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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50906
금강일보 주홍철 기자
1960년대, 앨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등 최정상급의 스타들이 출연한 미국의 유명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 그런데 어느 날, 이 프로그램에 뜻밖의 출연자가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한국인 걸그룹이었다! 원조 한류 스타, 김 시스터즈의 이야기!
“조국에 계신 여러분, 항상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덕으로 매일매일 열심히 공부해 지금은 미국 A클래스에 속한 스타와 싱어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요를 재즈 혹은 로큰롤 형식으로 불러 미국 흑인들에게 소개해 환영도 받습니다.(중략) 항상 마음은 조국과 여러분께 달리고 있으며 향수에 젖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1969년 김시스터스는 앨범 ‘김시스터스 푸레젠트’를 통해 고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김시스터스는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본거지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다.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찰리 브라운’이라는 노래로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1960년대 초반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다.
김시스터스는 ‘연락선은 떠난다’의 작곡가 김해송과 ‘목포의 눈물’의 가수 이난영의 딸인 숙자와 애자, 그리고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딸 (이)민자로 구성된 그룹. 1950년대 초반 결성해 미8군에서 활약하던 이들은 1959년 미국으로 날아가 라스베이거스 등을 무대로 큰 활약을 펼쳤다. ‘버라이어티’와 ‘라이프’지 등에도 소개됐다.
‘원조 걸그룹’으로 불리며 이제는 아득한 추억 속 가수로 비치기도 하지만 사실 김시스터스는 한국 대중가요사에 명징한 발자국을 남긴 그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세 때부터 KPK 악극단(김시스터스의 아버지인 작곡가 김해송이 이끈 광복 이후 악극단)의 무대에 선 뒤 미8군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며 활동했고 1959년 1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에드 설리번 쇼’에 수차례 출연하고 정식 음반을 발매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시스터스가 ‘여성 보컬팀의 시조’에 그치지 않고 노래뿐 아니라 악기 연주를 겸한 그룹이었으며 후배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추후 김시스터즈 멤버들은 미국에서의 자신들의 성공을 이렇게 말했다.
"저희 어머니(이난영) 덕분이었습니다"
어머니 이나영은 김시스터즈가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것을 조언했다.
맏언니 숙자는 13개의 악기를, 애자와 민자는 각각 10개의 악기를 자유로이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악기다루는 데 능숙했다.
실제로 매 방송 출연마다 다른 악기를 가지고 등장해 MC와 관중들을 경악시켰다.
또 철저한 사생활 관리를 주지시킨 것도 어머니 이난영 덕분이었다. 특히 맏얻니 김숙자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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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본방 봤는데 김시스터즈 관련 부분 재밌습니다
첫댓글 요즘같은 인터넷 세상이였다면 k-pop붐이 훨씬 더 이전에 불지 않았을까 싶어욤..