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8월부터 1981년 2월까지 여수 , 순천에서 생활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여수공단에 있는 호남정유(지금은 GS 칼텍스) 의무실장으로 직장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저도 같이 여수에서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대학생활과 군문제 해결과 취직해서 직장 생활(남해화학)을 하는 동안 여수 순천을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여수에 있는 애양원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수 애양원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한센 병자를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이곳은 한센병과 피부병에 대해서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병원입니다. 또 한가지는 이곳이 정형외과 진료기관으로도 알아주는 곳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다리나 손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을 수술하여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기도 합니다. 소아마비 환자 등을 치료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진료를 받으려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 옵니다. 심지어는 강원도 동해안에서도 오니까요.
이곳에 피부과 진료를 받으려면 병원에 오자마자 진료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료받으러 오지만 한센병 환자로 의심이 가는 사람만 그날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보통 피부과 환자들은 당일 진료를 받지 못합니다.
저희 어머니의 피부질환 진료를 받기위해 이곳을 가끔가다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또 순천 천보교회에서 아동부장, 중.고등부부장으로 봉사했을 때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면 교사위로회를 언제나 애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유일하게 허락하여 주시는 곳이 애양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에 오비라 아끼꼬 여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비라 아끼꼬 여사는 일본 사람입니다.
그녀는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한 일들이 너무나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오비라 아끼꼬 여사가 결정을 한 것은 한국에 있는 한센 병자을 위해서 봉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녀는 1972 년 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여수 애양원에서 1980년까지 봉사를 하였습니다.
오비라 아끼꼬 여사는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후 매년 2회씩 한국으로 나와서 애양원에서 봉사를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동행하여 같이 봉사를 하였습니다.
오비라 아끼꼬 여사는 2004 년 2 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금 오비라 아끼꼬 여사의 작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첫댓글 좋은 교훈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귀중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