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밤. 영어학원을 운영하던 곽희문(41)씨는 집 현관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거실에서 아내와 딸이 껴안은 채 울고 있었던 것이다. 10년을 함께 살면서 아내가 그토록 서럽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내 강동희(42)씨와 딸 상민(10)이는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 줄 아니’라는 동화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케냐의 코로고초에 사는 어린이들의 힘든 삶을 소개한 책이었다. 코로고초는 스와힐리어로 ‘쓰레기 더미’라는 뜻으로,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지역이다. 아내와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하다 갑자기 곽씨 마음이 뜨거워졌다. 곧이어 곽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코로고초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비신자였다. 몇몇 기독교 단체들이 오지 사람들을 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무작정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희망을 찾는 데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서툴게 기도했다. 역시 비신자였던 아내와 딸에게 기도 제목을 알렸다. 둘은 한목소리로 “OK”를 외쳤다. 이후 곽씨 가족은 함께 교회에 나가며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월수입이 1000만원에 이르던 학원을 정리하고 곽씨 가족은 2008년 3월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일원으로 케냐에 갔다. 처음에는 빈민촌 아이들로 이뤄진 ‘지라니 합창단’을 위해 1~2년 정도 봉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코로고초 입구에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생활을 시작했다. 현지 사정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케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곽씨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태아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곳의 여성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몸을 팔기도 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대부분의 태아를 유산했다. 죽은 태아를 비닐봉투에 싸 버리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곽씨 가족은 참담한 현실 앞에서 코로고초를 희망의 땅으로 변화시킬 때까지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고심 끝에 무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을 짓기로 했다. 곽씨 가족은 재산을 털어 땅을 사고 건물을 세웠다. 2008년 9월 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엘토토(EL toto)’,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엘’에 아이들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토토’를 붙여 ‘하나님의 아이들’이라고 지었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영어를 가르치고 먹을 것도 줬다. 주일에는 교회학교를 열어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힘들지만 보람이 있었다. 부인 강씨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일 아침 점심을 먹자 어느새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예뻐졌다”며 웃었다. 영어로 기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 신앙심도, 영어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아이들은 곽씨를 ‘파파(papa)’, 강씨를 ‘마마(MAMA)’라 부르며 따랐다. 아이들의 부모도 주일학교에서 말씀을 들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희망이 조금씩 싹트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고초는 시련의 땅이다. 자비로 유치원을 운영하다 보니 1년 만에 운영비가 바닥났다. 지원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강씨는 지난해 10월 귀국해 과외 교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번 150만원을 매달 케냐로 부쳐 유치원 운영에 보태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곽씨 가족은 2010년에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곽씨는 “솔직히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다 보면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내가 희망을 잃으면 날 ‘파파’라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 역시 희망을 잃고 어둠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씨는 콩고에서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케냐보다 더 열악한 콩고에 ‘희망의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콩고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를 익히기 위해 교재를 사서 공부하고 있다.
당신은 이 지구상에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을 기억하며 당신이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있는가?
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의 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태 6:19-21, 34 마태복음 5:20에 “너희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율법을 통해 설명되는 의가 있고(마5:21이하), 성도의 경건한 생활로 설명되는 의가 있고(마6:2이하),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설명되는 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이 재물에 관하여, 비판에 관하여, 거룩한 것, 그리고 거짓 선지자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19절)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야 할 이유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좀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은 옷감을 해치는 벌레입니다. 다음은 동록이 쓸기 때문입니다. 동록은 보통 식물을 뜻하는데 귀중품을 못쓰게 망가뜨립니다. 다음은 도둑이 도둑질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 흘러가고 없어지고 빼앗기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땅에 쌓아둔 보물은 인위적이든지 자연적이든지 손상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땅은 아직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완전히 주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까지는 불안전하고, 영속성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일은 어리석고 잘못된 것입니다. 2.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20)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할 이유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마3:16)”고 했고,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리라(요1:51)”라고 했고, 따라서 스데반이 순교 할 때 “하늘이 열렸다(행7:5)”고 하였고, 에스겔 1:1 에도 하늘을 열고 이상을 보여주셨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하늘을 열어 두셨습니다. 그러나 열린 하늘이 닫힐 날이 있습니다(마 25:10). 둘째로 하늘에는 땅에서처럼 해를 끼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하늘에는 좀도 없고, 동록도 쓸지 않고, 거기는 도둑도 없습니다. 거기는 영원히 안심하고 하나님이 친히 보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진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정의와 사랑과 진리입니다. 거기는 부정과 부패가 없고, 거짓과 속임이 없습니다. 오직 생명과 평화가 있고,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3.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마6:21). 제자들의 마음은 마땅히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거기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거기로부터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하늘에 두어야 함으로 마땅히 보물도 거기 두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제자들이 보물을 쌓아둘 공간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난 자는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태 5:8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보물을 쌓아 두는 자가 하나님을 보고, 마음이 청결하고 보물과 함께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마땅히 보물은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4. 어떻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 수가 있습니까? 우선 보물이 무엇입니까? 동방의 박사들은 황금, 유황, 몰약을 드렸습니다(마2:11). 예수님은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 “복음”을 보화라고 했습니다(마13:44). 외경 에녹서에서는 에덴 동산에 있는 일곱 산이 보석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창세기에는 에덴동산이 정금으로 장식되었고(창2:11), 계시록에서는 새예루살렘, 천국이 보화로 꾸며졌다(계 21:18, 22:1-5)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한다면 보화는 구원 즉 복음을 믿고,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뜻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일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말씀에 대한 봉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지혜와 지식을 얻습니다. 죤 할리의 글에 의하면 1901년부터 1990년까지 90년 동안 세계에서 자연과학 분야, 즉 물리학, 화학, 의학 등에서 노밸상을 받은 자는 404명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 65%는 개신교 그리스도인이요, 유대인교인이 22%, 카톨릭 신자가 11%, 불교도는 겨우 0.9%, 힌두교도는 0.8% 회교도는 단지 0.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체를 100으로 볼 때 65명은 성경을 읽고, 믿음으로 사는 개신교 기독교인이며, 이는 다른 종교를 믿는 전체보다 2배나 되는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혜와 지식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 도우십니다. 둘째는 이웃에 대한 봉사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세계관이 크게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 중심의 세계관이요, 또 하나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소유한 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생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을 섬기며, 이해와 사랑으로 돌봐줍니다. 이같은 세계관을 가진 자는 이 역사를 하나님이 운영하심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벌할 자를 징계하시고, 선한 자를 돌보시며, 그들에게 복주심을 믿습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존재 목사님 오늘도 함께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