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는 젊은 아빠가
아장아장 어린 아들을
그늘에 앉히고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는 풍경을
그렇게 많은 시에서 보고도
나는 쓴다
도무지 가질 수 없어서
아름답다 여긴다
포기하면 쉬워진다
(하략)
『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023.04.01.
꽃이 한창이다. 팍팍하게 살다가도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곱지 않은 꽃이 없고 멈춰서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설레는 마음이 옮을 것 같다. 잠시라도 봄소풍을 다녀와야 할 분위기다.
이 시에도 산책에 나선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은 의릉을 찾아갔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경종의 무덤은 왕의 것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려는 시민의 것이 된 지 오래다. 무덤을 보러 가는 이보다 흙냄새와 풀냄새를 찾으러 가는 이가 훨씬 많다. 그래서 시 속의 두 사람도 무덤을 보지 않고 꽃나무만 보고 왔다. 더불어 꽃나무를 즐기는 가족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내 것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젊은 아버지가 행복하게 웃으며 아들에게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는 모습은 무척 이상적이다. 우리는 그런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쉽게 나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웃기 위해서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어린 아들과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좋은 걸 아는데, 아름다운 걸 아는데 그걸 포기해야 하는 마음이 아프다. 때가 되면 꽃을 잘만 피우는 나무가 부러워지는 봄이다.
<나민애/문학평론가>
Gluck - Orfeo ed Euridice - Dance of the Blessed Spir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