서 확인 할때까지 아무것도 손도 못되게 하고 현장보존 시키고,위쪽 바위위에
올라서 보니 머리위로 까마귀때 여러마리가 머리위서 맴돌고 있었다
[좋은경험:- 다음에 또 시신찾으려 간다면 까마귀가 노는 아래을 수색 해볼것]
친구들이 부산친구들게 한출이 시신을 찾았다고 전화로 야단법석들 이다.
까마귀가 맴도는 하늘을 처다보며 왜 이곳에서 돌아가셔을까? 인생무상 이다.
정상에 올라다가 물한모금 마시고 병봉(꼬깔봉)쯤 가다가 점심 드실려고 한것이라 추정
사고원인은 바위봉(사고지점)서 외쪽으로 돌아나와 좌회전 해야되는데 직진 내려서는곳
높이가 약1m 정도다보니 그냥 내려선것 갔음. 아래 발딛는 부분 바위돌이 까닥거려서
오른쪽으로 추락한 추락사 였다. 살운명 이였다면 왼쪽 길쪽으로 넘어져을 것을...??
◆ 시신을 찾은후 그곳 지형지물을 메아리朴이 직접그린 사고보고서 개념도
경찰들이 올라와서 줄에 돌달아 높이재고 현장검정 한후에 구봉사 쪽으로 시신운반
인솔자에게 신발 풀어도 되는냐고 물어본후 허락받고 신발풀어 목에걸고 故*김한출
동생에게 시신운구때 노자돈을 좀 꼽아 주라하니 무응답. 그래서 메아리朴이 전경들게
"구봉사까지 운구함에 있어, 노자돈은 내가 꼽아준다 대신 시신은 쪽바로 일직선으로
운구하여 내린다" 하며 100,000원~50,000원~20,000원씩 꼽아주면서 85도 경사길을
똑바로 운구하여 구봉사까지 모시고 내려왔다. 시신 찾아주고 절까지 운구해 주었으니
내가할 도리는 다한것 같아서 부산올라가는 동생차 태워달라해서 내려왔다
▲ 구봉사절이 천길 암벽아래 아찔하다.
그이후에 있었던 이야기들...
◈● 시신을 병원서 검사후 부산으로 후송 모대학병원에 안치-부고를 돌려 초상을 치루는데
영안실에 병문안 왔던 산부인과 친구가 문상와서 울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
문상하고 집에 돌아간 친구들이 또 부고을 받고 와 달려온 그자리서 산부인과 부인이
대성통곡을 하며 "아무리 친해도 그렇치 가면 혼자가지, 외 남의 신랑까지 잡아갔노"
하며 대성통곡 하는 기막힌 소식를 풍문에 전하여 들었답니다.
◈● 시신을 찾아주면 천만원 주게다던 분들이 초상을 치루고도 인사한번 오지 않다가
남동생이 다녀 갔는데 그여름에 수박 한덩어리 싸오지 않고 사무실을 방문함
난 그린 개념도을 드리며 사물지형을 설명 드리며 사고사 였다라고 알려 드려읍니다
그이후 만나던 사모님과 산부인과 사모님과 둘이서 남천동서 이사하여 대청동에
있는 집(사무실)에 음료수 한박스 싸들고 찾아 오셔서 보험회사에 경비처리 할려고 한다
며 1백만원 경비준것 영수증를 써 달라기에 내가 써고남은 경비600,000원을 내놓으며
그곳에서 돌아가신 이유, 사고난 경위, 고생하며 찾은 애기등을 직접그린 개념도을 한장
주면서 왜 남편이 이곳애서 운명 하셔는지 상세히 설명 드려 답니다. 그리고
[죽은사람이 꿈에 나타나면 좋지 않다는데 왜 죽은 당신남편이 내꿈에 자꾸만
찾아 오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풀지못한 그 무엇이 있는가 보다???
영축산에서 돌아가실 운명이라 그곳에서 돌아 가신건데 돈이 있다고
범어사절에다 올려두고 불공 드려 되겠느냐? 그곳 가까이있는 절에다 올리고
49제라도 지내 주야되지 않게냐 ] 고 말씀 드려더니 그게 맞게다고 하시며
남편죽고 시동생과 재산싸움됨에 일찍 찾아뵙지 못하여 미안 하다며 머리숙여
사과 하시고, 그이후 제가 시킨데로 구봉사절에서 49제 를 올려드려 답니다.
그이후 부터는 제꿈에 나타나지도 않고, 저도 씨달리지 않고 편안하답니다
故*김 한출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